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왕은 홍계관을 신통하게 여기고는 과연 그의 신출귀몰(神出鬼沒)한 재주가 어떠한가 궁금하여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왕은 궁리 끝에 신하에게 쥐를 한 마리 잡아 오게 해서 항아리에 담아 오도록 했다.홍계관을 부른 왕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대의 재주가 참으로 신통(神通)하여 역서를 잘 찾았다. 앞이 안 보이는 소경인데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재주를 가졌구나! 참으로 고맙구나”“아이구! 대왕마마! 그까짓 것은 참으로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옵니다.”홍계관이 우쭐하여 말했다.왕은 순간 홍계관의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그 말을 들은 홍계관이 손뼉을 딱! 하고 치며 말했다.“아하! 그럼 그렇지! 상정승 나리! 바로 그것이옵니다! 죽을 목숨을 살려준 그 음덕이 있었으니 상정승 나리의 수명이 연장(延長)된 것이옵니다.”“허흠! 그것이 숨은 음덕이 되어 내 죽을 목숨을 연장했단 말인가!”상진 대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사옵니다. 상정승 나리! 수라간 별감의 잘못을 함구(緘口)하여 숨겨주고 그에게 닥칠 죽음을 면해 주었으니 그 얼마나 큰 음덕이옵니까? 그때 그를 붙잡아 벌을 주고, 세상에 그 공(功)을 내세웠더라면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홍계관이 머리를 깊이 조아리고 말했다.“허허! 없는 음덕을 기억해 내라니? 이 무슨 고약한 심성(心性)인가?” 상대감이 이번에는 버럭 화를 냈다.“제 점괘가 아직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사온데 유독(惟獨) 상정승 나리의 수명점괘(壽命占卦)만 틀렸습니다. 이는 숨은 음덕으로 타고난 수명을 분명 연장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제 목숨을 내놓겠습니다”홍계관이 고개를 조아리고 쐐기를 박아 말했다.“으음! 정녕 그러한가?……흐하하하하하하!”상진 대감이 홍게관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크게 웃음
상진 대감은 홍계관이 죽는다고 예측한 날짜에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는 죽음에 대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다리는 죽음은 오지 않았다.‘허허! 천하제일(天下第一) 홍계관의 점괘가 틀린 것이 아닌가!’그때 홍계관은 멀리 호남지방에 가서 살고 있었는데 자신이 점을 쳐서 예측한 날에 상진 대감이 죽었다는 부음(訃音)이 날아들지 않는 것이었다. 홍계관은 이상하게 여기고 한양에서 내려오는 객들에게 상진 대감의 안부를 묻곤 하였는데 지금도 건강하게 상정승 일을 잘 맡아보고 있다는 것이었다.‘참으로 기이하구나! 틀림없이 그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엇따! 당신들은 산사람과 죽은 사람도 구분하지 못하오!”상진이 그들을 바라보며 태연하게 말했다.“도도……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요?”늙은 하인이 상진을 바라보며 소리쳐 말했다.“보고도 모른단 말인가? 어서 썩 물러가라!”상진이 크게 고함을 쳤다.늙은 하인은 상여와 관을 들고 그 집을 나왔다. 산 사람을 관속에 집어넣고 상여를 띄워 갈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상진이 살아 있다는 사실은 바로 이대감에게 보고되었다. 상진이 살아 있다는 보고를 받은 이대감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인들이야 죽었어야 할 상진이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여인이 말했다.“이놈은 본시 거지 신세인데 귀신이며 죽음 따위가 무엇이 두려울 것이냐? 그렇다면 과연 이곳에서 몇이나 죽어 나갔느냐?”상진이 담담하게 말했다.“아홉이지요”여인이 말했다.“아이구! 아홉이라면 내가 열 번째였구나!”상진이 놀라 말했다. 이 방 안에서 잠을 자다가 저 처녀귀신들을 만나 그만 아홉이나 황천객이 되고들 말았으니 자신도 영락없이 죽을 목숨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왜 이대감은 하필 이런 흉가(凶家)를 얻어 딸과의 신혼살림을 차려주겠다고 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상진의 뇌리를 전광석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공동묘지 거지 움막집에 살면서 요행히 대가 집 딸의 생명을 구해준 까닭으로 그 집 딸과 혼례를 치르고 커다란 집에서 살 것을 생각하니 자꾸 마음이 들떠 오르는 것이었다. 참으로 하늘이 내려준 천운(天運)을 붙잡은 것이었다.상진은 방안에 들어 이제 이 집이 자기 집이려니 생각하고 네 다리를 뻗고 누웠다. 언제 이런 좋은 집을 가질 행운이 있었던가! 비록 겉보기는 낡았다고는 하나 기둥이며 대들보를 보니 커다란 대가가 분명했다.종일토록 피곤하게 길을 걸어온 상진은 자리에 눕자마자 깊은 잠이 들어 버렸다.
이대감 앞에 다소곳이 딸이 앉자 이대감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이 아비는 생명의 은인인 상진과 혼인을 하여 평생 은혜를 갚으며 살겠다는 너의 말을 듣고 몇 날 며칠을 뜬 눈으로 고민하며 결국, 너의 뜻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비록 일자무식 거지라지만 너의 생명을 살려준 은인에 대한 사람으로써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속 깊은 딸자식의 마음을 이 아비는 받아주기로 하였단다. 너희들이 혼인하여 새로 살 집을 마련해 두고 조금 전 먼저 상진을 보내 하룻밤을 거기서 자면서 그 집을 잘 정리하라 했으니 수일 내로 좋은 날을 잡아 성대하게 혼례식을
이러한 일을 결행(決行)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고려해야 할 것은 둘 다 감쪽같이 속이는 것이었다. 거지 상진에게 있어서는 이대감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대덕(大德)을 베푸는 인자(仁慈)한 대감으로 인식(認識)되어야 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딸에게 아버지로서 인간적이고도 도덕적인 순수한 생명은인에 대한 은혜 갚음을 깊이 공감하고 딸의 숭고한 뜻을 들어주는 도량(度量) 있는 아버지로 인식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그에 대한 묘책으로 이대감이 생각해낸 것은 산 사람이 들어가 자면 그 누구도 하룻밤을 못 넘기고 죽어 나온다는 흉가(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아버님, 비록 그 사람은 거지이나 소녀의 생명을 살려준 은인입니다. 소녀는 그 사람에게 시집을 가겠습니다”여인은 아버지 방으로 가서 자신의 심정(心情)을 숨김없이 말했다.“어허! 지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것이냐? 물론 그 사람이 너를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라는 것은, 이 아비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거지 생활을 청산하고 먹고 살 만큼 집과 전답을 마련하여 그 은혜에 보답하였다. 그러면 되지 않으냐? 너는 더는 마음 쓰지 말고 몸조리나 잘하여라!”이대감이 딸을 바라보며 조용히 타이르듯 말했다.“
여인이 말을 하다가 잠시 멈추고는 옆에 서 있는 거지 상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바로 저분이 지난밤 초분을 헤쳐 관속에서 소리치는 저를 꺼내 온몸을 주물러 회생(回生)시켜주고 이렇게 집까지 데려왔습니다!”“허어! 저 거지가 너를 구해주었더란 말이냐?”이대감이 놀란 눈으로 덕지덕지 기워입은 누더기를 걸친 상진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렇습니다. 아버님, 저분은 저의 생명의 은인(恩人)이십니다”여인이 말했다.“으음! 생명을 구해주었다니 참으로 고맙구나! 어서 방으로 들어가거라!”이대감이 딸에게 말을 하고는, 거지 상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상진이 납작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천하권세(天下權勢)를 누리는 한양 땅 이대감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었다. 자칫 잘못하여 이 여인을 건드렸다가는 그 즉시 황천객이 될 것이었다. 여인은, 거지 상진이 기거하는 움막 안에서 마음을 진정(鎭靜)시키며 동이 트기를 기다렸다.이윽고 날이 밝아오자 삼베 모시로 만든 수의(壽衣)를 입은 여인은 혹여 사람들이 보면 놀랄까 봐 그 수의를 벗어버리고 상진의 다 떨어진 누더기로 갈아입었다. 여인과 상진은 거지 행색으로 공동묘지를 벗어나 한양의 이대감 집으로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더듬더듬 어둠을 헤쳐 초분 앞에 당도한 상진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사사사 사람……살려요!”분명 초분 안에서 나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진은 대담하게 초분을 헤쳐 나무 위에 올려놓은 관뚜껑을 열어젖혔다. 상진은 무심결에 관 속으로 손을 쑥 들이밀고 가슴 언저리를 더듬어 보았다. 숨길이 다시 돌아 살아난 여인의 심장이 가늘게 뛰고 있는 것이 느껴져 왔는데, 싸늘하게 굳어져 있어야만 할 온몸에 따뜻한 온기가 돌고 있었던 것이었다.“허억! 이이 이게 무엇인가!”깜짝 놀란 상진은 관 속에 누운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김선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수절과부(守節寡婦)인 여인이 덜컥 점쟁이 이야기 몇 마디에 꿈만을 믿고 홀딱 넘어가 본분을 쉬이 망각해 잃어버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할 짓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적어도 자기 자존심과 여인으로서 정절(貞節)을 지키려는 사려 깊은 곧은 마음을 알아차린 김선비가 다시 상진 정승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상진은 본시 집안이 가난하여 한양의 양반가를 드나들며 얻어먹는 거지였다. 상진은 집도 없어 공동묘지 옆에 허름한 움막을 치고 살았다. 공동묘지 옆에 살면 돌아가신 조상들 제사를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남이가 그렇게 역적으로 몰려 죽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권람의 남은 가솔(家率)들은 무사했다. 남이가 역적으로 몰려 죽기 이전 권람의 딸이 먼저 죽어 전혀 왕래소통(往來疏通)의 연관이 없었던 것이었다. 과연 홍계관의 점괘가 적중하였던 것이었다. 남이가 승승장구(乘勝長驅) 최연소 병조판서가 되어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릴 때까지만 권람의 딸이 함께 살았으니 말이다. 천하사(天下事) 즐거움은 함께 누렸으나 불행은 피해갈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그렇다면 과연 인간의 정해진 운명은 있는 것인가? 정
“으음! 그래, 그렇다면 내 홍점사(洪占士) 말대로 하겠네. 그러나 만약 그 점사(占辭)가 틀린다고 한다면 내 저승에 가서도 반드시 잊지 않고 칠 것이야! 그걸 잊지 말게나!”“아이구! 여부가 있겠습니까! 좌의정 나리! 만약 이 점괘가 틀린다고 한다면 저승에 가서라도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홍계관이 낮게 부복(俯伏)을 하고 말했다.권람은 그 후로 남이와 넷째 딸을 결혼을 시켜 부부연(夫婦緣)을 맺어주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거짓말같이 홍계관의 말이 적중되었다. 남이는 뛰어난 용장(勇將)으로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여진족을 정벌함으로써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허어! 그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권람이 놀란 눈을 뜨고 홍계관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렇사옵니다. 좌의정 나리!”홍계관이 두 무릎을 꿇고 고개를 납작 조아리며 나직이 말했다.“그래, 어서 말해보아라?”권람이 다그쳤다.“다름이 아니라 따님의 운명(運命)은 타고난 명이 짧아서 남이라는 소년보다 더 일찍 죽을 운명이옵니다. 남이라는 소년이 단명(短命)할 흉사(凶事)가 있을 것으로 점괘가 나와서 그와의 혼사(婚事)를 극력반대(極力反對)하였는데, 따님의 운명을 보니 그보다 더 명이 짧으니 이는 천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아! 그러시다면 좌의정 나리! 무무……무슨 일이신지요?”홍계관의 말에 권람은 사귀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고는 남이의 운명을 보도록 했다. 남이의 시사주를 들여다보며 한동안 점괘를 뽑던 홍계관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좌의정 나리! 이 혼사는 절대로 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뭐라? 도대체 무슨 까닭인가?”잔뜩 기대하고 있던 권람이 놀란 눈을 뜨고 말했다. 사귀를 내쫓아주고 딸의 목숨을 살려준 은인(恩人)이라 거두어 사위로 삼아보려 하였건만 그리해서는 아니 된다니 이 무슨 말인가?“이 소년은 훗날 국
그런데 어찌하여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남이가 그 권람의 넷째딸과 인연이 있어 사귀(邪鬼)로부터 그녀를 구해주었단 말인가!공자가 가장 존경하였던 주나라의 주공은 형 무왕이 죽고 어린 조카 선왕이 즉위하게 되자 주변에서 조카를 밀어내고 황제가 되도록 권유했으나 황제가 되는 것이 결코 내가 뜻한 바가 아니다 하며 ‘어찌 조카를 죽이고 황권을 찬탈하는 인륜을 어기는 포악한 악인으로 만들려고 하느냐?’ 며 호통을 쳤다. 또 조카 선왕을 죽이고 황제가 되겠다고 반란을 일으킨 동생들을 손수 갑옷을 입고 나가 평정을 했었던 것이었다.그런데 수양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어어! 도대체 이 무슨 일인가?”홍윤성이 홍계관을 바라보며 놀라 말했다.“공께서는 10년 뒤 반드시 형조판서(刑曹判書)가 될 것인 데다가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자리에 오를 것이옵니다!”홍계관이 두 무릎을 꿇고 말했다.“허허음!……”홍윤성은 말을 잇지 못하고 홍계관을 바라보았다.“소인이 부탁이 있사옵니다”맹인 홍계관이 홍윤성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어어음! 그, 그게 무엇인가?”홍윤성이 더듬거리며 말했다.“10년 뒤 소인의 아들놈이 죄를 지어 반드시 죽게 될 것이온데, 제 아들놈을 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