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등을 바라보며]고민하는 호남 민심 요즘 호남 민심은 고민이 많다. 내로라 하는 대권주자들과 한다 하는 정치인들 모두가 호남에 러브콜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하나같이 지역주의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며 청산해야 할 독소적 존재라고 핏대를 세운다. 마치 호남 민심을 제 호주머니속의 물건처럼 일방적으로 다루는 모습들이다. 덩달아 이 지역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다. 도대체 어느 말이 진정이고 어느 주장이 옳은 것인지 헷갈린다. 슬며시 불쾌감도 들고 뭔가 좀 일목요연했으면 하는 바람도 생긴다. 먹고 사는 문제도 빠듯한데 그네들 손바닥 안의 공깃돌 취급받는 건 더욱 짜증스럽다. 우선 호남 사람들을 신경쓰이게 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과 ‘3김(金)’이다. 이 땅의 권력 정점에 자리잡고 있거나 한때 자리잡았던 그들의 최근 행적이 그렇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10월 29일 8년만에 목포를 방문했다. DJ는 거기서 ‘무호남(無湖南) 무국가(無國家)’라는 휘호를 남겼다. 물론 “정치는 빼고 다 하겠다”고는 했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역민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 이후 바로 이뤄진 노 대통령의 DJ 방문이 호남 민심과 무관한 것이라는 설명도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지역주의적’ 행동이 영판 거슬렸던지 YS와 JP도 나섰다. 겉으로야 현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모습을 취했지만 지역맹주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그들이다. 노-DJ의 호남 되품기가 자신들의 정치적 공간을 만들고 주고 있지 않느냐는 무언의 시위가 역력해 보인다. 2007년 대선을 앞둔 이 지역엔 과거완 다른 흥미로운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주자들의 호남 공들이기다. 맘에 내켜서든 아니든간에 이들은 약속이나 한듯 ‘무호남 무정권(無政權)’을 입에 달고 다닌다. 대부분 과거를 반성하고 동반자로서의 미래를 다짐한다. “약무호남 시무국가라는 말이 향후 국정운영의 커다란 기둥이 될 것”이라는 말이 서슴없이 나온다. 호남을 국정 주체로 생각하고 이를 몸소 실천해 적극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겠다는 그들의 의지는 그러나 또 다른 지역주의의 발로일 수밖에 없다. 아직은 호남 정서가 그리 우호적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물밑에선 만만찮은 동요가 감지되는 분위기다. 재밌는 것은 정작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민주당의 움직임이다. 이들은 고건 전 총리, 열린우리당의 중도 개혁세력, 민주당 등이 함께하는 범 여권의 통합신당 창당에 공감하면서 한화갑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당권파들의 독자 후보론과 맞서고 있다. 핵심 의원들이 정계개편에 대비해 역할도 분담했다고 한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 일부 소장 개혁파 의원 영입에 공을 들이는 대(對)한나라당 창구도 있고 열린우리당 붕괴에 따른 대여 창구역할도 있다. 고건 대세론을 견지하는 세력과 국민중심당 창구역을 맡은 의원도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 지역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던 열린우리당이 지금은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전락해버린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어쨌든 민주당이 원하는 대로 그림이 그려질지는 참으로 의문스럽다. 당내 정리도 제대로 안돼 사당화 논란이나 빚는 처지에 이런 어마어마한 대통합의 동력을 만들어낼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호남 민심은 어지럽기만 하다. 과거엔 답이 얼추 정해져 있었는데 지금은 문제지를 읽기도 힘들다. 일종의 아노미 현상도 생길 법하다. 대선 시즌은 돌아왔는데 크게 마음둘 곳이 없어서다. 그래서 생각을 고쳐 먹자는 얘기가 꽤 설득력있게 들린다. 이른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다. 이제는 이 지역을 풍요롭고 살기좋게 만드는 정치적 리더십이라면 누구라도 손을 들어줘야 한다는 논리다. 일응 지금까지의 민주화 공헌을 바탕으로 산업화 동참 권리를 당당히 보장받을 수있는 파트너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남이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 때 지역구도나 편가르기 정치도 없어지지 않을까 싶다.
칼럼
최혁
2006.12.11 00:00
-
[남도시론] 문화수도 이정표‘호남문학박물관’ 한강희(도립 남도대학 교수) 이 글은 사실(fact)에 기반해 진정성(Reality)을 구현하기 위한 ‘당위적 성명서’라 이해하면 좋겠다. 그 골자를 요약하면 문화예술의 집적인 ‘문화수도’ 사업에서 ‘호남문학박물관’건립은 최우선 과제라는 점이다. 물론 ‘문화수도’라는 명칭에 걸맞게 규모를 키워 ‘한국문학박물관’으로 격상한다면 더욱 좋겠다. ‘문화수도’의 기획과 전략 프로세스에 무지한 나로서는 박물관 건립이 전적으로 반영되고 있는 지, 전혀 반영되고 있지 못한 지, 부분적이나마 감안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요컨대 전혀 반영되고 있지 못하다면, 건국 이래 ‘한국 문화예술의 대역사(大役事)’를 정초한다는 입장에서 ‘주도면밀하게’ 반영해야 한다. ‘문화수도’로 가는 첫 매듭에 ‘문학박물관’이 놓여 있다면, 언필칭 ‘가장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할 때, 그 ‘한민족’으로서, ‘약무호남 시무한국’이라고 할 때 그 ‘호남인’으로서 ‘문화입국으로 가는 기초공사’를 탄탄히 구축했노라 말할 수 있겠다. 문화수도의 선편에 ‘문학박물관 건립’을 내세우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일이다. 진정한 문화상품은 순정(純正)한 정신사적 집적인 문학 텍스트를 기반으로 삼아야 굳건한 기초를 바탕으로 영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 한때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세계를 향해 눙쳤던 영국이 내세운 셰익스피어, 전쟁의 참화를 적나라하게 펼쳐 보이며 평화를 갈구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철학이자 문학인 불후의 ‘파우스트’를 집필했던 독일의 시성 괴테 등을 새삼스레 떠올릴 필요도 없다. 이들 나라가 문화강국으로 군림하는 이유는 대문호들로부터 배태된 문학의 향기와 무늬가 그대로 박물관에 입성해 ‘오늘에 시퍼렇게’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모든 도시들이 인종시장을 방불케 할 만큼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이유는 고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문화가 팩스로마나를 풍미한 굳건한 중세로 이어지며, 이후 인간 삶의 총화(總和)인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의 두 물줄기에 연면해 세련되고 품격 높은 문화적 삶터로서의 풍경들을 빚어내기에 가능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문화와 예술, 종교와 전쟁의 흔적을 ‘살아 있는 역사’인 박물관에 담아내고 있다. 런던의 대영 박물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이탈리아 바티칸 박물관엔 ‘문장보국’, ‘예술입국’을 통해 자국의 ‘문예 위업‘을 보란 듯이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남도 역시 근현대 한국문학사의 금자탑을 쌓아올린 김승옥·이청준·조정래·서정주·김현승·김지하·차범석·김현을 산생한 터다. 그 수는 여기에 거명할 수 없을 정도로 부지기수다. 이들은 재기발랄한 섬세한 감수성으로, 혹은 번득이는 이성으로 근현대 문학사를 도도하게 관류해왔다. 남도가 만들어낸 걸출한 문호가 없었던들 한국문학사는 얼마나 초라했겠는가. 고전시가의 경우, 담양 가사문학관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근현대문학의 경우, 문화 심장부 광주에 지역간·장르간 모든 부문이 결집된 문학박물관이 건립돼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다. 언제 어디서나 문화예술은 원(原) 텍스트인 문학에서 기원하고 출발한다. 영혼의 물결이 오롯이 살아 숨 쉬는 문학에서 문화의 발상이 찾아질 때 ‘문화중심도시’로서의 둔중한 무게가 영속할 수 있다. 이는 종이책의 운명이 사이버 전자페이퍼와 무관하게 항구불변하리라는 믿음과 같다. 금세기 한국문학은 속도와 자본에 휘둘리다보니 ‘문화콘텐츠’의 뒷전에 저만치 밀려나 있다. 한국인의 정신적 아이덴티티가 어디에서 연원하는지, 남도가 왜 한국적 정체성의 텃밭인지는 문화수도 이정표로서 ‘호남문학박물관’이 세워질 때 비로소 규명될 수 있을 것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12.08 00:00
-
[범대순의 세상보기] ‘이웃사촌의 유전자’ 1961년이든가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에 취임하던 날 그 취임식에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시를 낭송했다. 허리가 굽은 노시인이 비틀거리며 등장해 갈리는 목소리로 축시를 낭송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젊은 대통령과 노시인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목소리를 낸 것은 아니었지만 그 풍경은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출신이 다르고 성장이 다르고 시대가 다르고 무엇보다도 하는 일이 달라 생각이 다른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꿈을 향해 희망을 같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한 말로 알려진 ‘시는 경험으로 시작해 지혜로 끝맺는다’ 는 말이 상징하듯 그의 시는 늘 자기 경험이 소재가 됐다. 그리고 그의 경험은 차분하고 겸손하고 사려 깊은 점에 있어서 그 분별과 중용적 사고가 동양적인 자기 성찰과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 그의 시 가운데 ‘담장을 고치며’라는 시가 있다. 미국 동북부 뉴 잉그랜드의 외진 한 농장에서 생긴 일로 한겨울 추위에 얼었다 녹으면서 무너진 담장을 손수 고친 경험을 담은 시다. 그 시속에 ‘담장이 실해야 이웃과 사이가 좋다’는 말이 들어 있다. 몇 해 전 나는 대구에서 열린 대구 경북 정년퇴임 교수 모임이 주선한 한 강연회에서 강연한 적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먼저 초청한 강연의 답례로 성사된 행사였는데 내가 한 그 강연의 요지는 열린사회에 대한 비판이고 그 대안으로서의 나의 지론인 ‘트임의 사상’이었다. 강연 속에서 나는 열린다는 말의 뒤에 숨은 독을 지적하고 그 위선적 속성을 폭로했다. 그리고 대안으로 ‘트임의 사상’을 제시하면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담장이 실해야 이웃과 사이가 좋다’는 말을 소개했다. 담장은 분별을 상징한다. 서로의 소유와 개성과 감정의 충돌을 막는 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피아의 위상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접촉과 교류가 필요하면 문을 통해 왕래하면 된다. 그래서 담장에는 꼭 문이 필요하다. 지난 달 11월은 전남대 정년퇴임 교수 연찬회 창립 10주년이 되는 달이었다. 그 10주년 기념으로 우리는 안동 하회마을과 도산서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안내한 사람들은 우리의 파트너격인 대구 경북 정년퇴임 교수 모임의 임원들이었다. 그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서애 유성원의 고택도 돌아보고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 기념 방물관도 보고 안동댐을 따라 그 상류에 위치한 도산서원에도 갔다. 산수가 아름다운 도산서원 앞 소나무 숲에 앉아 나는 새삼스럽게 영남은 이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 생각했다. 우리들의 대화 가운데 퇴계 선생의 사상이 일본의 명치유신에 큰 영향을 준 사실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일본에서 오늘도 퇴계 사상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고 연례행사로 학술 세미나가 열리고 있어 일행 중 그 행사에 참여한 사람이 있다고 듣는다. 그리고 그 사상의 기본적 틀은 명치유신의 애국심을 강조한 천황의 교육칙어에 잘 반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퇴계 선생의 가르침은 일본에서 독이 되고 총칼이 되어 돌아온 것이 아닌가. 일본의 애국심은 언제나 한국의 침략으로 이어졌다. 아침 한 조간신문에 ‘걱정스러운 일본의 교육법 개정’이란 제목의 도쿄대 명예교수이자 전 일본 교육학회 회장인 오타 다케시의 시론이 보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개정안은 평화헌법의 혼을 빼는 작업이고 기존 교육법의 기본인 개인의 민주의식과 개인의 존엄에 대한 조항을 삭제하고 유네스코가 기본적 인권으로 규정한 학습권도 보장하지 않고 있으며 그 대신 애국심을 고양하고 국가와 향토를 사랑하는 태도, 공공의 정신, 도덕심 배양이 강조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일본이 다시 명치유신의 교육칙어 정신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역사는 반복한다 하였던가. 우리는 언제나 일본의 침략적 유전자를 의심하지만 속으론 침략자가 아니라 이웃사촌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수시로 그 소망을 위협하고 있다.
칼럼
남도일보
2006.12.07 00:00
-
[강원구 칼럼]정율성 선생의 국제음악제와 관광산업 중국에 다니면서 중국인들에게 정율성(鄭律成) 선생에 대해 말하면, 젊은이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한국사람이며, 광주사람이라면 정말 깜짝 놀란다. 조선족 민속축제 때 행진곡이 울려 퍼지면 ‘이 곡은 우리 민족의 영웅이신 정율성 선생이 작곡한 노래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우리 동포들은 정율성 선생에 대해 많은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몇 년 전 ‘중국에 더 많이 알려진 음악가 정율성’에 대해 방송한 적이 있었으며, 그에 대한 일대기가 중국에서 영화로 나오기도 했다. 금년에도 ‘연안송’이란 드라마가 중국 국영방송인 CCTV에 방영되었다. 그가 중국에 남긴 것은 음악뿐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존재를 중국인의 가슴에 새겨 놓았던 것이다. 그는 중국 혁명음악가이며, 항일운동가이기도 하다. 중국인 3대 음악가인 선성해, 섭이, 정율성(鄭律成)은 한국인이거나, 마카오의 화교,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변방이었다. 선성해는 그의 원적은 광저우(廣州)이지만, 마카오의 가난한 배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난 화교이다. 중국 해방 역사를 담은 ‘황하대합창, 생산대합창, 중국광상곡’등을 남겼으나, 아깝게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40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섭이는 중국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운남성 곤명시 옥계에서 태어나, 중국의 국가인 ‘의용군행진곡’과 ‘전진가’ 등 많은 곡을 남겼으나, 23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에서 숨졌다. 정율성은 1914년 7월 7일 불로동(현 히딩크호텔)에서 태어났다. 그는 능주에서 초등학교를 1학년 다닌 기록과 숭일학교, 전주신흥학교를 다닌 기록이 있다. 1933년 그는 형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러시아의 음악교수 ‘크리노와’로부터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하게 되었으며, ‘부은’이란 이름에서 ‘율성’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그는 혁명 성지를 전국에 알린 ‘연안송’과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창작했다. 당시 험난한 만리장정(萬里長征) 끝에 연안에 근거지를 마련한 중국 공산당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항해야 했다. 중국 공산당 정부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수많은 젊은이들이 바로 ‘연안송(延安頌)’을 부르며, 전국 각지에서 연안으로 몰려왔다. 또한 그들을 정신적으로 뒷받침했던 팔로군행진곡이 훗날 ‘중국 인민해방군가(人民解放軍歌)’로 개칭되어 지금까지 중국의 군가로 쓰이고 있다. 중국에서 정율성을 알아주지만, 광주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2002년 광주시에 정율성 선생기념사업을 추진해보도록 권했다. 광주시는 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포기했으나, 그가 태어난 장소를 광주시 양림동에서 방림동으로 밝혀 주는 계기가 되었다. 남구에서 작년부터 음악제까지 열리게 된 것은 잘한 일이다. 이번까지 남구에서 개최하고, 내년에 광주시에서 주최하게 되면 참으로 좋은 일이다. 사실 그의 유족들이나 중국 측에서 광주시가 주최해 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그는 중국에서 훌륭한 음악가로 성장했지만, 그리운 고향에 돌아오지 못함을 아쉬워하고, 1976년 세상을 떠나 북경 팔보산 혁명공원 묘지에 묻혀 있다. 그로 인해 한중간의 우호교류의 가교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국인으로 중국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 많이 있지만, 뚜렷하게 교류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제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가 왔다. 그가 태어난 불로동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능주와 양림동, 그리고 전주까지도 모두 하나의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 관광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음악제만 할 것이 아니라, 불로동에 기념비는 건립되었지만, 기념관도 만들어 중국인들이 아무 때나 찾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12.06 00:00
-
[화요세평]“세계는 하나 우리도 하나” 박혜자 우리는 요즘 거리에서 외국인 주부를 자주 만나게 되는데 이제는 더 이상 낯설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 남아선호사상에 따른 성비의 불균형으로 농촌 총각의 국내결혼이 어려워짐에 따라 1995년 이후 한국 남성과 외국인 여성의 국제결혼이 급증하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농어촌 총각 4명 중 1명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여성과 국제결혼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증가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도의 경우는 2006년 하반기에 3천명이 넘는 외국여성이 가정을 꾸리고 있고 여기서 태어난 자녀들도 3천명에다 배우자와 시부모를 합치면 어림잡아 외국인 가정은 1만명 가까이 된다. 가문과 핏줄의식이 유난히 강한 우리나라는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국제결혼을 극구 반대했고 외국인과 결혼한 자녀와는 의절도 불사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국제결혼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했다. 무조건 반대했던 부모도 어쩔 수 없이 자녀의 국제결혼을 주선하고 나서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도 벌써 다인종, 다문화사회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의식 속에 오랫동안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단일민족, 순혈주의’라는 전통 때문에 다인종, 다문화 사회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고 또한 대부분 국제결혼에 대한 사전 준비 없이 단기간에 이루어지고 있어 갖가지 문제점을 내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결혼 이민가정이 안고 있는 주된 문제점으로는 의사소통의 어려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사회부적응, 가족간 갈등문제, 그리고 자녀교육 문제, 취업문제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단순히 이주여성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가정의 문제에서 사회적 국가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문화정책 시행과 결혼이민자와 가족에 대한 정서적 지지와 배려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참여시키려는 지역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우리도는 ‘다인종, 다문화’의 사회를 대비하고 이주민들의 다양성을 존중해 사회 통합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다. 결혼이민가정이 우리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2개소를 설치 운영해 결혼이민자 가족에 대한 이해증진 프로그램을 비롯, 한글과 문화교육, 소외현상 극복, 유관 기관·단체간 네트워크 형성, 주민의식 변화를 통한 다문화 공동체 형성 등의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또 내년에는 이 센터를 4개소로 확대 운영, 이주가정 전문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국제결혼 이주가정을 지원하고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다문화 수용분위기 확산과 더불어 공동체의 의식 함양을 위해 결혼이민자 가족과 함께 하는 ‘2006 다문화가정 가족 한마음 축제’를 개최했다. 이번행사는 자국 민속의상, 민속춤·노래, 악기 분야 등 민속경연대회와 함께 국가별 전통음식 만들기 등을 통해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와함께 교육인적자원부의 지역인적자원개발사업비를 지원받아 이주여성을 영어교사나 외국어 관광안내원 등 전문 인력으로 양성하는 교육을 실시했다. 이밖에도 각 지자체와 민간단체들이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조기정착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부부공동체훈련, 한글교육, 문화적응교육, 정보화교육, 문화체험교육, 상담 등을 지원해 주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여성 주부들이 피부색과 출신 민족이 다르다고 차별을 받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된다. 이제는 상호존중과 포용의 바탕위에서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가 서로의 문화를 배워서 이해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 이주여성들은 젊은이가 떠나간 우리 농촌을 지키는 새로운 파수꾼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12.05 00:00
-
전남의 지적(地籍) 원점이 100년만에 설치됐다. 전남도가 지난주 지적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표준 세계측지계를 적용해 새로운 ‘남악 원점’을 설정한 것이다. 무안군 삼향면 남악리 1000번지 전남도청 앞 잔디광장에서 ‘남악 원점’제막식도 가졌다. 이로써 100여년 동안 우리나라 지적측량 기준으로 사용돼왔던 동경(東京)측지계가 드디어 폐지됐다. 그 동안 세계측지계와 남동 방향으로 365m에 달하던 편차도 개선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일제(日帝) 잔재를 청산했다는 의미가 대단히 커보인다. 도는 ‘남악 원점’에 이어 상징적인 차원에서 조만간 해남에 ‘땅끝 원점’, 장흥에 ‘정남진 원점’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원점(原點)이란 길이 따위를 잴 때에 기준이 되는 점이다. 나아가 시작이 되는 출발점, 또는 근본이 되는 본래의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부나 지자체가 뒤늦은 감은 있으나 측량의 기준을 찾아 지적상의 독립과 자존을 이룬 셈이다. 그러나 전남에 필요한 ‘원점’은 이들 말고도 또 있다. 그것도 아주 시급하다. 다름 아닌 ‘개발(開發) 원점’이다. 우리 나라 개발 원점은 누가 뭐래도 서울과 부산이다. 이른바 경부축(京釜軸)이다. 이건 군사독재시절에 만들어졌다. 100년까지는 안되지만 40년은 족히 되고도 남는다. 대한민국 국토개발의 출발점이나 근본이 됐던 지역들은 그렇지 못한 지역들에 비해 그 동안 엄청난 혜택을 누려왔다. 그리고 이 원점은 균형발전을 얘기하는 지금에 와서 지역간 경쟁력의 격차를 극도로 벌려놓은 주범이 돼버렸다. 이 대목은 노무현 대통령도 인정하고 있는 바다. 지난번 무안 목포 신안 중심의 ‘서남권 종합 발전 구상’을 내놓으면서 “…70년대 이후 수도권과 영남, 충청권이 중심이 된 개발축을 서남권 및 호남으로 연장해 다핵(多核)형 국가발전을 추진…”이라고 시인했었다. 그러면서 이 지역의 개발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엊그제 목포와 무안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호남 발전의 레일을 깔겠다’, ‘호남 발전의 이정표를 세우겠다’며 온갖 덕담을 해주었다. 그러나 곰곰이 살펴보면 항시 그래왔듯이 이러한 약속들에선 짙은 시혜성(施惠性)이 느껴질 뿐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개발 원점에서 연장을 시켜보겠다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원점 자체를 바꿔보겠다는 ‘혁신적 발상’은 엿보이질 않는다. 진정으로 호남 발전의 이정표를 세우겠다는 의지가 확실하다면 국토개발 역사상 처음으로 ‘호남 원점’을 설치하는 용기도 내봄직 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참여정부 지난 4년간에 국토 개발상 동남방향과 수천 수만km에 이르는 편차의 개선을 시도했어야 했다. 이 같은 개발 원점 설정은 ‘적극 지원’, ‘조기 착공 검토’,‘세제 혜택 검토’ 등등의 립서비스와는 질적으로 달라야 하고 다를 수밖에 없다. 그토록 호남이 중요하다면 한번 생각을 거꾸로 바꿔 국가 발전의 기준점을 호남에 두고 모든 정책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수도권과 영남에 키를 맞추는 개발이 아니라 호남 자체가 새로운 개발축이 될 수 있는 정책발상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게 안되면 이 지역은 평생 ‘예산을 한푼도 깎지 않겠다’느니 ‘부지 양도를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는 정도의 선심을 구걸하는 운명밖에 되지 못한다. 하기야 광주를 문화의 수도(首都)로 만들어 주겠다는 대선 공약도 지금은 문화중심도시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바뀌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판이다. 이제 1년 남짓 남은 참여정부가 이러한 발상의 대전환을 이루기를 기대한다는 것이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마침 지적 원점을 100년만에 바꿨다고 하니 40년의 불균형 잔재도 털어버리는 게 어떨까 싶어 넋두리를 해봤다. 어쨌든 ‘생각을 달리하면 미래가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칼럼
최혁
2006.12.04 00:00
-
[남도시론]대학논술과 논술산업 형광석 교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지가 벌써 보름이다. 이미 입시 전문기관에서는 가채점 결과를 토대로 ‘2007학년도 대입 지원가능대학·학과 참고자료’를 발표했다. 수험생과 학부모는 지원가능 학과를 정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다. 대학별로 입시요강이 천차만별이다. 세부기준이 다르다. 인터넷 상으로 입시를 상담하는 기관도 많다. 기업이 외부기관에 의뢰해 컨설팅(상담)을 받는 것처럼 대학입시도 상담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다. 스스로 하든 상담을 받든 지원 대학과 학과를 정하자마자 바로 논술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도 젖 먹던 힘까지 다해야 한다. 논술이 대학입시의 결정적 변수란다. 대체로 지원학과별 지원자의 내신과 수능점수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논술은 평소 글쓰기 습관이 없는 사람에게는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수험생 대부분은 고교 3년 동안에 학과 공부에 열중하느라 글을 써볼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글쓰기 습관이 아직 생기지 않아서 글을 쓸 때마다 낑낑댄다. 최근 몇 년간의 대입 논술 문제를 살펴보니 매우 어렵다. 글쓰기 재주가 없는 필자라 그러려니 했는데,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국문학분야의 어느 석좌교수도 풀기 힘든 문제라 했다. 논술에서 둘째가라하면 서러워할 어느 친구도 맨 처음 논술 문제를 주어진 시간에 풀어 본 후 냉정히 채점해보면 100점 만점에 50점 정도란다. 두 번, 세 번 첨삭해야 80점 수준이 된단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상상도 해본다. 논술 문제를 출제한 교수가 그 문제를 직접 풀면 과연 몇 점정도 맞을까? 가히 논술산업이라 할만하다. 현행 대학입시 논술이 논술산업의 자양분이다. 국문학 분야의 석좌교수도, 논술지도를 업으로 하는 친구도 대입 논술이 어렵다고 할 정도이니까. 학생들은 학교의 논술수업보다는 전문화된 논술학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논술에 관한 세분기준이 대학별로 다르다보니 맞춤식 논술교육을 받아야 한다. 서울 강남의 한 대로 변에는 수험생들이 익히 알고 있는 논술학원이 즐비하다. 대형 건물 한 채가 통째로 논술학원이다. 지방의 수험생들이 다급한 마음에 서울로 올라와 초롱초롱한 눈으로 강의를 듣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 신문지상에서 눈에 띈다. 2008학년도 대학입시부터는 논술비중이 더욱 높아진다니까 논술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논술산업 분야가 지금보다 더 성장하면 머지않아 논술직종이 어엿한 직업으로 자리잡을지도 모른다. 취업알선 회사에서 논술직종 취업설명회를 개최할 날이 가까워 보인다. 논술산업의 번성에 대한 견제의 목소리도 제법 크다. 일부 학부모단체에서는 논술이 사교육 조장, 학교교육 왜곡, 교육 불평등 심화 등을 야기한다면서 논술고사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한편 교육부는 11월 22일에 ‘논술교육내실화 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교사들의 논술동아리 지원과 연수 강화, 정규 교육과정에서 논술 교육 실시, 초중학교의 도덕, 사회, 과학 등의 교과에도 논술관련 학습목표를 추가, 고교의 작문 교과서에 논술관련 단원을 구성해 운영한다는 것이다. 학부모의 반대와 정규교육과정상 논술교육 강화조치가 이미 대세를 형성한 논술산업의 흥성을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논술산업이 번성하면 전문화된 산업적 논술교육은 우등재가 되고 정규학교의 논술교육은 열등재가 된다. 우등재는 고소득층이 소비한다. 한편 지방의 수험생들은 산업적 논술교육을 받으러 서울로 가게 된다. 지방의 인재와 물적 자산이 서울로 유출된다. 논술산업의 호황은 계층간, 서울과 지방간 논술교육의 격차를 야기한다. 정규학교 논술교육은 산업적 논술을 능가할 정도로 전문화되어야 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6.12.01 00:00
-
[범대순의 세상보기] 위선적인 노예무역에 대한 사과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국립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오면서는 분노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가 대표하는 그 찬란한 문화가 다 어디 가버렸는가. 소장한 유물들이 정말로 볼품이 없다. 가을 날 들에서 이삭줍기같이 겨우 몇 점 주워 모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리스 여행은 대개 다음 코스가 아이러니컬하게도 런던이다. 런던에 들어와 그들은 어디 보다도 먼저 대영 박물관에 간다. 그리고 그리스 수천 년의 문화, 특히 신전 하나를 뜯어다 군함으로 실어다 복원해 놓은 것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이 ‘도둑놈들’이다. 어찌 대영 박물관뿐이냐. 파리 루블 박물관도 그렇고 로마 바티칸 박물관도 그렇다. 그러나 대영 박물관 입장 관람료가 무료임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대영 박물관이 아니면 우리가 어찌 수천 년의 그리스 문화를 저렇게 효과적으로 섭렵할 수 있는가 하고 말한다. 19세기 초 시인 로드 바이런이 대표하는 그리스 독립전쟁 지원을 계기로 출병한 영국군을 수행한 고고학자들은 그리스 여기 저기 버려진 유물들을 수집해 영국으로 반입시켰다. 유물들은 개인의 소유를 금지하고 국가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해 대영 박물관에 소장전시하게 되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저 유물들이 그리스에 남아 있다면 어찌 되었겠는가를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는 것이다. 실사구시적 사고이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엘리자베스 시대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시대는 19세기라는 말을 아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상 셰익스피어까지도 19세기의 낭만주의가 있어 완성되었다는 주장도 강력하다. 그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낭만주의 사상의 시대적 배경의 하나로 영국 사람들은 1807년 3월에 있었던 노예무역 금지령을 내건다. 그들은 아직 노예무역이 성행하고 있을 때 의회에서 노예 무역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그리하여 해군으로 하여금 노예무역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적도 인근 가나 이웃에 세라레온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다. 내가 여행한 적이 있는 그 나라의 수도는 프리타운인데 영국해군이 노예무역을 단속해 노예선을 나포, 그 안에 묶여 있던 노예들을 일단 적당한 항구를 정해 거기에 풀어놓고 수용한 곳이다. 그러나 서로 언어도 통하지 않고 식량도 없는 상황에서 그들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았고 수용된 입장에서는 생활이 노예나 다름이 없었다. 사실상 ‘그 놈이 그 놈이’라 고마울 것도 없었고 노예무역 금지는 영국 국내 정치적 이상주의에 불과한 셈이다. 프리, 즉 자유라는 개념의 위선적 애매성이기도 하다. 오늘 세라레온은 아프리카 최악의 내전국의 하나다. 미국에 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즉 아프리칸 아메리칸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만일 그들의 선조들이 불행하였던 그 이주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흑인들이 어찌 세계 제일의 미국인으로 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그들의 자손들이 아직 아프리카에 남아 수단에서, 콩고에서, 세라레온에서, 가나 등에서 살면서 그 원시적 생활과 가난과 그 질병과 내전의 그 무수한 살생과 같이 살고 있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하는 것이다. 서양의 범죄적 역사를 가리려는 악랄한 발상이다. 영국 블레어 수상이 노예무역 금지령 의회 통과 200주년을 기념해 영국의 노예무역에 대한 사과를 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블레어 수상은 과거 국제적인 노예사냥꾼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명복을 빌고 명예를 기리는 카리부 국의 유엔결의안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천5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노예무역에 대한 범죄를 이제 와서 사과정도로 될 일인가는 의문이다. 서양제국은 역사적으로 사과할 일이 많다. 사실 365일 사과만 해도 부족할 것이다. 일본도 그렇다. 그러나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오늘 이라크처럼 그들의 말대로 잘못된 정보로 침공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그일 또한 사과해야 할 일이 아닌가.
칼럼
남도일보
2006.11.30 00:00
-
[강원구 칼럼]호남고속철도를 건설하려면 얼마 전 광주역에서 KTX를 타고 대구까지 간 적이 있다. 88고속도로가 2차선이라 거의 4시간 이상 걸리고 지루하기 때문이었다. 서대전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대전역에 도착했다. 대전역에서 대구행은 20분마다 있기 때문에 3시간만에 도착했는데, 버스를 이용하는 것보다 빠르고 상쾌했다. 광주역을 출발, 대전역에서 환승해 대구·부산까지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호남고속철 건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승객이 없는 오송역으로 분기점을 정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호남선고속철은 언제 건설될 지 불분명하게 되어버린 셈이다. 오송역에서 X자 형태로 북한까지 연결하고, 행정중심도시와 연결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것은 지도만 펴놓고 계획하는 것에 불과하다. 호남고속철 건설도 경부선처럼 서울, 천안, 대전, 익산, 전주, 광주, 목포로 결정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천안역이냐, 오송역이냐, 대전역이냐를 놓고 의견을 물어보면서 시간이 지연되고, 갈등만 조장되었다. 더구나 반대가 심한 오송역을 택했으니 이 또한 보통 잘못이 아니다. 현재도 승객이 없는 판인데, 하물며 서울, 오송, 익산, 송정리, 목포로 이어질 경우 승객이 없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서대전을 이용하는 승객이 1/3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수도 없어지게 된다. 그러면 광주에서 대전으로 가는 승객들은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 광주∼서대전을 이용하는 승객은 버스나 새마을호를 타고 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광주에서 대전역으로 직행하는 고속철도가 생기고, 환승할 수만 있다면, 대구까지 가는데 2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고속철도도 지하철처럼 환승할 수 있도록 광주, 목포, 전주 지역에서 서울이 아닌 대구, 울산, 부산까지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본다. 대전역을 주장하는 이유는 오송역보다 7분 정도 늦지만, 거리가 짧아 건설비용이 적게 들어 추진하기가 쉽다. 광주와 대전을 이용하는 승객에게 편리하며, 오송역에서는 환승할 수 없지만, 대전역은 환승할 수 있어 영남으로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승객이 적은데, 오송역일 경우 승객이 더 줄어지게 된다. 서울에서 대전을 이용하는 승객은 경부선이나 호남선을 동시에 이용하기 때문에 대전까지는 승객이 불어나게 된다. 전북도청소재지가 있는 전주를 반드시 거쳐 가야하며, 광주, 목포로 이어져야 한다. 순천이나 여수의 경우 익산에서 고속철 건설보다는 광주에서 순천, 여수로 바로 연결하면 적은 비용으로 호남권을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호남선의 복선화는 36년이나 걸렸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호남고속철 관련 선심공약 발표가 많았다. 광주에서 호남고속철 완공시기를 2017년에서 2015년으로 2년 앞당긴다고 약속은 했지만, 예산 확보 등 사업 추진을 위한 명확한 실행방안은 아무 것도 없는 실정이다. 기존 철도인 호남선은 처음부터 잘못된 건설이었다. 경부선의 경우처럼 부산에서 대구, 대전을 통과하는데, 호남선은 목포에서 광주가 아닌 송정리, 전주가 아닌 익산으로 연결되어 도청소재지가 있는 곳을 제외한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었다. 경부고속철도가 서울, 대전, 대구, 울산, 부산으로 결정해 발표하자, 누구 하나 울산으로 돌아간다고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서울의 출발지도 고속철은 용산역이 아닌 서울역에서 동시에 출발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경부선의 절반을 용산역에서 출발한다던가, 그래야 우리의 자존심을 살리게 된다. 따라서 오송역을 주장하면, 호남고속철은 이용객이 없다는 이유로 장기간 표류하게 될 것이며, 선거 때나 되어야 건설하겠다는 약속만 나오게 될 것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11.29 00:00
-
필자는 매년 1월1일이 되면 그해에 반드시 지키고, 변화하고, 새롭게 하고자 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확실히 실천하기 위해 신년 다이어리 첫 페이지에 공적·사적 문제에 대해 지난 30여년간 빠짐없이 기록해 왔다. 똑같은 방법으로 매년 12월31일에는 그해 있었던 公私간의 중요한 일과 잊을 수 없는 일, 감사했던 일과 함께 연초에 다짐했던 약속을 얼마나 지켰는지를 회고하고 부족했던 부분을 자책하면서 다이어리 맨 마지막 페이지에 30여년간 반복해서 기록해 왔다. “나이가 얼마나 들어야 철이 들까”라는 생각에 어떤 해에는 기록하기가 부끄럽고 싫을 때도 있었으나 그래도 약속과 다짐을 안하는 것보다는 부끄럽더라도 기록에 남기는 것이 하나라도 더 새롭게 변화하고 지켜나가는데 보탬이 될 것 같아 멈추지 않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연말이 코앞에 다가왔다. 아직 한달이 남았지만 마음은 벌써 한해를 돌이켜 보게 된다. 공적인 측면, 즉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광주테크노파크의 금년 경영목표 등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고, CEO로서 지켜야할 公約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아울러 가정에 대한 소망과 약속도 거의 이루어 질 것 같다. 그런데 제일 오랫동안 뜻대로 안되는 것이 세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주일에 열심히 교회에 나가는 것이고, 둘째는 담배를 끊거나 확 줄이는 것이고, 셋째는 술을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가장 중요한 이 세가지 다짐과 약속을 아직도 제대로 못 지키고 있어 항상 나를 짓누르고 있다. 세가지만 지키면 오죽 좋으련만…. 이 중에서 술과 관련된 얘기를 꺼내고자 한다. 왜냐하면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나와 비슷한 고민과 다짐을 수없이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주일에 이틀만 마시자,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12시 이전에는 귀가한다”를 매년초 다짐한다. 그런데 이게 뜻대로 안된다. 지금도 1주일에 3일은 술을 입에도 안댄다. 金·土·日 3일 말이다. 술은 참 맛있고 좋은 음식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우리 인간관계를 만들고 지속시키는데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음식이라 생각한다. 우선 흥겹게 하고, 기분이 좋아지고, 인간관계를 쉽게 친근하게 해준다. 그런데 도를 넘어 과하게 되면 독이 된다는데 문제가 있다. 아무래도 과격해 지고, 쉽게 화를 내게 되고, 건전한 이성을 혼미하게 만든다. 일찍이 하느님께서도 술로 인한 폐해를 경고하시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에 관한 한 브레이크를 밟을 줄 모르고 절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면 다음날 아침 화장실에서 반드시 후회하고 오늘 만큼은 술집 근처에도 안가겠다고 이를 악물고 다짐한다. 그런데 꼭 부득이, 회피할 수 없는 행사가 생기고 멀리서 귀한 손님도 오시고 해서 본의 아니게 또 마시게 된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부담이 되고, 건강도 서서히,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빠지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술에는 장사가 없다”라는 옛 분들의 말씀이 백번 맞다. 사실 생각 같아서는 술에 관한 폐해를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해서 공감하시는 분들에게 강한 경고 메시지를 전해 드리고 싶지만 이 글을 쓴다고 하니 평소 나를 많이 걱정해 주는 고위 공직자인 후배 K군이 절대 기고하지 말라고 해서 완곡하게 표현을 한다. 이제 곰곰이 생각도 해보고 현실을 바로 보니 술을 잘 드셨던(다소 과한, 즉 속된 표현으로 나와 간이 맞는) 선배님들은 古稀를 넘기면서 건강이 많이 안 좋아져 술도 조심하고 절제하시는 반면, 예전 술자리 중간에 일찍 집에 들어가셨던 선배들은 古稀를 넘겼어도 아주 건강하신 모습이 나를 많이 깨우치게 한다. 가장 확실한 노후대책은 건강과 경제력일 것이다. 건장만 유지된다면 부부 둘이서 많지 않은 돈을 가지고도 충분히 노후를 보낼 수 있기에 지금부터라도 술을 좀 자제하면 술값만큼 저축도 해 노후 경제력에 큰 보탬이 되고, 동시에 건강도 저축되지 않겠는가? 필자는 60이 다 되어서야 깨우쳤지만 여러분은 좀 더 일찍 깨닫기를 권유 드린다. 더 나아가 항상 감사하고, 보답하고, 긍정적이고, 정열적인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10살은 젊어지고 건강해 질 것이다. 반대로 부정적으로,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마음의 화로 인해 10년은 빨리 늙게 될 것이다. 또한 매일 나이에 맞는 운동을 한다든지 반신욕을 하는 것도 보탬이 될 것이다. 다만 미루지 말고 오늘부터 당장 실천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확실한 노후준비를 위해 더 늦기 전에 함께 약속과 다짐을 하고 실천할 것을 제안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6.11.28 00:00
-
[무등을 바라보며] 雙春年, 아직 한달이나 남았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올해는 음력으로 입춘이 두번 든다는 쌍춘년(雙春年)이었다. 결혼하기에 좋은 해라는 속설에 따라 계절을 가리지 않고 시내 예식장들은 주말마다 북적거렸다. 어디 그 뿐인가. 내년은 600년만에 한번 돌아온다는 ‘황금돼지’해다. 태어나는 아이들이 재물복을 타고 난다는 길한 해다. 인구감소에 따라 해마다 주춤거리던 결혼건수가 올해 유독 증가세를 보였던 것도 다 이런 이유들 때문이었다. 이처럼 겹치기로 재수좋은 쌍춘년이 아직도 한달이나 남았다. 혼인 당사자들이나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올해의 끝자락이라도 놓쳐서는 안될 상황이다. 그런 탓인지 몰라도 예식장마다 연말까지 예약이 가득 차있다. 주변에선 노총각 노처녀들의 결혼을 더욱 서두르는 분위기다. 연말이지만 예식과 혼수 관련 업계들은 일손이 바빠질 수밖에 없다. 덩달아 신경쓰이는 게 하나 더 있다. 결혼식에 결코 빠져서는 안될 주례 선생님이다. 결혼은 공동체 형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주례는 바로 그 주관자이자 매개자이다. 지역사회내 여러 인연의 끈 가운데 남다른 정을 쌓아주던 게 주례 풍습이었다. 권위있는 어른에게 혼인을 인정받는 절차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스턴트 시대가 되면서 주례풍습도 바뀌었다. 우선 전문주례 기관이 성황이다. 관련 단체들은 과거 정치인이나 학계 출신 원로들을 전문 주례인단으로 구성해 필요한 수요자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예식업체들에 따르면 결혼식 중 절반 이상은 전문 주례인이 맡는다고 한다. 은사님이나 목사님 등 지인들에게 부탁하는 경우보다 ‘알아서 해달라’고 부탁해오는 젊은 커플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은사들이 예전에 제자들의 주례를 서면서 받았던 ‘어른 대접’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건 결혼도 최소한의 형식 요건만 갖추면 된다는 인식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이 돈으로 대체되고 상품화되기로서니 결혼식 자체가 이벤트, 서비스의 일환으로 전락하고 이에 따라 결혼의 의미가 가벼워져서야 되겠는가. 이는 핵가족, 개인주의, 높은 이혼율로 대변되는 현대사회 가족의 개념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인간관계가 점점 해체돼가는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결혼의 물량(?)이 폭주하는 쌍춘년의 끝마무리에 이런 현상은 더 더욱 두드러질 게 뻔하다. 하지만 옛 속설들을 추종하며 겹치기로 복을 받겠다는 신랑 신부라면 과거의 전통도 일정 부분 좇아주는 게 기본 예의가 아닐까. 최소한 주례 선생님만큼이라도 상거래를 지양하고 진정 존경하는 ‘어른’을 모셔보는 게 우리 사회를 덜 삭막하게 해줄 것만 같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 주례라는 것도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부탁하는 사람이나 부탁받는 사람이나 서로 어려운 게 주례 요청이다. 특히 주례사가 머리를 무겁게 만드는 숙제거리다. 오죽하면 최근 모 개그맨이 후배 개그맨에게 했던 재미있는 주례사가 자신만의 주례비법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겠는가. 그러나 세상엔 순간의 기지가 번뜩이는 명쾌한 해법이 다 있기 마련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금호고속 김성산 사장은 특유의 노하우를 지녔다. 그 방법을 들어보니 머리를 싸매고 주례사를 짓느라 밤을 새지 않아도 될 듯싶다. 특히 하객들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아도 되는 비법이 ‘바로 이거다’싶다. 김사장은 주례를 청하러온 신랑 신부에게 ‘다짐의 글’을 받는다고 한다. 예비 부부가 앞으로 어떤 각오로 살아갈 것이며 어떻게 인생을 꾸려나갈 것인지를 써오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정리해 식장에서 하객들에게 낭독을 해준다. 그게 주례사인 셈이다. 낭독이 끝나면 신랑 신부가 이렇게 잘 살아보겠다고 하니 하객 여러분들도 증인이 돼 잘 지켜봐달라고 부탁한다. 마지막으론 신랑 신부에게 사인도 받는다. 얼마나 재치있고 기막힌 주례사인가. 이제 이 정도면 주례사 걱정도 한숨 덜었으니 쌍춘년과 ‘황금돼지’해를 놓치지 않고 백년가약을 맺는 일만 남았다.
칼럼
최혁
2006.11.27 00:00
-
[남도시론]‘지역행정 연찬축전’을 기대하며 한강희 교수(남도대학 관광레저과) ‘결실의 계절’이란 말은 ‘가장 진부한 표현이면서도 가장 참신한 내용을 담고 있다. 유난히 뜨거웠던 성하의 뙤약볕이 없었던들, ‘단맛’의 보람은 난망했겠고, 이즈음 겨울 초입은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울 게다. 정녕 가을은 초봄부터 쉬지 않고 여름으로 휘몰아치며 내달려온 집념과 열정들이 영그는, 모든 부문이 보람으로 마무리되는 축전(잔치, 축제)의 계절임이 분명하다. 우리 지역 행정 부문의 ‘연찬 축전’인 공무원지방행정연수대회가 지난 17일 매곡동 전남도지방공무원교육원에서 하루 종일 성황리에 진행됐다. 22개 시·군이 격년제로 나뉘어 진행하는 ‘연수대회’는 ‘지역경제 활성화, 지방행정 발전 방안 모색, 공무원 연구 분위기 조성’이라는 슬로건하에 벌써 15회를 맞이했다. 그간 350건을 상회하는 연찬 성과를 거뒀고, 이 중 절반 정도는 지역특화정책에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출품된 11개의 연찬 성과는 형식적 필요충분조건을 세련되게 갖춘 논문과 청중들에 설득력 있게 다가서기 위해 감각적 비주얼을 도입한 프리젠테이션으로 선을 보였다. 어느 한 구석 척이 지지 않았다. 노력과 열정은 물론 시간과 비용을 투입한 흔적이 역력했다. 게다가 지자체 시대 ‘공무원의 꽃’이라 불리는 부단체장급(부군수)이 직접 프리젠터로 나섰다. 웬만한 대학 논문 발표나, 학회 심포지엄과 다를 바 없었다. 최근 학문적 패러다임이 실사구시와 합리성의 추구에 있다면, 이날 대회는 이러한 주의주장에 비교적 부응하는 편이었다. 이날 발표된 연찬 과제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주민생활과 직결된 생활쓰레기 감량 방안, 산업단지 배후 일자리 창출 등이 제시됐다. 둘째는 지역 매력물 특성화로 홍주 명품화, 섬 환경디자인 구상을, 셋째는 국정 사업과 연계한 기업도시, 우주항공 중심도시 전략화 과제였다. 거시 지표인 신경영기법, 국제교류 활성화 방안 등도 거론됐다. 모두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중 해당 지자체 수준에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정책 비전으로 직결될 만한 3건에 대해 최우수상과 우수상이 주어졌다. 이를테면 정책적 비전 수립, 재원마련 방법, 연한 설정, 절차수행 로드맵, 평가 장치 등 ‘매니페스토’적 기법이 심사의 잣대가 된 셈이다. 우수상을 차지한 나주시의 경우 청보리 최다 재배지의 특성을 살려 기능성 우유와 고급육을 생산해 소비자의 구미를 당길 수 있다고 판단되었고, 장흥군은 지역 재래시장의 고질적 폐단을 토요시장 활성화로 극복하는 시장 활성화 모델링을 마련한 점을 후하게 평가했다. 최우수상을 받은 목포시의 경우 모든 지방 대도시가 안고 있는 어두운 밤거리를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빛의 도시’로 만들어 체류형 관광지로의 시너지를 도모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시안대로만 된다면 한국 입국시 주간에 6천m상공에서 여수 산단(産團)을 보아야 국내에 왔다는 느낌을, 야간에도 ‘목포의 빛’으로 확인할 수 있겠다. 짐작건대 J프로젝트 등 굵직한 관광레저 및 기업물류단지의 이정표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대한항공 승무원이 뽑은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도시인 서울과 홍콩에 목포가 추가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연찬 축전’은 기대가 크기에 아쉬움도 남았다. 우선 민-산-학-연(民産學硏)의 염원이 관(官)의 입안과 정책 실행으로 구체화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연찬회가 아이디어 잔치로 끝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는 점이다. 이 연찬 성과물은 지역 미래를 담보할 청사진으로써 효율성과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연장선상에 놓여질 필요가 있다. 때문에 가깝게는 연수 대회 및 연찬 성과를 언론홍보 릴리즈(release)로 활용하고, 좀 더 논의를 보완해 연수자뿐만 아니라 관련 지자체 및 해당 부서 공무원, 일반인·학계 전문가·산업체 등이 참여·공유하는 ‘전남행정 연찬축전’으로 승화한다면 금상첨화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6.11.24 00:00
-
[범대순의 세상보기] 낙락장송이여 영원히… 중국연변 가는 길에 어찌 일송정 푸른 솔을 가지 않으랴. 일송정은 일제치하 이주 조선인의 망향의 장소였고, 독립 운동 밀회 아지트였고 조선인 기개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내가 찾아간 일송정에 마음속에 그렸던 낙락장송은 없고 작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었다. 원래의 그 소나무를 베어버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잘 모른다. 혹은 중국인이라 말하기도 하고 혹은 일본인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많이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까닭이 있다. 그러나 오늘 남의 탓은 의미가 없다. 다만 거기 대를 이어 서있는 그 서너 자 되는 작은 소나무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 그러나 그 작은 소나무가 언제 커서 낙락장송이 될 거나…. 내가 용정 중학교를 방문한 목적은 거기 윤동주 시비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생각지 않게 운동장 동편으로 새로 건립한 기념비가 눈에 띄었다. 6·15 공동선언을 기념하는 비석이다. 소박하였지만 연변 조선족의 한과 소망을 말하고 있다. 거기에서 나는 일송정의 작은 소나무를 생각했다. 기념비가 언제 커서 낙락장송같이 될거나. 기념비나 소나무가 커서 낙락장송이 된다 하더라도 연변에 사는 조선족이 모두 한국으로 돌아오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사육신 박팽년의 시조에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가 있었던가. 비분강개의 절망적 절규이었으리라. 소나무보다 더 잘 자연을 상징할 나무가 있으랴. 낙락장송이 특히 그렇다. 낙락장송은 그 안정감과 완성미로 해 동양문화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래살고 곱게 늙어 기개가 높은 상징으로 우리는 소나무를 인식한다. 소나무를 특히 한국인은 그들의 제일 덕목인 수(壽)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나무가 깨끗하고 향이 좋고 잎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신비하다. 그 솔잎을 가지고 송편을 만들어 먹으면서 우리는 한없이 행복하다. 녹음이 짙어 그 아래 있으면 또 행복하다. 어렸을 적 큰 소나무는 가까이 있었다. 마을 앞에 있었고 뒷동산에 있었다. 높은 산에 가지 않아도 소나무 숲은 언제나 거기 있었다. 아무리 맑은 바람이 불어도 지금 무등산에는 그 신비한 소나무 바람 소리가 없다. 그윽한 소나무 향이 없어진지도 오래다. 대신 산길은 여기 저기 쓸어져 누운 소나무를 밝고 넘어야 한다. 아직 살아 있어도 우거져야 할 울창한 가지나 잎은 마치 전란을 만나 늙어가는 것을 한탄한 두보의 시구처럼 ‘비녀를 이기지 못한 성긴 머리’일 뿐이다.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소나무가 죽는데 어찌 주변에 선비의 기개가 살아있으랴 생각한가. 소나무가 죽는 것은 오늘의 집념인 실사구시와 관계가 깊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기상은 점차 아열대로 바뀌고 있다. 아열대는 위도 25~35도 지역인데 이 지역은 타이완의 위치이다. 금세기 말이면 한국의 기상은 타이완의 그것과 같아지고 기온은 높아지고 높은 기온의 여름은 길어지고 뚜렷한 춘하추동은 없어진다. 강우량은 많아지고 여름 8개월은 우기이고 끊임없이 태풍이 몰아온다. 근해 어종은 아열대 어종이 주종이 되고 명태나 대구 등은 근해에서 사라진다. 나무도 침엽수는 점차 사라지고 야자수 같은 활엽수가 대신한다. 살아있는 공룡이라는 나의 뜰 은행나무도 침엽수가 아닌가. 현대 문명은 한국의 소나무를 죽이고 있다. 기상이 아열대로 변하고 있는 실정에서 침엽수인 소나무가 살아남기 어렵게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젠 그 아름드리 소나무는 전설로 남을 뿐이다. 한국인의 제일 덕목도 소나무에서 찾기 어렵게 되고 그 ‘독야청청’의 기개와 품격도 이제 사라질 날이 멀지 않다. 동양문화의 상징으로서의 소나무의 자연은 이제 한국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옛날 김홍도가 그렸던 그 소나무를 이미 오늘 젊은 화가들은 그리지 않는다. 백두산 미인송의 운명도 멀지 않다. 일송정 푸른 그 작은 소나무여 그대는 낙락장송으로 자랄 수 있으랴. ‘아 낙락장송이여 영원히.’ 나의 비탄은 절망적 절규이란 말인가.
칼럼
남도일보
2006.11.23 00:00
-
[강원구 칼럼] 광주공항, 호남권 국제공항이 되다 광주공항은 1995년부터 국제선이 취항, 당시 김포, 김해, 제주공항에 이어 우리나라 4번째 국제공항이 된 셈이었다. 태국의 방콕과 일본의 오사카로 국제선이 취항했으나 1997년 말 IMF로 인해 중단됐다. 다시 2001년부터 상해노선을 취항시킨 후, 계속해서 정기노선과 전세기를 취항시켜 이제 광주공항은 호남권의 국제공항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광주공항은 지방공항 중에서 김해, 제주공항에 이어 흑자를 내고 있는 공항이며, 국제선 승객이 계속 불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광주공항에는 중국 상해(上海)에 정기노선이 매주 왕복 18편 취항하고 있다. 금년 연말이며 일본 후쿠오카, 필리핀 마닐라, 중국 광저우와 해남도, 홍콩, 태국의 방콕노선이 등 6개 노선이 취항하면 주 왕복 30여 편으로 증편된다. 금년 4월부터 북경(北京)과 심양(瀋陽)에 전세기를 6개월 취항시켜 좋은 호평을 받아 2007년 4월부터 정기노선으로 바뀌게 된다. 그 동안 광주시관광협회의 노력으로 내년 광주공항에서 국제선 취항을 희망한 노선은 상해, 북경, 심양, 연길, 광저우, 청도, 연대, 후쿠오카, 방콕, 마닐라, 홍콩 등 10여 개 노선이 증설될 것으로 보여 명실상부한 국제공항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광주공항은 지리적으로 호남권의 중심지에 위치하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대구공항보다 국제선이 많을 것으로 본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국제선 입·출국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승객들이 불편을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에서는 무안공항으로 국제선을 옮긴다고 하지만, 그것은 수포로 돌아가게 되고 말 것이다. 만약 옮길 경우 국제선은 단 한편도 취항하지 못하게 될 것이며, 그 이유는 6개월 이상 전세기를 취항시킬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광주공항 때문에 전북에서도 조용하지만, 무안공항으로 옮길 경우 전북은 김제공항 건설에 박차를 가해 독자적으로 국제공항을 추진하게 될 것이다. 공항이란 아무리 입지조건이 좋다 하더라도 승객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목포공항의 경우 하루 국내선 이용객이 편도 30여명에 불과하다. 광주공항 국제선 이용률은 전국의 0.4%이지만, 입·출국만 자유로우면 대구공항(1%)보다 높게 될 것이다. 광주공항의 역세권은 광주, 전남, 전북, 충남 일부와 경남 일부까지 국제선을 흡수할 수 있는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무안공항의 경우는 광주공항의 이용객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국제선 이용객은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국제선 이용객은 몰리는 곳으로 몰린다. 전체 이용객의 89%가 인천공항이며, 김해공항이 7%이다. 광주공항은 호남권에서 접근성이 좋지만, 다른 공항에 비해 좁을 뿐만 아니라, 무안공항 때문에 건교부에서 재투자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시민의 편의를 위해 박광태 광주시장이 확장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기로 해 시민들의 대환영을 받고 있다. 광주공항에서 국제선을 자유롭게 취항할 수 있게 만들면 국제화에 고립돼 있는 호남지역에 관광산업과 지역개발을 획기적으로 앞당길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칼럼
남도일보
2006.11.22 00:00
-
[화요세평]아이 만들고 싶은 나라 김영관(조선대 교수·희곡작가) 인구가 격감하고 있다고들 한다. 이러다가 이 땅에 피부와 언어가 다른 이국인들이 더 많이 살게 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인구 감소 추세가 내 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말 할지 모른다. 자신의 삶도 벅찬 세상에 자식들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저 출산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인구 감소 추세는 위에서 말한 것 외에다가 몇 가지 이유를 더 추가해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적당한 경쟁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도가 지나친 경쟁으로 나라가 온통 살벌하다. 경쟁엔 승자가 있는 반면 패자도 있기 마련이다. 학교에서부터 사회에 나와서 까지 살아남기 위해 ‘피 터지는 경쟁’을 하다가 도태되거나 좌절감으로 고통을 받고 심지어는 삶의 의욕까지를 상실한다. 우리 아이들이 공교육인 학교 교육이 끝나면 파김치가 되도록 비싼 과외비 물어 가며 학원을 전전한다. 수능이후 우리 아이들의 고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또 논술 족집게 선생님들을 찾아 이 학원 저 학원 문을 두드린다. 아이가 대학입시에 실패하면 그 아이는 인생의 낙오자가 되고 부모는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 정도로 과연 심각한 일인가? 대학 입시 전쟁, 다음엔 입사 전쟁, 입사 후 잠시 지나면 사오정으로 직장에서 밀려 나지 않으려는 전쟁, 그야말로 피투성이 경쟁만 있는 나라가 내 나라 아닌가? 그뿐인가. 한 정권하에서도 십여 차례 정책이 바뀔 정도로 우왕좌왕하는 주택 정책인 나라에서 우리가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우리 아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에서 태어나 살아가야 한다.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자기 하나 살아 남기도 벅찬 세상을 후손에게 까지 대를 이어 삶의 중압감으로 고통받게 하고 싶겠는가? 바로 이게 저 출산 추세의 원인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세금을 내고 살면 당연히 자기 한 몸 뉘일 집을 가질 자격과 권리가 있을 법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 작은 공간 마련에 몇십억씩 하는 나라가 내 나라말고 또 어디 있는가? 최근 청와대 어떤 사람이 “지금 집 장만하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에 모두 박수를 쳐야 하는데 이 발표 후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발표 며칠 후에 집값이 폭등했다고 한다. 그 동안 정부 당국자들의 신뢰 부족한 말에 국민들이 얼마나 여러 차례 속아왔으면 이렇겠는가? 자고 일어나면 천정부지로 오르는 부동산 가격이 치솟는 나라에서 어찌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수 있겠는가? 부동산을 가지고 부를 축적하려는 것은 가장 비겁한 처사인데도 역대 정부들이 이를 방관, 방치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젊은이들이 직장에 살아남기 위한 경쟁과 더불어 수억씩하는 보금자리 장만에 평생을 바치게 하는 것이 과연 나라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임기 말년이 가까워 오는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값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했으니 지켜보겠다. 국민들 역시 이에 합심해 내 나라 후손들이 부담 없이 태어나 행복하게 살아갈 나라를 만드는데 노력해야 한다. 그런 믿음에 확신이 갈 때만이 우리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아이를 더 낳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칼럼
남도일보
2006.11.21 00:00
-
[무등을 바라보며]주민 손에 달린 지방자치의 품격 요즘 이 지역 자치단체들 상당수가 전화 폭력과 억지 민원에 무척이나 시달리는 중이라고 한다. 웬만하면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의 돌발성 행태 정도로 치부해버릴텐데 워낙 도가 넘다보니 관계자들의 하소연이 끊이질 않는다. 상황을 살펴보니 거의 사회적 품격의 사각지대가 돼버렸다는 느낌마저 든다. 지난 15일 오전 광주 북구청장 비서실에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수화기를 들자 다짜고짜 “야! 청장 바꿔”다. 직원의 얼굴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이미 한두번 겪은 일이 아니다. 이런 전화를 제대로 바꿔줄 비서실 직원은 거의 없다. “일정 탓에 청장이 자리를 비웠다”고 설명해도 민원인은 막무가내다. 전화기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는 더욱 톤이 높아졌다. 결국 직원이 10여 분간 묵묵히 온갖 폭언을 감내한 뒤에야 어렵사리 전화가 끊겼다. 서구청 비서실 직원 이모씨도 요즘 전화벨만 울리만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고 한다. 얼마 전 술에 취해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오던 민원인이 아닐까 걱정이 앞선 때문이다. 이 민원인은 아무 이유없이 전화를 걸어 “xx년, 청장 바꿔”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씨가 전화를 먼저 끊기라도 하면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 또 다시 욕설과 함께 폭언을 쏟아낸다. 민선 4기 출범이 넉달이나 지났지만 억지 민원도 끊이지 않는다. 떼쓰기 민원이 늘면서 급기야 ‘블랙리스트’마저 등장했다. 여기에 기피인물로 낙인찍힌 민원인들도 적지 않다. 전화 인신공격이 잇따르자 최근 북구는 상대방 전화번호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쯤돼면 지방자치를 가꾸고 발전시켜야할 주역들이 협력 공생관계 대신 상호 감시하는 긴장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마지 못해 설치하는 함정엔 목표물만 걸려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선의의 피해자는 항시 생긴다. 주민과 공무원, 그리고 정치인들이 일부 품격없는 구성원들의 분탕질에 자치의 본질이나 방향을 상실해버릴 수도 있다. 매사가 그렇듯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나름대로의 품격이 유지돼야만 하는 법이다. 지방자치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미 15년이 지나 성숙기에 접어든 지방자치가 품격을 잃으면 언제 역풍을 맞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가뜩이나 기초자치 무용론이니 지방의회 폐지론이 틈만 나면 고개를 드는 세상이다. 지방자치의 대주주인 주민들이 보호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품격의 상실을 온전히 주민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지난해 모 일간지가 국민이 매긴 우리 사회의 평균 품격 지수를 알아보니 100점 만점에 겨우 36점 정도였다. 특히 사회 지도층의 품격 불량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다. 정치 지도층이 쓰는 언어의 품격 점수는 28점으로 조사 항목 중 가장 밑바닥이었다. 응답자의 27%는 아예 0점을 매겼다. 이들은 우리 정치인들을 ‘품격 제로’로 본 것이다. 우리 사회를 혼탁하게 하고 있는 ‘막말 정치’의 심각한 후유증이다. 어디 그 뿐인가. 사이버 공간의 네티즌 품격은 32점에 불과했다. ‘익명’의 커튼뒤에 숨은 인터넷 상에서 언어 폭력, 저질 언어파괴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는 진단이다. 이처럼 정치권이나 온라인상에서 ‘상호존중의 언어’가 실종되고 ‘상호비방의 언어’가 난무하는 판에 일반 국민이 뭘 배우고 지키겠는가. 정치인의 품격은 곧 정치의 품격이다. 교육의 질이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듯이 정치의 질도 정치인의 자질을 능가할 수 없다. 한국의 정치가 곧잘 3류정치로 치부되는 건 바로 ‘품격제로’정치판이 막말을 보통으로 하기 때문이다. 욕설이 인플레돼다보니 이젠 아예 면역이 생길 정도다. 지방자치도 그에 못지 않다. 중앙정치에서 본받을 게 따로 있지 이런 걸 따라 하고 있다. 주민들이 국민들이 정신차리지 않으면 중앙이건 지방이건 정치의 품격은 평생 구경조차 못할 판국이다. 이 지역부터라도 전화 폭력이나 억지 민원을 근절해 나가는 게 민주성지답지 않을까.
칼럼
최혁
2006.11.20 00:00
-
[남도시론] 고3 수험생이여! 24시간만 쉬자 형광석 교수(목포과학대학 사회복지학과) 11월은 역사적으로 매우 뜻 깊은 달이다. 1929년 11월 3일은 일제의 강점과 폭압에 맞서 학생이 일어난 날이다. 이제 11월 3일은 그 명칭도 올해부터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바뀌었다. 1970년 11월 13일은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이 온몸을 던져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친 날이다. 11월은 오직 바른 길을 생명으로 알고 실천하는 피 끓는 학생과 청년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과 노동운동의 역사에 획을 그은 달이다. 이렇게 역사적인 달에 대학입학으로 가는 첫 시험이 있다. 대학입시제도는 변천을 거듭했다. 1969년부터 1981년까지는 대학입학예비고사가, 1982년부터 1993년까지는 대학입학학력고사가 시행되었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되고 있다. 어느 시험이든지 그 취지는 대학 입시 위주로 이루어지는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도입하는 것이란다. 그런데도 최근으로 올수록 고교의 공교육이 정상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사설학원이 엄청나게 늘어나 사교육이 하나의 시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2006년 11월 16일은 수능의 날이었다. 유치원 3년, 초등 6년, 중학 3년, 고교 3년 등 총 15년간의 학교교육을 통한 학습의 결과를 전면 평가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18년을 중간 결산하는 날이었다. 수능을 본 학생들이여! 글을 깨친 이후부터 공부에 참 많이도 시달렸다. 그래도 깨달음의 기쁨이 있었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학원에서 독서실로, 눈코뜰 새가 없었다. 고교에 입학해서는 신 새벽부터 일어나 다음날 새벽 한 두시까지 눈을 총총히 뜨고 부라렸다. 어제 아침 일찍 대학수학능력시험 현장을 둘러보았다. 가방을 등에 메고 점심도시락을 손에 들고 나타나는 수험생과 학부모. 고사장 입구에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수험생인 형과 언니들에게 따끈한 차를 타주고 이름을 소리 높이 불러 응원하는 후배들. 제자를 격려하는 여러 선생님. 가히 독립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을 전송하는 듯한 비장한 모습이다. 수험생은 지난 15년간, 짧게는 집중적으로 3년간 잘 훈련된 수험전사이다. 수험전사여! 이제 그대는 인생 전쟁터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한 전투를 치렀다. 오늘의 전투결과에 너무 속상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전투에서는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다. 비록 오늘의 전투에서는 지더라도 전쟁에서 이기면 된다. 인생 전쟁터는 수많은 전투로 구성되어 있다. 대학입학전투, 국방의무이행전투, 취업전투, 배우자 찾기 전투, 직장생활전투, 재테크 전투, 2세 잘 키우기 전투, 사회적 지위 쟁취 전투, 초고령사회에 대비한 노후준비전투 등등…. 전쟁에서 이기려면 24시간 원칙을 지켜야 한다. 미국의 스포츠계에서 한때 잘 나갔던 어느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24시간만 그 경기에 대해서 생각했다고 한다. 지고 나서 시무룩하게 있는 것도 24시간이요, 이기고 나서 우쭐해 있는 것도 24시간이었다. 24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점에서 출발해 선수들을 교육하고 훈련시켰다. 그래서 그는 성공한 감독으로 평가받았다. 한편 조국을 떠나 해외에 정착해 성공한 중국 화교는 세 가지를 명심했다고 한다. 쉬지 말라. 게으르지 말라. 아프지 말라. 수능이 이제 끝났으니 푹 며칠 쉬고 싶을 것이다. 마땅하다. 어느 누구도 수긍할 수 있다. 그래도 오래 쉬면 리듬이 깨진다. 24시간만 쉬자. 쉬지 말고, 게으르지 말고, 아프지 말자. 2년 전에 어느 대학원생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요즘 대학 새내기는 놀지도 않아요. 고3생의 리듬 그대로 공부를 미친 듯이 해요. 그래선지 어린나이에 고시에 합격한 아이들이 많은가 봐요. 이번 입시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24시간만 기뻐하고 시무룩해지자. 고3생과 같은 생활의 리듬을 그대로 대학생활 때에, 재수할 때에, 사회생활 때에 이어가자. 그리하여 여러분이 나고 자란 고장인 광주·전남에 밀착된 세계지향 인재로 발돋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신 새벽부터 오밤중까지 가르치고 뒷바라지 해주신 선생님과 부모형제에게 고맙다는 인사말씀을 하실 줄 믿는다. 성공하려면 ‘미인대칭’해야 한다. 미소, 인사, 대화, 칭찬….
칼럼
남도일보
2006.11.17 00:00
-
[범대순의 세상보기]자네 자식이 내 자식이 아닌가. 가난한 농부의 자식이 병이 들어 주변에서 단방약이란 단방약은 다 대고 백방으로 손을 썼지만 효험이 없었다. 그리하여 빈손으로 먼 의원을 찾아가게 되었는데 그 의원이 며칠 침을 놓고 약을 달여먹이고 하니 아이가 화색이 돌아오고 회복되기 시작했다. 농부는 가진 것이 없으니 한달 일을 해서 치료와 약값을 갚겠다고 제의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의원은 농부의 고개를 들게 하고 ‘자네 자식의 병은 내가 아니라 자네 정성이 고쳤네’ 하고 말하고 돌려보내려고 하였지만 농부는 일어나지 않았다. 의원은 말했다. ‘자네 자식이 내 자식이 아닌가. 잘 키우게. 커서 잘되면 찾아오게나’. 그 이야기 속에 아이가 커서 잘 되었는지 여부는 전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는 농부나 농부의 자식 이야기가 아니라 한 의원의 미담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더러 그런 어른들이 있었다. 아마 그런 미담은 세 가지 입장에서 전해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나는 베푸는 입장이고, 또 하나는 도움을 받는 입장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한국적 자식사랑의 입장이다. 베푸는 입장은 한국 상위 층의 일종의 노블리스오브제와 관계가 있고 도움을 받는 입장은 그 속에 도움을 받고 싶은 소망이 들어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질긴 것은 자식사랑의 입장일 것 같다. 자식사랑은 특히 한국에서 전통적인 사고방식이요 생활양식이며 생존 양식이었다. 세계적으로 자식 사랑은 동양의 특징이고 특히 한국의 그것은 유별나다. 이것은 아마 거의 ‘동물적인 생존 양식’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을 나는 생존을 위협하는 한국적 불안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한국에 난리가 많았다는 것을 말하고 자 하는 것이다. 외침이 많아 늘 생존을 위협받고 있을 때 자식이라도 살려야 하는 절박한 소망에서 자식에 대한 사랑은 더욱 강화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제가 한국을 침탈했을 때도 한국의 자식사랑의 정서는 손보지 못했다. 한국을 지배해 무엇보다도 먼저 손댄 것이 토지문제로 경계가 애매한 토지를 측량, 정확하게 배분해 각 문중에 소속되었던 토지를 개인 소유로 해 문중의 단합을 와해시키는 시책으로 한국인을 괴롭혔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 사람들의 자식에 대한 집착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그들은 오히려 한국인의 자식에 대한 집착을 이용해 식민정책을 강화시켰다. 자식만 봐주면 그들의 식민지 정책 수행에 저항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자네 자식이 내 자식이 아닌가’ 는 한국인의 자식 사랑에 대한 금과옥조다. 이 이상 더 적절하게 그 정서를 상징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이 시대에 적절한 말인가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말은 좋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입장에 있는 사람의 청을 들어주면서 덕을 베푸는 일종의 덕담이다. 청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처럼 고마운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이 시대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이 덕담이 사사로운 사람끼리의 거래로 공정한 경쟁을 해칠 위험이 있고 친분이 있는 사람끼리 이권을 나눠먹는 반사회적인 문화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청탁이란 경쟁하는 자리에 불공정한 특권을 행사하는 일이 아닌가. 미국사람이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한국인들의 자식에 대한 집착이라는 말이 아직 유효한가 모르겠다. 열린사회, 무한경쟁, 세계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페미니즘 등 한국의 자식사랑의 정서와 상반되는 새로운 문화가 물밀듯 쏟아져 들어오는 시대에 자식에 대한 한국인의 집착이 얼마나 지속될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가장 경쟁적이고 가장 세계적인 한국의 대기업들의 자식에 대한 집착이라든지 가장 사회적인 김일성의 자식에 대한 신뢰를 보면 이 시대에도 한국인의 자식사랑이 만만치 않은 문화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칼럼
남도일보
2006.11.16 00:00
-
[특별기고]광주비엔날레의 국제화 강원구 회장 광주비엔날레가 ‘열풍변주곡’이란 이름으로 65일간의 막을 내렸다. 그 기간동안 관람자가 70만 명에 이르렀으며, 외국인 관람객도 3만 명이나 되었다. 외국인들은 특별히 광주비엔날레를 보기 위해서보다는 한국에 살고 있거나, 잠깐 광주에 들렸다 보게 된 사람들이다. 중국인들이 광주를 방문하게 되어 비엔날레를 함께 관람한 적이 있다. 그들이 관람하면서 느낀 것은 ‘이것이 바로 비엔날레구나. 한번은 볼만하다’라고 말한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에게 ‘비엔날레만 보기 위해서 광주에 올 수 있는가’ 라고 물어보면, ‘지나가는 길에 한번 볼 수는 있어도, 특별히 이것을 보기 위해 오지는 않겠다’ 라는 대답이었다. 중국 상해(上海)에도 비엔날레가 개최되고 있다. 중국에서 비엔날레를 ‘쌍년전(雙年展)’이라 하지만, 그들은 비엔날레란 뜻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번 비엔날레는 6차에 걸쳐 개최하다보니 외형적으로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관람객 수가 예상보다 많았고, 총수익도 46억원을 기록했으니 잘 한 일이며, 비엔날레가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광주비엔날레는 아시아를 강조해 아시아인의 눈으로 세계 현대미술을 재조명, 아시아 미술의 위상을 확인한 계기도 되었다.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를 담은 작품 전시를 통해 아시아의 대표적 미술축제로서 입지를 굳힌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외국인 관광객이 너무나 적다. 외국인 유치를 위해서는 일본인이나 중국인을 유치해야 한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광주비엔날레를 소개하는 것을 보면 거의 ‘광주미술전’으로 소개한다. 비엔날레란 말이 한자(漢字)로 적당한 말이 없기 때문이지만, 미술전이라 하면 너무나 작은 생각이 든다. 광주비엔날레가 국제적인 문화상품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근 상해나 싱가포르, 부산 비엔날레를 비롯한 다른 지역 비엔날레와 차별화된 경쟁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상해나 싱가포르는 국제적인 도시이기 때문에 바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고, 부산비엔날레 역시 국제적인 도시이기 때문에 광주비엔날레를 앞서 간다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광주는 아직 국제도시로 성장하지 못했으며, 광주작가들이 비엔날레를 통해 데뷔하는 것도 없었다. 외형적으로 자리를 굳힌 것은 사실이지만, 광주비엔날레는 국제화에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광주의 국제선 취항은 상해 1곳에 불과하지만, 부산의 경우 30여 곳의 국제선이 취항하고 있다. 상해와 싱가포르의 경우 세계 200여 도시로 취항하고 있는 것을 보면 광주와는 게임이 안 된다. 외국인 관람객이 3만명에 이른 것은 우리의 시야에서 보면 만족할 지 모르지만, 국제적인 시야에서 보면 우리 식구들만의 잔치에 불과하다. 외국 관람객들이 비엔날레가 볼만하지만, 특별히 돈을 주고 오지 않겠다는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일부러 이곳에 오지 않더라도, 광주에 올 수 있는 하늘 길이 있다면 올 수 있다는 뜻이다. 국제경쟁력 있는 비엔날레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기간만이라도 일본과 중국에 전세기를 취항시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해야 광주가 국제적으로 알려지며, 경쟁력 있는 비엔날레가 될 것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11.15 00:00
-
무등산에 첫눈이 내렸다. 어느새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立冬)도 지나갔다. 필자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김남주 시인의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라는 시를 떠올리곤 한다. 가을걷이가 다 끝난 황량한 대지에 서리가 내리는 이 무렵, 까치밥으로 홍시 하나를 남겨둘 줄 알았던 우리 선조들의 따뜻하고 정감어린 마음과 자연과도 함께 나눌 줄 아는 삶의 지혜가 묻어나는 시다. 자연을 위한 마음이 이와 같을진대 이웃과 함께하는 우리 선인들의 나눔과 베품의 미학은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우리 조상들의 나눔형태 중 ‘마당쓸이’와 ‘배장’이라는 것이 있다. ‘마당쓸이’란 양식이 떨어진 사람이 먼동이 트기 전에 부잣집을 찾아서 그 집 마당을 쓸어 놓고 돌아오면 집주인이 머슴으로 하여금 누가 마당을 쓸었는지를 알아보도록 해 곡식을 나누어 주는 풍습을 말한다. 또 ‘배장’이란 시골에서 돈을 모아서 돼지를 잡으면 살코기는 돈을 낸 사람들이 나누어 갖지만 내장 등 나머지 것들은 가져가지 못하고 마을에 사는 환갑 지난 노인들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것이다. 비단 돼지뿐만 아니라 노루나 멧돼지 같은 산짐승의 경우에도 내장만은 노인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필자는 이런 선인들의 베품과 나눔의 미풍양속을 기업문화로 계승하고 한 발 더 나아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싶다. 최근 사회는 기업에게 질 좋은 제품과 일자리 제공이라는 본연의 임무 이외의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에 기업은 이미지 제고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사회공헌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그 구성원들의 자원봉사 활동 또한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에 근간이 되고 있다. 이처럼 사회봉사가 기업 사회공헌활동의 주요한 축이 되면서 각 기업들이 자원봉사의 활성화를 위해 각종 사내조직을 정비하고 사회봉사 휴가제도, 표창제도, 등록제 등의 촉진제도까지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발맞춰 광주도시철도공사도 기존의 나눔활동 등을 체계화해 본격적인 사회공헌활동에 나서고 있다. 설립 초창기부터 개인 또는 각 부서별로 실시해 오던 것을 지역사회에 맞는 맞춤형, 테마별 봉사활동으로 추진하기 위해 ‘메트로 나누미’라는 사회봉사단을 정식 출범시켰다. 사회봉사단체로 등록된 ‘메트로 나누미’는 1부서 1봉사단으로 구성, 분기 1회 이상 사회복지시설 등을 방문해 목욕, 청소, 세탁, 환경정리, 말벗 해드리기, 시설물 수리 등 공공부문의 지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인적·물적·기술적 지원을 하고 있다. 아울러 직원 연수시 사회시설 봉사활동을 의무화하는 등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봉사활동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지역사회에 나눔과 베품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공사 임직원들의 작은 노력들이 새로운 기업문화로 정착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기업의 사회봉사활동이 전사회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각 구성원들의 공감대 형성과 자긍심을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분위기가 가장 중요하다. 또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업별로 특성화된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봉사활동 프로그램의 개발과 사회공헌활동 관련 조직의 활용, 기업간 또는 자치단체와 네트워크를 구축해 공동으로 봉사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우리네 미풍양속 계승의 아름다운 가교가 될 것을 기대해 본다.
칼럼
남도일보
2006.11.1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