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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 국내 하나뿐인 茶 시험장 A씨는 서울 강남 사는 주부다. 젊을 때 광주에서 상경해 남들이 했던만큼 고생도 하고 기반도 잡았다. 낼모레 육순을 바라보는 그녀는 요즘 차(茶)를 만끽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 강남 오피스텔에 그녀만의 다실(茶室)도 마련했고 茶동호회에도 가입해 열심히 공부중이다. 그런 그녀가 최근 고향 나들이가 부쩍 잦아졌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고 함께 茶공부하는 강남 아줌마들과 어울려서다. 틈만 나면 보성 녹차밭도 가고 강진에도 들러 다기(茶器)를 구입한다. 그러면서 전남의 수려한 풍광과 맛깔스런 음식, 그리고 넉넉한 인심을 동무들에게 자랑할 수있어 기분이 좋다. 남도 출신인 게 뿌듯하기도 하다. ‘관광 전남’으로선 A씨같은 사람이 둘도 없는 민간 홍보사절이다. A씨에 따르면 서울에만도 수백 수천군데의 茶동호회가 있다고 한다. 회원이 스무명만 된다고 해도 졸잡아 수만 명의 동호인이 있는 셈이다. 현재 추산되는 차 인구는 약 700만명이다. 차회를 주관하는 사찰과 신행단체들도 약 400여 곳에 이를 정도로 활성화되고 있다. 이들에겐 그러나 아직 전남이 생소하다. 보성 녹차가 유명한 줄은 아는데 너무 멀다는 인식을 버리지 못한다. 차그릇도 여주나 이천으로 사러 다닌다. 이들을 광주·전남으로 끌어 들여야 한다. 그럴려면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다른 지역에선 볼 수없고 구할 수없는 茶문화와 기술을 보유하고 이를 널리 알려야 한다.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전국에서 하나뿐이라는 전남도 농업기술원의 보성 茶시험장이 아닌가 싶다. 마침 이곳이 국내 유일의 차(茶) 신품종 육성과 제다법으로 고부가가치 제품을 연구개발하는 등 전문 연구기관으로 자리잡는 중이라고 한다. 지난 1992년 발족된 이 시험장은 차의 신품종 육성 연구를 시작한 이래 국내외 수백종의 차 유전자원을 수집해왔다. 또 다양한 육종연구로 2001년부터 보향·참녹·명선 등 7개 품종을 육성해 품종 보호출원으로 지적재산권까지 확보했다. 차에 대한 가공기술 개발로 찻잎을 재료로 만든 녹차, 부분 발효차인 우롱차, 발효차인 홍차 제다법 체계를 확립해 제다업체에 기술을 이전함으로써 농가소득도 늘려주었다. 3년간의 연구 끝에 지난해 티백차 원료 생산과 제다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같은 모습과 성과들이 茶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다 흥밋거리다. 동호회마다 지도하는 茶선생들이 있는데 이들도 차의 기술적 연구에 관심이 깊다. 이런 분야까지 알아야 차문화 강좌도 깊이를 더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뉘라서 이 복잡하고 현묘한 식물의 세계를 잘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런 차원에선 차시험장이 제격이다. 더구나 국내 하나뿐이라고 하질 않는가. 그래서 이들 단체들과 농기원 간의 유기적인 연계체제가 필요하다. 서로 도움을 주는 상생관계가 따로 없다. 물론 연구기관이므로 차에 대한 유전자원 수집보전 및 기능성 신품종 육성 보급과 함께 일본·중국인 기호에 맞는 차 개발연구를 강화해 수출을 확대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700만에 이르는 茶인구를 팬으로 확보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다. 차는 이제 하나의 문화코드로 대중들에게 자리잡기 시작했다. 세계 인구의 50% (30억) 이상이 커피 대신 차 소비를 한다는 통계도 있다. 그만큼 차는 마실거리를 해결해주는 음료 중에서 인간의 몸과 마음을 가장 이롭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다반사(茶飯事, 차를 마시는 일을 밥 먹듯이 자주 한다는 뜻)가 현실이 된 셈이다. 일본은 차 하나로 세계적인 문화대국을 뽐낸다. 그러나 우리도 그보다 훨씬 화려하고 아름다운 차 문화를 지녔다는 게 정설이다. 또 ‘문화중심도시’는 이러한 문화의 각론들이 개성있게 발전해서 총체적인 에너지를 뿜어낼 때 비로소 존재가치를 찾을 수 있다. ‘관광 전남’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녹차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는 과정에서 전남이 의당 챙겨야할 제 몫을 찾을 수 있도록 전남도와 농기원이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닐까.
칼럼
최혁
2006.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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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 사회·경제적으로 본 나이의 의미(2) 형광석 교수 9월 1일자 ‘남도시론’에서 7세, 15세, 29세, 38세, 45세 등의 사회경제적 의미를 보았다. 이번엔 55세, 60세, 65세, 79세 등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살피기로 한다. 55세는 고령자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전체 인구 중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7%를 넘어서 고령화사회가 되었다. 2018년에는 노인의 비중이 14%를 초과하는 고령사회가 될 전망이다. 2026년에는 그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예상된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가는데 18년이 걸리고, 다시 초고령사회로 가는데에는 8년 밖에 안 걸린다. 우리나라처럼 고령화의 속도가 빠른 국가가 없다. 이 같은 노인의 눈부신 급증은 장래 양질의 노동력 부족뿐만 아니라 노인의 부양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고령자의 고용촉진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고령자고용촉진법에서는 55세 이상을 고령자로, 50세 이상 55세 미만은 준고령자로 분류하고 있다. 55세는 오륙(56)도의 코 밑 나이이다. 직장에서 56세까지 일하면 도둑이라는 뜻이란다. 노동부가 2004년 12월 기준으로 300인 이상 사업장의 고령자고용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업장이 단일정년제를 채택하고 있다. 단일 정년제 채택기업의 평균정년은 56.8세이다. 구조조정이 이제 더 이상 사건이 아니고 매일 밥 먹듯이 일어나는 오늘에는 정년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년이라는 하늘의 큰 은혜를 입고 있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공공부문이나 대형사업장의 근로자일 뿐이다. 45세 무렵에 대부분 주된 일자리를 떠나는데 56세까지 근무한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아마 오륙도란 표현은 근로자의 일자리에 대한 간절한 희망을 거꾸로 나타낸 것이라 생각된다. 60세이다. 환갑이다. 육십갑자로 보면 인생의 한 주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주기를 시작하는 나이이다. 고령화가 문제시되기 전에는 한때 인생은 60부터라 했다. 늦어도 50대 말에 정년을 하게 되니까 근로소득이 발생되지 않는 60대에는 연금이나 젊어서 저축한 돈이 생계의 기반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60세는 연금수급개시연령이다. 국민연금법과 공무원연금법에서는 각각 일정한 조건을 갖추면 60세 이후에 노령연금과 퇴직연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65세는 통계상 노인이다. 통계청의 장래인구특별추계에 따르면 2005년에 노인은 약 440만명이고 전체 인구에서 9.1%를 차지하고 있다. 2026년에 노인은 약 1천40만명으로 급증한다. 그 비중은 약 20.8%이다. 쉽게 이야기 하면 인구 100명 중 노인이 2005년 약 10명에서 20여년이 지나면 그 두 배를 넘는 21명으로 증가한다. 그 증가속도가 눈이 부셔서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79세이다. 2010년에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79.1세가 된다. 통계청에서는 2005년부터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하면서 55~79세 연령층을 고령층으로 보고 있다. 일흔 입곱의 기쁨, 즉 희수(喜壽)를 넘긴 79세가 되어도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어서 일자리를 찾아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많은 경험으로 숙성된 은발의 카랑카랑한 힘있는 노동자. 고목에도 꽂은 핀다가 아니라 이제는 고목은 꽃을 피워야 한다. 80대에는 여든여덟 미수(米壽)가 있고, 90대에는 99세가 있다. 평균수명이 81세가 되는 2020년 이후에는 칙칙폭폭구구(778899)가 가능할 것이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칠칠하게 경제활동을. 이제 80대와 90대를 통계상 어떻게 부를지 마른수건 짜듯이 머리를 싸매야 할 때이다. 오륙(56)도를 건너고 60을 넘어 65세에 노인되어 79세까지 은빛 노동자로, 은빛 기업가로 살아갈 것을 고령사회는 요구하고 있다. 더 많은 나이까지 일하되 임금, 이윤, 그리고 연금은 더 적게 향수하겠다는 각오, 지금이 바로 그런 각오를 노년 부양의 막중한 부담을 안고 있는 우리들의 2세와 미래세대에게 전하기 시작할 때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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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백중날 밤 한밤중에 전화벨이 울려 받았더니 혼자 사는 친구가 달이 밝아 생각나서 전화한다고 하였다. 하는 이야기가 아파트 베란다에 앉아 혼자 술잔을 들고 달을 바라보니 내가 생각나 전화한다는 것이다. 그 좋은 시간에 이백의 정야사처럼 달이 밝으면 고향을 생각하던지 아니면 멀리 간 아내를 생각하던지 할 일이지 왜 하필이면 나인가 물었더니 이만하면 자기도 시인이 아닌가 하고 말한다. 나는 시를 쓰지 않고 시인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시의 넓은 큰물을 생각했다. 덕택에 잠을 잊고 그 길로 뜰에 나섰더니 하늘에 달은 달인데 아파트 고층 건물 뾰쪽한 모서리에 걸려 있다. 삭막하다. 새벽에 다시 뜰에 나갔더니 이젠 남서쪽으로 달은 가까운 모텔 집 지붕위에 설치된 네온사인 뒤에 밀려 그 모습이 달이 아니었다. 다시 우울한 마음으로 방안에 들어서면서 도시의 달이 그렇지 하고 도시를 원망하다가 영감처럼 아니다 생각하고 그래서 오히려 마음속에 달은 아쉬움으로 희망으로 꿈으로 영감으로 문학으로 살아남을 것이 아닌가 하는 역설적인 생각에 이르렀다. 시대가 삭막할수록 달은 더 큰 빛이다. 얼마 전 보도에 문예진흥위원회가 주최한 세미나가 있었는데 그 주제는 문학예술이 역사를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한 김우창 교수는 문학예술은 직접 역사를 만들 수는 없지만 역사 또는 사람의 무의식 속에 들어가 꿈이 되고 희망이 되고 영감이 된다고 하였다고 전한다. 나는 어디선가 들은 것도 같은 보편성을 느꼈다. 현대 영국의 큰 시인의 하나인 W. H. 오든은 1939년 W. B. 예이츠가 작고하자 그 추모 시에서 시인은 사건을 발생시킬 수는 없지만 일어난 사건을 오래 기억할 수 있게 한다고 말하여 이 말은 지금도 영문학에 중요한 명제로 남아있다. 트로이전쟁은 호마가 아니면 어떻게 기억되었겠는가. 오든의 말은 문학예술의 기억하는 능력은 궁극적으로 역사를 만드는 일 못지않게 작용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다는 것을 의미한 것으로 해석된다. 오든은 한 때 좌경한 적이 있는 시인이었다. 이 고장에서 성공리에 발행되는 계간문학잡지 ‘문학들’ 이 5호를 내고 출판 기념회를 가졌다. 몇 마디 격려사를 요청받고 나는 시대나 역사 그리고 사람들의 무의식 속 깊이 파고들어가 그 꿈으로 그 희망으로 그 영감으로 있다가 때가 되면 생명처럼 살아나는 힘으로 있어라 라고 말하였다. 길게 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문학예술은 총칼이나 단방 약이나 황금처럼 금방 효용성이 강한 실용적인 수단이 아니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예술이 그런 기능을 갖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문학예술의 역사는 결코 그런 희망이 허무하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다만 문학예술은 시대나 역사 그리고 사람들에게 꿈을 주고 위안을 주고 희망을 주고 즐거움을 주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에 대한 믿음을 주었다. 위대한 큰물의 문학은 다 그러했다. 우물과 큰물을 공간적인 개념만으로 해석하면 그는 고정관념이다. 우물은 시간적인 개념으로도 해석되어야한다. 현실에만 집착하는 것은 큰물이 아니라 우물이다. 우물이 아니라 큰물에 사는 문학은 현실 뿐 아니라 과거를 수용하고 나아가 미래에 연결되어야 한다. 그 연결의 한 방법이 심층에 살면서 사람의 꿈이나 희망 영감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오늘 주변의 문학예술이 너무 근시안적이고 너무 현실에 집착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나아가 문학예술이 큰물이기위해서는 시를 쓰지 않고 그림을 그리지 않고 시인이요 화가였던 옛날 동양의 역설적 진실도 회복해야 한다. 나는 노장의 가르침에서 그것을 느낀다. 잡다한 오늘 때로 쓰거나 그리지 않아야 오히려 문학예술에 기여한다는 역설적 진실도 나는 제기하고 싶다. 그런 의미로 깊은 밤에 달을 보고 독작(獨酌)하는 나의 친구는 시인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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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파일]이대로 가면 기초단체 폐지해야 오치남/사회부장 ocn@ 최근 만난 전남지역 A기초단체장의 하소연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민선 4기 단체장으로 취임했으나 도무지 ‘영(令)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 골자였다. 단체장이 지시한 프로젝트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직원들. 고유권한인 인사에 대해서도 직·간접적으로 간섭하거나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고 고백했다. 아예 일부 지역 유지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행정에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공무원들도 있다는 것이 그의 귀띔이다. 모든 것이 선거 후유증 때문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민선 4기가 끝나는 ‘4년 뒤에 보자는 식’으로 행동하는 직원들을 보고 있으면 울화통이 터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직 단체장을 누르고 당선된 그는 그래도 갈등과 반목을 털자는 의미에서 첫 정기인사때 이른바 ‘탕평책’을 썼다고 한다. 전직 단체장을 지지했던 공무원까지 아우르면서 인사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행태가 공직자의 신분을 넘어서자 철거하게 ‘보복인사‘를 한 B단체장이 오히려 부러운 게 솔직한 심경이라고 털어놨다. 특히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경 조사를 받고 있는 도내 일부 기초단체의 경우 사법처리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내 편, 네편’으로 갈려 행정공백을 빚고 있다. 지방선거가 낳은 후유증은 ‘지역 갈등’을 넘어 ‘지역 공백’사태를 초래하고 있다. 지역의 가장 기본적인 뿌리인 지역사회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도저히 상상하기조차 싫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비극은 자치단체장 후보 피습건이다. 경찰은 지방선거와 무관하다고 밝히고 있으나 지역민들은 선거 여파로 보고 있다. 비극은 지난 5일 오전 5시50분께 구례군 마산면 P호텔 사우나 앞 계단에서였다. 전경태 전 구례군수가 이모(57)씨가 휘두른 흉기에 복부를 찔려 중상을 입었다. 전 전 군수와 친구사이로 알려진 이씨는 평소 전 전 군수로부터 무시당한 데 앙심을 품어오다 개인적 감정에서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민선 3기에서 싹튼 앙금이 4기 선거 과정에서 폭발했다는 것이 지역민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다행히 전 전 군수는 목숨을 잃지 않았으나 선거가 남긴 상처는 모든 지역민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게 됐다. 게다가 현직 군수와 전직 군수를 지지한 주민간 갈등도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장성군수 후보로 나섰다 낙선한 이모씨가 지난 7월24일 사망했다. 이씨는 민주당 중앙당을 방문, “5·31 지방선거에서 공천이 부당하게 이뤄졌다”며 강하게 항의한 뒤 지인들과 목욕을 갔다 변을 당했다. 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과 반목이 결국 불행한 사태를 초래하게 된 셈이다. 게다가 민선 4기 출범 100일도 안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형준 화순군수는 결국 사직했다. 이밖에 도내 곳곳에서 지방선거와 관련, 각종 고발 및 고소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과연 올바른 지방시대인가…. 지방자치제도가 남긴 생채기가 크면 클수록 민선 기초단체에 대한 회의감과 허탈함이 더욱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미 무용론에서 폐지론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이대로 가면 기초자치단체 유지 명분이 없어질 게 뻔하다. 재정자립도 등 각종 ‘삶의 지표와 지수’가 전국에서 꼴찌이거나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남도땅. ‘못 사는 지역’이란 불명예를 씻기 위해선 남을 헐뜯거나 선거 후폭풍에 휩싸일 시간적 여유가 결코 없다. 정당공천제 등 제도적인 문제점을 탓하기 전에 단체장, 공직자, 지역민 모두가 뼈를 깎는 자기 반성이 없으면 기초자치단체는 폐지돼야 할 것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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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이 가을에 어떤 책을 읽을까 함수남 회장 어느덧 가을이다. 가을은 이른 봄부터 애써 가꾼 곡식이 알알이 영글어가는 계절이요, 또 잘 여문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일뿐더러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다. 독서는 육신의 양식만큼이나 중요한 영혼의 양식이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의 영혼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해주는 한 권의 책이라도 가까이 하여 마음의 여유와 삶의 의미를 더 깊이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예로부터 책을 가까이 한 국민은 나라도 융성했고 국민들도 윤택한 삶을 누렸으며, 대체로 성공한 사람들은 책을 가까이 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이 짧은 기간에 크게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읽는 국민은 흥하고, 책을 읽지 않은 국민은 망한다.’ 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유행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결과 20년이 지난 다음 일본인들의 독서량은 1인당 연 평균 30권이 넘었고, 그 후 일본의 경제력은 세계의 강국으로 부상되었다. 그만큼 독서는 국력을 부흥시키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지금 온 세상이 디지털, 인터넷 세상으로 변하고 있지만 책의 존재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인터넷 세상의 무궁무진한 소프트웨어는 인간의 두뇌에서 창출되기 때문이다. 인터넷 세계의 핵심은 상상력이요 창의력이다. 그 상상력과 창의력은 인간의 두뇌가 아닌 그 어떤 다른 곳에서는 창출되는 것이 아니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오직 사람의 두뇌 속에서 이성과 감성의 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성과 감성의 작용은 다양한 독서를 통해 그 깊이와 넓이가 달라지므로 독서의 중요성은 불변의 가치를 지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과거 암기식 학습에서 오늘날 창의력 학습으로 전환된 것도 다 그런 연유인 것이다.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동력은 상상력이다. 그 상상력이 정서적· 감정적· 구체적 세계를 지향할 때 예술적 상상력이라 하고, 이성적· 논리적· 추상적 세계를 지향할 때 과학적 상상력이라 한다. 이처럼 상상력은 예술과 과학의 세계를 열어주는 열쇠이자 에너지이다. 예술적 상상력이든 과학적 상상력이든 그 토양은 역사, 철학, 문학, 미학 등 독서가 그 원천이라는 것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의 말을 빌리면 피아노를 전공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 온 한국 학생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이 입학 테스트에서 외국 학생들보다 월등한 연주기량을 발휘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실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건 악보만 줄줄 외워 건반을 치는 손끝의 기교만 익히는데 열중하기 때문이란다. 프랑스에서는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실기교육 뿐만 아니라 역사, 철학, 문학, 미학 같은 인접 학문을 통하여 이해력이나 분석력을 기르는데 역점을 둔다는 것이다. 다양한 독서가 자기가 연주하고자 하는 곡을 새롭게 해석하고 새롭게 분석하는 안목을 자연스럽게 길러주기 때문이다. 창의력과 상상력의 원천은 독서이다. 독서야말로 개인이나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임을 깨달아 책을 가까이 하고 책을 읽는 아름다운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사회의 지도층에 있는 분들이 솔선하여 독서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성공한 기업들, 성공한 CEO들이 치열한 글로벌경영 현장에서 시간을 쪼개 독서를 즐긴다는 기사는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어 참 흐뭇하다. 어느 CEO는 직원들에게 매년 수십 권의 책을 읽도록 주문하고 독후감까지 쓰도록 과제를 준다고 하니 더욱더 성공을 기원하는 박수를 보내야 할 것 같다. ‘체력은 국력이다.’ 라는 말도 있지만 독서를 통해 국력을 기르는 일에 우리 모두가 동참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름다운 독서의 계절에 그 동안 멀리했던 책을 이제라도 가까이 하여 잠자는 영혼을 일깨워 이 가을이 한결 풍성하고 알찬 계절이 되었으면 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6.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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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 ‘바다’에 빠질 수 없는 ‘ F1’ 인간이 도박에 탐닉하는 이유는 대충 이렇다. 짜릿한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데다 거액의 돈도 순식간에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종류가 됐든 도박을 일상(日常)에서 완전히 배제하기란 무척이나 어렵다. 거의 인간의 유전자에 박힌 본능이라고까지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무슨 횟집 간판과도 같은 ‘바다 이야기’가 전국을 뒤흔들고 있는 것도 절대 우연이 아니다. 당국이 뒤늦게 수사다 금지다 온갖 법썩을 떨고 있는 ‘바다 이야기’도 냉정히 따지면 찾아간 사람들이 잘못이다. 담배가 해로운 줄 알면서도 목숨걸고 피워대는 애연가들의 경우와 흡사하다. 그러나 책 사고 연극 보라고 만들어놓은 문화상품권으로 도박장의 불법환전을 가능하게 만든 정부는 과연 그 구성원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책임있는 존재였는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결국 지금 사회 분위기로는 웬지 구린내가 나는 정부도 잘못이고 도박 자체도 세상에서 영원히 추방돼야할 대상으로 낙인찍혀 가는 것같다. 그런데 꼭 이런 일엔 선의의 피해자가 생긴다. 다름 아닌 ‘ F1 국제자동차경주대회’ 얘기다. F1은 지금 전남도가 J프로젝트의 선도사업(파일럿 프로젝트)으로 추진중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F1은 세계 최대 규모의 자동차 경주대회다.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로 꼽힌다. 매년 전세계 경주장을 순회하며 17~19 경기를 치르고 경기마다 평균 20만명의 관람객이 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적 파급효과는 물론이고 J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도 반드시 추진돼야할 사업이다. 그러나 세상엔 공짜가 없다. F1 개최를 위해서는 우선 경주장 건설비용이 있어야 한다. 또 3천억원이 넘는 개최권료를 부담해야 한다. 이 돈은 F1 주관기관인 포뮬러원 매니지먼트에 지급된다. 당연히 전남으로선 재원조달 방안이 고민이다. 그래서 전남도는 개최권료 가운데 1756억원을 특별법 제정을 통한 경차(競車)사업 시행 수익금 및 국고지원 확보 등을 통해 마련할 계획이다. 그러다 보니 국회의원들이 특별법을 발의해주는 게 필수적이다. 전남도는 이를 위해 사전 정지작업을 충실히 해왔다. 그런데 문제의 ‘바다 이야기’가 터지면서 의원들이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이 경차사업이 또 다른 사행성 게임이라는 것이다. 요즘같은 분위기에 다시 ‘도박장 개장(?)’을 위한 법안을 발의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전남으로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나 일단은 숨고르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러나 사업이 크면 클수록 시기선택이 중요하다. 때를 놓치면 될 일도 안된다. J프로젝트와 F1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의원들이 몸을 사리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할 게 있다. 과연 국가가 합법적 도박을 모두 없애는 게 옳고 가능한 일이냐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원칙적으로 옳은 일이긴 하나 현실적으로는 합당하지 않다는 신중론이 많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도박은 경쟁과 승리, 쾌락 추구라는 인간의 본성과 맞닿아 있다. 원천봉쇄라는 것이 한 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효과처럼 또 다른 폐해를 낳는다는 것이다. 결국 국가가 도박의 특성을 인정하고 공개한 가운데 폐해를 최소화하고 예방을 강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한다. 마치 투명성을 바탕으로 도쿄 증권거래소에 상장을 추진하는 일본의 빠찡코처럼 도박을 음습한 곳에서 양지로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F1 특별법도 그리 주저할 바가 못된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도박을 오락으로 건전화시키는 계기를 만드는 것도 정치인의 의무라면 의무다. 어차피 F1은 전남의 미래와 직결된 사업이다. 누가 뭐래도 ‘바다 이야기’에 뒷통수맞을 운명이 돼선 안된다. 전남출신 국회의원들부터 그냥 두면 ‘바다’에 빠질지 모를 F1을 서둘러 구출해야만 할 일이다.
칼럼
최혁
2006.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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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 링컨 어록에 빗댄 노대통령의 언행 한강희 교수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가장 존경하는 세계의 정치 지도자는 두말 할 나위 없이 미국 16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다. 역량과 경륜을 가진 정치지도자나 대권을 꿈꾸는 주자들도 대체로 이와 비슷하다. 링컨은 1809년 켄터키의 벽지에서 태어나 철도노동자, 선원, 측량기사, 잡화점 직원을 거쳐 늦은 나이에 법률을 공부해 변호사가 되었다. 이후 상원의원 선거에서 벌인 공개토론으로 일약 정치 스타덤에 올라 대통령에까지 등극하게 되었다. 링컨이 정치지도자의 전범(典範)으로 역사적 가치를 부여받은 이유는 타고난 성실성과 정직성, 용기와 결단력, 유머와 재치로 미국 역사상 가장 험난한 남북전쟁 시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미국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링컨은 정객들이라면 마땅히 경청할 만한 숱한 말들을 남겼다. 그의 많은 정치어록은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오늘 우리 대통령의 언행을 새삼 곱씹을 수 있게 하는 대목이 많다. 그런데 링컨이 쏟아낸 이 잠언들의 일부를 노대통령이 정치철학의 지표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몇몇 구절은 알고서도 짐짓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아스럽다.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노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장인 독서정치를 빼닮고 있다는 전언에 접하면 크게 빗나간 것은 아닐 것이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은 예의 링컨이 설파한 “미래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은 한 번에 하루씩만 닥친다는 것이다.”, “내 경험이 말해 주는 바에 따르면, 악덕이 전혀 없으면 미덕도 없다는 점이다.”를 고집스레 보여주고 있다. 노대통령의 언행은 절대 권력자로서의 힘이 배가되다보니 논리의 극단인 아집과 독선으로 가속도가 붙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말은 최근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인사 잡음 건, 민선 4기 지방선거 참패 후에 보인 일련의 대응 건, 전작권 환수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에 적용해도 무리가 아닐 듯싶다. 노 대통령의 정치행보엔 언제나 이러한 논리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 마무리는 대체로 “나의 꿈은 이 나라를 다시 한 번 세계의 마지막이자 최선의 희망으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내가 아는 한,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나는 임기가 다할 때까지 내내 그렇게 할 작정이다.”로 되풀이 되고 있다. 이 역시 링컨이 즐겨 사용했던 발언으로 정책적 비전보다는 정치적 소신에 경사돼 있다. 문제는 노 대통령이 링컨의 정치 어록을 필요한 부분만 구미에 맞게 그럴듯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짐짓 외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가치 지향이나 참여정부의 의지가 의욕만큼 실현되려면 반드시 경청해야 할, 그것도 곧이곧대로 새겨야 할 링컨의 언설이 있다. “한 통의 쓸개즙보다 한 방울의 꿀이 더 많은 파리를 잡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려면 먼저 자신이 그의 성실한 친구라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바로 그것이 그의 마음을 잡을 수 있고, 그의 의지를 합리성으로 향하는 큰 길로 이끌 수 있다. 한 방울의 꿀로 타인에 접근해야 한다.” 여기서 친구는 국민이나 야당에 해당한다. 그는 정적(야당)과 친구가 된다면 정적을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는 윈윈(Win-Win)논리를 펴기도 한다.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말하는 ‘노무현적 가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협력을 얻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선행돼야 한다. 청와대는 벌써부터 재임 이후를 겨냥해 고향 김해로의 귀향 채비를 서두르는 모양이다. 남은 기간 부디 말의 신뢰를 높여 링컨이 설파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초발심이 진정성으로 구현되기를 기대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6.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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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당신은 너무 과거가 무거웠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무등산 중머리 재나 장불 재 갈대밭은 이미 갈대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무리 비닐하우스의 조화가 생활의 계절을 속여도 자연은 속지 않는다.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못 배운 백성들이 말수는 없어도 세상일 알 것은 다 알고 있듯 아무리 장사 속이 모지게 속여도 자연은 다 알고 자기에게 정직하게 가고 있다. 장사 속으로 모여 사는 도시에서는 아직 더운 여름이지만 그 거리를 조금만 벗어나면 ‘이제야 살 것 같다’는 안도의 느낌이 있다. 가을이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신량입교허점점등화친(新凉入郊墟漸漸燈火親)이라 하였던가. 서늘바람이 뜰에 들면 점점 등불과 가까워진다는 옛사람의 말은 많이 교훈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등화가 가지가지 희노애락 생활의 길잡이이기 보다는 주로 공부하는 불빛으로 해석된 것은 시인의 의도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이어 받은 문화의 비현실적인 관념성을 말한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야 등불이 가까워진다는 말도 그렇다. 무슨 공부가 계절을 타는가. 더운 여름을 피한 공부가지고 무슨 공부라 할 수 있는가. 무한경쟁의 시대라는 요즘의 긴장하고는 너무 먼 이야기다. 그러나 원래 동양문화의 특징인 노인성 문화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말은 일리가 없지 않다. ‘지난여름은 위대하였다’라고 말한 시인이 아니어도 사실 지난여름 그 더위 속에 즐거운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일반적으로 특히 금년 여름은 괴로운 계절이었다. 더위도 더위지만 무슨 태풍은 또 그렇게 사납고 홍수는 또 그렇게 넘치는지 그리고 그 재해는 앞으로 지구 온난화 등의 현상으로 더욱 우심해진다는 전망이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는 가운데 정직한 계절을 느끼는 것은 이 험악한 지구 현상 속에서도 아직 희망이 있다는 안도감이 없지 않다. 아직 춘하추동은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질서인 것이다. 춘하추동은 원래 자연의 원형적 현상을 말한다. 주역의 변화를 대표하는 원형이정 (元亨利貞)이 말하듯 춘하추동은 만물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소생을 상징하는 자연현상의 순서요 질서이다. 아무리 기상변화나 과학의 발전으로 그 순서와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또 그 무너짐 현상 때문에 춘하추동의 질서에 길들여진 생활습관 가지고는 생존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하드래도 춘하추동은 아직 우리의 등불이요 우리의 생존양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을바람을 믿어도 된다. 이 가을 무슨 책을 읽을까 생각하다가 당시(唐詩)를 집어 들었다. 당시 가운데 나는 율시보다는 절구가 좋다. 기승전결이 좋은 것이다. 기승전결은 춘하추동이 그 원형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생성하고 진행되다가 크게 변하고 마침내 결말에 이른 원리가 춘하추동과 갗은 것이다. 특히 당시 가운데 가을이나 자연을 읊은 시가 좋다.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 한편을 고르라고 한다면 누구나 이백(李白)의 정야사(靜夜思)를 고른다는 말이 있다. 床前明月光 疑視地上霜 巨頭望明月 低頭思故鄕- 침상 앞에 달이 밝으니 마치 서리가 내린 듯 하구나. 나그네 하나 고개를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고 고개를 숙여 고향을 생각한다. 우리의 김삿갓도 좋은 시인이었다. 나는 그의 시 가운데 특히 절창인 미완의 시구를 좋아한다. 금강산이란 제의 시 송송백백암암회 수수산산처처기 (松松柏柏岩岩廻 水水山山處處奇)- 소나무 측백나무가 바위를 둘러 가득하고 산이며 물 할 것 없이 기이하지 않은 것이 없구나. 또 다른 절창 월백설백천지백 산심야심객수심 (月白雪白天地白 山深夜深客愁深)- 달도 밝고 내린 눈도 하얀 천지가 고요한 깊은 밤 깊은 산 속에 다만 고향생각이 간절하다 . 이백의 정야사 못지않은 절창이다. 그러나 김삿갓의 절창은 기승전결 가운데 轉結이 없다. 김사갓의 절창은 2행만으로 완벽하다. 당시의 기승전결의 틀을 깨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이백의 낭만적 대 긍정의 위대성이 없다. 당신은 너무 과거가 무거운 속죄양이었다.
칼럼
남도일보
2006.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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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기 문화생활부장 아침 저녁으로 갈바람이 일기 시작하는군요. 모카 향기 그윽한 커피 잔에서 계절의 감각이 느껴지는 때 입니다. 가을이 오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하지요? 뭉게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저녁 나절, 인적 드믄 허름한 찻집에 들러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뜻모를 고독감에 젖어보는 건 어떨련지요. 비발디의 ‘사계’ 중 특히 작품 3번 ‘가을’은 소네트에 의한 정경 묘사가 일품이라지요. 이 곡을 듣고 있으면 풍성한 수확의 계절을 맞는 농부들의 환희와 함께 잔잔한 갈바람이 피부에 와 닿는 착각에 빠져들 것이란 한 친구의 말이 떠오릅니다. 가을의 속살이 영글어 갈수록 공허함과 정신적 공황은 더욱 커지겠죠. 서쪽으로 떨어지는 저녁 놀이 참으로 아름습니다. 아니, 아름답다 못해 차라리 슬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성 지수가 이쯤에 이르니, ‘고독의 시인’ 다형 김현승(1913~1975)을 들먹이지 않을 수 없군요.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중략)…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다형이 노래한 ‘가을의 기도’라는 시 입니다. 이 시를 가만가만 읊조려 보세요. 마치 혀 끝에 가을의 정취가 뭉쳐있는 듯 합니다. 다형의 초기 시는 자연의 예찬을 통한 민족적 낭만주의의 경향을 띠었지요. 8·15 광복 후에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추구하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시세계를 보여 주었습니다. 말기에는 사랑과 고독 등 인간의 본질 탐구에 천착했지요. 다형은 ‘광주가 낳은 시인’이기에 우리에게 큰 기쁨이고, 자랑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형의 ‘가을의 기도’와 시적 분위기가 비슷한 서양 시인의 작품이 있지요? 바로 라이나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의 ‘가을 날’이라는 시 입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중략)…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계절의 문턱에서 한 번 쯤 음미해 봐도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두 시는 모든 것이 생명을 마감하는 가을을 맞이하여 내적 충실을 갈망하는 시인의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기도조 형식의 작품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고독한 존재입니다. 그런 까닭에 절대자를 향한 인간의 염원은 항상 시의 동기가 되어 왔습니다. 자신의 완성을 신(神)에게 기도하는 형식을 빌어 이야기함으로써 효과는 더욱 극대화되고 있지요. 이 두 시는 내적으로 불안전하고 고독한 인간의 존재와 절대자를 향한 인간의 염원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해마다 가을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애송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신없이 살아온 지난 여름을 반추하고, 또 다른 날을 준비해야 할 때 입니다. 오늘은 집에 돌아가 ‘나만의 공간’을 가져보길 권합니다. 생뚱맞은 행동이라 다소 어색할 것입니다. 스스로가 고독을 느껴보자는 것이지요. 고독(사색 또는 묵상)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최고의 최면요법이라고 들었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가족을 위해, 사랑하는 이를 위해 가슴 저미는 시 한 편 써 보시지요. 굳이 아름다운 문구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비록 서툴지라도 자신의 진실한 울림이 상대방에게 전해진다면, 그것은 지상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입니다. 올 가을엔 모두가 시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움도 질투도 없는 모카 향기 그윽한 그런 공화국 말입니다. kimsg@
칼럼
남도일보
2006.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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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지하에서 핀 문화지하철 오행원 사장 광주가 좋다. 예향의 탯자리로 전통문화유산과 전라도의 넉넉한 심성을 지닌 옛 선비들의 예술 혼이 곳곳에 살아있기에 광주를 사랑한다. 어머니 품 같은 무등산이 있고 언제나 바른 것이 아니면 선택하지 않으며 옳은 것이 아니면 결코 용납하지 않는 광주의 기개와 용기 그리고 올곧은 정신을 사랑한다. 오늘도 지하철을 오르내리며 꿈을 꾼다. 광주의 땅속 지하에서 피어나는 ‘문화의 맹아(萌芽)’를 꿈꾼다. 광주사람들의 멋과 문화가 되어 피어나는 곳, 아무런 가식과 위선이 없는 참으로 진솔하고 순수한 새로운 문화가 지하에서 곧게 곧게 싹이 트길 희망한다. 지하철 건설과정에서 파헤쳐진 길을 걸으며 겪었던 불편을 잊고 모든 시민이 사랑하고 아끼는 멋진 문화지하철을 그려본다. 지하철이 차가운 메커니즘의 흉물스런 쇳덩어리가 아니라 시민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광주의 향기가 뭉실뭉실 피어나는 문화수도의 징검다리, 새로운 시민운동의 전초기지인 문화지하철을 건설하고 싶다. 파리 지하철은 우리에게 ‘메트로’라는 단어로 익숙하다. 1900년 7월에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와 때를 맞춰 13.3Km 길이의 1호선 메트로가 개통되었다. 당시 파리 시민들은 땅속을 다니는 기차에 대한 신기함에 지하철 타보기에 관심을 보였지만 더욱 신선한 체험은 지하철 입구와 승강장 그리고 역사주변의 건축양식과의 조화였다. 지하철 표지판의 굴절된 글씨체, 개구리 안구처럼 튀어나온 가로등, 햇빛에 빛나는 유리지붕 등 새로운 모델과 컬러, 회화적 디자인은 파리 시민들의 문화적 감성을 자극했다. 이제 파리 지하철은 에펠탑이나 개선문과 자웅을 겨루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예술창작의 모티브를 제공하는 새 예술의 뜻인 ‘아르누보(Art Nouveau)’의 연출무대가 되고 있다. 이런 결과는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시민들의 인식과 예술가들의 노력, 세월이 가해진 합작품이라는데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광주지하철도 예술의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고 미추(美醜)의 개념을 떠나 시민의 작품들이 즐비한 아름다운 문화지하철을 꿈꾸며 달려가고 있다. 가장 한국적이고 광주다운 전통의 문화와 세계인의 예술적 호흡을 함께하는 현대문화가 결합된 아시아 문화의 중심으로서 지역을 웅변하는 광주지하철이 되기를 소망한다. 광주·전남을 찾는 사람이면, 광주를 알고자 한다면 우리 지하철을 탈 수 밖에 없는 남도의 멋과 문화를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문화관광 명소를 만들어 내보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하철을 타러오는 사람 못지않게 지하철이 생산하는 다양한 문화를 즐기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많은 문화지하철로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광주지하철은 개통 2년여 동안 문화지하철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660회가 넘는 공연, 220회의 다양한 작품 전시 등, 유치원 어린이에서 수준 높은 전문예술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장르가 선보인 열린 문화공간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 또한 단순한 대중교통수단을 넘어선 시민이 찾고 즐길 수 있는 문화지하철로써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제 광주지하철이 ‘시민의 발’ 그 이상의 목표를 실현하는 문화지하철을 만들기 위한 시민 모두의 지혜가 모아져야 할 때이다. 광주의 저력을 믿는다. 시민, 지역예술인, 시민단체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한다면 파리의 메트로를 능가하는 지하철이 될 것이다. 광주지하철이 애물단지가 아니라 문화를 실어 나르는 보물단지, 우리의 꿈을 키우는 희망지하철이 될 것이다. 광주가 아름다운 예술도시임을 아시아문화의 허브도시임을 문화지하철로 연출해보자.
칼럼
남도일보
2006.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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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 그들이 ‘감동’을 말할 자격이 있나 ‘100일 민심 대장정’길에 오른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감동 정치’가 시간이 지날수록 인구(人口)에 회자(會炙)되고 있다. 손 전 지사가 다녀간 현지 주민들과 언론 기사를 본 일반 국민들이 당으로 격려 전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지역에서도 물경 닷새를 보냈다. 기존의 중앙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 지역 출신 정치인들도 길면 이틀 아니면 겨우 하루 정도 휭하니 왔다가는 게 능사였던 걸 감안하면 대단히 이채롭다. 물론 시간의 길고 짧음이 중요한 건 아니다. 그러나 손 전지사의 현장위주 행보가 보는 이들을 감동시킨 건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홈페이지에는 “처음엔 쇼인 줄 알았는데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등 지지자들의 댓글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누구를 통해서였든 이 나라의 정치 수요자들로선 생소하기만 한 ‘감동 정치’ 개념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조금 된다싶은 일엔 항시 ‘짝퉁’이 생기기 마련인가 보다. 열린우리당 전 사무총장인 광주 서갑의 염동연 의원이 느닷없이 ‘감동’을 추켜들고 나왔다. 염 의원은 지난달 30일 미국 워싱턴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여권의 차기 정권 재창출을 위한 정치권 개편논의와 관련해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정계 대개편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역량있는 후보들을 내세워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경선 과정을 거치면 여권에 승산이 있다”고 전망했다. 결국 논지의 앞뒤를 살펴보면 여권은 정계개편과 후보 경선과정을 통해 국민을 감동시켜야 하고 또 그렇게 해야만 답이 나온다는 의미로 들린다. 염 의원의 이같은 지적은 아마도 상당 부분 정확하지 않나 싶다. 5·31 지방선거와 각종 재·보선에서 국민들로부터 거의 퇴출당하다시피 한 여당으로선 당연한 분석이다. 그리고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를 오르내리고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못하고 있다는 국민이 75%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다시 말해 국민의 이성과 감성이 모두 여권을 거부하고 있음을 통계수치와 피부로 느껴오고 있기 때문에 이젠 ‘감동’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여당의 생각일 뿐이다. 감동(感動)이 무엇인가. 국어사전엔 명사로서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이라고 돼 있다. 도대체 뭘 가지고 국민들을 크게 느끼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겠다는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과연 그게 가능한 건지 모를 일이나 노대통령이 경제와 분리해낸 민생은 힘들기 그지없는데 정부의 무능과 무대책은 끝이 안보인다. 경제도 인도와 브라질에 뒤처질 정도로 무기력하기 그지없다. 틈만 나면 ‘편가르기’가 강요된 사회는 노대통령도 “취임 3년 반이 됐는데 세상이 시끄러웠다는 기억만 남는다”고 회고할 정도다. 국정이 흔들리고 서민들이 거덜날 지경을 만들어놓고 무엇으로 국민을 감동시키겠다는 것인지 정말 한번 묻고 싶다. 보다 엄밀히 따지면 과연 여권이 오늘날 국민을 감동시켜보겠노라고 나설 자격부터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염 의원의 회견 내용대로라면 감동의 소재가 정계개편과 후보경선으로 압축되는데 이것으로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겠다는 발상 자체부터가 애당초 잘못돼 있다. 가뜩이나 미운 털이 촘촘히 박힌 정치인들이 그 어떤 모양새로 이합집산을 한다해도 국민이 감동할 리는 만무하다. 또 어떤 환상적인 후보를 옹립해 무슨 드라마를 연출할지는 모르나 그게 과연 고달픈 국민들을 감동의 도가니속으로 몰아넣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반짝거리는 일회성 아이디어로는 더이상 민심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순간 이벤트로 할 수있는 건 ‘감성(感性)정치’이지 ‘감동 정치’가 결코 아니다. 또 감동정치란 남이 한다고 아무나 따라 할 수있는 것도 아니다. 여권이 지금 할 수있는 건 그저 겸손하게 민생속으로 잠행하는 일 뿐이다.
칼럼
최혁
2006.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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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 사회·경제적으로 본 나이의 의미(1) 형광석 교수 각 십대별로 사회경제적으로 의미있는 나이가 있다. 7세, 15세, 29세, 38세, 45세, 55세, 60세, 65세, 79세. 이번 글에서는 40대까지만 보기로 한다. 먼저 7세이다. 옛말에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이 있다. 남녀가 칠세가 되면 한곳에 앉히지 말라는 뜻이다. 성윤리가 엄격하였고 수명도 짧았던 옛날 옛적에 칠세가 된 어린 남녀가 한곳에 앉아있으면 큰 사고가 날 것을 염려하여 그렇게까지 경계하였다. 아마도 7세 무렵부터 생식활동이 시작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리라. 그 나이부터 난자의 씨, 정자의 씨가 생긴다고 한다. 꿈 많고 생기발랄한 십대에는 15세가 있다. 통계청이 매월 발표하는 고용동향에서 15세 이상을 경제활동인구로 분류하고 있다. 경제활동,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자리를 찾고 취업하여 생산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15세이다. 그래서 생산가능인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임여성이 1년에 낳은 평균 자녀수를 합계출산율이라 하는데, 그 가임여성은 15세부터 49세 이하의 여성이다. 15세는 경제활동과 아이를 낳는 생산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이다. 공부도 해야 하고, 군대도 가고, 시집장가도 가고, 직장도 잡아야 하는 20대. 공부, 군대, 결혼, 취직 등의 문제로 고민도 많지만 젊음의 힘으로 이겨내는 20대에는 29세가 있다.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15세부터 29세까지를 청년층으로 보고 있다. 세계적으로 청년층실업이 많아서 큰 걱정이다. 그래선지 20대를 이구(29)백이라 부른 사람도 있다. 씁쓸하게도 이십대 10명 중 구(9)명이 백수라는 뜻이다. 8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20, 30대 실직자의 모임인 전국 백수연대가 서울시로부터 정식 시민단체로 인정받아 백수탈출을 위한 공익사업에 나선다고 한다. 전국백수연대의 성공을 빈다. 취업하여 호주머니에 제법 돈도 생기고, 가정을 꾸리기도 하고, 아이를 낳기도 하는 30대. 인생의 전반부에서 처음으로 수확의 맛, 성취의 맛을 느끼는 30대. 그러나 기쁨도 잠시다. 삼팔(38)선이 가로막고 있다. 38세 무렵부터 주된 일자리를 한명 두명 떠나기 시작한다. 이는 통계적으로 어느 정도 뒷받침되는 이야기이다. 구조조정하면서 명예퇴직 대상을 38세까지 확대한다는 보도도 있다. 그래도 한국의 30대는 진취적이므로 삼팔선을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 기대한다. 어느 성현이 말씀이 떠오른다. 나이 사십은 불혹이라. 이구백에서 대탈출하고 삼팔선을 돌파하면서 제법 산전수전 경험하는 나이. 자연스레 불혹할 줄 알고 그래야 하는 나이. 그런데 그렇지 못하는 오늘의 사십대. 가장 흔들리기 쉬운 나이가 바로 사십대이다. 사오정(45세 정년)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45세 무렵에 대부분 주된 일자리를 떠나게 된다. 삼팔선처럼 사오정도 통계적으로 근거있는 말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는 전국 45세 이상 중고령자를 대상으로 금년부터 매년 1회씩 인구학적 특성, 건강, 가족, 경제활동, 소득과 자산 등을 추적조사하는 고령화연구패널조사(Korean Longitudinal Study of Ageing: KLoSA)를 한다. 45세는 사오정이고 중고령자로 막 들어가는 나이이다. 한국의 사십대. 불혹(不惑)은 못할지라도 불굴(不屈)하여 장래 일기당천(一騎當千)해야 할 그들, 사오정에 기 눌릴자 아무도 없다. 현장삼장(玄?三藏), 손오공(孫悟空), 저팔계(猪八戒), 사오정(沙悟淨) 등의 일행이 온갖 고난을 수없이 당하면서도 이를 극복하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서유기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사오정은 위기돌파력이 있는 존재이다. 위기돌파력은 내공을 요구한다. 그래서 사오정(沙悟淨)은 모래사 깨달을오 깨끗할 정으로 올바름을 깨닫는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7세부터 생식활동 시작하여 15세에 청년되고, 29세에 청년을 마감하면서 이구백을 탈출하는 기세로 삼팔선을 넘어 올바름을 깨닫는 사오정(沙悟淨)으로 내공을 쌓아 쉰을 준비하여 일기당천의 현장으로 가야 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6.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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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바벨탑 베이징 인민대학 정문에 마오쩌퉁의 실사구시 탑이 서 있다. 문화혁명 이전에 세운 것이리라. 실사구시는 문화혁명과 상반되는 입장이지만 당시에 그 탑이 살아남은 것은 그것이 마오의 친필을 색인 것이기 때문이리라. 최근 중국 CCTV 가 백년소평( 百年少平)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하였다. 등소평의 생애를 회고한 것이다. 거기에 그가 왜 마오에 대한 보복을 하지 않았는가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는 마오의 공과를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정신으로 분별한 것이다. 지금 등소평의 실사구시는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뿐 아니다. 세계적으로 이 시대 실사구시는 전반적인 사고방식이요 생존양식이 되고 있다. 원래 장사속인 이 말은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스포츠 등 전방위적으로 애용되고 있다. 심지어는 문화예술까지도 실사구시를 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혹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혹은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혹은 성장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혹은 열린 세상의 이름으로 혹은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혹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사람이라는 이름으로까지 실사구시는 전방위적인 표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장사속의 실사구시가 이기적 욕심의 다른 이름이 되기 쉽다는 그 위험성을 지적한 사람은 드물다. 가령 사찰이나 교회의 어떤 법문이나 강론이 이기적 실사구시의 독성을 지적해도 아무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낡은 헛소리인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무게가 있었다. 오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도덕적 가르침은 색 바랜 교과서 속의 낡은 교훈에 불과하다.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말은 변화하는 세상에 걸림돌이다. 실사구시의 방법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사구시가 병이고 독인 것은 그 욕심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바벨탑인 것이다. 그것은 지구가 하나뿐이라는 절박한 지구환경을 무시한다. 미국이나 중국 등 대국들의 패권주의적 욕심을 지켜보면 잘 알 수 있다. 일본도 그렇고 EU도 다를 바가 없다. 한국도 그렇다. 실사구시는 결코 역지사지하지 않는다. 자기 입장에서 상대를 판단한 것이다. 여기에 아프리카 등의 비극이 있다. 오늘 도덕은 다만 아프리카 등에만 존재하는 공론에 불과하다. 실사구시에 도덕은 없다. 설혹 있다면 그것은 실사구시의 편의주의에 불과하다. 광주노인대학에서 ‘기승전결’ 에 대한 제목의 강연을 요청 받았다. 아마 몇 해 전 중국 서안에서 열린 아시아시인대회에서 행한 기승전결에 대한 나의 기조연설이 뒤늦게 노인들에게 전해진 모양이다. 나의 기승전결은 당시 특히 일본에서 화제가 된 것은 사실이다. 주장이 반시대적이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세상을 알려면 오늘의 세상공부를 해야지 그러니까 열린 세상이나 변화니 신자유주의니 그리고 실사구시의 방법론에 대한 공부를 해야지 무슨 기승전결인가 생각하면서도 그러나 나로서는 평소에 집념이기도 하여 반갑게 승낙하였다. 기승전결은 당시(唐詩) 절구(絶句)의 다른 이름이다. 시의 구성이 기승전결(起承轉結)로 되어야 한다는 시작방법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승전결을 다만 시의 형식으로 보지 않고 그 형식의 심층에 깔려있는 기본적 사상으로 보았다. 기승전결은 바로 인생이고 우주의 원리라고 본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오이디프스는 여행하면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야 했다. 수수께끼는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 발 그리고 저녁에는 세 발의 짐승이 무어냐는 것이었다. 오이디프스는 사람이라고 답하고 살아났다. 사람을 이침과 낮 그리고 저녁이라는 시간의 순서로 풀이한 것이다. 인생은 시간의 순서 즉 기승전결인 것이다. 기승전결과 실사구시는 상충된 개념으로 나는 파악하고 있다. 실사구시는 원래 속임수이고 시행착오와 현실과 부분과 과정 속의 성취에 만족한다. 그러나 기승전결은 전체적이고 종합적이다. 시간과 공간 전부를 아우른 인생이고 우주이고 그를 단순화한 개념인 것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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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논단]호남고속철, ‘축복받은 땅’으로 가는 길 김동철 의원 마침내 호남고속철도 기본계획이 확정되었다. 지난 87년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처음 논의가 시작된 후 우여곡절 끝에 19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마무리된 것이다. 17대 국회 전반기에 건설교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호남고속철 조기착공 및 완공을 위해서 다각적인 노력을 펼쳤던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그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호남고속철도 건설 기본계획이 확정되기 까지 많은 난관을 헤쳐 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경부고속철도 건설 및 운영적자를 근거로 경제성과 수익성이 없다며 호남고속철도 건설 불가론을 주장하는 정부 내 행정 관료들과 여야 정치권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가균형발전 도모 및 서해안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성장축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호남고속철도 건설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으로, 경제성 논리로 따진다면 대부분의 도로와 철도, 항만 등 SOC 건설사업은 잘못되고 실패한 정책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며, 국가 기간SOC는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기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경제성만을 따져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국내외 사례를 다각도로 수집해 소개하면서, 미국은 서부개발, 구소련은 시베리아 개발을 위해서 그야말로 황무지에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했고, 1960년대에 건설된 일본의 신칸센도 개통초기에는 적자였지만 오늘날 일본 경제 발전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역설했다. 경부고속도로도 건설 당시에는 ‘미친 짓’으로 여겨졌지만, 이 사업들은 10년, 20년 아니 100년을 바라본 국가발전전략에 따라 이루어졌고 또, 멋지게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호남고속철도 건설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확산을 위해 2005년 2월 여야 의원 206명의 서명을 받아 “호남고속철도 조기착공 대정부건의안”을 대표발의해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호남고속철도 조기착공 및 완공을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어떤 동료의원은 “정치인이 되지도 않을 일에 너무 무모하게 나서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해주기도 했고, 어떤 의원은 “이름을 아예 ‘호남철’로 바꾸지 그러느냐”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렇듯 어찌 보면 무모하게 보이는 일에 나섰던 이유는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 못지않게, 우리 아들·딸들이 10년, 20년 뒤에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 그 방편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광주·전남지역을 미래에 ‘축복받은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SOC확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도로·철도·항만 등 기간 교통망이 확보되고, 생활환경이 좋아지면 기업과 사람은 몰려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호남고속철도 조기착공 및 완공에 총력을 기울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15년 광주-오송구간 우선 개통, 2017년 광주-목포구간 완공을 목표로 진행될 호남고속철도 건설 기본계획 발표 이후 일부에서 단계적 사업추진 및 정차역 추가 건설 등을 문제 삼아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국가재정 등을 감안했을 때, 금번 발표된 기본계획은 물리적으로 가능한 최단시간에 사업을 완료하는 것이다. 호남고속철이 완공되면 광주·전남지역은 말 그대로 ‘축복받은 땅’이 될 것이다. 광주에서 서울까지 1시간 30분대 운행이 가능해지고 이렇게 되면 사실상 수도권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찾게 될 것이다. 현재 추진중인 광주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 서남해안 관광벨트 조성, 무안 기업도시, 나주 금천 공동혁신도시의 성공을 뒷받침하고, 서해안 시대를 맞아 광주·전남지역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거듭나는데 호남고속철도가 크게 기여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칼럼
남도일보
2006.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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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지역간 불균형 해소를 위한 제언 박혜자 국장 21세기는 지구촌 사회로서 무한경쟁의 시대라고 한다. 국가간의 경쟁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자치단체간 경쟁도 국내를 넘어 지구촌 전체에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방자치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한지 10년이 지남에 따라 그동안 문제점이 다소 있었지만, 이제는 지방자치가 뿌리를 내려 정착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각 자치단체가 지역발전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 효율적인 예산운영으로 주민복지를 향상시켜 살기좋은 고장을 만들고자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경쟁이란 비슷한 수준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령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데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시작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20미터 지점에서, 다른 사람은 50미터 지점에서 출발한다면 경쟁이 가능하겠는가? 지역간 개발도 이와같이 많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획일적으로 정책을 집행하고 있어 지역간 발전의 격차가 더 커지고 있다. 이제까지 지자체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중앙정부 주도하에 정책이 결정되었을 뿐 아니라, 국토를 경부축 중심으로 집중개발한 불균형 성장 방식을 채택한 결과 자치단체간 개발의 정도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도, 국가의 재정을 획일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이 지속된다면 지역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어, 못사는 지역의 주민들은 잘 사는 지역, 즉 수도권으로 집중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전남도의 경우를 보면 전국16개 시도에서 가장 낙후되었다는 것이 각종 통계자료에 나타났고, 모든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다. 가장 낙후되어 있기 때문에 취업과 성공의 기회가 적어 젊은이들이 타 지역으로 떠나고 있는 것이다. 전남의 어려운 실정을 복지분야에서 살펴보면, 노인인구 비율과 국민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은 전국평균의 2배나 많으며, 의료급여 수급자는 3배 정도에 이르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전남도에서는 지방세 수입의 70%정도를 복지예산에 사용하고 있어 지역개발 분야에 투자할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에서는 지자체의 재정상태나 복지수요는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국비예산을 지원하고 있어 자치단체간 복지의 차별화가 심화되는 현상을 초래하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고착되고 계층간 지역간 갈등이 증폭될 요인을 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균형발전은 국민화합과 국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필요한 시대적 요청이다. 다행히 참여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국정의 핵심과제로 선정하여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책에 부응하려면 국가재정운영을 과거의 방식에서 탈피하여야 한다. 전체적인 변화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기에, 최소한 복지분야의 예산만이라도 지원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어렵다면 복지업무 중 국가사무의 성격이 가장 강한 국민기초생활보장 사업만이라도 자치단체의 재정력을 감안하여 차등보조율제를 시행해야 한다. 차등보조율제를 시행할 수 있는 법적근거가 보조금의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마련되어 있는 만큼 정부에서 시행의지만 있다면 실천이 가능하다고 본다. 또한 지난해부터 추진한 지방이양사업 제도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서 중앙정부는 본 제도 시행 후 나타난 미비점 보완과 재원부족 등 각종 문제점을 적극 해소해 나가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분권교부세 상향조정과 차등지원제 강화가 우선 필요하다고 보며, 이와 병행하여 재정인센티브제도 검토할 수 있는 방안이다. 장기적으로는 지자체 복지 현실과 재정력 등이 반영된 복지교부세제도 도입문제도 심각히 고려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변화가 있어야 낙후지역이 개발되어 국가균형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고 본다.
칼럼
남도일보
2006.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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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 기업도시를 갉아먹는 유령 이 지역에선 무안(務安)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의외로 외지엔 그렇게 잘 알려져 있질 않다. 무안군 공무원들이 기업도시 시범사업 유치를 위해 전국의 기업체들을 방문했을 때 이같은 낮은 지명도는 실제상황으로 변했다. 이들 기업들 가운데는 무안이 전북 부안이냐고 묻는 곳도 있었다. 이런 상태에선 기업도시 설명이고 뭐고 될 리가 없었다. 무안 자체부터 알려줘야 했다. 한참 지리공부를 시킨 뒤에야 프로젝트를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런 천신만고 끝에 전국 40여개의 기업들과 투자협약을 체결하고 마침내 기업도시 시범사업을 유치해냈던 무안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무안은 전국서 유일하게 산업교역형 기업도시로 낙점받았다. 여러 곳이 동시에 지정된 관광레저형이나 지식기반형보다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 계획대로만 진행되면 일본 도요다시처럼 기업이 주도하는 자족형 도시를 만들어낼 자신도 무안군엔 있다. 그러나 서삼석 군수는 요즘 속이 답답하다. 이상한 소문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론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같아 내심 죽을 맛이다. 기업도시라는 게 기업들을 끌어모으지 않으면 말짱 헛일이다. 따라서 대외적인 업무에 올인해야 하는데 안에서 비판이 쏟아지면 다리의 힘부터 풀리기 마련이다. 무안군과 서 군수가 지금 전전긍긍하며 마주하고 있는 내부의 적은 실체가 모호하다. 이는 어찌보면 오해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진실게임일 수도 있다. 비판적 여론의 주장은 한마디로 주민들의 재산권만 묶어 놓았다는 것이다. 뭔가 구체적인 결과가 금방 이뤄지지 않는다며 물건너 갔다느니 하는 루머도 그래서 쉽게 주민들에게 먹힌다. 심한 경우엔 무안기업도시의 성공은 아직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대못을 박는 사람들도 있다. 기껏 중국의 광샤그룹이란 곳에서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데 이 회사가 부동산 개발업을 하는 까닭에 개발차익만을 노릴 수도 있다는 의구심마저 내비친다. 이런 게 확대재생산되면서 무안 현지를 불안하게 만든다. 무안군으로선 이런 소문이 억울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1200만평의 대도시 개발을 간단한 토지조성사업 정도로 여기는 일부 주민들의 성급한 마음이 서운하다. 기업도시 건설은 누가 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사업이다. 지금 무안이 전력투구하고 있는 중국 자본유치만 해도 그렇다. 외환보유고가 넘쳐나는 중국에선 원래 부산이나 인천 등으로의 투자를 희망했다고 한다. 무안이 이를 알고 먼저 접촉을 시도했다. 물론 중국도 무안을 알 리 없었다. 그러나 중국과 거리도 가깝고 토지분양가도 저렴한데다 기업도시까지 만들 것이니 무안으로 투자해달라고 설득했다. 그 와중에 문제의 광샤그룹도 등장한다. 무안군에 따르면 광샤그룹은 우리나라로 치면 토지개발공사 개념이라고 한다. 부동산 개발차익만 챙기는 그런 회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기업도시법에 따르면 개발회사엔 개발면적의 40%를 기업으로 채워야할 의무가 있다. 서군수는 광샤그룹을 중국 재계 6위 기업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그 투자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심의가 필요하다. 이 심의에만 2∼3개월이 필요하다. 게다가 토지를 개발해서 기업이 입주할라치면 적어도 3년에서 5년이 걸린다. 그래서 믿고 기다려 달라는 것이다. 그래도 무안기업도시는 평택과 함께 기업도시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부 불협화음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해 지역통합 차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안 군민이 다시 서 군수를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리더십은 주민들의 신뢰와 참여로부터 나온다. 바로 엊그제까지 무명(無名)이었던 무안이 반드시 동북아 허브 기업도시로 성공할 수있다는 자신감을 주민들에게 심어주며 같이 가야 한다. 성공을 확신하는 집단앞에서 헛소문은 유령에 불과할 따름이다
칼럼
최혁
2006.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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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 민선 4기 지자체장에 거는 기대 한강희 교수 존경하는 S군수님, 민선 4기 지자체 ‘최고경영자’ 취임을 축하합니다. 아마도 지역에 대한 열정이 지역민들의 가슴에 파고든 결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자체 경험이 10여년에 불과한 우리네 현실에서 지자체장은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국민 봉사원인 공무원을 독려하여 군민의 생업과 안위를 챙겨야 하는 총지휘자이니까요. 대다수 선거가 그렇듯 축하는 잠시이고, 커다란 책무가 눈앞에 놓여 있습니다. 저는 이번 5·31지방선거에서 선거방송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지역의 일꾼으로서 목민관(牧民官)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입장과 포부에 관해 깊이 고민하는 기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지역대표로서 최고경영자가 지자체를 어떻게 이끌고 무슨 일을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지를 묻는 후보자간 난상토론을 위해 많은 자료를 일별하고 질문서를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몇몇 관견(管見)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우리 지역의 인구감소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고향을 떠난 향우들이 다시 고향을 찾게 하겠다는 공약은 아직은 이상적인 입안 단계이긴 하지만 인상적인 대목이었습니다. 구미(歐美)의 경우, 혐오시설이 아닌 도시 근로자가 꿈꾸는 이상향으로 복지레저가 보장된 전원형 실버타운이 부지기수인 점을 감안하면 나서 자란 고향이 인생의 황혼을 여유롭게 지내기에 안성맞춤인 청정 웰빙타운으로 조성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게다가 생업까지 보장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요컨대 외지인의 관광방문도 중요하지만 타향에 사는 고향 사람들이 다시 고향을 찾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현실적이면서도 중장기적인 비전이 담긴 목표지향적인 공약인 만큼 입안 청사진이 곧 완성도라는 생각으로 전력투구하시길 기대합니다. 아무래도 지자체가 취해야 할 최우선적인 지향점은 각종 현안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자세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공감하는 합리적인 봉사형 행정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기업형 행정의 두 얼굴을 가진 양수겸장의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부연하자면 전자를 전제로 후자에 무게중심이 두어져야 하겠지요. 전자는 자칫 소극적 자리보전에 머무를 우려가 커 비전을 모색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전의 관행이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전자를 추구했다면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손품발품을 팔아 고객을 찾는 후자형의 기업행정이 절실히 요청됩니다. 예컨대 판공비 1억 원을 고스란히 아껴 군민의 복리증진에 투여하기보다는, 미래적 가치를 위해서는 그 이상이 투입되더라도 개발과 유치에 전력투구하는 용기가 필요하겠지요.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언제 어디서나 CEO의 마인드 빌딩에서 출발하거니와, 이는 많은 군민과 공무원들의 범례(範例)가 될 공산이 큽니다. 즉 기획과 발상이 실천으로 직결되는 수범적 행정 사례가 있다면 어느 정도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이를 감싸 안는 기업형 CEO, 창의적 발상에 딴지를 거는 매너리즘과 결연히 선을 긋는 열린 행정, 열린 리더를 기대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공약을 기어코 실천하겠다는 과욕이나, 인정에 바탕한 선심성 행정은 지양해야 하겠지요. 이미 제시한 공약이라도 그 기준은 강점을 극대화하고 취약점을 보완하는 수준이 돼야 할 것입니다. 되레 기존의 행정에서 결여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기우고 메울 금도(襟度)도 필요하리라 봅니다. 대형 다리공사를 하는 중장기적 마스터플랜이 있다면 그 중 한 구간을 튼실히 축조하는 심정이라면 좋겠습니다. 반듯한 외양만을 추구하기보다는 차근차근 내실을 다진다는 입장을 견지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존경하는 S군수님, 아무쪼록 ‘공무원이 건강하면 지역민이 건강할 수 있다’는 신념하나로 입후보자 시절의 소망과 다짐이 순조롭게 실현되길 희원합니다. 차마 안녕하시란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분망(奔忙)하십시오.
칼럼
남도일보
2006.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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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천하(天下)의 가을을 읽는다 몇 해 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작가 레핀의 작품 전시회가 있었다. 그 가운데 나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그림에 감동을 받았다. 작품이 너무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허술한 차림의 한 사나이가 문안으로 들어선다. 마치 감옥에서 석방되면서 그길로 돌아오는 차림새다. 그러나 가족들은 반가워하기 보다는 이외라는 표정들이다. 말하자면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던 사람인 것이다. 상황으로 보아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는 듯 하다. 화집에 같은 제목의 다른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 작품 속의 사나이는 같은 차림인데 방안의 사람들이 다르다. 방은 비밀 조직의 한 아지트를 연상시킨 곳으로 레닌 모자를 쓴 사나이들이 역시 그 사나이의 방문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기다리지 않은 불청객의 방문인 것이다. 사나이는 고문에 못 견디고 동지들의 조직을 누설했거나 아지트를 댔거나 아니면 비밀조직의 명단을 누설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조직에서 이미 소모품이 되어 다시는 쓸모가 없어진 사람일는지 모른다. 하여튼 그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은 사람이다. 최근 나도 가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는 소외감에 시달린다. 누군가가 근자에 동정을 물어오면 ‘천하의 가을을 읽는다’ 라는 멋진 말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도 묻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혼자서 생각에 잠긴다. 모진 더위 끝에 요즘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기운이 돌고 있다. 생각해 보니 뜰 은행나무에 매미들도 그 사나움이 가시기 시작했다. 7월도 가기 전에 간간 울음 연습을 하던 풀벌레가 요즘은 중동 미국의 욕심처럼 신이 났다. 밤을 잊고 한결같이 흔들어대는 그들의 깃발이 나의 소박한 꿈과 하나가 되면 얼마나 좋으랴. 나의 사색은 계속되면서 고인의 시구 하나가 떠올랐다. ‘지는 오동 잎 하나가 천하의 가을을 안다(一葉知天下之秋)’ 이다. 송나라의 구양수라고 생각하지만 들은 풍월이라 자신이 없다. 가을을 알리는 메시지가 왜 하필이면 오동잎일까 생각한다. 정원에 매화나 송죽하고는 달리 오동나무는 매우 소박하고 실용적인 나무다. 그러나 오동나무가 뜰에 서있으면 그 집에 넘치는 상(祥)스러움이 있다는 말이 있다. 뜰은 물론 잡 안 가득히 곧고 맑고 푸른 기운이 도는 가운데 무엇인가 희망과 기대의 기운이 있다. 옛날 집에 아이를 얻으면 기념으로 뜰에 오동나무를 심었다. 오동나무는 잘 자라는 나무로 딸아이는 농을 짜 출가시키기 알맞게 자라고 나무와 더불어 자라는 남정네들은 성공리에 살다 한 생애를 마칠 때 그 나무로 짠 관에 들어간다. 오동나무는 세월, 인생 또는 생사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연상만으로 이 멋진 명제를 설명하지 못할 것 같다. 오동나무는 가을을 빨리 탄다. 어떤 나무보다도 잎이 넓고 그 넓은 잎이 빨리 노랗게 물들고 그리고 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는 자연이 다르다. 우수수 지는 것이 아니라 한 잎 한 잎 뚝 둑 지는 것이다. 넓은 잎이 한 잎 한 잎 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무엇인가 절실한 느낌이 있다. 단풍하고는 다르다. 단풍은 명년에 다시 든다는 희망 같은 것이 남아 있지만 오동나무 잎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일회성 인생의 끝자락을 느끼게 한다. 인생이 연습이 아님을 인식시킨다. 그리고 천하라. 한국의 선인들은 감히 천하라는 말을 쓰지 못했다. 함부로 써서는 안 되었다. 아니 천하라는 어휘를 사용할만한 일도 없었고 위상도 아니었다. 중국인은 천하라는 말을 좋아한다. 손문의 천하위공(天下爲公 )도 그렇고 범중엄의 ‘선천하지우이우(先天下之憂而憂)하고 후천하지낙이낙(後天下之樂而樂)’ 도 그렇다. 천하라는 말로 자유롭게 그들은 자기들의 세계를 자연을 나라를 사람을 상징하였다. 천하를 얻지 못한 한국의 왕이 용이 아닌 봉황에 불과한 것을 슬퍼한 지훈의 시 ‘봉황수’의 주제가 생각난다. 오늘 우리는 용을, 천하를 얻었는가. 준비해놓고 기다리는 ’천하의 가을을 읽는다‘ 나의 작은 소망이 쓸쓸하다.
칼럼
남도일보
2006.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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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파일] 프로야구 관중 8천만 시대의 명암 -기경범 올해로 출범 25주년을 맞은 한국 프로야구가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지난 15일 통산 8천만 관중 돌파의 금자탑을 세웠다. 지난 82년 탄생한 프로야구는 출범 원년 157만9천541명을 시작으로 95년 역대 페넌트레이스 최다 관중인 540만6천374명을 포함한 총 587만5천174명이 입장, 최고의 절정기를 맞았다. 지난해까지 통산 7천784만7천423명이 야구장을 찾은 우리 프로야구는 지난 2003년 6월 7천만 관중 을 돌파한 데 이어 광복절인 15일 8천2만5천667명이 입장해 프로스포츠 새 역사의 장을 열었다. 프로야구 관중 8천만 돌파의 역사적 의미와 비중은 수치 자체가 상징하는 양적인 면보다 질적인 면에서의 성장, 국내 프로스포츠사의 가장 기념비적인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 프로야구가 이 만큼 성장한 데에는 팬들의 프로야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프로야구가 출범 30년도 채 안되는 기간 동안 이 만큼 커온 데에는 수많은 스타들과 감독, 야구인들의 땀과 노력이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프로야구 25년사의 정점에는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을 일궈낸 80~90년대 최고의 명문구단인 해태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가 자리해 있다. 해태는 넉넉지 못한 구단 재정과 열악한 여건, 상대적으로 얕은 선수층 등 각종 악조건을 무릅쓰고 83년 2대 감독으로 취임한 김응용 감독(현 삼성라이온즈 사장)의 뛰어난 지도력과 카리스마, 선동열, 김일권, 김성한, 이순철, 김봉연, 김종모, 김준환, 서정환, 김무종, 한대화, 장채근, 백인호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스타들이 한데 모여 끈끈한 팀워크와 막강 전력으로 최강 군단으로 군림했다. 특히 해태는 특유의 팀 컬러와 인상적인 경기를 펼치며 프로야구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가는 곳마다 관중들을 끌어들여 최고의 인기구단으로도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해태 타이거즈 뿐이겠는가? 지역 연고와 소속팀은 다르지만 최동원과 하기룡, 이만수, 장효조, 박철순, 유중일, 양상문, 김경문, 정삼흠, 김용철, 김용희, 김인식, 장명부 등 수없이 많은 스타들이 마운드와 그라운드를 누비며 팬들을 기쁘게 했다. 그러나 프로야구는 90년대 전성기를 지나 2천년대 들어 박찬호와 최희섭, 서재응, 이승엽 등 대형 스타들의 빅리그 진출, 농구와 배구 등 경쟁종목의 잇따른 프로리그 출범, 일부 재벌구단의 스타 독점 등으로 관중이 급감하며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우리 야구 저변과 실력은 야구강국인 미국과 일본, 쿠바 등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올봄 미국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일궈낸 3위 성적과 수많은 스타의 산실로 자리해 온 고교야구의 잠재력은 우리 야구의 빛이자 미래이며 희망이다. 이같은 조건과 장점을 살려 관중 8천만 돌파의 기념비의 역사적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고 제2의 프로야구 중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팬들의 사랑을 되찾아야 한다. 팬들을 야구장으로 끌어모으려면 수준 높은 경기를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돔구장건설 등 야구인프라 확충, 우수선수 발굴과 육성, 정부와 구단 차원의 투자 확대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 한결 같은 중론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고 야구에만 매진하고 경기에만 집중하는 선수와 감독 등 야구인들의 땀과 노력이 더해진다면 팬들은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올 것이라 확신한다. 프로야구는 팬들의 꿈과 사랑을 먹고 자라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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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光州사랑 光사랑 남헌일 원장 지난 7월 12일 충북 오창에서는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그동안의 지역전략산업 지원정책에 대한 성과보고회를 개최하고 32개 전략산업에 대한 개별 평가를 실시하였다. 이 자리에서 광주 光산업은 2002년부터 2004년 사이에 연평균 106%의 성장률을 기록하여 전국의 32개 전략산업중 가장 성공적인 육성사례로 평가받았다. 문민정부 끝 무렵 정부는 부산 신발산업 등 지방의 주력산업이 급격히 경쟁력을 상실함에 따라 지방 주력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는데 고심하고 있었다. 이에 광주시에서는 기존의 주력산업만으로는 광주경제를 활성화 시키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미래산업으로 光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정부에 지원을 건의하였다. 이후 2000년부터 부산 신발·대구 섬유·경남 기계산업과 광주 光산업에 대한 정부지원이 시작되었고, 광산업의 경우 불과 4년만에 연평균 106% 성장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 것이다. 굳이 106%라는 성장률 뿐만 아니라 광주 光산업의 급속한 성장속도를 나타내는 지표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1999년 47개에 불과하던 업체수가 230개로 늘었고, 매출액은 1천136억에서 1조2천149억으로, 고용은 1천896명에서 5천87명으로 증가하였다. 또한 첨단과학산업단지에는 한국광기술원 등 6개 전문 연구소와 광주테크노파크를 비롯한 5개 지원기관, 200여개의 光관련 기업이 집적된 국내 유일의 光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되어 기술개발에서 사업화에 이르기 까지 산업발전을 위한 핵심인프라를 갖춰놓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光산업 육성의 실효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들도 들린다. 그동안 투자한 재원은 엄청난데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가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이다.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최종 소비자가 시장에서 직접 구매하는 소비재가 아닌 생산재로서 LED(발광다이오드)와 광통신부품에 집중하는 광주 光산업의 특성상 시민들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는 적을 수 있다. 또한 투자재원의 규모에 대해서도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즉 지금까지는 재원의 상당부분을 산업육성에 필요한 물적·인적 인프라 구축에 투자했다. 그 결과 광기술원이 생겨나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핵심장비가 구축되었으며, 국내 관련 전문인력의 68%를 배출해 내고 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자. 세계적인 정보통신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핀란드의 경우, 1987년 Espoo시에 오타니에미(Otaniemi) 사이언스파크를 설립하고 헬싱키 공대를 중심으로 정보통신 관련 산학연 클러스터를 조성한 결과 20여년이 지난 현재 핀란드 최고의 정보통신 도시로 성장하였다. 특정산업이 본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10년에서 15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더욱이 光산업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거둔 성과는 기대 이상이다. 타지역이 기존 주력산업에 발목 잡혀 있을 때 우리 광주는 미래 신산업으로 눈을 돌려 이들의 부러움을 한껏 받고 있는 상황이다. 光산업은 이제 성과를 쏟아내고 있다. 작년말 13개에 불과하던 매출액 50억 이상 업체가 금년에는 21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원이 시작된지 10년이 되는 2010년에는 지역 光산업 생산액이 7조2천억에 이르고 고용인원은 4만8천명에 이르러 지역경제의 30%를 담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처럼 光산업은 미래 광주의 희망이다. 좀 더 멀리 내다 보자.틀림없이 우리 아들 딸들이 고향을 등지지 않고도 光산업에 기대어 지역발전에 기여하면서 앞선 세대들의 높은 예지력을 앞다투어 얘기할 것이다. 그 유쾌한 상상을 가슴에 품고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이 힘을 모으고 뒷받침하여 光산업의 도시 光州를 만들자.
칼럼
남도일보
2006.08.2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