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아아!……옥동이 정말로 공부를 그만두고 되돌아왔단 말인가요? 대감! 정말 믿기 지가 않습니다. 얼른 가서 확인해 봐야겠습니다”부인이 황급히 방문을 여닫고 나갔다. 옥동이 간밤에 돌아와 제방에서 자고 있다고 하니 그것이 정말인지 너무도 궁금했던 것이었다. 조대감은 밥상을 앞에 두고 수저도 들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고 앉아있었다.잠시 후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헐레벌떡 돌아온 부인이 의아한 눈빛으로 조대감을 바라보며 말했다.“대감! 옥동을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기에 방문을 열어보니 옥동이 방안에 없었습니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옥동의 모든 것을 받아주고 ‘오냐! 오냐!’ 하며 감싸기만 하는 부인이, 옥동이 지난밤 윤처사 집에서 도망 나온 것을 트집 잡아 큰 소동(騷動)을 낼까 두려워 애써 감추고 있다고 조대감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조대감은 부인에게 아무 일 없을 거라며, 옥동에 대한 모든 사사로운 욕망(欲望) 따위는 이미 포기(抛棄)했노라고 일부러 선수(先手)를 쳐서 안심(安心)시켜주는 말을 한 것이었다.“아? 아니! 대감! 언제 옥동이 집에 돌아오기라도 했나요?”부인이 금시초문(今始初聞)이라도 된 양 눈을
조대감은 스승 윤처사 집에서 밤에 도망 나와 지금 자기 방에서 곤하게 자고 있을 옥동을 생각하고는 급기야 그런 생각에까지 이르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은 모두 일체망상(一切妄想)에 불과(不過)한 것 아닌가! 조대감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사(人間事)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하더니, 그중에서도 정말로 마음대로 아니 되는 게 바로 자식 일이 아닌가!조대감은 다시는 옥동에게 아무런 기대도 절대로 갖지 말자고 몇 차례나 다짐해 보는 것이었다. 엎치락뒤치락 그러는 새에 조대감은 얼핏 새벽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한참
비록 청계천 물가에 오두막을 짓고 가난하게 살아간다지만 그 삼용은 세상 돌아가는 속을 분석(分析)할 줄 아는 지식인(知識人)인 데다가, 백성들 위에 군림(君臨)하며 고혈(膏血)의 록(祿)을 받아먹으며 사납게 핍박(逼迫)하는 자도 아니고, 되려 거지들과 어울려 지내며 그들의 어려움을 풀어주는 자이니 흠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없지 않은가? 더구나 잘못 살아가는 영의정을 목숨을 걸고 나서서 바로 잡아주는 용기(勇氣)까지 지닌 말 그대로 무명걸사(無名乞士) 삼용이 어쩌면 희망 없는 이 시대에 나름대로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삼용이 영의정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말했다. 영의정이 입을 꾹 닫고 성난 범이 매서운 눈빛으로 먹이를 노리듯 삼용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저 개살구 모로 터진 개망나니 같은 삼용을 어떻게 할까? 깊이 고민하는 것일까? 입만 살아서 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 비루먹은 망아지 사정없이 목덜미를 붙잡아 후려 패서 피 질질 흐르는 것, 찢어진 헌 가마니에 둘둘 말아 저 청계천에 내다 버려야 하나? 아니면 밉지만 곱게 보아주고 등 다독거려 주어야 하나? 그걸 생각하는 것일까?순간 영의정의 굳은 표정이 오뉴월 엿 늘어지듯 갑자기 풀어지더니 커다란 웃
“뭐라? 이런 고얀!”순간 영의정이 버럭 화를 내고 소리치며 삼용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바깥의 호위무사를 당장 불러 삼용을 끌어내 요절(撓折)이라도 내겠다는 것인가?“영의정 나리! 천지분간(天地分揀)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군왕(君王) 밑에서 오직 탐욕에만 물든 사악(邪惡)한 외척과 독사 같은 간신(奸臣)들이 우글거리는 판국에 도대체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그들의 튼튼한 방패막이만 하고 있지 않사옵니까? 정녕! 그것을 모른단 말씀이옵니까?”삼용이 정말로 목숨을 내놓았는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물러섬 없이 영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삼용이 말을 끊고 영의정을 바라보았다.“어! 어흠! 동서남북(東西南北)에 남녀노소(男女老少)로 짝짝 갈라져서 권력쟁탈(權力爭奪) 하는 꼴이 백성의 평안한 삶과는 무관한 데다가 왜(倭)를 비롯한 사방대국(四方大國)의 오랑캐들이 호시탐탐(虎視眈眈) 노리는 모양새가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냐?”영의정이 사뭇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렇습니다. 영의정 나리! 무릇 창칼로 유혈득천하(流血得天下)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제왕(帝王)이란 자는, 유사이래(有史以來)로 식색지성(食色之性)의 본능(本能)만을 가진,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삼용이 술잔을 들어 입술을 적시고는 입맛을 쩝! 다시고 나서 말했다.“영의정 나리!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라와 집을 가진 자는, 적은 것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못함을 근심하는 것이고,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고 편하지 못함을 근심한다면서, 고르게 분배하면 가난한 사람이 없게 되고, 조화롭게 하면 적지 않고, 편안함은 기울어짐이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子曰 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蓋均無貧 和無寡 安無傾)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불공평(不公平)의 극치시대(極致時代)가 아닙니까? 자연
잠시 후 영의정이 삼용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그 그래!……그렇다면 너는 천하치세지도(天下治世之道)를 무어라고 생각하느냐?”술 한잔을 단숨에 들이켠 삼용이 영의정을 바라보며 말했다.“천지지심(天地之心)은 인심(人心)인데, 인심은 농부지심(農夫之心)이요. 부모지심(父母之心) 아니겠습니까?”“왜 그러느냐?”영의정이 말했다.“하늘과 땅의 마음은 본시(本始) 천지만물(天地萬物)을 생성양육(生成養育) 하는 것인데, 농부와 부모의 마음이 그렇지 않습니까?”삼용이 말했다.“그래! 그렇다면 생성양육하는 천지와 농부와 부모의 도(道)는 무엇이냐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과연 삼용이 영의정이 추석 전날 내려준 그 술과 음식 지게를 집으로 짊어서 가져가지 않고 무슨 까닭으로 청계천(淸溪川) 다리 위에 펼쳐놓고 거지 떼들을 비롯한 거기를 지나가는 백성들과 함께 모조리 먹어 재꼈는지, 심문(審問)을 좀 해보아야 할 것 같았던 것이었다.영의정이 여느 때처럼 사랑방에 단출하게 주안상을 보아놓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호위무사가 삼용을 데리고 왔다. 헤진 갓을 쓰고 덕지덕지 기워입은 기름때 절은 누더기 두루마기를 걸치고 삼용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앉았다.“영의정 나리!
그중 직급이 가장 높은 수염이 허연 신하가 영의정에게 대뜸 말하는 것이었다.사실 오래전부터 영의정이 거지 삼용을 간간이 집으로 불러서 만나 술을 나누며 잘 지낸다는 소문이 거리에 파다(播多))하게 나 있었던 것이었다.“대감! 무슨 일이 있나요?”영의정이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다름이 아니오라 영의정 나리께서 추석 전날, 추석 차례 잘 지내라고 삼용에게 내려주신 술과 음식 보따리를 집으로 하나도 가져가지 않고, 그 즉시 청계천 다리 위에 펼쳐놓고 거지들과 거기 지나가는 백성들과 함께 모조리 나눠 먹었다고 하옵니다!”“허흠!
호위무사가 말했다.“으음! 그래! 고생하였구나. 나가보아라!”영의정이 말했다. 호위무사가 고개를 수그려 절하고는 방을 나갔다.“허흠! 주위 백성들에게 칭찬이 자자한 자라고!……그러한 자가 진정(眞正)으로 백성을 위하는 자가 아니더냐! 여기나 저기나 나 같은 못난 원숭이가 관(官)을 쓰고 행세(行勢)하는 목후이관(沐猴而冠)의 세상이니 쯧쯧쯧!……’영의정이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혀를 끌끌 차며 혼잣소리를 했다.그후로 영의정은 간간이 삼용을 불러 술을 나누면서 세상 이야기 나누기를 즐겨 하였다. 사심(私心) 없이 자신을 세워 내세우지 않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영의정(領議政) 나리께서도 한잔 받으셔야지요!”“허허! 좋다! 좋다! 오늘 한번 목숨 내걸어놓은 무명걸사(無名乞士)와 만판 취해 보자구나!”영의정이 좋아라! 소리치며 넘실거리는 술잔을 높이 들었다.영의정과 삼용은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그 날밤 영의정과 삼용은 연거푸 술을 마시면서 세태(世態)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밤이 늦어 헤어졌다.다음 날 아침 거나하게 마신 술 탓으로 늦게 눈을 뜬 영의정은 호위무사(護衛武士)를 사랑방으로 불렀다. 검은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가 방안으로 들어와 영의정 앞에 다소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삼용이 거침없이 말했다.영의정은 잠시 말없이 삼용을 바라보았다. 이미 영의정도 작금의 혼탁(混濁)한 세태(世態)를 엄밀(嚴密)하게 파악해 알고 깊이 용퇴(勇退)를 고심(苦心)해 오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한갓 무지렁이 거지 행색의 사내가 그런 말을 감히 쏟아내다니! 이 나라와 백성의 안위(安危)를 진심(眞心)으로 걱정하는 청정지심(淸淨之心) 정의용력(正義勇力)이 없는 자라면 절대로 이리 나서지 못했을 것이었다.가끔 글줄이나 읽었다는 카랑카랑한 선비라는 작자들이 영의정을 찾아와 세태에 대한 나름 특별한
순간 영의정은 눈을 매섭게 부라려 뜨고 무슨 끔찍한 결심(決心)이라도 한 듯 삼용을 사납게 쏘아보는 것이었다.‘아차! 그러나 지금 문밖에서는 도대체 사랑방 안에서 영의정과 거지가 단둘이 만나 무슨 말을 나누고 있을까? 두 귀를 쫑긋 곤두세우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단단히 지켜보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모든 일은 내일이면 저잣거리에 시끌벅적 인구회자(人口膾炙)될 것이 분명(分明)했다. 영의정이 길을 막고 덤비는 거지 행색의 어떤 모자란 놈을 집으로 데려가 술을 마시다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끝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아마도 영의정 허적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까닭으로 허견을 냉정하게 분석해 파악하고 통제하지 못했던 것처럼, 공자 또한 사랑하는 제자라는 것 때문으로 염유를 냉정하게 분석해 그 이중적인 모습을 정확히 파악하여 신중(愼重)하게 살펴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러기에 잘 생기고 총명하다는 허견은 보란 듯이 과거에 급제하여 영의정인 아버지 허적을 믿고 멋대로 까불다가 역적(逆賊)이 되어 두 부자(父子)가 죽음을 맞는 참화를 면치 못했고, 공자 또한 제자 염유가 화술이 뛰어나고 다방면(多方面)으로 재주가 많아 노나라의 실권자 계씨에게 추천한 것
삼용이 다짜고짜 영의정을 쏘아보며 말했다.염유라 하면 공자의 제자를 말함이 아닌가! 화술(話術)에 능통(能通)한 데다가 재주가 많고 좋았던 염유는 유능한 행정가(行政家)였고, 장군(將軍)이기도 했다. 염유는 스승 공자의 추천(推薦)으로 노나라의 실세였던 계씨의 가신(家臣)으로 들어가 일을 했는데, 계씨가 백성들에게 세금을 많이 거두도록 증과세정책(增課稅政策)을 시행하였다. 이에 염유가 공자를 찾아가 여쭈었다. 공자는 세금을 많이 거두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염유는 스승 공자의 말을 어겼다.‘염유는 계씨가 주공보다 부유한데도,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삼용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영의정을 바라보며 말했다.“흐흠! 그래? 정치(政治)는 공평(公平)이라!……”영의정이 말했다.“영의정 나리! 매일 도둑질하면서 살아가는 자가 도둑질하러 왔다면 그를 붙잡아야겠습니까? 아니면 가엽게 여기고 도둑질을 하도록 모른 척 놓아주시겠습니까?”삼용이 영의정을 바라보며 말했다.“그야 그 도둑놈을 반드시 붙잡아 다시는 도둑질하지 못하도록, 앞으로는 근면성실(勤勉誠實)하게,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훈시계도(訓示啓導) 해야 할 것이 아니냐!”영의정이 싱겁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대는 남루(襤褸)한 누더기를 걸치고 어찌하여 마치 미친 사람처럼 내 퇴근길을 막고 그리 죽을 짓을 하였는가?”삼용은 대답은 하려 하지 않고 허겁지겁 영의정(領議政)이 채워준 술잔을 들고 단숨에 꿀꺽꿀꺽 마셔버리는 것이었다.“아! 맛나다!”삼용이 입맛은 쩝! 다시며 혀를 빨며 말했다.“그래! 한잔 더 받게나!”영의정이 다시 술 한잔을 채워주었다. 삼용은 술잔을 든 채로 벌컥벌컥 바로 마셔 버렸다.“아! 맛나다!”삼용이 또 혀를 빨며 말했다.“그래! 한잔 더 받게나!”영의정이 다시 또 한잔을 채워주었다. 삼용은 또 술잔이 채워지기
“영의정 나리! 이런 혼탁(混濁)한 세상에 무슨 영화(榮華)를 더 누리겠다고 깨끗한 이름을 그리 더럽히고 있나이까!”“네 이놈! 이런 발칙한 놈! 어느 안전(案前)이라고 길을 막고 함부로 망발(妄發)이냐! 목숨이 열 개라도 된단 말이더냐!”호위병사(護衛兵士)가 호통을 치면서 순간 칼집에서 휙! 칼을 꺼내 들고 곧바로 삼용의 목을 겨누는 것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번 휘둘러 치면 삼용의 목은 길 가운데 떨어져 뒹굴 찰나였다.“허흠! 그만두어라!”그때 가마 위의 하얀 수염을 휘날리는 영의정이 호위병사를 보며 말했다. 사납게 부라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