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 팔지 않고 4대째 붓만들기 가업 전승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붓…필공예 ‘혼’ 가득
쌀겨 태운 재로 기름기 제거해야 ‘진품’
4대째 내려오는 비법으로 진다리붓을 만들고 있는 안명환 장인. 선대들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정성에 정성을 더하고 있다.
4대의 대물림으로 ‘진다리 붓’을 만드는 일에 올인하고 있는 안명환 장인. 안씨의 붓은 묵객(墨客)들에겐 소장하고 싶은 붓으로 통한다. 안씨는 평생 외눈 한번 팔지 않고 붓장이 가업을 이어왔지만 아직도 붓을 내보내면서 불안함을 떨치지 못한다고 한다. 선조들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우려함 때문이다. 만족한다는 답변을 받아야만 안심하고 보람을 느낀다는 안씨는 진정한 필공예의 계승자다. 진다리 붓은 시작부터 완성하기까지 아흔아홉번의 손이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만큼 공정이 까다롭다. 쉴 새 없이 붓털을 섞고 비벼 마는 작업을 되풀이 해야 하고 긴 털과 짧은 털을 한 올 한 올 찢어 잇다보니 당연히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든다. 이 때문에 필공예에서는 ‘붓을 제작한다’는 말보다 ‘붓을 맨다’는 말로 표현한다.
<39> 진다리붓 장인 안명환씨
[단숨에 내리뻗는 막힘없는 붓길] 붓은 묵객(墨客)들에게 문방사우(文房四友 종이·붓·먹·벼루) 중 가장 아낌받는 물건이다. 붓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단숨에 내리뻗는 막힘없는 붓길을 원한다. 안씨의 진다리 붓은 이들에게 일필휘지(一筆揮之)를 선물한다. 광주 남구 백운동에 위치한 진다리 붓 공방은 4대째 이어온 필공예의 혼이 가득 담겨 있다. 진다리 붓은 안씨의 증조부인 안재환씨가 지난 1930년 무렵 고향인 전남 보성에서 광주 백운동에서 이주해 만들기 시작했다. 뒤를 이어 조부인 안규상씨가 ‘진교필방’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했던 가게 상호에서 ‘교(橋)’자를 다리로 고치고 1985년 상표등록을 하면서 지금의 ‘진다리 붓’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부친 고 안종선(무형문화재 4호)씨에 이어 2005년 시도무형문화재 4호로 지정된 안씨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붓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할 정도로 붓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붓 매는 기술을 하늘이 내려준 소임으로 생각하고 아흔아홉번의 잔손에도 정성을 놓지 않는다. 안씨의 진다리 붓이 이름난 서화들에게서 ‘좋은 붓장이’로 통하는 것도 이같은 정성과 기술 때문이다.
[첨·제·원·건 4덕목 갖춰야] 안씨가 전하는 ‘좋은 붓’이라 함은 ‘첨(尖)’, ‘제(齊)’, ‘원(圓)’, ‘건(健)’의 네 가지 덕목을 갖고 있어야 한다. ‘첨’은 붓 끝이 날카롭고 예리하며 팽팽할 것, ‘제’는 굽은 털이 없이 끝이 가지런하게 정돈돼 붓을 눌렀다 폈을 때 털이 들쭉날쭉 하지 않을 것, ‘원’은 붓을 물에 적셨을 때 그 모양이 팽이 모양처럼 둥글고 중심점이 있는 것, ‘건’은 붓털이 잘 빗은 머리카락처럼 곧고 탄력성과 유연함을 동시에 지녀 오래 쓸수록 정이 들고 붓털이 빠지지 않는 것을 뜻한다. 붓은 동물의 털을 사용한다. 12월에서 2월 사이 섬 지방에서 사는 동물의 털을 최고로 친다. 특히 전북 이남 호남지방 동물의 털을 선호한다. 바닷가가 있어 찬바람을 많이 쏘이는 탓에 몸을 보호하기 위해 털이 굵어지고 기름지며 강하게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전통의 맥 잇겠다”] 붓의 생명은 털의 기름기를 빼는데 있다. 기름기를 어느 정도 빼느냐에 따라 붓의 윤기나 농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름기를 빼는 데는 전통방식인 쌀겨 태운 재를 사용한다. 이것이 바로 ‘진다리 붓’의 비법이다. 대(竹)는 시누대와 마디대, 오죽(烏竹)을 쓴다. 겨울에 대를 베어 황토흙과 쌀겨를 섞어 물을 탄 뒤 짚으로 여러번 문질러 햇볕에 2∼3개월 말린다. 이를 한 토막씩 자른 다음 건조한 곳에 저장해 두고 쓴다. 안씨는 붓에 대해 부드러우면서도 강함을 강조한다. 진다리붓은 붓털이 가늘고 털의 길이가 짧으며 윤기가 매끄럽게 흐른다. 또 탄력이 있으며 물을 묻혔을 때 흡수가 잘 된다. 먹물을 잘 먹으며 글씨를 쓸 때 화선지와 조화를 잘 이뤄 잘 써지는 것이 특징이다. 대개 10년 이상된 경력자들이 선호하는 편이다. 진다리 붓 공방에서 나오는 붓은 10여가지나 된다. 말털(산마필)로 만든 액자 필(약필), 염소털로 만드는 서예용 붓, 염소털·말털·돼지털·인조모로 만드는 사군자용 붓과 문인화 붓, 염소털과 말털로 만드는 단봉(붓 길이가 짧은 것) 황모필, 황모주련의 족제비 붓, 산토끼 터로 만든 토끼털 붓, 소귀털 붓 등이다. 용도에 따라 서예 붓, 사군자 붓, 문인화 붓, 동양화 붓 등 다양하다. “전통의 맥을 이어간다는 신념으로, 선대에 물려받은 기술을 후대에 물려주고 가겠다”는 안씨는 요즘 손재주가 뛰어난 아들에게 서서히 대물림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