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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예술의 경지에 이른 ‘아부 기술’ 지난 주 각 도하 신문 토요 서평란에 단연 돋보이는 책은 시사 주간지 타임의 편집장을 지낸 리처드 스텐걸의 ‘아부의 기술’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의 원명은 ‘짧은 아부의 역사‘이다. 그 내용이 이지프트의 파라오로부터 시작해 오늘 미국의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서양인들의 아부 기술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한국의 중요 신문들이 다투어 관심을 표시한 것은 아부에 대해 미국인 못지않게 한국인 또한 일반적인 관심을 가진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부로 사랑을 표시하는 동물들의 예를 앞세워 아부가 동물의 본능이고 동물의 생존 양식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갖가지 교태를 부리면서 암컷에 접근하는 수놈들의 구애를 예를 들면서 이를 보충한다.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보면 사람들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는 농작물에 음악을 틀어주었더니 성장이 더욱 촉진된다는 이야기는 새삼스럽지 않다. 그것도 베토벤의 무거운 음악보다 모차르트의 경쾌한 음악이 더욱 효과적이란 이야기도 실험에 근거하고 있다. 식물도 아부를 좋아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동안 잘 몰랐지만은 식물들도 바람소리·새소리 등 자연의 다정한 소리를 들으면서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 또한 동물적 본능을 버릴 수 없다는 암시가 없지 않지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아부에 대한 역사이다. 그리하여 고대 그리스에서 아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적고 단테의 신곡에서 보이는 아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통해 아부에 대한 중세적 입장을 밝히기도 하고, 밀턴의 실낙원에서 보인 사탄의 실례를 통해 아부의 죄악을 말하기도 한다. 인간의 도덕이 강조될 때는 아부는 부정적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아부가 우호적이고 친근감으로 다가서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이후 인간의 본성이 강조되기 시작하면서다. 신의 중재 없이 인간이 상호 직접 교섭하기 시작하면서 아부는 인간 상호간을 부드럽게 접촉시키는 윤활유 역할을 한 것으로 미덕이 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아부를 받고 국왕도, 독재자도, 상사도, 친구도, 신하도 결코 그것을 싫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례로 들고 있다. 아부를 통해 실패한 사례가 없다고 책은 쓰고 있고 그 실례로 명사의 회고록 등을 들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가 있었다. 현대에 와서 미국이 대표하는 장삿속이 되면서 아부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덕목이 되고 있다. 광고나 세일즈의 생존양식을 말한다. 일반인 고객에게 속이 들여다보인 아부적 호칭인 사장님을 연발하면서 ‘사장님의 선택은 매우 훌륭하십니다. 가히 파리장이나 뉴요커의 수준입니다’등이다. 그리고 그 장삿속의 백미는 미국의 할리우드와 백악관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배우는 감독에게 아부하고, 감독은 제작자에게 아부하고, 제작자는 청중에게 아부하는 등 할리우드의 복잡한 구조적 아부를 통해 이 시대의 특징을 잘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동양인에게 흥미로운 것은 침묵도 일종의 아부라는 것이다. 앙드레 말로의 소설 ‘왕도’ 가운데 월남인의 침묵에 분통을 터트린 장면이 있다. 서양인은 침묵으로 말하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부처님의 침묵도 일종의 아부가 된다. 부처님이 상징하는 동양문화를 그들은 아부로 해석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생각을 발전시키면 동양인의 겸손, 수양 또한 예의 등은 하나의 아부적 양상이 된다. 미국적 실용주의의 물귀신 작전이다. 아부·아첨·칭찬을 혼용하면서 ‘아부에도 품격이 있다’는 이 책 말미에 21가지 아부의 기술을 적고 있다. 가령 ‘칭찬과 동시에 부탁하지 말라’.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그를 치켜세워라’ ‘여러 사람에게 같은 종류의 칭찬을 하지 말라’등 실용적 처세로 칭찬은 기술을 넘어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장삿속 실용주의를 예술로 미화하고 싶은 것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7.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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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 칼럼] 國際化시대 漢字敎育이 절실하다 몇 년 전 前 교육부 장관들이 교육부장관을 만나 초등학교의 한자교육을 건의했고, 김영삼 前 대통령도 ‘초등학교 한자교육은 영어교육과 함께 절대 필요’란 주제로 특강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 서울대가 대학국어 수강생의 한자 기초실력을 평가한 결과 60%가 50점을 넘지 못하는 낙제점을 받았다고 한다. 신입생의 상당수가 학과(學科)의 독음을 ‘학교’로 적다니 젊은 세대의 한자 실력 저하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 만하다. 대학국어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첫 한자어 기초실력 평가 결과 수강생 1천264명 중 775명이 50점 미만의 낙제점을 받았다. 전체 평균은 44점, 80점 이상을 받은 학생은 15%인 197명에 불과했다. 시험은 한자어, 사자성어 읽기와 문장 속에 알맞은 한자어 넣기 유형이었다. 일부 학생은 배수진(背水陣)을 ‘배수차’, 내홍(內訌)을 ‘내공’, 패배(敗北)를 ‘패북’, 두절(杜絶)을 ‘사절’, 요산요수(樂山樂水)를 ‘악산악수’ 등으로 잘못 읽었다. 인위적(人爲的), 유산(遺産), 주도적(主導的) 등 비교적 평이한 한자어에서도 틀린 답이 많았다. 정치(政治), 경제(經濟), 사회(社會), 문화(文化), 통일(統一), 청춘(靑春), 특별(特別) 등은 제대로 쓰지 못했다고 한다. 단과대학별로는 법대가 75점으로 가장 높았으며 인문, 사회대가 55점의 분포를 보였다. 일부 단과대는 평균 점수가 20점을 채 넘지 못했다. 채점에 참여한 한 교수는 ‘신문에 자주 나오는 정치 관련 한자어는 잘 읽는 편이었지만 실생활에 등장하는 한자어를 읽지 못하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았다’고 말했다. 중·고교생들은 학교에서 모두 1천800자의 한자를 배운다. 이를 익히면 대학 교양국어 교재의 한자를 막힘 없이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F학점 받을 정도로 한자에 문맹이라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본인의 관심과 노력 부족에서 비롯되지만, 한자 교과과정의 부실과 교사의 불성실한 지도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지금 한자(漢字) 공부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보기 흉측한 중국의 간체자가 들어올 것이다. 중국어를 배우는 학생이 많은데, 우리 한자인 정자는 모르는데, 중국 간체자(簡體字)만 알고 있으니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한자를 모르는 가장 큰 이유는 수능시험에 한자 실력을 검증하는 영역이 없다는 점이다. 대입에 한자 문제가 나오지 않으니까 학생들이 한자 공부를 등한시하고, 교사도 열심히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고교 이하의 모든 교육이 대학입시 과목에 집중되는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한심한 모습이다. 한자문화권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한자를 모르면 원만한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고전에서 옛 성인의 지혜를 얻기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직장생활에도 어려움이 많다. 동북아의 경제교류 증가로 한자의 중요성은 날로 커진다. 중국과 일본의 거래처와 한문으로 된 명함을 교환해 서로 알 수만 있어도 그만큼 가까워지는 것이다. 학생들의 한자 해득력을 키우는 첩경(捷徑)은 입시에 반영하고, 교과서의 국·한문 혼용으로 하는 것이다. 한글학회나 시민단체가 또 다른 부담이라고 반발하는 것도 일리가 있으나, 한자를 제대로 알고 써야 우리말과 글도 발전할 수 있으며, 국제화시대 우리만 한자를 안 쓰는 것도 문제다. 우리가 日本이나 中國에서 신문을 읽으면, 발음할 수는 없지만 뜻을 알 수 있는 것은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이기 때문이다. 한자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정말 깊은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워야 할 문자이다. 우리나라 외국인 관광객 70%가 한자문화권에서 온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거리 표지판(標識板)에 한자병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7.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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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e-러닝(learning) 활용하기 김양수 국방부가 발표한 새해 달라지는 업무 중 ‘학점 취득 가능’이라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올해부터는 병사들이 병영생활을 하면서도 자기가 다니던 대학의 e-러닝 강좌를 수강하면, 연간 6학점 범위 내에서 학점을 취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난 해 말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대통령의 발언도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을 성 싶다. “군대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라는 언급 말이다. 최근 들어 학생교육은 물론 성인교육 분야에서도 e-러닝이 점차 확산되는 경향인데, 이를 통해 병역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젊은이들까지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니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e-러닝은 IT강국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첨단 학습방식으로, 사이버 교육 또는 온라인 교육이라고도 한다. 학생이나 수강생을 일정한 곳에 모아 놓고 강의를 하는 전통적인 집합교육에 비해 e-러닝은 많은 장점과 효용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학습에 소요되는 시간과 인력, 그리고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굳이 학교나 강의실에 가지 않고도 아무 때나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교육비가 엄청나게 들어가는 우리나라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강의를 수강할 수 있다는 것은 e-러닝의 매력이다. 이제는 섬이나 산간지역 등 지방에 사는 학생들도 대도시 유명 강사의 동영상 강의를 적은 비용으로 혹은 무료로 자기 집에서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으로 온라인 강좌를 듣는 일이 생활화되어 있다고 한다. 상당수 학생들은 군더더기 없이 핵심내용만 압축해서 강의를 해주는 온라인 강좌가 학교나 학원 수업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대답했다는 보도도 있다. 필요한 부분은 몇 번 씩 반복해서 들을 수 있고, 언제든지 쉬었다가 다시 들을 수 있고, 잘 아는 부분은 건너뛸 수도 있는 e-러닝의 효용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e-러닝의 확산추세에 따라 학생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 교육 전문 업체들이 급신장하고 있으며 ‘e-러닝 산업’ 시장규모도 날로 커지고 있다. 연간 20조원이 넘는다는 사교육 시장의 중심은 이미 e-러닝으로 옮겨 가고 있는 중이며,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의 직원교육에서 사이버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전남도 공무원교육원만하더라도 작년까지 1개 과정에 불과했던 사이버교육을 올해는 12개 과정으로 대폭 확대해 실시할 예정이다. 물론 e-러닝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 선생님이나 강사를 직접 대면해서 듣는 생생한 강의에 비해 현장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고, 즉석 질문과 답변을 통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제 때 이루어지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현재 시도되고 있는 것이 e-러닝과 집합교육을 합친 이른바 ‘혼합교육(blended learning)’이다. 공무원 교육을 예로 든다면, 평소 근무를 하면서 틈틈이 인터넷 강좌를 수강한 후 교육원에 입교해 부족한 부분의 보충강의를 듣는 방식을 말한다. 아무튼 e-러닝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눈부신 발달에 힘입어 언제, 어디서나, 어떤 도구에 의해서나 학습이 가능한 u-러닝(ubiquitous learning)시대의 개막도 눈앞에 두고 있다. 평생학습이 강조되고 있는 지식정보사회의 주역답게 학생이건 직장인이건 e-러닝을 잘 활용해 경쟁력을 키워야 하겠다
칼럼
남도일보
2007.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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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자질있는 지도자들이 조직을 사람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사람과 과학기술의 결합으로 이해해왔던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그들은 틈만 나면 조직 구성원들이 완벽하게 기술을 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또는 기술력을 가진 구성원이 일정한 위치에서 책임과 권한을 행사하게끔 지휘권을 발동해왔다. 그 같은 패러다임은 21세기에 들어 더 더욱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이공계(理工系) 출신들을 중용함으로써 ‘기적’을 창출해온 세계 곳곳의 사례들을 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미국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 사장 제임스 사이먼스는 조지 소로스를 제친 세계 최고의 펀드매니저로 꼽힌다. 그는 자신부터가 수학자 출신이다. 금융시장의 연쇄 반응 틈새를 수학으로 포착했다는 그는 지난해 월스트리트 펀드매니저 연봉 순위에서 1위에 올랐다. 무려 15억달러(1조4300억원)의 연봉이다. 120억달러를 굴리는 그의 헤지펀드 회사 직원들은 수학·물리학·천문학·전산학·통계학 등 대부분 자연과학과 공학 전공자들이다. 그의 성공 비결은 과학자들이 모여서 과학적으로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 즉 수학적 분석뿐이라고 한다. 한창 개발의 용틀임을 하고 있는 중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기술 관료에게 최고의 국가는 중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비롯해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이 이공계 출신이다. 당 중앙위원들 중 거의 대부분도 전문적 기술 교육을 받은 계층이다. 그리고 이같은 전문 기술관료의 지배구조는 한층 더 공고화되는 중이라고 한다. 이런 차원에서 지난 연말 단행된 광주시 간부인사는 상당히 주목할만한 내용을 지녔다. 수석 국장인 자치행정국장에 기술직 출신인 문인 국장이 파격적으로 등용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행정직들을 우대하고 기술직들을 천시해온 우리 관료사회의 ‘그릇된 문민주의’를 감안하면 대단히 의미있는 진전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문 국장이 이미 기술직에서 행정직으로 옮겼기 때문에 너무 지나친 해석이 아니냐고 따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엄연히 토목학과 출신이고 기술고시 출신이다. 전전번의 보직은 광주시 기술직의 꽃인 건설국장이었다. 기술직이 갖는 진로상의 한계를 절감하고 행정직으로 바꿔 북구 부청장을 지냈다. 그런 그를 박광태 시장은 행정직의 꽃인 자치행정국장으로 발탁했다. 관료사회 저변에 알게 모르게 생길 법한 거부감도 과감히 뿌리쳤다. 물론 박 시장은 이 인사에 대해 이른바 ‘인사국장’이 지녀야 하는 청렴성과 강직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다고 술회한다. 그래도 기술직을 전례없이 전면에 부각시켰다는 의미는 결코 희석되질 않는다. 아직도 관료사회 저변엔 이공계를 사회의 주류세력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잘못된 관념들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기득권을 감싸고 있는 기존 관행들을 두드려 깨지 않고서는 결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될 수는 없다. 많은 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들이 개혁과 지방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관료사회 내부의 기득권을 타파해야 하는데 그 첫번째 대상이 바로 ‘직렬’이라고 서슴없이 주문한다. 반드시 행정직이 차지하도록 돼있는 자리뿐만 아니라 행정·기술 복수직으로 돼있는 자리도 거의 대부분 행정직이 독식하고 있는 현 상황에선 발상의 전환과 과학적 접근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오히려 행정직의 자리도 기술직이 맡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직렬파괴’다. 그럼에도 아직 전국 어느 지자체도 이 직렬파괴에 선뜻 나서진 못하고 있다. 그만큼 관료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 치러야할 홍역이라면 남보다 앞서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게 여러 모로 낫다. 광주시가 보기 드물게 시도한 직렬파괴가 지방행정의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으로 연결되기를 기대해 본다.
칼럼
최혁
2007.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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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사려 깊은, 품격 있는, 한껏 자유로운 한강희(남도대학 교수) 어려운 세간살이가 지속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돼지해(丁亥年)를 맞아 저 나름의 소망을 염원하고 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기회비용을 들여가며 신춘 호기를 노리고 있고, 결혼을 앞둔 사람들은 2007년 출산을 위해 2006년 봄부터 택일을 준비해 지난 가을은 결혼 성시(盛市)를 이뤘다. 정가에서는 대선을 맞아 권력 창출에 부심하고 있다. 정객들은 벌써부터 자기 나름의 입지 구축을 위해 운신의 폭을 가늠하고 있다. 여하튼 이합집산이 가속화하면 애꿎은 국민만 혼란스러울 게 뻔하다. 우리 사회에서 쏠림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제가 아무리 어렵고 사회 분위기가 침체 국면을 벗어나기 힘들다지만 심각할 정도다. 돈과 명예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다보니 ‘삶의 철학’을 찾아보기 힘들고 ‘생활의 윤기’도 기대할 수 없다. 특정 사안의 이면을 보지 못한 채 돈과 출세를 위해 ‘브레이크가 없는 벤츠’를 내몰고 있다. 예컨대 결혼 러시의 이면엔 2007년 태어난 ‘황금 돼지’는 일시적 베이비붐으로 인해 사회 진출 시 치열한 경쟁을 치른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이즈음 사려 깊고, 품격을 갖춘, 그러면서도 한껏 자유로움이 묻어나는 외국의 사례가 부럽기만 하다. 그들의 유연성이 무조건 좋다고 볼 수는 없지만 ‘지금, 이곳’의 현주소를 진단할 만한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케이블 방송 수입 프로그램으로 FOX사에서 방영하는 블록버스터급 뮤직 서바이벌 ‘아메리칸 아이돌(Idol)’이 있다. 가수 지망생들 중에서 최고의 팝스타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시즌에는 7개 도시에서 오디션을 받아 다섯 번째 우상에 도전하는 경쟁자들이 할리우드에서 최종전을 벌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가장 높은 시청률을 올리고, 미국 대통령 선거보다 높은 투표율을 과시하는 이유는 사이먼 코웰, 랜디 잭슨, 폴라 압둘이라는 인기 스타가 예심부터 최종심에 미주알고주알 참여해 소통의 재미를 극대화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들의 멘트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매력 상품이다. 전문적 식견에 실린 정확한 관찰력, 진정성이 담긴 배려와 찬사, 섬뜩하리만치 날카로운 지적이 그것이다. 세 심사자는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지망생들과 꾸준히 소통하면서 조정하고, 미소를 머금지만 때로는 인신성 공격까지도 감행한다. 하지만 권위주의가 없는 투명한 진행으로 인해 당사자간 오해를 빚지는 않는다. 세 심사자가 지망생의 공연을 감상한 후 대거리하는 장면은 더욱 진풍경이다. 온갖 제스처로 감상평을 덧붙이기도 한다. 사이먼은 익살이 섞인 섬뜩한 이성의 극단을, 잭슨은 이성을 기초로 감성을 어필하며, 폴라는 감성의 극단을 거리낌 없이 내보인다. 전국에서 몰려든 가수 지망생들의 노래 공연도 볼만하지만 심사평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두 번째 사례는 한국의 월드컵 전사들이 활약하고 있는 영국 프리미어리그다. 프리미어 경기는 철저히 관중과의 교감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경기장의 골라인과 터치라인도 관중석과 거리를 좁혀 설치돼 있다. 관중들은 오와 열을 흩뜨리지 않고 90분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심판은 경기의 진행자로서 미소를 잃지 않고 선수들의 클레임에 친절히 설명을 붙여준다. 골 득실차가 현저하더라도 이기고 있는 팀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며, 억울한 판정이 있더라도 10여 초를 넘기지 않고 승복한다. 이 두 사례는 공통적으로 관객(시민)이 최우선에 있음을 증명한다. 소통은 나가 아닌 ‘너에 대한 사려 깊은 관심이 품격 있는 방식’으로 구현될 때, 제 힘을 발휘한다. 그들이 자유로움을 한껏 만끽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사려와 품격이 삶의 주변에 상식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7.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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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단군할아버지와 사담 후세인 글 제목이 다소 엉뚱하지만 이것은 세상 탓이고 소용돌이치는 세상을 상식 가지고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빈번히 생기기 때문이다. 사담 후세인의 처형도 그렇다. 그리고 사람들 생각도 많이 엉뚱하게 되기 마련이다. 내 글도 그런 시대를 반영한다. 그러나 그런 시대를 우리는 가끔 낭만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 세상에는 인물이 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트나 공자나 부처님도 생각해보면 다 그런 시대에 난 성자들이었다. 셰익스피어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말한다. ‘인간이란 얼마나 걸작품이냐. 사리는 얼마나 고상하고, 능력은, 형상은, 동작은 얼마나 무진무궁한가. 행동은 얼마나 당당하고 자랑스럽고 이해력은 또 얼마나 천사 같고 가히 신과 같으니 세계의 꽃이오 만물의 영장이로다’. 이는 인간 재발견이라는 르네상스 시대정신을 반영한 시구라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이말 속에 인간이 얼마나 사악한가는 말하지 않고 있다. 오늘 우리는 시대가 얼마나 낭만적인가, 아니면 사악한가를 가늠하기 어렵다. 낭만주의적 시대는 엉뚱한 생각이 허락되고 기상천외한 발상이 수용된다. 셰익스피어 같은 위대한 천재가 판을 치고 있던 시대에 존 단이라는 신부이면서 시인인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시 속에 상식가지고는 이해할 수 없는 엉뚱한 발상을 한 사람이었다. 후세에 그를 형이상학파 시인이라고 말한다. ‘형이상학파’란 말은 근사한 말 같지만 사실은 헛소리를 잘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헛소리는 자기는 신나게 지껄이지만 다른 사람이 듣기엔 말이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는 것을 말한다. 헛소리를 하는 사람을 우리는 가끔 철학자라고 말한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인내력이 필요하다. 이라크 전 대통령 사담 후세인의 처형 소식을 듣고 나는 영국 엘리자베스시대의 그 엉뚱한 형이상학파 시인 존 단을 상기했다. 아니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가 생각났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직하다. 이 소설은 첫머리에 존 단의 시구가 종의 모양으로 편집되어 실려 있다.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는가. 종은 너 자신을 위하여 울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종이란 사람이 죽을 때 울리는 조종을 말한다. 이스람교에 종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왜 사담 후세인의 처형현장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내가 종을 연상했는지, 그 종이 나를 위하여 울리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스스로 매우 형이상학적이다. 내가 사담 후세인 같은 사람의 처형에 관심을 둘 만한 형이상학적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를 내가 동정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의 처사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아라비안나이트의 낭만적인 바그다트 도적의 먼 나라 이야기에 왜 나의 세말이 그렇게 우울했는지 스스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것도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가’의 비극적인 감동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헛소리를 느낀다. 그러나 그의 처형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트의 최후를 연상하는 것도 사실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가가 말하듯 사담 후세인의 처형이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은, 중동 같지는 않지만 우리도 특히 근대에 당할 만큼 당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명성황후의 암살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나라는 지킬 수 있어야 나라이다 ‘위대하지 않은 민족은 민족이 아니다’. 최근에 내가 쓴 시의 제목이다. 세밑 제야에 나는 화순 국조 단군 신전에서 거행되는 제사에 참례할 기회가 있었다. 엎드려 절하면서 사대주의의 심층 속에 단군만큼 우리의 중심을 질기게 지탱해준 지주가 있었는가 생각해 보았다. 단군은 우리가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끈질기고 간절한 소망을 그 백두대간 속에 담고 있다. ‘너무 싸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에서도 나는 그것을 느낀다. 어떤 대통령이 나라와 겨레의 중심을 그렇게 솔직하게 토로한 사람이 있던가. 그야말로 세계 중심을 꿈꾸는 홍익인간 사상에 충실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7.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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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 칼럼] 다양한 民族이 살 수 있는 國家 강원구 행정학박사·동신대 초빙교수 우리는 단일민족(單一民族)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남방계 20%와 북방계 80%로 혼합되어 있다. 북방계는 눈이 작지만, 남방계는 눈이 크고 쌍꺼풀이다. 동남아에 가면 얼굴이 검게 생겨 우리가 잘 생겼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들의 눈이 둥그렇고 쌍꺼풀이 있어 눈이 아름답다. 유럽이나 미국에 가면 우리보다 얼굴이 하얗고, 키가 훨씬 크고 잘 생겨 기가 죽는다. 조선시대는 북방계가 많다보니 모든 기준을 북방계 위주로 만들었다. 남방계인 쌍꺼풀을 가진 여자는 추파(秋波)를 잘 던진다는 이유로 왕비(王妃)가 될 수가 없었다. 추파란 여자들이 눈웃음칠 때, 잔잔한 가을의 파도와 같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동이족(東夷族)이란 옛날 중국에서 우리 민족을 지칭하던 말이다. 夷는 동쪽에 사는 사람으로 어질고,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고 쓰여있다. 한나라 때의 중국인은 변방의 민족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 불렀다. 당(唐)나라시대 수도인 서안(西安)은 5%의 외국인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관리를 임명할 때도 외국인이나 내국인을 똑 같이 대해 주었다. 안록산의 난을 일으킨 안록산은 이란계이며, 어머니는 돌궐족이다. 고선지 장군은 고구려 유민이다. 장보고 장군이나 최치원 선생은 신라인으로 당나라에서 출세한 인물들이다. 중국 산동성 석도(石島)에 가면 장보고 장군의 유적지인 적산법화원이 있으며, 장보고 장군의 동상과 기념관이 있다. 장보고를 해신(海神)이라고 불렀던 엔닌(圓仁)의 기념관까지 있으며, 드라마 해신이 방영되기도 한다. 이곳에 우리나라 관광객들도 많지만, 대부분 중국인들이다. 법화원을 관리하는 장영강(張永强) 사장이 ‘장보고 장군은 한국에서 키워주지 않았지만, 중국에서 키워주었다’ 라는 말을 들었는데 옳은 말인 것 같다. 강소성 양주(揚州)에 가면 당성박물관내에 최치원 선생의 기념관이 있으며, 최초로 들어온 길이란 팻말도 있다. 최치원 선생의 일대기와 벼슬했던 기록들이 있으며, 그곳에서 지은 한시 추야우중(秋夜雨中)이나, 저서인 계원필경 등은 유명하다.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미국은 100여 민족국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국도 56개 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다.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살면 살수록 단일민족보다 좋은 점이 많다.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너무나 강조하다보면 우리편이 아니면 남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하나로 강하게 뭉치는 것 같지만, 조금만 어긋나면 다시 급속도로 나뉘어진다. 우리처럼 지역감정이 유난히 많은 것도 그러한 이유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중국인은 중국계, 일본인은 일본계, 미국인은 미국계, 영국인은 영국계 한국인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씨족사회부터 족외혼(族外婚)을 해왔다. 가까운 친족끼리 결혼하다보면 우둔한 사람이 태어난다. 꽃들도 자기 꽃의 씨를 받지 않기 위해 수술과 암술이 피는 시간이 다르다. 그것은 잡종이 순종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국제화시대를 맞이해 혼혈아들이 많이 불어나고 있다. 그들을 우리 국민으로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겠다. 글로벌시대를 맞아 국제결혼으로 많은 외국인이 들어오고 있고, 그들이 낳은 자식들이 많아지면서 이미 다민족화 되고 있는데, 얼굴의 생김새가 조금 다르다고 해서 그들을 왕따시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나 유학생들에게 따뜻한 보살핌도 있어야 한다. 그들이 한국을 떠나면 우리를 그리워 할 것이다. 이제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 수 있다는 것과 유능한 외국인들이 쉽게 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줄어드는 인구도 늘릴 수 있으며,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7.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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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1등광주’힘찬 발걸음을 다 함께… 조용진 힘찬 민주의 종소리와 함께 희망찬 정해년(丁亥年) 새아침이 밝았다. 지난해는 국가적으로 북핵 및 한미 FTA, 부동산 가격 논란 등으로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우리 시는 이러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1등 광주 건설’의 기반을 더욱 견고히 다지는 분주한 한해였다. 민선3기에 이어 지난해 7월 시작한 민선4기에서도 박광태 시장의 ‘1등광주호’는 지역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살 맛나는 풍요로운 光州로 육성하기 위한 ‘첨단산업 문화수도 1등 광주 1등 시민’의 기치를 내걸고 불철주야 달려왔다. 지난해 무엇보다 값진 것은 민선4기를 맞이해 ‘1등 광주건설’의 기반을 더욱 튼튼히 다져왔다는 것이다. 지역의 주력산업인 자동차산업과 디지털 정보가전산업, 그리고 지역특화산업인 광산업이 지역의 중심산업으로 성장과 발전에 가속을 더해 왔으며,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특별법 제정은 광주시민들이 문화로 밥을 먹고 사는 문화산업의 기틀을 만드는 데 강력한 추동력을 확보하게 했다. 특히, 지난해 6월 광주에서 개최한 역대 최대규모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와 ‘6·15민족통일대축전’은 우리 빛고을이 ‘민주와 인권, 그리고 세계적인 평화의 도시’로 새롭게 각인되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들은 시정관련 각종 지표 및 외부평가와 타 시·도와의 경쟁에서도 많은 성과를 창출했다. 2005년도 산업생산증가율에 있어서 경기도 19.6%보다 높은 20.9%로 전국1위와 함께 수출증가율에 있어서도 광주가 36%(72억달러)로 부산 5.1%(68억달러), 대구 5.6%(33억달러)를 추월했다. 아울러 광주는 ‘2006년 한국서비스 품질지수 공공행정부문’ 1위, 광역단체장 중 유일하게 박광태 시장이 ‘2006글로벌 비즈니스경영대상’을 수상했으며, 제3회 대한민국 지역혁신박람회에서는 광역자치단체 중 광주가 최우수혁신사례로 선정되어 대통령 표창 수상의 영예를 안는 등 여러 분야에서 光州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한 해였다. 이는 민선3기에서 출발한 ‘1등광주호’가 박 시장을 중심으로 광주시 공직자들이 밤낮없이 진력한 땀과 시민 여러분의 아낌없는 신뢰와 성원으로 맺은 결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광주가 드디어 100억불 수출 달성을 넘어서는 자긍심과 함께 ‘1등 광주건설’로 향한 민선4기가 본격적인 채비를 마치고 힘찬 출발을 위해 닻을 올리는 해이기도 하다. 옛말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하지 않았던가? 새해에는 그 동안 이룩한 성과와 튼튼한 기반을 바탕으로 우리의 과업을 중단 없이 어떻게 실행에 옮기느냐가 ‘1등 광주건설’의 지름길이라고 본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고 탐스런 열매를 얻기 위해 끊임없는 정성과 노력을 다하듯이 우리 공직자와 온 시민이 함께 굳은 신념을 가지고 더 큰 노력과 열정을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때론 인내도 필요하고 온갖 지혜와 절제도 병존되어져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경제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광주를 생산과 수출도시로 탈바꿈시키는 등 꿈과 희망이 넘치는 ‘1등 광주 건설’을 위해 어떤 난관도 우리의 의지로 돌파하고, 그 어떤 역경도 우리의 열정으로 극복해 왔다. 2007년에도 대선과 세계적인 성장 둔화 추세 등 대내외적으로 많은 변화와 도전이 도사리고 있는 시기이다. 하지만, 우리 광주는 항상 그래왔듯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올 한해도 ‘1등 광주건설’의 한 단계 높은 재도약을 위해 광주시민과 공직자가 지혜와 역량을 한데 모아 힘찬 발걸음을 함께 할 때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7.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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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으로 정해(丁亥)년의 해가 뜨고 있다. 해는 태양이고,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인 1년이다. 해(日)는 하루이다. 해가 뜨면 하루해가 시작되고 삼백 예순 다섯 날이 모여 한 해가 된다. 정월 초하룻날 아침의 해는 하루해의 시작을 알리고 한해의 소망을 담고 있다. 장삿속인가 본데, 정해년은 황금돼지해란다. 중국에서는, 용의 해였던 2000년에 예년의 2배인 3천600만 명의 아기가 태어났듯이, 정기 검진하러 온 임산부들로 산부인과가 만원일 정도로 아기 낳기 열풍이 불고 있단다. 초저출산국가인 우리나라는 속칭 황금돼지해에 이른바 출산파업이 끝나는 계기를 맞이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우선 상술로 비치기는 해도 임신과 출산을 경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유아용품 매장은 손님에게 복돼지 인형을, 어떤 산부인과에서는 임신을 축하하는 뜻으로 황금돼지 저금통을 나눠주고 있다. 둘째, 쌍춘년의 바람도 크다. 음력으로 2006년 병술년은 양력 2006.1.29부터 2007.2.17까지이다. 7월 윤달이 끼어 음력으로 한해가 385일이다. 병술년은 음력 한해에 입춘이 2번(양력 2006년과 2007년의 2월4일)있다해 쌍춘년이란다. 한해에 새싹이 돋고 만물이 약동하는 봄이 두 번이나 있으니 시집가고 장가가기에 딱 좋을 수밖에 없다. 보통 때보다 혼인이 증가했다. 셋째, 작년에 중앙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여러 기초자치단체도 아기 낳기를 유도하는 묘안을 내어 시행하고 있다. 신생아 육아용품비를 지급한다. 셋째 아기를 낳으면 100만원을 준다. 셋째 아이를 출산한 교사에게는 근무지 우선권을 준다. 어느 은행에서는 자녀가 세 명이상인 대출소비자에게 금리를 조금이나마 깎아주고 있다. 한편 돼지해는 일자리 문제의 해(solution)를 품고 있다. 1995년 을해년에 실업률은 2.1%로 1994년 2.5%보다 낮았다. 또한 1983년 계해년 실업률은 4.1%로 1982년 4.4%보다 0.3%포인트 하락했다. 돼지해는 일자리를 늘려왔다. 이 같은 12년 주기의 흐름이 2007년 정해년에도 나타날 징조가 보인다. 첫째, 2006년 11월의 계절조정 실업률은 3.4%로 2005년 11월의 3.5%보다 낮은 수준이다. 둘째, 지역의 고용과 인적자원개발사업이 결실할 시기이다. 종합고용정보망인 워크넷의 이용이 활발하다. 고령자고용촉진기본계획이 시행되는 해이다. 고령자인재은행도 확대되고 있다. 기업유치에 모든 것을 걸면서도 고용에는 상당히 소극적인 광역 지방정부도 적극적 지역노동시장정책에 눈을 뜨고 있다. 기초자치단체인 시·군·구의 취업정보센터도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장성군 같은 기초자치단체는 끊임없는 학습과 교육을 통해 지역주민과 공무원이 소극적이고 관료적인 속성을 털어버리고 현장일괄서비스(one-stop service)로 기업을 유치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노동과 기업에 친화적인 지역문화를 일궈낸 장성군은 ‘주식회사 장성군’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노동력을 양성해 공급하는 대학의 취업정보센터의 기능도 강화되고 있다. 셋째, 일자리의 질을 높이려고 일부 노동계에서는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는 합리적이라고 하기 어려운 정도의 임금격차가 존재한다. 임금격차를 완화하려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정규직의 임금을 상당기간 인상해야 한다. 이에 맞춰 정규직도 임금인상을 요구하게 되면 임금격차의 완화는 커녕 인건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 일부 사업장의 정규직 노동자는 당분간 임금인상요구를 뒤로 미루는 결단을 내렸다. 황금돼지해 말마따나 2007년은 얽히고설킨 문제 풀이의 해(solution)가 많으리라 믿는다. 더 많은 아기와 괜찮은 일자리가 생산되어 장차 직면할 초저출산·초고령사회를 극복할 주춧돌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6.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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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구월산의 조국과 지리산의 조국 1961년 5·16이 나고 4·19세대 격인 50년대에 등단한 20대 젊은 시인들을 중심으로 ‘60년대 사회집’ 동인회가 구성되었다. 그 동인회에 참가한 중요한 시인들은 이경남, 박재삼, 박희진, 성찬경 등이었는데 그 가운데 이경남이 중심에 있었다. 그는 57년에 현대 문학에 박두진의 추천으로 시단에 들어선 희한한 인생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다. 한국전쟁이 날 때까지 평양사범대학 학생이었고 전쟁이 나자 인민군 장교로 참전했다가 임진강에서 그의 소대를 이끌고 국군에 귀순했고 UN군이 북진하자 고향 황해도에 돌아가 청년 활동을 하다가 50년 겨울 중공군 참전으로 구월산에 입산, 53년 7월 휴전까지 3년 동안 작전 참모와 참모장으로 반공 유격대를 지휘한 사람이었다. 연말에 이경남이 ‘자유를 위한 회고록’이란 제목을 가진 두 권의 책을 보내왔다. 그의 자서전격인 회고록이다. 그 중 제2권에 ‘60년대 사화집’ 에 대한 장이 들어 있다. 그리고 그 내용 가운데 동인회원 명단이 있고 그 속에 나의 이름이 들어있다. 나는 뒤늦게 65년 ‘흑인고수 루이의 북’이란 제목의 시집을 내면서 문단에 데뷔했지만 사실은 데뷔이전에도 그들과 가까운 벗이었고 시집을 낸 뒤 나의 대학 친구 박희진, 박재삼 등의 권유를 받아 동인회의 후반에 참여했다가 67년에 종간되면서 멋쩍게 ‘60년대 사회집’의 초상을 치른 적이 있다. 그 연고로 이경남이 나에게 회고록을 보내온 것이다. 회고록을 나는 단숨에 읽었다. 읽으면서 이태의 ‘남부군’을 연상하였지만은 그보다 훨씬 실감이 더했다. 그것은 나와 가까운 동인 한 사람의 실록이고 시인의 글이라 글이 솔직하고 아름답고 그 위에 이태의 ‘남부군’ 처럼 자수한 저자의 의도적 열등의식이 심층에 깔린 내용이 아니라 처음부터 회의나 부정적 의식은 조금도 안 보이고 당당하고 철저하게 의지적이고 자신감에 넘친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거기에 참모장이란 역할로 빨치산에 대한 상부 명령 체계와 작전계획과 지휘 등 하부조직에 있던 이태의 저널리즘적 관찰하고는 차원이 다른 종합적 실상이 잘 기록되어 있다. 그 책 안에 ‘남부군’의 저자 이태와의 만난 경험도 적고 있다. 그리고 지리산과 구월산의 빨치산의 비교도 흥미롭다. 이태는 이렇게 말했다. 지리산의 빨치산은 돌아갈 조국이 없었고 조국으로부터 배반을 당했지만 구월산의 빨치산은 돌아갈 조국이 있었고 조국은 그들을 배반하지 않았다. 지리산의 빨치산은 굶주리고 헐벗고 쫓기고 맞아죽어도 구원의 손길이 없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모두 죽어 갔지만 구월산의 빨치산은 지휘체계가 분명하고 끊임없이 상부와 교신할 수 있었고 보급이 끊기지 않았으며 인민군의 토벌을 피해 후퇴할 수 있는 퇴로가 있었다. 나는 ‘구역당 비서’라는 2차대전 당시 독일 점령하의 소련 빨치산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영화이지만 매우 강력하고 감동적인 내용의 영화인데 그 활동 마당은 소련의 국내이고 마침내 독일군이 후퇴한다는 전제가 있고 그들의 조국은 해방되어 그들은 산에서 내려간다는 기대가 깔려 있었다. 얼마 전까지 중화방송이 방영한 중국방송 ‘팔로군’도 마찬가지다. 2차 대전 중의 소련이나 중국 빨치산은 적의 한 가운데 조국이 있었다. 그러나 지리산은 그것이 없었다고 이경남을 만난 자리에서 이태는 말했다. 이 회고록 후기에서 이경남은 앞으로 구월산 빨치산과 지리산 빨치산의 비교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인민군 장교였고 그가 지휘한 소대를 이끌고 국군에 귀순했고 구월산에서 빨치산이었고, 그리고 국군 정훈 장교이고, 그리고 서정시인이라는 희한한 인생을 산 그가 지리산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궁금해진다. 나는 그의 그 치열한 인생에 경의를 표하면서 그가 구월산의 조국이 지리산의 조국과 하나라는 것을 꼭 인식했으면 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6.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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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 칼럼]여수박람회 유치와 대비 姜元求 근대적인 박람회는 1851년 런던에서 시작, 우리나라는 1993년 대전에서 인정박람회가 개최됐다. 작년 아이찌와 2010년 상해(上海)는 정식박람회지만, 2012년 여수가 대비하고 있는 것은 인정박람회다. 아이찌박람회를 참관하기 위해 나고야(名古屋)에 도착했는데, 동경(東京)의 나리타공항이나 오사카(大阪)의 간사이공항의 문제점을 보완한 국내선과 국제선이 동시에 운항되고 있어 공항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도착하자 관광협회와 시청 직원들이 마중을 나와 모두가 한국어로 인사했다. 박람회를 대비해 공무원들이 한국어를 배웠는데 너무나 잘 한 것을 보면 외국어도 만점이었다. 고속철도나 고속도로 등이 박람회를 가는데 편리한 것이 아이찌의 자랑이었다. 박람회는 환경을 주제로 애지구박(愛地球博·지구를 사랑하는 박람회)이었다. 청소년 공원이었던 곳을 돌 하나 나무 한 그루까지 번호를 매겨 박람회가 끝나면 다시 원상 복구한다는 것이었다. 새로 만든 지붕 위에 잡초가 자란 것처럼 만들었거나, 시멘트 건물이 아닌 나무로 지은 건물로 재활용할 수 있다. 교통혼잡을 줄이기 위해 자가용 주차장이 없고,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한 공공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자전거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나라 여수와 모로코의 탕헤르, 폴란드의 브로츠와프가 박람회를 개최를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해양수산부장관, 전남도지사, 여수시장 등이 유치를 위해 함께 뛰고 있다. 여수박람회 개최를 위해 노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상해와 경쟁을 벌이고 있을 때, 상해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수 없을 정도로 노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고속도로 주변에 상해박람회 유치해야 한다는 간판이 수백 개 설치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상해 시내 곳곳에 ‘우리는 상해를 위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 라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우리는 초기부터 박람회에 대한 국가적인 사업으로 격상시켜 놓지 않았으며, 광주·전남 사람만 겨우 알고 있을 뿐, 타지역에서는 거의 여수박람회가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BIE 회원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인프라였다. 호텔, 항공, 도로, 철도, 도시의 형태, 주변의 환경 등이다. 상해는 야경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특급호텔이나 일급호텔이 널려 있고, 국제공항이나 항만이 잘 발달된 곳이다. 여수는 언젠가는 박람회를 유치해야 한다. 2012년이 안되면 14년, 16년 계속 신청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서 신청한다는 곳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프라 구축이다. 여수는 다섯 개의 호텔이 있지만, 여관 수준에 불과하다. 특급호텔이 건립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며, 고급호텔이 몇 개는 더 있어야 한다. 순천에서 여수를 들어가면 도로 사정이 한숨이 나올 정도로 불편하다. 우리나라에서 고속도로와 가장 멀리 있는 시는 속초를 제외하면 여수임에 분명하다. 순천∼여수간 고속도로는 말할 것도 없지만, 8차선의 자동차 전용도로가 있어야 한다. 광주에서 순천, 여수까지 경전선을 복선화, 직선화해 KTX가 광주를 거쳐 여수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 여수공항에서 국제선이 일본으로 전세기가 취항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야 하며, 여수항에서 몇 년 전에 취항했던 여수∼후쿠오카간 카페리를 재취항시켜야 한다. 시내 도로표지판도 정비해야 한다. 외국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글과 한자(漢字), 영어 표지판이 있어야 하며, 조그만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만 갖지 말고, 세계적인 관광지를 만들도록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여수박람회가 언젠가는 유치될 것이므로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지금부터 인프라 구축을 해야 할 것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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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가르침과 배움 남헌일 ‘나는 孝子인가 不孝子인가?’라고 自問해 보면, 스스로 효자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이 불효자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 역시 효자가 못된다. 그래도 숨길 수 없는 양심은 항상 가슴에 담고 있어 술이 거나해져 감정이 복받치면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대중가요를 혼자 흥얼거리곤 한다. 내 어머니는 열입곱에 시집와서 열아홉에 나를 낳으시고 서른둘에 혼자되셨다. 先親께서는 어머니와 우리 5남매를 두고 일찍 세상을 뜨셨다. 그때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막내 동생은 돌이 지나기 전이었으니 벌써 45년 전의 일이다. 그 때부터 결혼하기 전까지는 항상 “어머니가 안 계신다면 우리 5남매는 어쩌지?”라는 생각에 오로지 어머니만 믿고 생활했고, 물론 속도 많이 썩혀 드렸지만 항상 효도하는 마음으로 어머니의 소중함을 가슴속 깊이 새기며 살아왔다. 그런데 장가를 들어 아들만 4형제인 자식들을 기르면서 자식들이 나와 아내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 시기부터는 어머니에 대한 효의 무게 중심이 자식양육·자식사랑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해 지금은 오히려 자식들 편으로 많이 기울어져 버렸다. 같은 光州에 살면서도 전화도 자주 안하고 기껏해야 한 달에 한번 뵐까하는 정도다. 팔순이 넘으신 장인·장모님은 같은 동네에 살아도 명절 또는 중요한 가족행사 때나 뵙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바쁘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결혼하지 않은 아들 넷을 둔 아버지로서 첫째와 둘째의 혼사 문제도 대사이고, 셋째와 넷째는 학업 중이기 때문에 자식문제에 아직도 굉장한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2년 이내에는 아들 둘을 장가보낼 생각이고, 셋째와 넷째가 졸업해서 직장에 다니게 되면 한시름 덜게 될 터이니 자식으로서 어머니에 대한 孝를 다하려고 한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집안의 가풍과 가르침은 대물림되는 것 같다. 일찍이 선친께서는 효자이셨으면서도 한편 불효를 하셨다. 祖父님께서 돌아가실 때 선친께서 裂指하시어 입에 넣어드렸더니 눈을 한번 뜨시고 돌아가셨다니 그런 효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선친이 자랑스럽다. 그러나 선친은 祖母님이 살아계실 때 먼저 떠나셨기에 또한 불효를 하신 것이다. 내 자식들도 공부는 썩 잘하지는 못했지만 건강하고 착하게 성장해 주었고, 군복무도 무사히 마치고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것이 부모로서 고마운 일이다. 이것이 자식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큰 도움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너무 자신들 밖에 모르는 것 같아 가끔 서운하고 화가 날 때가 있다. 평일에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주말에는 일주일 내내 밥해 주고 빨래해 주고 청소해 주며, 하루 종일 혼자서 집안에만 있는 엄마에 대한 도리와 배려가 필요한데 본인들 놀기 바쁘고 귀가 시간도 제 각각이다. 애들 엄마인들 얼마나 귀찮겠는가. 하지만 나 스스로도 어머니께 도리를 다 못해 드리고 있는 이상 자식들한테도 더 이상의 것을 바랄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먼저 자식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어머니께 도리를 다 해야겠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다. 선배들로부터 좋은 것을 배우고 따라하는 것이 중요하며, 나쁜 것은 보지도 말고 흉내 내서도 안된다. 나 스스로도 매사에 솔선수범해 후배들에게 좋은 점만 가르쳐 주고 물려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요즘 CEO는 ‘Chief Executive Officer’라는 기본 역할에 더해 ‘Chief Education Officer’를 겸해야 한다. 구성원들이 외부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전문가적인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발·제공하는 flexible service, expert service, development service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평생교육의 개념에 입각해 역량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많은 시간과 예산을 투자해 전문가를 양성하는 조직만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 끝으로 지난 6개월 동안 여러모로 부족한 필자의 글을 여섯 번이나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리고, 정해년(丁亥年) 새해에는 독자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에 큰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드린다
칼럼
남도일보
2006.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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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朴시장의 ‘24시간 快刀’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주에 위치한 소피아 앙띠폴리스는 혁신 클러스터와 테크노폴리스로 유명한 세계적 도시다. 이곳을 경남도 관계자들이 방문했다고 한다. 혁신도시 개발문제는 굳이 경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지자체들의 지대한 관심사다. 다른 것들도 문제지만 특히 단지 개발과 부동산 투기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경남 방문단이 대신해서 훈수를 요청했다. 이에 소피아측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독일 속담에 ‘전쟁을 하듯이 빨리 끝내라’는 말이 있는데 개발지 매입은 전쟁하듯 신속하게 해야한다…” 프랑스에는 땅 매입후 14년만에 개발을 완료하면 된다는 법 규정이 있어 일단 매입해놓고 서서히 개발하면 됐다는 것이다. 전쟁을 치르듯 신속하게 해야 하는 게 어찌 개발예정지의 부동산 매입문제 뿐이겠는가. 행정 민원의 대부분이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이뤄진다면 백성들의 고달픔 역시 그만큼 줄어들 게 너무나도 확실하다. 그걸 이런 저런 핑계로 밀고 당기고 심지어는 서랍속에 잠재우는 바람에 힘없는 민초들은 애가 타서 사방으로 뛰어다니기 일쑤다. 형식과 절차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모를 일이나 관(官)의 높은 문턱에 좌절감을 느끼는 민원인들이 지금도 지천으로 깔려있다면 과장일까. 그래서인지 최근 박광태 광주시장이 내놓은 두가지의 ‘24시간 이내 처리’지침은 유달리 돋보인다. 그 중 하나는 300억원이 됐든 500억원이 됐든 각종 공사대금을 24시간 안에 업체들에게 지급하라는 지시였다. 이만한 거액을 기관이 잡고 있으면 이자수입만 수십억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박 시장은 시청이 ‘이자질’하는 곳은 아니지 않느냐며 직원들을 다그쳤다. 어차피 줄 돈을 뭉그적대며 깔고 앉아 권위나 내세울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24시간내 대금지불은 간단한 일같았지만 의외로 전국 최초의 사례였다. 그만큼 효과도 십분 발휘됐다. 이를 시행한 결과 지역자금의 회전속도가 엄청 빨라진 것이다. 지역경제에 보탬이 된 것은 물론이다. 이 제도는 결국 전국 우수 혁신사례로 기립을 받았다. 그의 또 다른 ‘24시간 영장(令狀)’은 공직기강 확립차원에서 발부됐다. 박 시장은 이달초 직원 정례조회에서 외부에서 청탁이 들어오면 24시간 이내에 기획관리실장에게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얼마나 청탁으로 골머리를 앓았으면 ‘청탁 안받기 자정운동’이라도 권하고 싶었다는 게 박 시장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런 캠페인성 행사보다는 실질적으로 청탁배격을 담보해줄 신고제도를 도입했다. 일종의 내부자 고발이다. 청탁이 들어오면 반드시 윗선에 신고를 해야 하며 미신고로 인한 인사상 불이익은 감수해야 한다고 으름장도 놨다. 반면 청탁 자진 신고 1호 공직자는 반드시 우대하겠다는 다짐도 해놨다. 그래도 아직까진 자진 신고자가 없다고 한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었는지 박 시장은 또 한번 주의령을 발령했다. 지난 19일 간부회의 자리에서 “(청탁)유혹은 독약으로 생각하고 철저하게 주의해야 한다”고 거듭 경고한 것이다. 어쨌든 박 시장이 발령한 이 두가지의 ‘24시간 시한’은 공직사회가 무슨 일이든 시기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일처리도 자기반성도 신속해야 지역과 조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매사에 맺고 끊는 게 분명하지 않으면 공복(公僕)이 될 자격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원시원한 박 시장의 성격대로 ‘24시간의 쾌도(快刀)’를 빼어든 셈이다. 그러찮아도 올해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四字成語)가 구름만 잔뜩 끼어있고 비는 오지 않는다는 ‘밀운불우(密雲不雨)’라고 한다. 뭔가 이뤄지지 않아 답답함과 불만만 쌓이는 그런 상황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럴 때 필요한 게 ‘쾌도난마(快刀亂麻)’다. 새해엔 경제도 정치도 지역상황도 ‘쾌도난마’처럼 풀려나가길 기대해 본다.
칼럼
최혁
2006.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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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送年遺憾 密雲不雨, 新春待望 下雨齊放 한강희 우리 가요로 말하면 ‘노새 노새 젊어서 노새’격에 해당하는 중국 노래로 ‘靑春舞曲’이란 게 있다. 그 요지를 번역하자면 “태양은 오늘 지면 내일 다시 떠오르고, 꽃도 한 번 지면 마찬가지로 내년에 다시 피어난다네. 하지만 아름다운 새는 한 번 날아가면 그림자도 볼 수 없나니, 우리 청춘 또한 이 새와 같다네. 그러니 젊음을 즐기세” 정도가 될 것이다. 어김없이 아쉬움이 교차하는 한 해의 세밑이다. 교수신문이 2006년 한국 사회를 풍미할 사자성어로 ‘密雲不雨’를 꼽았다고 한다. 이 성어의 원뜻은 ‘구름이 빽빽한데도 비가 오지 않는 답답한 상태’를 가리키거니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가지 조건이 성숙함에도 더 이상 진전과 결실을 보지 못한 작금의 상황을 빗대기에 충분하다. 이 용어 외에도 교수들은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는 형국에 빗댄 ‘矯角殺牛’, 모든 일이 진행되지 않는 머무름의 상태인 ‘萬事休矣’등을 한 해를 설명하는 성어로 꼽았다. 연초부터 국민을 실망시키고 인류 과학계를 흔든 황우석 파문은 결국 ‘줄기세포는 없었다’로 판명났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은 한반도에 ‘후폭풍’을 드리우고 있으며, 전시 작전 통제권 환수에 관한 찬반 논란은 설익은 논제였다. 중국은 여전히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사를, 게다가 백두산은 ‘장백산 프로젝트’로, 일본은 ‘다케시마’로 독도를 위협하고 있다. 이 문제는 미궁에 놓여 있어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막이 오른 한미 FTA 협상과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 논란은 관계 구성원 사이의 양방향 소통구조가 원활하지 못한 상태에서 비롯돼 아직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과연 집값을 잡겠다는 것인지 미지수이고, 대학 입시는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부산물인 ‘논술 광풍’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바다 이야기’와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인수 의혹 및 매각, 다단계 그룹 JU의 전방위 로비 의혹 건은 ‘대한민국에 안되는 게 뭐 있어’라는 씁쓸한 개그를 떠올리게 했다. 굵직굵직한 사고도 잇따랐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서해대교에서 일어난 29중 추돌 참사는 인재였다. 강원도엔 무심하게도 여름과 가을 두 번에 걸친 폭우가, 겨울 들어서는 폭설로 덮쳤다. 피해 규모가 천재지변으로는 사상 최대라고 한다. 정치판은 여전히 변한 게 하나도 없으며 당파간 치고받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선을 앞둔 ‘황금돼지해’엔 권력에 금전까지 덧칠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나마 스포츠 분야에서 우리는 2006년의 희망을 쏘아 올렸다. WBC에서 한국 야구가 4강에 오른 것은 위업이었다. 아시안 게임과 월드컵도 성과는 있었다. 하지만 아시안 게임 3연속 2위는 예상 메달 수를 저만치 벗어난 것이었고, 월드컵 축구는 사실상 2002년에 비해 답보를 면치 못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팀워크의 결실로 이뤄내는 대다수 구기 종목은 아시안게임에서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를 보여주는 데 머물렀다. 스포츠 특유의 견고한 기초 내지 헝그리 정신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2007년 초봄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그 이유는 한국인 두 번째 추기경 정진석, 첫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 아시아 야구사를 새로 쓴 이승엽, 불우를 의연히 딛고선 풋볼 영웅 하인즈 워드, 수영의 르네상스를 재현한 아시안 게임 MVP 박태환, 요정에서 여왕으로 등극한 시니어 피겨 스케이터 김연아, 우리 예술의 수준을 드높이고 타계한 백남준이 2006년을 찬연히 수놓았기 때문이다. 2007년엔 초봄부터 하늘을 빽빽이 뒤덮은 비를 머금은 매지구름이 단비로 변해 모든 부문을 촉촉히 적셔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길 기원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6.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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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올해의 인물 You’의 허구성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You’를 선정해 화제가 되고 있다. ‘타임’지가 지정한 ‘올해의 인물’은 관례적으로 뉴스와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그해의 인물을 선정해왔다. 예를 들어 2005년에는 빌 게이츠 부부와 빈곤퇴치에 앞장선 록 가수 보노, 2004년에는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 그리고 그 앞 해에는 이라크 침공의 미군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2006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이 예상되었던 인물은 그 뉴스적 영향력으로 보아 아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거나 중국의 국가주석 후진타오, 아니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어야 했다. 그러나 올해의 인물 ‘You’는 그 안에 나도 있다는 환상을 갖게 한다. 지난 주말 CNN이 집중 보도한 타임지 편집 관계자들과의 인터뷰가 주장한 것을 시청하고 뒤이어 국내 각 신문에서 다투어 보도된 내용을 읽으면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종래의 영향력을 보는 시각의 변화이다. 즉 지금까지 세계의 역사는 위대한 인물의 전기나 마찬가지였지만 올해는 그 이론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미국인이 존경하는 천재 아인슈타인이나 애디슨과 같은 영웅도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른 사람을 통칭해 ‘You’를 거론했다. 그러나 ‘You’라면 나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 나는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가만히 앉아 자기를 빼앗겼다는 느낌을 받는다. 잡지는 그 ‘You’가 대표하는 것으로 글로벌 미디어를 들고 현재 전 세계 1억3천만명이 가입되어 있는 마이스페이스, 하루 평균 1억 건에 달하는 영상 파일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 그리고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 티피어 등을 들고 있다. 그리고 말하기를 이제 개인들은 미디어가 미리 정리해 독자에게 바치는 뉴스를 읽는 시대가 아니라 세계 곳곳의 생생한 뉴스를 직접 접할 수 있고 또 그 뉴스나 미디어 제작에 참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가만히 앉아 다른 사람이 만든 영화를 보기보다 자신이 직접 영화를 찍고 최신 노래를 과거 유명 가수의 연주와 섞어 새로운 노래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생산성과 혁신의 폭발로 가히 단순히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방식을 바꿔 놓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You’가운데 역시 내가 없음을 나는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신문들이 한결같이 ‘You’를 ‘당신’이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은 오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You’는 ‘당신들’ 또는 ‘여러분’으로 번역해야 한다. 우선 1억3천만명의 마이스페이스 가입자도 단수인 ‘당신’이 아니라 복수인 ‘당신들’, 아니면 ‘여러분’이어야 하고 1억에 달하는 영상 파일 공영사이트 유튜브 이용자들도 ‘당신’이 아니라 ‘여러분’이고 온라인 백과사전 이용자들도 ‘여러분’이다. 사실상 ‘You’는 단수나 복수를 같이 사용하지만 타임에서 사용하는 ‘You’는 ‘We’또는 ‘They’의 뜻으로도 사용하는 보통사람들, 즉 일반대명사이기 때문이다. ‘You’를 만일 복수로 사용하고 보통사람들을 의미하는 일반대명사로 해석한다면 의문이 생긴다. 글로벌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은 60억 대부분의 세계인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평소에 타임지의 그 ‘올해의 인물’ 선정의 대표성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 세계라는 이름을 너무 일방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그 선정이 너무 미국적 입장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그 올해의 인물이 그해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와 비교해 보면 누가 더 올해의 인물을 대표하는 것일까. 이것은 세계를 보는 유럽과 미국간의 인식의 차를 말한다. 뉴스가 되고 가장 영향을 끼쳤다고 하지만 누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는가도 문제이다. ‘올해의 인물’이나 노벨 평화상 수상자 말고도 다른 측면에서 그해를 대표하는 특징적 사건이나 인물은 많다. 그것은 나라마다 지역마다 개인마다 사정이 다를 수 있다. 올해의 인물 ‘You’는 저널리즘을 지배하는 미국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세계 각처에서 발생하는 고통의 시대적 진실을 외면하고 있으며 적어도 내가 아닌 ‘You’는 아무리 생각해도 허구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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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 칼럼]광주국제영화제 계속돼야 한다 중국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하고 흥미로운 전략과 전술을 소재로 한 ‘묵공’의 ‘혁리’역을 맡아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배우는 유덕화다. 지난 11월 개봉해 중화권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으며, 내년 한국과 일본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지난 부산영화제 때 내한했던 유덕화가 다시 찾게 되어 부산이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부산영화제는 부산시나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11회를 맞이하고 있어 국제적으로 손색이 없으며, 부산의 하나의 축제인 동시에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전주영화제도 지난 4월에 열려 7회를 맞이했다. 관객들에게 가장 좋은 반응을 얻은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관객 평론가상’이었다. 내년도 포스터를 공모한 결과, 62작품이 접수되어 7회 때보다 1.5배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 4대 국제영화제인 부산, 부천, 전주, 광주영화제 이외에 20여 영화제가 있다. 광주영화제는 늦게 출발한데다 올해는 공공지원이 끊긴 상황에서 민간중심의 적은 예산으로 영화제를 개최했다. 지난 14일 메가박스에서 ‘광주에서 영화를 보다’는 주제로 10여개국 40여편의 상영작을 들고 개막되었다. 일본 오쿠다 에이지 감독의 ‘긴 산책’을 상영으로 시작해 5일간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조직위원회는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 광주의 눈으로 영화를 통해 세계와 인간내면을 들여다보는 의미와 함께 어렵게 열리게 된 영화제의 현실을 반영해 영화제의 주제를 정했다고 한다. 지난 5회까지의 영화제의 프로그램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담은 작품을 우선 선정했지만, 이번 영화제는 작은 규모로 개최되었다. 광주시의 지원예산을 6억5천만원에서 3억원으로 삭감했는데, 시의회에서 3억원마저 삭감했다고 한다. 문광부에서도 5억원에서 2억원으로 깎였지만, 아름다운 영화제라는 말을 들었다. 시민들의 손으로 출범시킨 영화제를 시민대표들이 축소시켜버렸다. 광주영화제가 다른 영화제에 비해 다소 부족하고, 영화제 조직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없애는 것보다는 개최하는 것이 광주를 위해서 좋다. 어느 영화제나 불협화음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부천영화제도 10회를 맞이했지만, 이장호 집행위원장이 사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인 관계 개선 등 그의 노력과 이를 통해 영화제가 거둔 결실은 인정되고 존중되었다. 21세기는 영상문화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영화제는 국제적인 작품들이 들어오게 되고, 유명한 배우들이 오게 되면 그에 따라 많은 관람객들이 밀려오게 된다. 비록 수익으로 보았을 때 적자라고 할 수 있어도, 광주시에 경제적으로 미치는 효과는 대단히 크다. 2만명이 며칠간 10만원씩만 소비한다면, 광주시에 20억원이 들어오게 된다. 우리가 광주를 소개할 때 예향(藝鄕)이니, 의향(義鄕)이니, 미향(味鄕)이니 자화자찬(自畵自讚)할 것이 아니라, 자랑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영화제를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면 몇 10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해 광주의 거리나 상가가 활발히 돌아갈 것이다. 국제적인 행사는 약간 적자가 나더러도 남모르게 들어오는 수익은 광주시민에게 들어온다. 정율성음악제도 금년에 없어질 것을 시민들의 열화로 남구에서 개최했고, 내년부터 광주시가 맡아 하기로 한 것은 천만 다행한 일이었다. 이번 영화제는 민간인들에 의해 어렵사리 꾸려가고 있다. 광주가 아시아에서 문화중심도시로 나가기 위해 이러한 국제영화제는 광주시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광주가 대표적으로 ‘광주비엔날레, 광주김치축제, 정율성음악제, 광주영화제’를 세계 속으로 이끌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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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한해의 끝자락에 서서 김영관 어느덧 달력 마지막 장을 남기고 있다. 요즈음 세월이 너무 빨리 흐른다고들 한다. 전에 비해 훨씬 편리해진 교통수단으로 인해 사람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다 보니 더 먼 곳까지 움직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사람들은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다보니 세월이 빨리 흐른다는 생각을 가진 듯싶다. 지금은 원거리에 살고 있는 친인척이나 친구들 애경사에 와 준 보답으로 찾아 다녀야 하니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그 활동 무대가 가히 전국적이 되어 버렸다고 말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훨씬 더 경쟁이 치열해진 사회로 급변해 감아 따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스트레스로 고통을 받느라 한 해를 어떻게 살아 왔는지 돌아볼 여유가 없다. 그렇지만 바쁠수록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위치는 어디쯤이고, 또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가야할 것인지, 적어도 한 해가 저무는 순간 냉엄한 자기반성이 필요할 것 같다. 일년 중 마지막 달 12월, 그리고 계절 중 마지막인 겨울은 사람들에게 겸손을 가르친다는 말이 있다. 1억불 수출에도 감격했던 때가 어제만 같은데 금년엔 우리나라가 수출 3천억불 시대에 돌입했다고 감격해 한다. 필자 역시 자랑스러워 어깨가 으쓱해진다. 더군다나 IMF의 혹독한 고통을 치르던 아픔을 겪었기에 더욱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수출 3천억불 시대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즐거워 할 일만은 아닌 듯싶다. 수출 호황에도 불구하고 남는 것이 별로 없는 장사였던 모양이다. 어렵사리 벌어들인 외화를 재투자 목적보다는 낭비성인 곳에 흥청망청 소비를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일이 잘 풀려 갈수록 어려웠던 시절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너나없이 자기 것은 소중히 여기면서도 공공의 것은 임자가 없다는 생각으로 관리를 소홀히 하고 또 그것이 공금일 경우에는 흥청망청 탕진해 버리는 일을 예사로 하고 있다.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으로 지금 송년 모임들이 한창이다. 그런데 그 송년 모임이라는 것도 일년 동안 모은 회비를 그날 하루 먹고 마시는데 온통 다 써버리는 모임으로 전락하고 있는데, 그 돈 아껴 불우한 우리 이웃들께 온정 베푸는데 그 중 일부나마라도 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국가 기관 역시 마찬가지이다. 공금으로 나온 돈이라면 그게 국민 혈세라는 생각은 망각한 채 우선 쓰고 보는 심리가 작용하는 건 아닌지….. 또한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공사(公社)들의 공통점은 임자가 없어 그러는지 몰라도 일년 운영 후의 결산을 보면 한결 같이 적자투성이라는 점이다. 적정 인원이 아니라 별의 별 명목 붙여 과잉 인원으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사장은 그 분야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이 낙하산 인사로 내려와 호화판 외제 집기로 장식을 하고, 최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는 말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국민 혈세로 조성된 기금으로 설립된 회사들이니 단 돈 100원이라도 아껴 써야 된다는 생각을 왜 그들은 갖고 있지 못하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또 시·도, 군 의원들, 그리고 교육 위원들은 무리 지어 하나같이 자기 임기 중에 적어도 한 차례 이상 무슨 선진지 시찰을 다녀온다며 외국 나들이를 나가는데 이 모두 국민의 혈세가 아닌가? 왜 그들이 의원이나 위원이 되기 전에 자신의 돈으로 선진지 자치와 교육 정책을 미리 공부하지 않고, 당선되어 국민의 혈세로만 꼭 나들이를 나가야 하는가? 우리가 진정 보람 있고 알찬 사회를 만들려면 자기 사유물도 소중하지만 공유하는 것들을 내 것처럼 아끼고 사랑하고 소중히 여길 때가 아닌지 한번 되돌아 보자는 것이 달력 마지막 장인 12월에 느끼는 필자의 생각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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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서울 쥐 시골 쥐’ 어렸을 적 누구나 한번쯤은 읽었던 동화에 ‘서울 쥐 시골 쥐’가 있다. 기억을 돕기 위해 간략히 소개하면 대충 이런 내용이다. ‘…서울에 사는 쥐가 시골에 사는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 시골 쥐는 아껴두었던 고구마와 옥수수를 대접했다. 그러나 서울 쥐의 고급스런(?) 입에 이게 맞을 리 없었다. 서울 쥐는 시골 쥐를 데리고 도시로 왔다. 차와 사람들 때문에 시골 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지친 시골 쥐는 너무 배고프고 목이 말랐다. 어렵사리 서울 쥐가 사는 집엘 가니 식탁에 맛있는 음식들이 하나 가득 차려져 있었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감탄한 시골 쥐가 막 먹으려는데 갑자기 사람이 들어왔다. “요놈의 생쥐들!”하며 잡으려 들자 이들 쥐 두마리는 헐레벌떡 도망쳤다. 시골 쥐는 “맘 편히 사는 게 더 좋아”라며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동화의 원래 의도는 복잡 살벌한 서울보다는 안락한 전원생활을 찬미하자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우화(寓話)도 세월따라 진화하기 마련. 요즘 치솟는 부동산 가격을 보면 서울 쥐가 시골 쥐 뒤통수에 대고 “내 쥐구멍이 평당 얼마인지나 알아?”라고 빈정거릴 법하다. 어디 집값 땅값 뿐이랴. 국민 혈세를 이런 이유 저런 핑계 몽땅 끌어다 제 입맛에 맞게 써대는 것도 서울이 더 부티난다. 속된 말로 ‘뺨도 금가락지 낀 손에 맞는 게 더 낫다’더니 이런 걸 두고 하는 얘기였나 보다. 다름 아닌 공기업들의 고질적 ‘모럴 해저드’가 꼭 그래 보인다. 지난 주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단이 내놓은 14개 공기업의 2005년도 경영평가 보고서를 보면 그야말로 배부른 ‘서울 쥐’들의 향연같다. 정부의 지침을 무시한 채 임금을 올려주고 직원들에게 저리의 특혜대출을 해주는 건 거의 기본이다. 업무와 직접 관계도 없는 해외출장과 직원 자녀들의 입사전형 우대 정도는 애교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공사 임원이 건설공사 수주대가로 하청업체로부터 뇌물을 챙기질 않나 공사 노조위원장이 업무편의, 인사청탁 등의 명목으로 직원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질 않나 아예 잔치를 벌이는 모습들이다. 방만한 경영으로 지적받는 것은 다반사다. ‘서울 쥐’들이 이렇게 흥청망청하고 있을 때 ‘시골 쥐’들은 어찌 살고 있을까. 동화에서처럼 맘이라도 편해야 할텐데 팔자가 그럴 수는 없는가 보다. 광주의 경우 그래도 제일 나은 데가 도시공사다. 다른 곳은 다 적자인데 반해 이곳만 흑자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림을 꾸린 탓에 2년 연속 전국 최우수 공기업으로도 선정됐다. 그러나 그래봤자 ‘시골 쥐’다. 지난 주 이사회를 열어 기껏 논의한다는 게 구조조정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큰 폭으로 원만히 해볼까 하는 것이었다. 명예퇴직 신청을 가급적 많이 받아야 겠는데 그럴려면 퇴직수당을 조금 올려주는 수밖에 없다며 이사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나마 다른 공기업들과의 형평을 고려해 깎이고 말았다. 옛날에 명퇴한 사람들과 액수를 얼추나마 맞추려면 이제 남은 직원들이 조금씩 더 갹출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참 한심하고 답답한 시골 공기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러게 진즉 중앙의 공기업에 미관말직이라도 얻어 나갔으면 배부르게 챙겼을 것 아닌가. 그러고 보니 ‘서울 쥐 시골 쥐’동화는 이제 결말이 바뀌어야만 할 듯싶다. 한쪽은 배터져 죽고 한쪽은 쪼들려 죽는 것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서울 쥐들 대부분이 얼마 안있어 지방으로 내려와야만 한다. 공기업들의 지방 이전이 물론 예정처럼 이뤄진다면 말이다. 문제는 그래봤자 ‘서울 쥐’ 버릇이 어디로 가지는 않을 것같다는 점이다. 고질적인 모럴 해저드가 쉽게 고쳐진다면야 굳이 ‘고질(痼疾)’이랄 것도 없다. 구조조정을 하거나 생산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혈세인 정부 재정에 기대 방만한 경영을 하는 악습은 여전하리라는 것이다. 결국 곁에서 보는 지방 공기업들 눈만 버리게 생겼다. 이래 저래 ‘시골 쥐’는 서러울 뿐이다.
칼럼
최혁
2006.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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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학원공화국’과 ‘사교육중독증’ 형광석 우리나라는 ‘학원공화국’이다. 지난 13일 200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수험생에게 배부됐다. 언론에서는 수험생들의 표정이 다양했다고 전한다. 입시전문학원에서는 대학별 배치표를 발표하고 입시상담의 미끼를 던졌다. 같은 날에 어느 신문이 대한민국은 ‘학원공화국’이라고 1면 제목을 달았다. 2005년 사교육비는 국방비와 맞먹는 21조5천억원이다.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4%로 세계 최고다. 교육열이 높다는 일본은 그 비중이 1.2% 수준이다. 오늘날 학원은 예전 자영업 수준이 아니라 주식회사로서 선진적인 기업형태를 띄고 있다.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교육기업도 있다. 어느 유명한 학원의 금년 예상매출은 1천억원이다. 연봉 20억원인 스타강사도 있다. 학교교육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논술시험이 수시와 정시 입시에 있어서 논술학원이 활황 중이다. 교육인적자원부 자료에 따라 부문별 사교육시장을 보면, 미취학은 1조5천억원으로 8.1%, 초등은 3조원으로 16.2%, 중학은 5조원으로 27.0%, 고교는 9조원으로 48.6%이다. 교육단계가 높아질수록 사교육비가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교육중독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 미취학과 초등 부문을 합하면 사교육비는 4조5천억원으로 전체의 24.3%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말을 옹알옹알하는 어린 나이에 기저귀를 찬 상태에서 과외를 시키기도 한다. 조기에 영어 교육을 한다면서 필리핀 여성을 가정부로 들이는 가정이 늘어난다고 한다. 유아 영어학원 중에는 월 수강료(등록금·교재비 포함)가 138만원으로 4년제 인문계 대학 등록금보다 비싼 곳도 등장했다는 언론보도도 있다. 중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커지고 있기 때문에 아이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증이 일부 학부모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유아 어린이 교육을 하는 친구가 전해주는 말은 이렇다. 탈모증이 상당히 심한 어린이도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이 학원 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각은 저녁 7시가 넘는다. 어떤 어린이 엄마는 교육에 대해 좋다는 책과 교구를 모두 사들이고, 책을 읽어주는 가정교사를 들인다. 그런 엄마는 선전광고에 나오는 각종 책을 모조리 바로 사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한다고 한다. ‘사교육 구매(shopping) 중독증’이라 할만하다. 미취학 아동기부터 고교생 때까지만 사교육을 하지는 않는다. 취업준비과정에서 취업학원을 목숨 걸고 다닌다. 대기업 입사는 취업고시이다. 언론사 취업은 언론고시이다. 행정고시, 사법시험과 외무고시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한 고시학원도 활황 중이다. 우리나라 학원 전체의 예상 매출이 국방비와 맞먹고, 교육기업은 주식거래소에 상장되어 투자의 대상이 되고, 한 학원의 연간 예상 매출이 1천억원을 넘본다 함은 마치 선거과정의 투표행위처럼 많은 국민이 학원에 지지표를 보낸다는 뜻이다. 지지자가 없으면 선거로 선출된 지도자가 새로운 지도자로 교체되듯이, 입시학원도 매년 입시성과에 따라 그 주가가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래서 ‘학원공화국’이다. 마약중독증은 마약을 오래 복용한 결과 약이 없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상태이다. 마약중독증은 습관성과 탐닉(耽溺)을 초래해 사용을 중지하면 불면증, 불안, 허탈감, 망상 등이 생긴다. 사교육을 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교육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심리적 불안감에 휩싸인다. 무기력 상태가 된다. 일종의 금단증상이다. 지식기반경제시대에 교육은 최우선 과제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람이요, 사람을 바꾸는 것은 교육이다. 그렇더라도 과유불급이라.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칼럼
남도일보
2006.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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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세한도(歲寒圖)를 보는 눈의 한계 소처럼 미련한 짐승이 없다는 데 등이나 엉덩이까지 뿔이 난 이중섭의 소를 보고 있으면 소에 대한 상식인 온순함이 없고 금방 찌르려고 달려들 것같이 매우 사납고 화가 나있는 절박감을 읽을 수 있다. 그의 그림은 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면서 까닭이 없이 화가 나고 까닭이 없이 받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나의 마음에 자기 스스로 사나운 소가 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내가 어찌 그 분노한 이중섭의 속마음을 같이 깊이할 수 있겠는가. 그의 경험에 미치지 못한 한계를 나는 갖고 있다. 아산에 있는 추사 김정희의 고택을 방문한 사람은 그 고택에서 그의 파격적인 글씨를 상상하기 힘들다. 충청도 말투처럼 느리고 점잖은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주변 환경 속에서 어찌 구양수를 배우고 구양수를 극복한 독자적인 서체를 개척한 저토록 뿔 달린 파격의 글씨가 나왔는지 알 수 없다. 해설서나 사전이 밝히는 바를 따르기는 쉽지만 그의 치열한 삶과 경험, 그리고 싸움 속에서 생긴 추사의 마음에 들지 못한 이상 그의 서권기(書卷氣)의 세계나 문자향(文字香)의 세계를 읽는 데 한계가 있다. 추사의 세한도도 그렇다. 해설 가운데는 세말 추운 겨울을 잘 대표한다는 해석도 있고 혹은 고난의 추사를 대표한 걸작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그 보편성이 절세의 명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림에는 추운 겨울에 다만 네 그루의 야윈 송백(松柏)과 그 사이에 초라한 초가, 그리고 나머지는 다 비어있다. 천하가 삭막한 세말의 어느 날 인적이 없이 버려진 초가에 주인까지도 보이지 않는다. 제주에 유배되어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중 제자 한 사람의 문안을 접하면서 그에게 그려 보낸 그림이다. 50년대 미국의 신비평이 지배하던 시대의 문학에서 하나의 작품은 그 작품을 절대적 인식에서, 즉 있는 그대로 보아야지 작품을 읽는 데 작가의 경험이나 그가 산 시대, 그리고 주변의 환경이 작용해서는 안 된다고 신비평의 입장은 주장했다. 이 주장은 미국적 사고방식을 대표한 것으로 문화적 대국이 된 미국의 독자적 위상을 높이는 사고방식의 반영이었다. 작품을 보는 데 미국의 독자성을 강조함으로써 종래의 유럽적 주도권에 도전하는 정신이 반영된 것이다. 문화 인식에 대한 미국적 자신감을 표현하는 방법론이었다. 그 신비평의 방법론은 이외에도 한국의 전통적 문화인식과 매우 유사한 점이 있었다. 작품을 정독해야했지만 가령 당시를 읽는 데 있어서 그 시가 누구의 작품이고 어느 시대에 작품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완성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작가의 경험과 시대적 특징을 가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 시가 왜 좋고 어떤 표현이 아름답고 어떤 대구와 어떤 평칙(平仄)과 어떤 비유와 어떤 상징 등 형식이 뛰어난 것을 확인하면 되었었다. 그 시가 당시이기만 하면 무조건 절창이다 감탄하면서 무릎만 치면 되었다. 오늘 우리는 이미 그 신비평의 의도와 한계를 잘 파악하고 있다. 가령 추사나 이중섭의 작품을 인식하는 데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들이 전통적 예술인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독자적 가치관을 정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독자적 가치관의 정립은 그들이 산 시대의 치열한 경험과 관계가 깊다. 그 치열한 그들의 삶과 시대와 역사를 같이 하지 못한 우리들이 그들의 예술에 대한 인식은 그 만큼 한계가 있다고 나는 보는 것이다. 며칠 전 한 신문에서 서울대 하모 교수의 실명 칼럼을 읽었다. 칼럼은 추사의 세한도를 빌어 그 그림 속 넓은 공백처럼 노무현 대통령의 말기적 세한에서도 욕심을 비워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칼럼에는 되는대로 갖다 붙이는, 어딘지 억지스럽고 부화뇌동의 편의주의적 느낌이 있었다. 추사의 세한도의 실존은 시대도 다르고 경험도 다른 노무현 대통령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하 교수의 시국관을 밝히는 방법으로도 적절하지 않다.
칼럼
남도일보
2006.12.1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