이국적인 조형·정서 80여년 동안 잘 간직
해방전엔 조선인 감히 접근 조차 못했던 곳
주변에 안내 간판하나 없어…‘무관심’ 아쉬워
영광군 법성포 바닷가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지상 2층 일본식 여관 모습. 일본 건축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이 건물은 80여년 세월 속에서도 보존이 잘 돼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박재일 기자 jip@namdonews.com
[일본색 확연한 목조건물] 전남 서해안의 조그마한 항구인 영광군 법성포는 예전부터 굴비를 비롯한 건어물 생산과 판매가 활발했던 곳이다. 수 많은 상인들이 법성포를 드나들었고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도 이 곳을 통해 물류 소통을 했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이 머물 여관이 따로 필요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것도 한 두개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은 옛 기꾸야 여관이다. 이 건물은 법성포항 바닷가 인근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앞이 트여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었을 것이나 현재는 굴비 전포가 앞 다퉈 형성되면서 이제는 주택가 속에 파묻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건물을 찾을 때도 파출소나 목욕탕 옆으라고 해야 찾을 수 있을 정도다. 건물도 막상 찾아가 보면 요즘 숙박시설에 더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작은 판잣집을 연상할 정도로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이 건물은 누가 보아도 일본 건축임을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일본색이 여지저기 배어있다. 지상 2층 건축면적 165.62㎡의 이 일본식 여관은 1931년 일본인에 의해 건축됐다. 옛 기꾸야(菊花屋) 여관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일본식 여관은 80여년의 세월 속에서도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현존하는 소규모 일식 건축물들이 대부분 내부공간의 변형이 심한 것과 크게 대조된다. 옛 기꾸야 여관의 어원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일본어로 ‘기꾸(きく)’는 국화(菊花), ‘야(や)’는 집(屋)을 고려할 때 일부에서 주장하는 일본인의 이름보다는 상호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건물은 1945년 일본인 태평양 전쟁의 패배로 돌아가면서 한국인의 소유가 됐다. 이후 송희득씨가 친척으로부터 소유권을 이전 받아 장남인 오씨에게 소유권을 넘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 구조는 일본식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나 누가 설계를 했는지, 누가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던 해방 이전에는 일본 여관에 한국인의 출입이나 사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나이 든 주민들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이 여관을 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3면에 특유 차양 설치 눈길] 현재 이 여관은 외부의 모습은 예전처럼 일본식 건축 그대로 잘 남아 있으나 내부의 일부는 약간 개보수가 이뤄져 일반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식 여관은 크지 않는 방형 목재기둥과 보로 구조체를 조립하는 가구식구조로 돼 있다. 1층에도 3면이 지붕이 형성돼 있으며 평면은 정면에 맞배지붕으로 1m 가량 돌출되게 출입구를 만들었다. 건물에서 약간 튀어 나온 포치형식으로 현관을 만들었다. 높이가 어른의 키보다 약간 높을 뿐이다. 또 현관 왼쪽에는 오래된 향나무가 한그루 서 있을 뿐 정원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은 모습이 역력하다. 낮고 조그마한 현관을 들어서면 1층 복도와 2층으로 오르는 목조계단이 보인다. ‘ㄱ자’ 형태의 복도가 있고 복도를 따라 양쪽으로 방이 자리하고 있고 복도의 일부를 급경사의 계단이 차지하고 있다. 1층은 3개의 방과 욕실 및 화장실, 창고 등으로 찌여져 있는데 원래 일본식 다다미방이었던 것을 현재는 온돌방으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 1층 바닥은 장마루를 깔았고, 천정은 얇은 합판을 반자틀로 받쳤다. 방의 출입문은 낮고 창호지를 바른 얇은 미닫이문을 달았다. 건물에서는 일본 특유의 정서와 여유가 느껴지는데 다다미방의 문틀에 나무를 도려내 대나무와 참새를 그려낸 솜씨는 일품이라고 할만하다. 계단을 통해 2층에 오르면 복도가 나타나고 남북방향으로 2개의 다다미방에 이어 그 방을‘ㄱ’자형으로 감고 돌아가는 좁은 복도가 이어져 있다. 복도의 외부는 벽이나 유리창으로 마감했다. 2층은 1층과 마찬가지로 바닥에 장마루를 깔았고 천정은 얇은 합판을 가는 반자틀로 받쳤다 외벽은 막돌 초석위에 방형 기둥을 세우고 흙으로 외벽을 만들고 외부에 판자 널을 대어 판자를 비늘모양으로 마감한 모습이다. 지붕은 당초에는 일본식 기와를 얹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골슬레이트로 교체돼 있다. 지붕의 모습은 맞배지붕과 함께 한식 가옥에 가장 많이 쓰이는 팔작(八作)지붕과 비슷하나 주로 직선적인 조형으로 이뤄졌다. 특히 출입문이나 창호가 있는 3면에 일본건축 차양(裳階, 모꼬시라 함)이 설치돼 눈길을 끈다. 1층과 2층의 각 방에는 여느 일본식 주택에서와 같이 정면에만 출입문을 달고 나머지 세면은 두터운 벽을 쌓은 이른바 ‘감실형 (龕室型)’ 방을 만든 ‘도꼬노마(床之間: 방의 상좌에 바닥을 약간 높게 만들어 족자나 장식물로 꾸며 놓은 곳)’와 ‘오시이레(押入れ:붙박이 벽장)’가 조성돼 있다. [‘기꾸야’서 ‘일본식’으로] 아직 인근 주민들에게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옛 기꾸야 여관은 문화재청에 의해 지난해 9월부터 ‘영광 법성리 일본식 여관’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문화재청은‘등록문화재 명칭부여 기준’에 따라 지난해 “문화재 고유명칭은 역사인물 문화재로 등록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물의 이름을 쓰지 않도록 하고 생성당시 문화재 고유명칭이 불분명하거나 그 명칭이 국민정서에 맞지 않아 문화재 고유명칭으로 부적절하다며 일본어인 옛 기꾸야 여관에 대해 명칭을 변경했다. 이 건물은 2004년 12월 등록문화재(제119호)로 등록돼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주변에 안내 간판 하나 설치돼 있지 않고 영광군 홈페이지에서도 다른 문화유산에 비해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려운 것을 보면 근현대 문화유산에 대한 지자체의 인식의 정도를 짐작케 한다. 전체적으로 건물이 점차 노후화되고 있어 향후 보존을 어떻게 할지를 놓고 이제부터 고민을 시작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