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남루(襤褸)한 누더기를 걸치고 어찌하여 마치 미친 사람처럼 내 퇴근길을 막고 그리 죽을 짓을 하였는가?”삼용은 대답은 하려 하지 않고 허겁지겁 영의정(領議政)이 채워준 술잔을 들고 단숨에 꿀꺽꿀꺽 마셔버리는 것이었다.“아! 맛나다!”삼용이 입맛은 쩝! 다시며 혀를 빨며 말했다.“그래! 한잔 더 받게나!”영의정이 다시 술 한잔을 채워주었다. 삼용은 술잔을 든 채로 벌컥벌컥 바로 마셔 버렸다.“아! 맛나다!”삼용이 또 혀를 빨며 말했다.“그래! 한잔 더 받게나!”영의정이 다시 또 한잔을 채워주었다. 삼용은 또 술잔이 채워지기
“영의정 나리! 이런 혼탁(混濁)한 세상에 무슨 영화(榮華)를 더 누리겠다고 깨끗한 이름을 그리 더럽히고 있나이까!”“네 이놈! 이런 발칙한 놈! 어느 안전(案前)이라고 길을 막고 함부로 망발(妄發)이냐! 목숨이 열 개라도 된단 말이더냐!”호위병사(護衛兵士)가 호통을 치면서 순간 칼집에서 휙! 칼을 꺼내 들고 곧바로 삼용의 목을 겨누는 것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번 휘둘러 치면 삼용의 목은 길 가운데 떨어져 뒹굴 찰나였다.“허흠! 그만두어라!”그때 가마 위의 하얀 수염을 휘날리는 영의정이 호위병사를 보며 말했다. 사납게 부라려
그렇게 아이를 가르치다 보니 결국 자기 탐욕(貪慾)에 찌든 탐관오리(貪官汚吏)에 아첨아부(阿諂阿附)에나 능통(能通)한 간신(奸臣)을 길러내고 마는 것 아니겠는가? ‘글공부를 잘하여 천하인민(天下人民)이 잘 살 수 있도록 헌신(獻身)하는 정직(正直)하고 공정(公正)한 목민관(牧民官)이 되어라! 절대로 자기 자신의 탐욕을 위하여 부정을 저질러서는 아니 되느니라! 나아가 나라가 어려웠을 때 솔선수범(率先垂範) 전심전력(全心全力)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실천궁행(實踐躬行) 하는 지혜현사(智慧賢士)가 되어라!’라고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어린 계집아이가 남의 밭의 감자를 캐서 훔쳐 와 그 감자 된장국을 끓였는데, 그것을 맛있게 떠먹는 아버지 어머니를 그 아홉 아이가 보았다고 하자, 그 아이들은 그 순간 도둑질에 대한 도덕적관념(道德的觀念)이 머릿속에서 깡그리 지워지고 말았을 것이었다. 아니, 그 아홉 자식을 그 순간 모두 도둑을 만들어버렸을 것이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어린아이가 도둑질해 온 것, 그것을 알면서도 맛나게 먹는 부모, 그런 부모라면 아이들 교육은 이미 포기해 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아마도 거기에서 인간과 짐승의 차이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보리 베던 낫을 밭둑에 ‘휙!’ 던져놓고 사납게 소리치며 달려가 아이들을 말렸다.그러나 이미 파헤쳐버린 감자알은 아이가 주머니 안에 챙겨 담았다. 어머니는 그것까지는 눈감아 버렸다. 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날 저녁 이웃 밭에서 훔쳐 캐온 감자로 감자 된장국을 끓였다. 구수한 냄새가 모처럼 물씬 온 집안에 가득 찼다. 밥상에 떡하니 감자 된장국이 오르자 아홉 개의 수저가 불 번개 튀듯이 오고 갔다. 굶주림과 먹는 것, 그 사
술 몇 잔과 잔돈푼, 그리고 주머니칼 들고 작은 밥자리 잡고 깨춤을 추는 패거리들 이리저리 몰고 다니며 탐욕(貪慾)과 부정부패(不正腐敗)에 찌들어 세상을 기만(欺瞞)하고, 부당하게 지위를 얻고 이른바 번쩍번쩍 휘황하게 세속출세(世俗出世)하여, 그 부모에게 날마다 산해진미(山海珍味)를 구해다 먹이고, 진기(珍奇)한 황금보석(黃金寶石)으로 제아무리 감싼다고 해도 결코, 효가 될 수 없다는 것 아닌가!‘혹여 내가 이런 삶을 살아왔고, 또 옥동에게 그런 자식이 되도록 바란 것은 아니었던가?’조대감은 스스로 자문자답(自問自答)하며 지그시 눈
조대감은 옥동의 신발을 부여잡고 마당에 앉아 스스로 위안(慰安)하며 소리 없이 흐느끼는 것이었다.‘이! 이게 말 안 듣는 못난 자식 기르는 아비의 마음이란 말인가! 가슴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썩어 문드러지는구나! 아아아!……’조대감은 망연자실(茫然自失) 넋 나간 듯 마당에 한동안 그렇게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밤길 멀리 와서 곤히 자고 있을 옥동을 생각하고는, 신발을 다시 댓돌 위에 조용히 올려놓고 혹여 누가 볼세라 비틀비틀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조대감은 이불 깃을 비집고 들어가 잠자리에 누웠다. 효경(孝經)에 이르기를
“허! 그새 계명축시(鷄鳴丑時)라!……”조대감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방문 밖으로 나갔다.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옥동이 기거하는 방문 앞으로 가서 거기 신발이 있나 없나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쫓겨오거나 도망 나왔다면 분명 그 방문 앞에 옥동의 신발이 있을 것이었다.‘허! 참으로 아비 노릇 하기 참으로 힘든 일이로구나!’조대감은 중얼거리며 칠흑 어둠을 헤치며 콩닥콩닥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옥동의 방문 앞으로 슬금슬금 걸어가는 것이었다. 새벽 달빛도 없는 밤은 그야말로 먹빛 어둠이었다. 조대감은 눈을 끔벅이며 옥동의 방
분명, 옥동이 집으로 돌아온다면 밝은 대낮에는 오지 못하고,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 눈을 피해 칠흑 어둠에 돌아올 것이었다. ‘그 녀석이 잘 버틸까?’ 도무지 조대감은 초심고려(焦心苦慮) 아들 옥동에 대한 믿음이 전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말 안 듣는 자식놈 멀리 글공부 보내놓고 혹시나 잘못될까? 두려워 조대감 또한 별별 생각을 다 하는 것이었다. 윤처사는 죽마고우인데 여기서 잘못되면 더는 방법이 없다는 막다른 생각이 더 가슴을 태우게 하는 것이었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든 조대감은 전전불매(輾轉不寐) 쉬이 잠을 이루지 못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그런데 왜? 어려 뇌 속에 깊이 각인(刻印)된 그 의식(意識)이 도무지 지울 수 없는 것이 되고 만 것일까?그런저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거듭한 끝 석양 노을이 서녘 하늘에 눈시울 붉힐 무렵, 조대감은 집에 당도하였다. 대문을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김씨 부인이 달려 나와 말했다.“대감! 옥동은 잘 맡기고 오셨나요?”“으음! 부인, 잘 맡기고 왔소이다!”조대감이 말했다.“이번에는 속 썩이지 않고 학업(學業)에 열중(熱中)해야 할텐데………”김씨 부인이 노심염려(勞心念慮) 되는 듯 말끝을 흐렸다.“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갑자기 그 외마디 소리를 들은 말고삐를 잡고 가던 종자가 말이 놀라 뛸까 봐 고삐를 감아 잡아당기면서, 집이 아직 멀었느냐고 조대감이 묻는 줄 알고 깜짝 놀란 얼굴로 돌아보며 말했다.“아아! 아! 아이구! 예예! 대대……대감 나리! 아! 아직 멀었습니다요!”“으으 응! 응!……그그, 그래, 그래!”조대감이 머쓱한 표정으로 얼버무리며 말했다. 사람이 매사(每事)를 빈틈없이 깊이 사색하며 일희일비(一喜一悲)를 삼가고 신중(愼重)하고 경중(敬重)이 대해야 하거늘 울었다, 웃었다, 성냈다를 반복하며 이리저리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사실, 창창(蒼蒼)한 미래(未來)를 책임(責任)지고 두 어깨에 짊어지고 나갈 골칫거리 아들을 잘 가르칠 몽매(夢寐)에도 바라던 훌륭한 스승을 만나 맡기고 오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 것인가! 그런데 조대감의 지금 터져 나오는 웃음은 꼭 그것만은 아니었다. 최초로 저 고집 센 윤처사를 제 뜻대로 제대로 이겨 먹었지 않은가! 조대감은 윤처사의 집이 안 보이는 곳에 이르러서야 끝내 참지 못하고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마구 터지는 웃음을 한 보따리나 미친놈처럼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이었다.“우우! 하하하하하하하하
조대감과 윤처사는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조대감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윤처사는 새로 온 조대감의 아들 옥동에게 앞으로 해야 할 글공부에 대해 말하고, 또 거처(居處)할 곳을 정해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조대감이 방문을 열고 나가자 마당 가에 서 있던 옥동이 다가왔다.“옥동아! 여기 스승님 말씀 절대로 어기지 말고 글공부에 최선(最善)을 다해 전념(專念)하기 바란다. 이번이 이 아비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機會)이니라!”조대감이 옥동을 바라보며 말했다.“예! 아버님! 명심(銘心)하겠습니다.”옥동이 고개를 수그리며
“으음! 이것은 내가 잘 간직하겠네!”윤처사가 서명이 적힌 종이를 건네받으며 말했다.“고마우이! 어려운 내 부탁을 이리 들어주시니! 오늘부터는 내 편히 지낼 수 있겠네!”조대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말하면서 윤처사의 손을 덥석 붙잡는 것이었다.“그래! 조대감, 마음을 잘 알겠네! 천하명마(天下名馬)로 타고 난 말을 조련(調練)하기와 일반 평마(平馬)를 조련하기는 그 방법이 아주 다르다는 걸 잘 알 걸세! 천하명마는 난세(亂世)를 평정(平定)할 영웅(英雄)을 보필(輔弼)할 말이지만, 일반 평마야 단 일개 병사(兵士)가 타는 한 번의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어찌, 윤처사 그 마음 모르겠는가? 자기 자식 교육 스스로 못 한다고 하는데, 친구의 아들을 맡아 교육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 잘 알고 있네! 잘하면 본전(本錢)이고, 못하면 평생원망(平生怨望) 아니겠는가!”조대감이 말했다.“으음! 그리 알아주니 고마우이! 조대감, 하는 일 없이, 되나 깨나 큰 칼 차고앉아 표독(慓毒)한 탐관오리(貪官汚吏)처럼 군림(君臨)하며 백성들 피 같은 록(祿)이나 축내는 짓이나, 남의 귀한 자식 아무렇게나 가르치고 쌀 됫박이나 두둑이 얻어먹는 짓은 글줄이나 읽은 선비로서
“으음! 언젠가 아들 문제로 골치가 아프다던 어느 선비께서 나에게 묻더구만, 벼슬하는 아들, 돈 잘 버는 아들, 정말 듣기 좋은데, 벼슬과 아들, 돈과 아들을 따로 떼어놓았을 때, 어느 게 더 좋냐고 묻더구만, 그때는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라 생각했는데, 이놈 세상사(世上事) 살아보니 그것이 아니었네. 오늘, 그 질문이 생각 나는구만.”“그렇지! 본래 속 썩이는 일로 깊은 고심(苦心)을 해봐야 인생이 깊어지는 법일세! 샘물이 나오지 않을수록 더 깊이 파 들어가는 법이지! 그러고 보면 내 속을 썩이는 사람이 최고의 인생 스승인 게야!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잠깐!”조대감이 글을 막 읽으려는 순간 윤처사가 무엇이 퍼뜩 생각이라도 난 듯 소리쳤다. 조대감은 글에서 눈을 떼고 윤처사를 바라보며 말했다.“무, 무언가?”“으음! 조대감, 내 생각해 보니 혹여 일이 그르칠까 싶어 그런다네!”윤처사가 그렇게 말을 하며 조대감을 바라보았다. 조대감은 윤처사가 이 상황을 빠져나갈 마지막 수를 두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사실, 다른 사람도 아닌 죽마고우(竹馬故友)의 아들을 맡았다가 자칫 잘못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두고두고 탓을 들을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한참 후 윤처사가 서당 아이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고는 조대감이 기다리고 앉아있는 사랑방 앞으로 왔다.“옥동아! 어서 인사 뫼시거라! 너의 스승님이시다!”조대감이 옥동을 바라보며 말했다.“스승님! 문안드리옵니다! 저는 조씨 가문의 8대 장손(長孫) 조옥동이라 하옵니다!”옥동이 마루에서 벌떡 일어나 앞으로 나가더니 고개를 깊이 수그리고 윤처사를 바라보며 인사를 했다.“으음! 그래! 먼 길 오느라 수고가 많았구나! 배가 고플 테니 우선 점심부터 먹자구나!”윤처사가 말했다.“허흠! 고마우이! 윤처사! 내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조대감이 생각하기에 윤처사는 분명 남다른 인품(人品)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본시 배운 것도 없이, 욕심만 많고 허우대만 커다랗고 힘만 센 인종(人種)은 욕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대개 잔인(殘忍)하고 포악(暴惡)한 성정(性情)을 시도 때도 없이 드러내며 사납게 굴기 일쑤이기도 하는데 그런 자의 인품은 그저 짐승과 진배없을 것이었다.그러나 윤처사는 본시 사려 깊은 데다가 상대에 대한 세심한 배려심(配慮心)이 깊어 나중에 보면 그 깊은 진면목(眞面目)이 매사에 드러나 보였던
조대감은 말 두 필에 아들 옥동이 입을 옷가지와 서책 그리고 쌀가마니를 싣고 어제 갔다 왔던 길을 사내종들에게 말고삐를 잡게 하고 부자간(父子間)에 나란히 길을 가는 것이었다. 과연 윤처사는 이들을 반겨줄 것인가? 아니면 왜 왔느냐고 타박하며 쫓아낼 것인가? 그것은 오직 조대감만이 알 길이었다.유비가 산속 초막집에 사는 제갈공명을 세 번이나 찾아가서 난세(亂世)를 평정(平定)하고 천하통일(天下統一)을 함께 도모(圖謀)할 군사(軍師)로 삼을 평생동지(平生同志)를 구했는데, 그것을 삼고초려(三顧草廬)라고 하였던가! 아마도 조대감도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