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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光州사랑 光사랑 남헌일 원장 지난 7월 12일 충북 오창에서는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그동안의 지역전략산업 지원정책에 대한 성과보고회를 개최하고 32개 전략산업에 대한 개별 평가를 실시하였다. 이 자리에서 광주 光산업은 2002년부터 2004년 사이에 연평균 106%의 성장률을 기록하여 전국의 32개 전략산업중 가장 성공적인 육성사례로 평가받았다. 문민정부 끝 무렵 정부는 부산 신발산업 등 지방의 주력산업이 급격히 경쟁력을 상실함에 따라 지방 주력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는데 고심하고 있었다. 이에 광주시에서는 기존의 주력산업만으로는 광주경제를 활성화 시키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미래산업으로 光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정부에 지원을 건의하였다. 이후 2000년부터 부산 신발·대구 섬유·경남 기계산업과 광주 光산업에 대한 정부지원이 시작되었고, 광산업의 경우 불과 4년만에 연평균 106% 성장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 것이다. 굳이 106%라는 성장률 뿐만 아니라 광주 光산업의 급속한 성장속도를 나타내는 지표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1999년 47개에 불과하던 업체수가 230개로 늘었고, 매출액은 1천136억에서 1조2천149억으로, 고용은 1천896명에서 5천87명으로 증가하였다. 또한 첨단과학산업단지에는 한국광기술원 등 6개 전문 연구소와 광주테크노파크를 비롯한 5개 지원기관, 200여개의 光관련 기업이 집적된 국내 유일의 光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되어 기술개발에서 사업화에 이르기 까지 산업발전을 위한 핵심인프라를 갖춰놓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光산업 육성의 실효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들도 들린다. 그동안 투자한 재원은 엄청난데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가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이다.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최종 소비자가 시장에서 직접 구매하는 소비재가 아닌 생산재로서 LED(발광다이오드)와 광통신부품에 집중하는 광주 光산업의 특성상 시민들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는 적을 수 있다. 또한 투자재원의 규모에 대해서도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즉 지금까지는 재원의 상당부분을 산업육성에 필요한 물적·인적 인프라 구축에 투자했다. 그 결과 광기술원이 생겨나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핵심장비가 구축되었으며, 국내 관련 전문인력의 68%를 배출해 내고 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자. 세계적인 정보통신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핀란드의 경우, 1987년 Espoo시에 오타니에미(Otaniemi) 사이언스파크를 설립하고 헬싱키 공대를 중심으로 정보통신 관련 산학연 클러스터를 조성한 결과 20여년이 지난 현재 핀란드 최고의 정보통신 도시로 성장하였다. 특정산업이 본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10년에서 15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더욱이 光산업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거둔 성과는 기대 이상이다. 타지역이 기존 주력산업에 발목 잡혀 있을 때 우리 광주는 미래 신산업으로 눈을 돌려 이들의 부러움을 한껏 받고 있는 상황이다. 光산업은 이제 성과를 쏟아내고 있다. 작년말 13개에 불과하던 매출액 50억 이상 업체가 금년에는 21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원이 시작된지 10년이 되는 2010년에는 지역 光산업 생산액이 7조2천억에 이르고 고용인원은 4만8천명에 이르러 지역경제의 30%를 담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처럼 光산업은 미래 광주의 희망이다. 좀 더 멀리 내다 보자.틀림없이 우리 아들 딸들이 고향을 등지지 않고도 光산업에 기대어 지역발전에 기여하면서 앞선 세대들의 높은 예지력을 앞다투어 얘기할 것이다. 그 유쾌한 상상을 가슴에 품고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이 힘을 모으고 뒷받침하여 光산업의 도시 光州를 만들자.
칼럼
남도일보
2006.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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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 남악시대가 꿈꾸는 ‘어진누리’ ‘삼가 생각하건대 민선자치의 초석 위에 전남 발전을 꾀하면서 전라남도청의 신청사를 개청하게 됨에 따라 공관을 새로 짓게 되니 크나 큰 복을 한없이 받고 높은 들보를 올리는 것이 길조에 맞는 일이다. 남악 새 터전 해좌에 자리를 잡고 들보와 서까래를 새로 만들었으니 모양새와 그 속에 깃든 정신은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규모는 걸맞으나 사치스럽지 않은 예전 전통 한옥 그대로이다….’‘ 상량문 그대로 고풍스럽게 지어진 전남도지사 공관에 박준영 전남지사가 지난 17일 입주했다. 목조한옥 팔작지붕 구조의 새 공관 이름은 ‘어진누리’. 인정이 두터우며 슬기롭고 착한 세상을 꿈꾼다는 뜻에서 지어진 순 우리말 이름이다. 원컨대 목민관으로서 도민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덕을 숭상하고 슬기와 자애로 도정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담아냈다고 한다. 전남대학교 국문학과 및 한국어문학연구소가 한달에 걸쳐 지었다. 이렇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고자 공을 들인 새 공관도 세상의 험한 입은 좀체 피해가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25억여원의 공사비 때문일까 이 공관은 사업 초기에 ‘호화판’이라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에 전남도측의 설명은 이렇다. ‘민원인 접견이나 당면 현안 협의 등 집무의 연속선상에서 도정 수행을 위해 일반 사저와 구별되는 주거공간으로 건립했고 유럽 등 외국의 경우 관저 초청을 최고의 예우로 생각하는 만큼 전통 건축기법으로 전통성과 예술성을 갖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애써 변명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대지 380평에 연면적 127평이 어찌 아흔아홉칸 ‘고대광실(高臺廣室)’일 수 있겠는가. 어차피 전남은 환황해권과 태평양 그리고 세계를 직접 상대해야만 할 경영주체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내외국 귀빈을 기품있게 접대하는 공간이 절실하다. 공관내에 자리잡은 비즈니스 센터(영빈관)는 이미 내로라하는 기업이라면 다 갖추고 있는 시설이다.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를 관사로 초청해 투자 유치를 논의한다면 이보다 더 도민에게 유익한 일은 없을 터이다. 오히려 좋은 시설을 해놓고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무능함이 생긴다면 이게 더 문제삼을 일이다. 또한 혹여라도 ‘은밀한 거래’의 장소로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해야하고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치장을 경계해야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관사 그 자체가 걱정거리가 될 수는 없다. 그런 편견은 이제 버려야 한다. 사실 5공 시절엔 ‘지방 청와대’라는 것이 있었다. 도지사 공관이 어찌나 넓고 크던지 궁궐에 가까웠다. 광주시 서구 농성동에 연면적 528평 규모로 지어진 옛 전남지사 공관도 그 중 하나였다. 이들은 세간의 입방아에 오른 끝에 결국 ‘5공 비리(非理)’ 조사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광주에선 대학생들이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화염병을 던지며 시위마저 벌였다. 우여곡절끝에 이곳이 ‘도심공원 안 미술관’으로 새단장 돼 시민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순전히 민중의 노력때문이다. 이런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에 ‘어진누리’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수는 있다. 그래서 더욱 ‘어진누리’를 통해 명실상부한 어진 누리를 만들어 가야 한다. 세계 유수의 인물들을 초치해 한옥의 아름다움과 뛰어난 기능성에 감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자파를 막아줄 수 있는 재료가 천연자원인 나무와 돌, 흙인데 한옥이야말로 그런 천연의 재료로 건축된 것이니 이제 21C 인류의 이상적인 집으로 각광 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런 장점들을 비즈니스로 연결시키는 수완도 발휘해야 된다. 나아가 그들이 남기고 간 자취와 역사로 ‘어진누리‘가 국제 명소가 될 수 있다면 더더욱 다행일 것이다.
칼럼
최혁
2006.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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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 고령시대의 생존전략은 일십백천만 형광석 교수 가끔 이 지역의 기업인들이 아침 일찍 공부하는 조찬모임에 가보면 일흔을 넘기신 분들이 많이 눈에 띈다. 얼굴로 보면 일흔은 커녕 쉰도 안 되어 보인다. 항상 밝고 웃는 얼굴이다. 그래선지 나이 어린 사람 못지않게 왕성하게 경제활동을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고령시대이다. 통계청의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05년에 우리나라의 65세이상 노인인구는 400만명을 넘어 선 약 440만명이다.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3%이다. 농촌지역에서 노인인구의 비중은 매우 높다. 전남 강진군의 경우, 금년 7월말 현재 노인인구는 10,295명으로 군 전체인구 42,149명의 24.4%를 차지하고 있다. 강진군은 초고령사회이다. 통상 노인인구 비중이 20% 이상인 사회를 초고령사회라 한다. 한편 지금은 저출산시대이다. 2005년 0~14세의 유소년 인구는 약 899만명으로 2000년에 비해 65만명 감소하였다. 2005년 출생아 숫자는 5년전에 비하여 20만명이나 감소한 438천명으로 추정되었다. 한 해의 신생아가 50만명이 채 안 된다. 2005년 출산율은 1.08명으로 현행인구를 유지할 수 있는 대체출산율 2.1명의 절반 수준이다. 만일 출산율이 1.0명으로 계속 이어진다면, 2060년에 우리나라 인구는 2005년 약 4천7백만명에서 1천3백만명 줄어든 약 3천4백만명, 2070년에 약2천8백만명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러한 시대적 조건에서 세계화의 파고에 맞서 지식경제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일기당천(一騎當千)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한국인 한 명 한 명은 우리나라 밖의 사람 천명을 대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려면 우리 각자는 ‘일십백천만’해야 한다. 먼저 ‘일’이다. 세계를 상대로 일기당천하려면 무엇보다 건강이 최고이다. 우스개 이야기로 건강하려면 ‘쓰리 고’를 잘해야 한다. ‘쓰리 고’란 ‘먹고, 자고, 싸고’ 이다. 요즘처럼 우리 몸에 노폐물이 많이 쌓이는 환경에서는 ‘싸고’를 잘해야 한다. 몸 속에 든 독을 잘 배설해야 한다. 하루에 한 번 시원하게 ‘싸자’. 두 번째는 ‘십’이다.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정신건강에 좋다고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하루에 열 번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할 수 있으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백’이다. 하루에 백번 웃기. 지금까지 받은 문자메시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메시지는 ‘성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다보니 성공했다’이다. 사오정(45세 정년)에 처하여 실직한 어떤 분은 친구가 아침마다 보내오는 유머를 읽고 맘껏 실컷 3개월을 웃었더니 일자리가 생겼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많은 세상이지만 억지로라도 하루에 백번 웃다보면 성공한다는 믿음. ‘천’이다. 하루에 천자(千字)쓰기. 천자문도 천자 아닌가. 서예를 하시는 분들이 수련과정에서 임서(글씨본을 보면서 글씨를 씀)하듯이, 성경, 불경,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시나 소설을 그대로 하루에 천자씩 쓰는 것도 상당한 수련이 될 것이다. 할 수 있다면, 실제 자기의 생각을 정리하여 천자 분량으로 써보는 것이다. 글쓰기는 사람을 매우 정확하게 만든다고 한다. 아마도 천자 쓰기는 평생학습사회의 삶의 한 방식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만’이다. 하루에 만보 걷기이다. 목포의 어느 기업인이 ‘나는 매일 보약을 먹는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보약은 실제의 약이 아니라 걸음 보약(步藥)이다. 하루에 만보 걷기는 보약 한재이다. 아마 이 말에 모두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세계화 시대와 지식경제시대, 그리고 저출산·고령시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한국인에게 전략적 삶의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일기당천의 전략. 이 전략의 성공은 전략 주체의 경쟁력에 달려 있다. 그 경쟁력은 ‘일십백천만’의 전략적 실천에서 나온다.
칼럼
남도일보
2006.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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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일본 NHK 8·15 스페셜 중국 심양에 9·18. 역사박물관이 있다. 입구에 장쩌민(江澤民)의 친필이 새겨진 탑이 서 있고 안내 표시를 따라가 보면 9·18 이후 중국에 대한 일본 침략의 역사가 구체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그 안에 김일성의 이름도 보인다. 9·18은 1931년 9월18일 일본 관동군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 즉 중국의 동북 지방을 지배하고 만주 괴뢰 정부를 수립할 계획의 일환이었다. 만주지배의 성공으로 승승장구한 일본군은 베이징 등 화북 지방으로 그 세력을 확대하여 대륙지배의 꿈을 실현해 나갔다. 1931년 장제스(蔣介石)는 일본 관동군의 침략을 저지하지 않고 국내 안정에 힘을 기울였다. 선내안후외양 정책이다. 일본군은 언젠가는 물러간다는 생각으로 우선 공산당과 홍군을 토벌에 전념 통일을 이루고 후에 배일해도 좋다고 본 것이다. 그리하여 홍군으로 하여금 3년에 걸친 만리 장정의 시련을 안겨 주었다. 서금에서 출발한 30만의 홍군은 3년 뒤 연안에 닿을 때 다만 3만이었다. 이렇게 국공이 싸우고 있는 사이 일본군은 1937년 배이징 근교에서 본격적인 중국지배의 사건을 일으킨다. 루거우차우 사건이 그것이다. 이로 선전포고 없이 양국간 전면전으로 발전하여 이어 상하이 상륙과 수도 난징함락으로 이어진다. 일본 NHK가 8·15를 기념하여 13,14 양일에 걸쳐 중일전쟁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야기된 중일관계의 교착 타개책 등을 제목으로 스페셜 프로를 방영하였다. 13일은 ‘일중전쟁’ 으로 정하고 당시 일본 군부의 집념, 전쟁의 발단과 진행 그리고 난징 학살 사건 등을 당시의 참전한 증인들을 인터뷰함으로서 비교적 리얼하게 진행시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두 사람의 일본 관계 학자와 일본에서 연구중인 중국인 학자 그리고 일본에서 연구 중인 미국인학자로 하여금 대담을 시켰다. 대담에서 나는 화제가 겉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인 학자는 침략의 역사에 대한 언급을 가급적 피하려고 하였다. 중국인들이 역사에 관하여 일본의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하고 있고 오늘의 일본인에게 그 책임과 빚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일본은 1952년 타이완의 장제스와 강화 조약을 체결하였고 1972년에는 타이완을 포함한 중국이 하나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 조약을 중국정부와도 체결함으로서 양국간의 역사가 일단락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중국이 역사를 보는 눈이 미래 지향적이 아니라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중국인 토론자는 가리거나 숨기지 말고 오늘의 일본 젊은이들로 하여금 역사적 진실을 올바르게 인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미국인은 독일의 예를 들면서 일본인들이 솔직하지 못하다는 암시를 하였다. 심양의 9·18 역사박물관의 맨 끝자락에 중국인들은 결코 일본에 대한 보복을 생각하지 않고 역사를 교훈삼아 앞으로 일본과 평화롭게 공존하기를 바라는 것이 이 박물관 설립의 소망이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의 일본인들의 마음속에는 중국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고 그 우월감이 이 소망을 방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일본 젊은 학자는 그렇다면 언제까지 일본은 중국에게 사과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중국인학자는 사과하라는 말이 아니라 앞으로 다시는 그런 불행이 없다는 것을 진심으로 보장하라는 것이다.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문제가 그 기준이라는 것이다. 양 일간의 NHK 스페셜 프로 속에 한국은 일언반구도 언급되지 않았다. 물론 제목이 중일 전쟁과 중국과의 역사를 보는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니 한국이 끼어들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한국이 무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하여 중국보다 더 심각하고 절실한 집념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이스미 수상의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일본의 일반적인 박수를 받고 있다 이 박수가 그들을 신뢰할 수 없게 하고 있는 것이다. 유력한 차기 수상 아베는 과거의 일본역사가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칼럼
남도일보
2006.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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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연변조선족자치주 해체위기 김철수 광복 61주년을 맞았다. 사람 나이로 치자면 환갑이 되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주변국인 일본과의 독도영유권 문제와 중국의 고구려 역사왜곡 등으로 서로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채 서로 외교적 마찰을 겪고 있다. 특히 중국과는 한 때는 서로 총부리를 겨눈 채 적대국으로 지내왔지만 지난 92년부터는 국교를 수립하고 경제교류 등 우방국으로서 가깝게 지내고 있다. 중국의 동북삼성인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 에서는 재중동포 200여 만명이 고유한 우리 문화를 보존하면서 살아왔고 특히 연길시를 중심으로 용정시, 도문시 등 주변 8개 현으로 구성되어 있는 연변조선족 자치주는 우리글과 우리말을 사용하는 중국속의 한국으로 지난 1952년 설립 이래 54년이란 세월을 존속해왔다. 그런데 지금 연변조선족 자치주에 빨간 불이 켜졌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인구비율이 소수민족 자치주 설치요건인 30%를 겨우 턱걸이 하는 33%까지 떨어진 것을 계기로 머지않아 자치주가 해체될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최근 연변에서 발행되는 중국어 신문 ‘옌벤 천바오’에 따르면 연길시 는 길림성 당국의 계획에 따라 현재의 주도인 연길시와 주변의 8개시·현 구조로 되어 있는 연변조선족 자치주를 해체하고 연길용정도문을 연결하는 일명 ‘연룽투시’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미 연길시장을 책임자로 도시 구조 개편 계획 수립에 들어갔으며 이달 말까지 1차 초안이 마련될 예정이며 지난 3일 용정시도 중국공산당 용정시 당위원회 우샹룽 서기가 주제하는 ‘옌룽투 경제일체화 형세보고회’를 열었고 도문시도 지난 달 25일 “자금과 인원을 총동원, 빠른 시일 내에 옌룽투시 건설을 위한 도문시의 개편 계획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 비율 감소로 인해 도시 모습이 하루가 다르게 바꾸어지고 있으며 정겨운 궁서체의 한글이 위에, 중국어가 아래에 적혀 있던 연길시내의 간판들도 차츰 중국어만 써 넣은 간판으로 늘어만 가고 한족기업인이 투자한 시내의 대형 백화점들은 건물외벽 전체를 아예 중국어 간판만으로 뒤덮어 놓은 실정이다. 4만 제곱평방키로미터 의 면적으로 한국의 절반 크기의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해체는 중국 동북 지방의 우리 민족의 오랜 근거지와 함께 역사를 영원히 상실하는 문제이기에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형편이다. 그리고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위 ‘장백산 공정’의 본격화에 따른 우려는 그동안 중국정부가 치밀한 계획 속에 진행 시켜 온 고구려 및 발해사를 중국의 지방정권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의 기반을 닦기 위해 백두산에 대한 문화적 영유권을 확실하게 해두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중국 길림성 정부는 지난해 8월16일 백두산보호개발위원회를 발족한 후 그동안 연변 조선족 자치주가 맡아오던 백두산의 감독 관리를 빼앗아 위원회로 이관시킨바 있다. 이후 위원회는 중국과학원 등 20개 기관의 1천300여명의 전문가와 학자를 동원하여 백두산 일대에서 답사 및 시찰활동과 함께 세미나와 토론회 등을 개최하며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치밀한 작업을 벌여왔다. 중국은 이미 백두산에 대해 지난 1980년 유네스코의 생물권 보전지역(MAB)으로 지정받았고 86년에는 국무원이 백두산을 국가급자연보호구로 지정하여 관리해왔다는 점을 들어 백두산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백두산 정상과 천지 물가에 한글로 쓰여진 ‘백두산’이란 표지석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용정의 비암산에 있는 일송정 선구자 노래비도, 용정시에 복원되었던 기독교회 역사관과 용두레 우물터도 작년 9월 이후 모두 폐쇄 됐거나 철거되었다. 이제는 우리민족의 성산 백두산이 아니라 중국의 10대 명산중의 하나인 장백산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고 있으며 우리민족의 역사유적지가 하나 둘 말살되어 가고 있어 광복61주년을 맞아 더욱 가슴 아픈 일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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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당신만이라도 달라야 하는 이유 김영관 교수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어서 인지 상식을 지닌 사람들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기가 막히다 싶은 일들이 차츰 만성이 되어서 그럴 수도 있는 일이려니 치부하고 살다 보니 이젠 상식을 벗어난 이가 정상인이고, 정상인이 비 정상인으로 되어 가는 기분이다. 그렇지만 다른 직업의 사람들은 다 부패하더라도 저 자리에 앉은 사람만은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든가, 저 사람마저 흔들리면 우리 사회가 믿고 기댈 마지막 보루가 무너져 버린 것은 아닐까 라는 절망의 순간이 도래한 느낌이다. 이윤 추구가 우선인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야(물론 그들이라고 해서 비리를 저질러도 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설령 비리에 연관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일어탁수, 다시 말해 강물을 더럽히는 물고기 한 마리 정도라는 생각을 우리는 갖는다. 그렇지만 청렴하고 공명정대해야 할 위치에 있어야 할 직종의 인사들이 비리에 연관 되어 구속 수감 되는 장면을 메스컴을 통해 목격하면서 우리가 느끼는 실망감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언젠가부터 서민들 눈에 비친 사법부의 위상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심심찮게 돌았다. 그렇지만 정작 부장 판사를 비롯하여 중견 검사, 변호사들이 줄줄이 구속될 지경에 처한 현실에 그게 결코 유언비어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가까운 변호사로부터 몇 천 만원 댓가 없이 받은 돈이 과연 비리인가, 그게 문제라면 나 이외에도 여럿 있다는 억하심정을 느끼는 사회라면 쓴 웃음이 나온다는 말 밖에 다른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설령 댓가가 없었다 하더라도 공명정대하고 청렴을 요하는 지위에 있는 자는 구설수가 생길만한 일엔, 그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가 국회의원, 장관, 지방자치 단체장, 공정거래위원,감사원 직원 등의 직위에 있는 자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지금까지 그가 살아오면서 비리에 관련이 없었는지를 여러 방법으로 검증하려는 것이다. 때론 국가가, 국민이, 어려운 시기에 처했을 때 그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가 문제 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본다. 예를 들면 산불 나던 날 국무총리가, 물 난리로 온 국민들이 수심에 가득찬 순간에 정치인들이, 필드에 나가 골프를 쳐서 국민의 분노에 그 자리를 물러난 일들이 다 그런 경우들이다. 만약 어느 건설업자가 장맛비 몹시 내리던 날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든 말든 그것은 개인적으로 비난을 받을 지언정 큰 문제 거리가 될 수는 없다. 교육 부총리가 되려는 사람이 논문 부풀리기 구설수에 올라서는 결코 안 되고, 검판사나 고위 경찰이 문제의 소지가 있을 자리에 합석해서 술판을 벌리거나 금전 거래가 오가서도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가히 사회의 마지막 양심의 보루라 할 수 있는 지위의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더욱 더 자신의 옷깃이 흙탕물 튀는 곳 가까이에 서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겸허히 살펴 볼 일이다. 설령 아직까지는 아니지만 앞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을 부적절한 관계 맺기의 상태에 놓여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그곳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먼 훗날에도 존경 받는 공직자로 당신의 이름이 회자 되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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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여의도에서 보낸 일기 -이낙연 의원(민주) 권노갑 고문, “동시통역사 자격시험 보고 싶다” 8월7일 오후 권노갑 전 민주당 최고위원(전 국민회의 고문)을 면회했습니다. 권고문 면회는 꽤 오랜만입니다. 자주 뵙지 못한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권고문을 만났습니다. 권고문은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돼 계십니다. 현대 비자금 문제에 연루돼서입니다. 권고문과 저는 단둘이 1시간 이상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권고문이 말씀을 많이 하신 편이었습니다. 권고문은 지난 십수년 동안 당신에게 닥친 기구한 일들을 주로 회고하셨습니다. 더러는 서운하거나 억울한 일도 적지 않은 듯 했습니다. 그러나 권고문은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미움을 가지면 당신 스스로도 괴롭기 때문에 그 누구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입으로만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닙니다. 권고문의 표정도 매우 평화로웠습니다. 저는 권고문께 드리려고 책 2권을 사서 교도소측에 미리 맡겨 두었습니다. 몇년전 KBS-TV에서 드라마로 방영된 ‘이제마’와 순천에서 자란 인요한씨가 쓰신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이었습니다. 제가 이 책 2권에 대해 설명해 드리자 권고문은 너무도 인상적인,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즘 권고문은 교도소 안에서 날마다 영어사전을 찾아가며 영어책과 영어신문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정대철 열린우리당 고문이 보내주신 원서도 많이 읽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권고문은 “여기서 나가면 영어 동시통역사 자격시험을 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권고문은 1930년생이니까, 한국 나이로 77세이십니다. 그런데 동시통역사 자격시험을 보고 싶으시다니, 어찌 놀라지 않겠습니까. 권고문은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내가 실제로 동시통역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여전히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고 덧붙이셨습니다. 권고문은 저와의 대화에서도 중간 중간 영어를 쓰셨습니다. 자연스럽게 영어가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영어 속에서 살고 계시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권고문의 영어는 단어 선택이 적절하고 발음도 매끄럽게 들렸습니다. 권고문은 젊은 시절에 영어교사로 일하신 적이 있습니다. 김대중의원(전 대통령)의 비서관이 되기 직전인 1959년부터 1962년까지 목포여고에서 영어를 가르치셨습니다. 권고문은 영어와 인연이 깊으신 것입니다. 그래도 권고문의 꿈에 저는 상쾌한 감명을 받았습니다. 77세의 노인이, 게다가 영어의 몸으로 그런 꿈을 꾸시다니…. 이번 면회는 제가 권고문을 위로해 드린 것이 아니라, 권고문께서 저를 격려하신 결과가 돼버렸습니다. 권고문의 말씀은 그만큼 신선한 충격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동시통역사 자격시험을 보고 싶다는 권고문의 꿈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권고문께서 사면 복권돼야 합니다. 권고문은 당뇨 합병증을 앓고 계십니다. 발톱이 모두 빠진 일도 있습니다. 수감생활도 벌써 3년6개월째입니다. 이제는 국가가 선처할만도 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77세의 고령에 당뇨 합병증을 않고 계시는데다 수감생활도 하실만큼 하셨으니까요. 더우기 권고문은 당신에 대한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판결이 잘못됐다고 확신하고 계십니다. 권고문은 김수환추기경께 세례를 받으시면서도 이 말씀을 드렸다고 합니다. 권고문 뿐만이 아닙니다. 국가의 관용을 기다리는 딱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국민화합을 위해서라도 이번 광복절 특사가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것이 좋겠다고 믿습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 노무현대통령께도 이런 취지의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노대통령의 관대한 결정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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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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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 느림, 혹은 2등이 아름다운 이유 한강희 교수 “우리는 2등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왜 고객이 우리 회사를 이용해야 할까요. 2등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광고계의 전설로 남아 있는 이 카피 문구는 렌터카 회사인 에이비스사가 시장 점유율 50%를 상회하는 1등 허츠사를 따라잡기 위해 내놓은 전략적인 비교광고다. 에이비스가 빌 번벅이라는 신예 카피라이터를 고용하여 포지셔닝 전략을 감행한 것이다. 이 광고로 인해 무명의 카피라이터는 일약 광고계의 스타로 부상했고 부동의 1위를 고수했던 허츠사는 에이비스의 포지셔닝 전략으로 다소 휘청거렸다. 두 렌터카 회사의 공방전은 한동안 진행되었고, 에이비스는 동종업계 군소 회사들을 저만치 따돌리고 허츠와 함께 렌터카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나는 종종 학생들에게 ‘2등은 1등보다는 인간적이고, 3등보다 더 노력하는 양수겸장의 등수‘라며 2등이 아름다운 이유를 강변한다. 그럴 때마다 학생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아, ’말의 사치‘ 정도로 여기지만 우정 진지하게 사족을 붙인다. 많은 1등들은 오로지 공부만을 위해 달려가지만, 2등은 이곳저곳에 귀 기울이기 때문에, 혹은 부족한 듯한 허기를 느끼기 때문에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시야가 확보된다는 논리를 편다. 이를 해찰이나 잡념 정도로 치부해도 무방하겠지만, 여하튼 관심과 배려는 물론 분발심을 가질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굳이 인생사의 승부를 이분법적으로 대입하자면 단순히 1등과 2등이 아닌 성공과 실패, 빠름과 느림 등으로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자조 섞인 얘기로 내가 몸담은 직장을 여기에 대입한다면, 1등은 수도권대-국립대-종합대가 될 것이고, 2등은 지방대-사립대-전문대에 해당할 것이다. 물론 2등인 상황에서 한계와 소외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비관적이어야만 하는가. 1등이 최상의 선택이지만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2등이라고 해서 썩 나쁘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2등이 갖는 특유의 장점을 지혜롭게 활용하고 합리적으로 시각 조정을 한다면 1등이 느끼지 못하는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부족한 듯하게 2등이라 생각하며 사는 것은 마음의 여유이자 지혜다. ‘느림’을 선호하면 차분하게 읽고 싶은 책읽기를 할 수 있고, 마음이 허락한대로 최근 베스트셀러나 블록버스터 영화를 즐길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위해 일과시간 중 한 시간가량 더 비지땀을 흘릴 여유도 있다. 많은 ‘1등 부류’가 빡빡하게 짜인 일정에 맞춰 고속도로를 질주해야 하지만 국도를 따라가며 시냇물이 여름을 속삭이는 소리, 빠가사리가 돌틈으로 숨는 모습, 강물을 따라 올망졸망 날갯짓하는 해오라기 떼를 관찰할 수 있다. ‘2등‘과 ‘느림’이 부여한 즐거움은 도처에 널려 있다. 간혹 2등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특정 국가가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거나, 16강 진입에 실패한 것도 굳이 따지자면 2등에 머무른 경우다. 그러한 ‘2등적’ 성과로 인하여 다음 기회엔 4강을 기약할 수 있고 우승까지 넘볼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증명하지 않았는가. 최선을 다했지만 머무르게 된 2등과 그 자체가 실패인 좌절과 체념은 다르다. 이들은 꼴등이다. 성적이나 대학입시를 비관하여 자살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아프리카에 신발을 팔기 위해 보낸 두 영업사원 중 한 사람은 ‘신발을 신은 사람이 없어 무한시장’이라 판단했지만, 다른 한 사람은 ‘전혀 가능성이 없는 지역’이라 판단하고 좌절했다. 벼룩은 1미터 이상 솟구칠 수 있지만 비커에 뚜껑을 닫은 몇 시간 후면 비커 높이 정도에서 체념한다고 한다. 2등이 진정 아름다운 이유는 최선을 다해 얻은 결과로서,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지혜로움을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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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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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나의 타고난 고산고수(苦山苦水) 이글의 제목을 ‘하늘이 준 나의 고산고수’라 할까 아니면 ‘저주받은 나의 고산고수’로 할까 망설이다가 두 제목을 다 같이 접어두기로 하였다. 두 제목이 과장된 느낌을 주면서 다소 자학적이고 치기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하늘이 준다는 것은 관례로는 긍정적으로 큰 것을 가진 사람에게 쓴다. 가령 하늘이 준 재주, 하늘이 준 힘, 하늘이 준 복 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하늘이 준 요산요수는 혹 말이 될는지 몰라도 하늘이 준 고산고수는 매우 위선적이고 자학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사실은 최근 나는 산행을 숙명적인 것으로 느끼고 있다. 그것도 복 받은 느낌 보다는 무엇인가 복하고는 다른 큰 힘에 끌린다는 느낌 때문에 숙명적이라든지 저주 받았다든지 하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나는 산에 올라 산이 즐겁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건강을 위해서 간다는 공리적인 생각도 하지 않는다. 언제나 힘들다는 생각과 같이 나의 명제 고산고수를 생각한다. 무등산만 그것도 대개는 같은 코스만 오래 다니다 보니 산을 버릇으로 간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50년을 다닌 그 산 그 길이 나이 탓인지 요즘은 고산고수의 느낌이 더욱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모진 숨을 몰아쉬면서 혼자 오르다보면 그걸 지켜보면서 안됐다 싶었든지 사람들로부터 잘 쉬어가라는 권을 받는다. 그 때마다 나는 안간 힘으로 쉬면 모터가 꺼져 버린다고 변명하고 지나간다. 산에서 나는 요산요수가 아니라 고산고수가 버릇이 되어 있다. 일행이 있는 경우 부득이 같이 쉬는 동안에도 자리에 앉지 않는다. 서서 일행의 출발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 짓으로 내가 특별히 의지력을 보이거나 건강을 과시한 것은 아니다. 고개를 오를 때 내가 얼마나 처참할 만큼 숨을 몰아쉬는 가는 일행들은 이미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나의 이웃이기를 은근히 피하는 눈치다. 600만이 바다로 간 지난 주말 나는 혼자서 무등산에 올랐다. 감기기로 병원에 먼저 들렀다가 간 바람에 평상시보다 늦은 탓인지 해는 이미 중천에 있고 그 열기로 산은 기슭에서부터 힘들었다. 혼자 산에서 힘들 때 잡념은 좋은 약이 된다. 잡념은 버려야하는 것으로 배웠고 그 배움에 길들여 있지만 모르는 소리 알고 보면 잡념처럼 달면서 좋은 약이 없고 특히 힘든 산길에서 그보다 더 좋은 친구가 없다. 그 잡념 가운데는 미운 놈들이 죽어나가는 수도 있고 예쁜 것들이 수도 없이 주위에 모이는 수도 있다. 잡념이 한참 신이 나면 붉은 악마들이 날 위하여 환호하기도 하고 내가 UN 총회에서 기립 박수를 받는 일도 있다. 잡념 가운데 신나는 것은 이미 버린 과거의 쓰레기가 살아나는 일이다. 81년 여름 옥스퍼드 연수 중 워즈워드의 명작의 고향 호반을 찾아 간 적이 있다. 명시 ‘무지개’를 쓴 그의 생가 다부 코티지(비들기 집)을 방문하고 그 시를 쓴 책상, 그 펜을 보고 친구가 그렸다는 그림 무재기를 보고 감동하다가 일행에서 낙오하여 급한 바람에 잘못 어떤 문을 밀었다가 경종이 울렸다. 그것도 사정없이 울렸다. 폐쇄된 문이었던 모양이다. 어찌 소리가 크던지 본능적으로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도망쳤던 생각이 난다. 나는 그 때 내가 얼마나 비겁한 놈인가 스스로 발견하고 그때의 자각증세는 아직 병으로 남아 있다. 같은 과정의 한 주말 솔스벨리 여행 때 솔스벨리 성당에서 경솔한 행동으로 마로니에 나무 가지에 매달렸다가 그 가지가 부러지는 바람에 황급히 그 자리를 도망쳤던 비겁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자리에는 그 과정을 같이 한 윤삼하 시인이 있었다. 일을 저 질러놓고 당황해 하는 나 그리고 그 자리를 비겁하게 도망치는 나를 보면서 가장 가까운 친구의 하나인 윤삼하가 속으로 얼마나 나를 비웃을까 생가하면 스스로 화가 난다. 나는 내가 만든 말 고산고수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 고산고수의 산행 중에 되살아나는 쓰고 단 회상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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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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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파일]출범부터 흔들리는 ‘兩朴號’-오치남/사회부장 최근 들어 광주·전남 지역사회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박광태(朴光泰) 광주시장과 박준영(朴晙瑩) 전남도지사가 너무 독선적이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민선 4기 출범이후 관용과 아량보다는 아집에 치우친 나머지 안팎으로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광주=박광태 공화국’, ‘전남=박준영 공화국’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이들의 시각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우외환에 휩싸인 것은 사실이다. 외부에서 보기에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시·도지사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공언하고 있으나 불협화음이 들려왔다. 나주에 들어설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 건설이 대표적이다. 전체 개발면적과 중심축 이동 등을 놓고 보여줬던 ‘합의’, ‘이견’, ‘동상이몽’,‘최종 합의’ 등의 과정은 시·도지사의 말과 맞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엔 전혀 이견이 없다’는데도 말이다. 갖가지 추측도 나왔다. 시·도지사에게 아부하기 위한 실무진들의 ‘기(氣)싸움’. 보이지 않는 민주당의 ‘헤게모니 쟁탈전’ 등등….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박 시장의 경우 열린우리당 광주출신 국회의원들과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7명의 국회의원들은 지난달 21일 노벨평화상수상자 광주정상회의 국고지원과 관련, “박 시장이 허위사실을 날조해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면서 광주지검에 고소장을 냈다. 이에 앞서 열린우리당 중앙당은 지난 5월 박 시장이 R&D(연구·개발)특구 지정과 관련, “5·31지방선거 과정에서 허위사실을 유포, 광주지역 국회의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발한 바 있다. 이에 맞서 박 시장도 지난 6월 말 조영택 열린우리당 광주시장 후보가 선거기간 동안 지역 일간지에 허위사실을 광고로 실어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고소·맞고소로 이어지는 박 시장과 여당 국회의원간 앙금이 가라앉을 조짐을 보이지 않자 시민들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야당 소속 시장과 여당 소속 의원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수록 광주 현안사업이 꼬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와 지역의원간 정책간담회마저 삐걱거리고 있다니 걱정스럽기만 하다. 서로가 나쁜 감정을 털고 상생의 모습을 보여주길 대다수 시민들은 바라고 있다. 특히 재선에 성공한 박 시장이 평소 소신대로 ‘큰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에 오른 박 지사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출범이후 조직개편안 등을 놓고 도의회와의 이견 때문에 고위직 인사를 하지 못하는 등 도정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 처럼 시·도지사가 코너에 몰린 것은 일부 국회의원이나 광역의원들의 탓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나란히 재선고지를 점령한 시·도지사가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1인 보스 행정’을 펴고 있다는 데 비중을 두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 광주시의회의장 개입설 등이 박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줬다는 지적이다. 박 시장과 박 지사의 의욕은 넘치고 있다. ‘1등 광주, 1등 시민’, ‘희망과 번영의 전남’ 건설을 위해 밤낮으로 뛰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과의 엇박자는 국고 확보와 지역현안사업 추진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제 두 사람은 ‘지역의 리더’이자 ‘어른’으로 ‘포용과 희망의 정치’를 해야 한다.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까지도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각계 각층의 다양한 화음을 조율하는 명지휘자가 돼야 할 것이다. 민선 3기 4년간 지구 8바뀌에 해당하는 32만2천732㎞를 돌면서 113개 외국기업으로부터 140억5천600만달러의 투자를 이끌어낸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를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o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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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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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알찬 휴가와 여행에 대한 단상-함수남 회장 지금 피서가 한창이다. 주 5일 근무에 휴가까지 보태서 더러는 해외로 또 더러는 아이들의 성화를 핑계삼아 바다로, 강으로, 산으로 하나 같이 떠나다보니 고속도로는 연일 만원사례를 이루고 강산은 피서인파로 떠들썩하다. 말이 피서지 이건 숫제 피난길처럼 고생이 말이 아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자칫 한 눈이라도 팔았다간 큰일이다. 아이를 잃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생각만해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무거워진다. 연례행사처럼 방학을 하면 아이를 데리고 해외여행은 한번쯤 해야 하고 바닷가에도 다녀와야 하고. 이런 공식적인 행사치레가 아닌 진정한 휴가를 위해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야외로 소풍을 가거나 놀러가거나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이 불판과 삼겹살이다. 또 고기를 먹었으니 입가심할 술과 음료수는 기본이고 과일이며 과자며 챙길 것도 정말 많다. 꼭 먹기 위해서 야외에 나가는 것 같고, 생일에 잘 먹자고 일주일을 굶었다는 옛 사람을 보는 것 같다. 어디 그것뿐인가? 어느 한 구석엔 화투도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몇 개나 되는 물건 꾸러미 속에 책은 한 권도 들어 있지 않다. 배부르게 먹고 마시고 화투치고. 이게 우리의 여가문화다. 이렇게 해서 스트레스는 해소될지 모르지만 언제까지 이런 피서를 하며 휴가를 보낼 것인가? 몇 년 전 유럽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퍽 인상적이었다. 일요일에 근처 공원엘 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풀밭에 작은 담요나 깔 것을 깔고 눕거나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책을 읽다 더러는 일광욕을 하기도 하고, 더러는 친구끼리 작은 소리로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는 정경이 그렇게 편안하고 여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바구니에서 빵이나 간단한 먹을 것을 꺼내 요기도 하면서 몇 시간이고 책을 읽는 것이다. 시내버스나 지하철, 기차를 타도 그들은 자리에 앉으면 제일 먼저 책을 꺼내 들었다. 그들의 왕성한 독서열이 그들의 나라를 선진대국으로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 풍토를 만든 그들이 정말 부러웠다. 동네에서 서점이 사라진지 꽤 오래되었다. 이제 잡지 한 권을 사려 해도 시내까지 나가야 한다. 하긴 요즘은 인터넷 서점을 통해 집에 앉아서도 책을 사볼 수가 있긴 하지만 서점에서 이 책 저 책 고르는 쏠쏠한 재미를 맛 볼 수는 없다. 사회가 복잡다단해질수록 독서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으면 좋으련만 우리 주위에서 서점이 사라짐으로 책을 접할 기회가 더 멀어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지금쯤 해외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배낭 속에 여행안내책자만 챙길 게 아니라 내 영혼을 살찌울 수 있는 책이나, 자기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어떤 책이라도 넣어가서 틈틈이 읽었으면 좋겠다. 혹 초·중등학생인 자녀와 함께 해외여행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렇게 했으면 어떨까 싶다. 우선 여행하고 싶은 나라를 선택할 때 자녀와 함께 하라는 것이다, 막연하게 다른 나라를 구경시켜 준다는 생각을 버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철저하게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기왕 자녀를 위한 여행이라면 여행의 목적을 분명히 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나라를 택한 이유와 목적을 생각하고 그 여행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지를 따져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 그리고 지리적 여건과 주변 나라들과의 관계, 더 나아가 화폐와 환율까지를 자녀와 함께 공부를 한 뒤 출발을 한다면 그 여행은 자녀에게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 될 것이고, 세계사나 지리 공부도 겸하게 되는 이중 삼중의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녀로 하여금 외국인과 직접 대화를 해보게 하고 물건도 직접 고르고 사게 해서 외국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특히 자녀와 함께하는 외국여행이 그냥 훑고 스쳐가는 여행이 아니길 바라며, 보다 많은 독서를 통해 마음의 여유를 한껏 누려보는 알찬 휴가와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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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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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캉스 문화, 이대론 안됩니다-정형택 시인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본격적인 바캉스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에는 바캉스니, 피서이니 하는 말들은 돈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떻습니까. 이제 바캉스라는 단어는 생소하고 낯설거나 사치스러운 어휘가 아닌듯 싶습니다.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는 일상생활 속에 평범한 휴식공간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지요. 지방자치 이후 경쟁이라도 하듯이 각 자치단체는 자기 지역의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당연한 사례라고 여겨집니다. 피서철을 맞은 요즘들어선 더욱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 지역의 빼어난 풍광을 알려 관광객을 유치하고 이를 통해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꾀하려는 지자체들의 눈물겨운 의지(?)로 풀이 됩니다. 그러나 피서철만 되면 되풀이되는 몇 가지 고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 이러한 잘못된 관행들은 바로 잡아야져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바가지 상혼과 교통 혼잡, 피서객들의 무질서한 행동 등이 그러한 것들이지요. 아무데나 주·정차를 하는 파렴치한 행위이며,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경적의 소음 공해는 이제 사라져야할 것들입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도로 한복판에 차를 멈추고는 멱살을 잡고 큰 소리로 싸우는 일도 허다합니다. 피서지를 찾는 일은 즐거워야 합니다. 좋은 곳에 좋은 기분으로 가족과 함께 하는 나들이니 만큼 서로 양보하며 이해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투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마음에서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큰소리로 다투고 싸우는 것은 일방의 잘못이 아니라 쌍방의 잘못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양보를 했는데도 대어들면 더 양보해서 상대가 겸연쩍어하는 모습이 되도록 너그럽게 베풀어 봅시다. 양보의 미덕은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입니다. 그 전통이 식어지면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움을 잃는 것입니다. 피서보다 더 중요한 우리의 정신문화가 이렇게 땅에 떨어져서 퇴색한다면 우리는 후손에게 물려줄 것이 없습니다. 어떤 지역에 있는 피서지는 제대로 된 안내표지가 없어 찾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관련 관청으로 전화 문의를 하면 그다지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흘러나올때면 더욱 기분이 상하기도 합니다. 피서길의 교통 혼잡, 관련 관청의 무성의한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소박하고 친절한 시골 인심이 있어 천만 다행스럽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좀 더 문화국가로, 문화국민으로 가는 길에 이해와 양보의 미덕으로 동참해보자는 제안을 드려봅니다. 가족들과 함께 떠나는 피서길에 이해와 양보를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교통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는 일상에서 이해와 양보만큼 아름다운 마음과 자세는 없습니다. 가정에서부터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이런 자세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터전을 우리 어른들이 앞장섰으면 합니다. ‘먼저 가시지요.’, ‘아니, 먼저 가시지요.’ 하며 미소를 머금고 손짓 한 번 저어주면 무슨 시비가 있을 것이며, 무슨 교통 혼잡이 있을 것입니까. 더 이상 도로나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일로 불미스럽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해봅시다. 그렇게 되는 날, 올 여름 우리의 여행길은 더욱 즐거울 것입니다. 일상의 즐거움은 곧 삶의 에너지가 되어 가정과 직장은 물론 국가·사회의 발전에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칼럼
남도일보
2006.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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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말 잘하기 글 잘쓰기의 비법 한강희 교수(문학평론가, 도립 남도대학) 바야흐로 ‘표현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말과 글이 도구가 아니라 정신과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해가 미덕이었던 시기가 ‘읽기와 듣기’ 위주 교육 행태였다면 새로운 세기 들어 언어 교육의 한 흐름은 상대방을 직접 설득하는 ‘쓰기와 말하기’로 지칭되는 표현 교육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2008년 대학입시부터 논술·작문의 비중이 한층 강화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최근 들어 대학 내에도 글쓰기 열풍이 일고 있다. 영어(TOEIC, TOEFL), 중국어(漢語水平考試), 일본어(JPT)열기에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는 형국이다. 일부 명문대들은 인문·사회·이공학 계열 단위로 글쓰기만을 전담하는 전임교원을 채용, 아예 해당 대학의 논술입시 부문을 담당케 하는 추세다. 많은 대학들은 기초교양 필수과목으로 ‘작문과 논술’, ‘논리적인 글쓰기’, ‘글쓰기의 이해와 표현’, ‘인문적 글쓰기’, ‘과학적 글쓰기’라는 교과목을 만들어 인력과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출판가에도 글쓰기와 관련한 단행본이 우후죽순격으로 쏟아지고 있다. 관련서들은 ‘정석과 급소’, ‘전략과 비법’, ‘박사’, ‘지름길’, ‘완전정복‘ 등 그럴듯한 이름을 두르고 독자를 향해 금세라도 논술 실력이 부쩍 나아질 것이라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은 단순정보를 많이 암기하는 전근대적 행태보다는 급변하는 흐름을 재빨리 간파하여 최적의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행태라야 한다. 새로운 정보를 부단히 섭취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산지식’을 만드는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지식인상을 요구한다. ‘공부길’에 들어선 사람이나 각계각층에서 일하는 사회인들에게 글쓰기가 하나의 현상으로 부각된 것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지식정보화사회에서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쓸 수 있는 능력은 곧바로 타인과의 원활한 소통을 의미하며, 이는 입시와 취업, 승진과 영전, 사업의 확장은 물론이고 전문지식의 활발한 사회환원적 생산력으로 직결된다. 프랑스에서는 고교 4년 동안 배운 철학 교과를 중심으로 바칼로레아 시험을 치르고 있고, 미국에서도 많은 대학들이 논술능력을 우열을 가르는 잣대로 들이대고 있다. 그런가하면 각급 고교에서도 토론대회, 논리적인 말하기 대회를 열어 우수자에게는 대학입시 특전이 주어지기도 한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지도자나 성공신화를 이룬 자들은 대체로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는 능력을 구비하고 있다. 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논술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세상과 타인에 대해 이해력과 표현력, 종합적 분별지(分別智), 상상력과 창의력을 근간으로 대화와 소통을 게을리 하지 않은 자들이다. 글쓰기와 말하기에도 비법이 있긴 하다. 분명히 정석과 급소가 있다. 정석과 급소라는 글쓰기의 비법을 알면 논술이 보이고 작문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우선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 띄어쓰기 규정을 철저히 이해해야 한다. ‘금새’·‘치루다’·‘내노라’·‘삼가하다’를 ‘금세’·‘치르다’·‘내로라’·‘삼가다’로, ‘윈도우’·‘비젼’·‘까페’를 ‘윈도’·‘비전’·‘카페’로 바로 잡을 수 있어야 한다. 문장의 경우는 주어와 동사를 일치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글쓰기를 전업으로 삼는 교수들도 실수를 많이 하는 부분이다. 주어와 동사의 거리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으면 문장에 윤기가 배어날 수 있다. 단문을 위주로 하되 중문과 복문을 섞어가는 방식이 좋다. 읽고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되도록이면 많이 써보고, 교정부호를 사용하여 많이 고쳐보아야 한다. 몇몇 사례를 적시했지만 글쓰기의 ‘정석’은 많이 생각하고, 읽고, 쓰는 것이다. ‘급소’란 잘못 쓸 우려를 털기 위해, 역으로 고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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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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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공초 오상순 선생 50년 전의 일이 오늘의 일처럼 생생하게 회상되는 것은 그 일이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기를 감동시켜야 하고, 그 경험이 50년을 이기고 살아남은 보편성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그 경험과 보편성으로 하여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의 호기심에 불을 지펴야 한다. 그리하여 그 불은 다시 감동으로 주변에 번져 나가야 한다. 얼마 전 공초 오상순 시인을 기리는 공초 문학상 시상식에 참여하면서 오상순을 왜 잊을 수 없는가 생각하고 50년 전의 오상순 시인에 대한 나의 회상이 감동으로 남아 있는 이유를 생각하였다. 공초 오상순 시인은 좋은 시로 후세에 남은 시인이 아니고 그 전설 같은 기인적 생활로 오늘의 후학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한국 시문학사전이나 문학인사전 등에 보이는 그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읽어본 사람은 그의 명성에 비하여 너무나도 엉뚱한 느낌을 받는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아시아 마지막 밤 풍경-아시아의 진리는 밤의 진리다’ 라든지 ‘아시아의 여명‘ 이라든지 ’허무혼의 선언’ 같은 시들은 필요없이 너무 길고 생경하고 너무 관념적이어서 시인 오상순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지기 일쑤이다. 그리고도 우리 시단에는 그만큼 사랑을 받는 시인이 흔하지 않다. 한국전 전후 의용군에 다녀온 뒤 방황하던 김수영이 명동의 거사 공초를 찾아 간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명동에서 충무로로 연결되는 양담배나 미제 껌 그리고 외국 잡지를 파는 골목에는 젊은 시인들이 출입하는 두 개의 명소가 있었다. 그 하나는 음악 감상실 ‘돌체’였고 또 하나는 거사 오상순의 아지트 다방 ‘청동’ 이었다. 공초는 여기에서 춘하추동을 가리지 않고 조석으로 주변에 언제나 여학생이나 문학청년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와의 대화는 언제나 조용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크게 웃는 일도 없었고 토론하거나 주장을 펴는 장면도 아니었고 대개는 공초의 말을 듣는 자리였다. 공초는 말소리가 작았다. 그러나 그의 민둥 머리와 부리부리한 눈 그리고 그의 말 속에는 독단과 위엄과 카리스마가 있었다. 주제는 언제나 허무였고 무저항이었고 공(空)이었고 초월이었고 무소유였고 관념적인 사상이었다. 시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문명비평적인 것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화제가 있었고 호기심이 있었지만은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거기에는 침묵이 없었고 사색이 없었고 고독과 절망 그리고 시대가 없었고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시가 없었다. 시 이상의 세계였다. 김수영이 그에게서 답을 얻지 못한 까닭이었을 것이다. 그의 주변에 사람이 모인 것은 그의 인간적 매력 때문이었다. 그가 전하고자하는 메시지와 그를 전달하는 화술에 진실이 있었고 매력이 있었고 자연인으로서 풍기는 품위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매력 가운데 으뜸은 그의 무소유였다. 그는 집이 없었고 가족이 없었고 일상생활이 없었고 시나 시인 또는 예술에 대한 집착이 없었다. 그는 명문에서 태어나 일본 도시사대학 종교학과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출가하여 선원 등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조계사 승방이 거처였다. 그렇다고 불교를 포교한 적도 없었다. 그는 철저하게 기인이었다. 그를 구도시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가령 구상 시인이 그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구도하는 장소를 속의 장소인 다방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하여 변호가 필요하다. 공초를 구도의 시인이라고 정의한 말에 대하여 내가 동의를 꺼리는 까닭이다. 공초는 속(俗)을 즐기는 사람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다만 그의 속이 육욕 즉 여자, 물욕, 명성 등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순수하고 원초적인 속 그 자체 즉, 가령 가난이라든지 무식, 무명, 무력이라든지 하는 자연 그대로의 말하자면 승속이 하나인 철저하게 무소유의 세계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생전에 시집 등 책을 내는 일이 없었다. 그가 남긴 것은 ‘청동산맥’이라는 싸인 북으로 그를 찾은 사람들의 낙서뿐이다. 그는 디오게네스를 연상시키는 사람이었다.
칼럼
남도일보
2006.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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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바캉스 문화, 이대론 안됩니다- 정형택 시인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본격적인 바캉스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에는 바캉스니, 피서이니 하는 말들은 돈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떻습니까. 이제 바캉스라는 단어는 생소하고 낯설거나 사치스러운 어휘가 아닌듯 싶습니다.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는 일상생활 속에 평범한 휴식공간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지요. 지방자치 이후 경쟁이라도 하듯이 각 자치단체는 자기 지역의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당연한 사례라고 여겨집니다. 피서철을 맞은 요즘들어선 더욱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 지역의 빼어난 풍광을 알려 관광객을 유치하고 이를 통해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꾀하려는 지자체들의 눈물겨운 의지(?)로 풀이 됩니다. 그러나 피서철만 되면 되풀이되는 몇 가지 고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 이러한 잘못된 관행들은 바로 잡아야져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바가지 상혼과 교통 혼잡, 피서객들의 무질서한 행동 등이 그러한 것들이지요. 아무데나 주·정차를 하는 파렴치한 행위이며,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경적의 소음 공해는 이제 사라져야할 것들입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도로 한복판에 차를 멈추고는 멱살을 잡고 큰 소리로 싸우는 일도 허다합니다. 피서지를 찾는 일은 즐거워야 합니다. 좋은 곳에 좋은 기분으로 가족과 함께 하는 나들이니 만큼 서로 양보하며 이해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투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마음에서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큰소리로 다투고 싸우는 것은 일방의 잘못이 아니라 쌍방의 잘못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양보를 했는데도 대어들면 더 양보해서 상대가 겸연쩍어하는 모습이 되도록 너그럽게 베풀어 봅시다. 양보의 미덕은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입니다. 그 전통이 식어지면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움을 잃는 것입니다. 피서보다 더 중요한 우리의 정신문화가 이렇게 땅에 떨어져서 퇴색한다면 우리는 후손에게 물려줄 것이 없습니다. 어떤 지역에 있는 피서지는 제대로 된 안내표지가 없어 찾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관련 관청으로 전화 문의를 하면 그다지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흘러나올때면 더욱 기분이 상하기도 합니다. 피서길의 교통 혼잡, 관련 관청의 무성의한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소박하고 친절한 시골 인심이 있어 천만 다행스럽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좀 더 문화국가로, 문화국민으로 가는 길에 이해와 양보의 미덕으로 동참해보자는 제안을 드려봅니다. 가족들과 함께 떠나는 피서길에 이해와 양보를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교통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는 일상에서 이해와 양보만큼 아름다운 마음과 자세는 없습니다. 가정에서부터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이런 자세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터전을 우리 어른들이 앞장섰으면 합니다. ‘먼저 가시지요.’, ‘아니, 먼저 가시지요.’ 하며 미소를 머금고 손짓 한 번 저어주면 무슨 시비가 있을 것이며, 무슨 교통 혼잡이 있을 것입니까. 더 이상 도로나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일로 불미스럽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해봅시다. 그렇게 되는 날, 올 여름 우리의 여행길은 더욱 즐거울 것입니다. 일상의 즐거움은 곧 삶의 에너지가 되어 가정과 직장은 물론 국가·사회의 발전에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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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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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파일 ] 불륜을 조장하는 사회-김선기/ 문화생활부장 TV 아침드라마를 시청하기가 민망스럽다고들 한다. 특히 요즘은 여름방학 기간이라 아이들이 집에 있어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현재 지상파 TV 3사의 아침드라마는 ‘강이 되어 만나리’( KBS1), ‘그 여자의 선택’( KBS2), ‘이제 사랑은 끝났다’(MBC), ‘사랑하고 싶다’(SBS) 등 4편이 방송되고 있다. 이들 아침드라마는 하나 같이 연하남과의 사랑의 도피나 첫 사랑과의 재회 등의 소재로 결혼생활에 권태를 느끼는 주부들에게 판타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같은 시시콜콜한 소재의 아침드라마는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지금까지의 아침드라마는 대부분 남편의 외도나 아내의 일탈, 출생의 비밀, 사랑의 배신과 약탈, 가난과 한의 시대 되돌아보기 등이 ‘고정 메뉴’이다. 근친혼만 아니면 다 된다는 식의 사랑관과 결혼관이 어떻게 버젓이 아침 지상파를 탈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외의 스토리도 뻔하다. 며느리에게 유독 냉정하고 시집살이 시키는 것을 당연시하는 시어머니 등 드라마 속 여성의 적은 오직 여성뿐이라는 점, 신분이 결혼의 유일한 조건임을 강조하며 문화적 소양이나 인간 됨됨이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 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TV 아침 드라마에는 격렬하고 극적인 설정만 있을 뿐, 캐릭터가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힘과 외부로부터의 자극이나 밖으로 향한 시선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이 우리나라 드라마의 한계이다. 이처럼 반사회적이고 반인륜적인 내용의 드라마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제작진이 시청자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얄팍한 상혼에 매몰되어 시청률을 올린다 치자, 그래서 남는 게 무엇인가. 물론 높은 시청률은 타 방송과의 차별화로 광고료 수익과 직결됨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정서를 훼손시키면서까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것은 사리에 맞지않는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방송은 사회의 거울이며 보이지 않는 힘의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 때문에 방송인들의 말 한마디나 드라마 속의 장면 하나하나에 사회적 책임이 뒤따르는 건 당연하다. 특히 아침드라마의 주시청자는 주부들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춰 볼 때 아직까지는 주부들이 자녀들의 교육을 일정부분 떠맡고 있는 추세이다. 어느 여성학자는 ‘여성이 바로서야 가정이 바로서고, 나아가 국가와 사회가 바로선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곱씹으면 ‘여자는 곧 사회의 중심’이란 말로 풀이된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말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가정적으로나 국가·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주부)들에게 가치관의 혼란을 줘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사회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도탄의 지경에 빠져있다. 정치가 그렇고, 사회가 그렇고, 교육이 그렇고, 문화 또한 그러하다. 19세기에나 통용될 법한 불륜 소재의 드라마는 이제 막이 내려져야 한다. 사회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21세기형에 맞는, 우리의 생활에 유익한, 삶의 지혜가 담겨진 드라마가 아침을 열고, 하루를 채워야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교육문제나 입시, 자녀 군대, 재테크 등에 관심이 절박하다. 이제 방송문화도 시대의 흐름을 읽어낼 때이다. 하염없이 불륜의 판타지만을 그리고 있는 TV 제작진들에게 사회로 눈을 돌려줄 것을 권하고 싶다. /kim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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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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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난리 경험과 재해예방-형광석 교수 여름철에 필자는 큰비가 온다는 기상예보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한다. 물난리 나지 않고 무사히 큰비가 지나가길 마음속으로 빈다. 이렇게 된 데는 남다른 경험 때문이다. 물난리 경험이다. 1989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영산강 유역에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 것처럼 엄청난 비가 내렸다. 내가 살던 영산포 주변의 그 넓던 강도 홍수로 가득찼고 다리 상판까지 물이 닿을 정도였다. 결국 수압을 이기지 못했던지 강둑의 일부가 터져버렸다. 세찬 강물이 집 천정까지 닿아 휩쓸고 지나갔다. 영산포 역전을 비롯한 그 일대가 침수되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당시 상당히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다쳤다. 온갖 살림살이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필자는 공부하던 시절이라 재산이라면 책과 소형컴퓨터가 전부인데, 모두 오물로 가득한 흙탕물에 젖어 버려 아무짝에도 못쓰게 되어버렸다. 지금도 그때 그늘에 잘 말려 책장에 꽂아놓은 책 몇 권을 가끔 볼 때면 당시의 분노와 참담하고, 허탈한 심정이 되살아난다. 매년 전국적으로 곳에 따라서 크고 작은 물난리가 계속되고 있는데, 금년 7월의 태풍 ‘에위니아’와 물폭탄이라 할 정도의 집중호우로 수도권과 강원지역이 겪은 물난리는 필자가 경험한 것보다 훨씬 큰 것으로 생각된다. 18개 시·군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으니 말이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이재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망가지고, 집도 없어진 이재민. 필자의 경험으로 보건대, 지금 계절이 여름이라 덥다하지만 수해 현장에서는 왜 그리 시간이 잘 가는지 금방 찬바람이 불어온다. 관계 당국자들의 잰 발걸음으로 찬바람이 불기 전에 삶의 터전이 이른 시일 내에 복구될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원하는 심정이다. 필자가 듣기에 이번 7월의 물난리로 강원지역에서만 입은 재산피해액이 1조 262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재해복구비용은 통상 피해액의 2배로 추정한다고 하니까 강원지역만 한정해도 재해복구비용은 2조 500억원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요즘 사고가 나면 그 피해액의 규모가 하도 크기 때문에 그 무게를 실감하기 쉽지 않은데, 2006년도 우리나라 일반회계 예산이 약 145조원인 점에 비추어 보면, 아마도 금년 7월의 물난리에 따른 전국의 피해를 복구하는데 들어갈 비용은 일반회계 예산의 2% 수준은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적으로 연간으로 치면, 각종 자연재해의 복구비용이 우리나라 살림살이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할 것인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이제 각종 재해는 무조건 대형이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한다. 그동안 문명의 발전과정에서 자연을 무시하고 심지어 적대시한 결과 모든 자연조건이 변했기에, 우리나라 기후도 온대성에서 아열대성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기에, 어떤 형태의 재해가 일어날지 상상할 수 없다. 향후 발생하는 자연재해는 그동안의 경험과 인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재해 예방이 최선이다. 우리의 재해예방에 대한 인식과 대응도 참여정부가 즐겨 쓰는 말로 하자면 혁신해야 한다. 국토가 해수면보다 더 낮은데도 작지만 부강한 나라인 네덜란드가 거대하고 드넓은 둑 위에 도시를 건설하고, 둑과 둑 사이에 자연스럽게 운하를 만들고, 그것들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을 본받아야 한다. 말하자면 재해예방사업은 애초에 그 결과물이 문화자원으로, 관광자원으로도 활용될 수 있도록 기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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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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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필 위원장 5·31 지방선거 직후 ‘민주당의 나아갈 길’에 대해 물은 한화갑 대표에게 김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었다. “국민이 원하는 바에 따라서 정치를 하라. 특히 호남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파악하여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핵심을 찌른 충고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누가 뭐라 하든 호남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이번에 서울에서 탄핵의 주역인 조순형 전 대표의 승리도 5·31 선거 호남의 승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과거 지지자들의 재결집이 승리의 최대 요인이었다. 서울의 승리는 원래 전국 정당이었던 민주당의 전국정당 재도약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정계개편과 대선에서 호남인들이 원하는 바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정권 재창출이다. 이번에는 배신하지 않을 정권, 호남을 무시하지 않을 정권, 국민통합과 경제발전을 이룩할 정권을 바란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민주당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선에 임하려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열되어 있는 호남 정치의 통합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그러나 통합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원칙 없는 통합은 야합에 불과하다. 무원칙한 통합은 국민을 설득할 수 없어 실패하기 마련이다. 열린우리당은 이미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자기 당내에서조차 그렇게 보는 데 이론이 없는 것 같다. 이제 그 이름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열린우리당의 호남 출신 국회의원들 가운데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말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새 출발을 위해서는 열린우리당 창당이 실패한 정치실험임을 자인하는 것이 먼저 있어야 하겠다. 그리고 분당 주동 세력과 친노직계 세력만 남기고 집단으로 당을 벗어나야 그 다음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절차를 생략하고 무조건적인 통합을 하게 되면 통합신당은 ‘도로 열린우리당’이 되고 노무현 정권 5년의 국정실패에 대한 심판대상이 되어 대선에서 대패하고 말 것이다. 이런 경우 호남은 노무현 정권의 혜택은 보지 못하고 과오에 대한 심판만 받는 매우 억울한 처지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호남이 또다시 왕따가 되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우리가 이 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통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깃발과 어떤 정통성을 중심에 놓을지의 문제이다. 물어볼 필요 없이 민주당 50년의 정통성을 중심으로 한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 열린우리당 3년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인하는 듯한 역사인식과 전통적 동맹관계의 훼손,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각종 정책 등 얼치기 좌파성향을 다분히 보여 왔다. 참여정부의 국정실패는 이런 잘못된 기조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얼치기 좌파성향은 국제적 추세에 역행할 뿐 아니라 민주당의 강령에도 어긋난다. 열린우리당의 이런 과오는 철저하게 배제되어야 한다. 이런 절차를 거친 연후에 고건 전 총리를 포함한 전국적인 중도개혁 세력을 총결집하여 보수세력인 한나라당과 대선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 호남정치는 물론 한국정치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중도개혁주의의 깃발만이 국민통합과 안정적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정치이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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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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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문화수도 광주, 대중예술 키우자-유방희 회장 광주는 예향이라 불려져왔다. 예향의 명칭은 문화예술을 전통적인 가치로 판단할 때의 일이다. 그러나 문화예술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인식의 변화에 따라 2003년 예향광주를 대상으로 한국의 문화수도 조성계획이 발표되고 문화관광부와 광주시에 의해 마스터플랜이 완성돼가면서 머지않아 ‘문화수도’로 불려질 전망이다. 광주시가 편찬한 ‘시사(市史)’에 근거해 예향의 근원은 두 가지 방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공연예술은 크게 백제의 ‘집단가무’, 조선시대 ‘판소리’가 중심을 이뤘다. 둘째 문학과 미술은 조선시대 소쇄원을 중심으로 한 가사문학과 양팽손, 윤두서 등에 의해 미술이 발전해 왔다. 이외에도 많다. 기록을 통해 보면 우리지역은 일반 백성들이 즐겼던 공연예술 즉, 대중예술이 왕성했음을 알 수 있다. 사회·경제적 가치변화, 세계화 등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예술에 대한 행태가 변화를 해왔다. 순수음악, 무용, 연극 등이 공연예술에서 각각 장르를 이루면서 대중예술은 연예(演藝) 예술로 남게된다. 연예 예술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공중 앞에서 음악, 무용, 연극, 쇼, 만담 등을 공연하는 일’이라 설명하고 있다. ‘연예’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한국연예협회 규약을 살펴보면 가수, 연기, 연주, 무용(춤), 작곡(창작), 그룹 가요 등을 작곡해 가수나 보컬 등이 공연하는 일을 담당(직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연예 예술은 우리 국민들의 다양한 계층을 팬으로 하고 있어 어느 예술보다도 폭발력을 가지고 있고, 우리 국민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예술분야라 할 수 있다. 광주시는 문화수도조성사업을 추진해 ‘문화로 밥 먹고 사는 도시’를 구상하고 있다. 공연분야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공연예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서양음악, 발레 등 서양무용 분야에서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재원과 노력을 들여 인력을 배출해내면서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런 분야는 우리가 만들어낸 예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의 대중적 사상, 가락, 활동성 등을 내포하고 있는 대중음악은 어떤가? 대중음악은 가수 H·O·T, 보아, 동방신기, 비 등을 통해 한류를 이끌면서 아시아를 넘어 이미 미국 뉴욕에 진출했다. 이런 10년여 동안 벌어들인 외화는 말할 것이 없고 우리나라 이미지를 새롭게 해 수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음은 우리 국민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우리 광주 대중예술은 전망은 어떤가. 관심을 가져주고 투자해주면 머지않아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광주는 백제시대부터 공연예술 전통이 이어진 고장으로 현재에도 대중문화 지수(2002 문화부 조사)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다. 그리고 대중음악을 하는 마니아가 많고 특히 예술적 소질을 가진 청소년들이 많아 이들 중에서 찾아내면 세계적 가수를 만드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광주가 한국의 문화수도, 아시아문화중심도시가 되기 위해서 과연 대중예술의 활성화 없이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서양예술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도시가 과연 경쟁에서 이겨내고 생명력이 있을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봐야 할 것이다. 문화수도의 토대가 되는 문화적 자양분은 우리 스스로가 가꾸고 키워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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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나의 걸리버 여행기 인터넷의 포털 사이트 야후(Yahoo)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말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조나선 스위프트의 풍자 소설 걸리버 여행기(1726)였다. 걸리버의 파란 만장한 여행기의 마지막 여행지는 피눔이라는 나라인데 이 나라는 사람의 나라가 아니라 말의 나라였다. 말이 만물의 영장인 말의 나라에서는 사람은 야후라 하여 하등 동물이었다. 걸리버는 그 나라에서 이상적 삶을 발견하고 비로소 정착을 생각한다. 그러나 하등동물 야후의 하나인 걸리버는 만물의 영장인 말 속에서 살수 없었다. 하는 수 없어 바다로 나가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포르투갈의 배에 구출되어 그는 영국으로 돌아온다. 여행을 하다 보면 큰 나라에 가보기도 하고 작은 나라에 가보기도 한다. 혹은 잘사는 나라 혹은 가난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스위프트의 여행기가 생각나는 것은 당연하다. 토머스 하디의 소설 ‘테스’의 배경인 영국 고인돌의 명소 솔스벨리를 여행하면서 나는 우연히 피그미 족으로 짐작되는 아프리카 소인의 여인들과 일행이었다. 키에 비하여 가슴이 유달리 크다는 인상을 받았다. 호기심으로 몇 마디 그들에게 말을 부쳐보았지만 그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나의 호기심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세상의 진실은 크고 작은데 있는 것이 아님을 새삼스럽게 느낀 적이 있다. 스위프트가 갈리버 여행기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인간은 진실은 크고 작은 데 있지 않고 인간다운 인간에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나의 여행 가운데 아일랜드가 있다. 1981년 8월 그때만 하드래도 아일랜드는 한국과 국교가 없었다. 런던 아일랜드 대사관에 며칠을 다니면서 어렵게 비자를 받았지만 정작 여행에서는 별로 조사가 없었다. 아일랜드 여행 가운데 인상 깊은 곳 하나가 트리니티 대학이었다. 대학에 들어서자 멘 먼저 보이는 것이 조나선 스위프트의 동상이다. 그는 이 대학 출신이다. 스위프트 말고도 이 대학 출신에 ‘살로메’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있고 수필가 올리버 골드스미스, 그리고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뮤엘 베케트 등이 있다. 영국 도서관법에 영국 내에서 출판된 책은 반드시 지정된 도서관에 의무적으로 기증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대영도서관, 옥스퍼드대학 도서관, 캠브릿지대학 도서관, 스코틀랜드 에딘바라대학 도서관, 그리고 아일랜드의 트리니티대학 도서관 등이다. 그 규정은 아일랜드 독립 이후에도 계속된다고 들었다. 꼭 그런 이유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 도서관에 들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서면서 그 고딕 건축의 장엄함에 너무나도 압도당한 적이 있다. 높고 검은 서고 천장은 마치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면서 거대한 공룡이나 고래의 늑골 같은 수도 없는 목재가 아취 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 대학 도서관이 유명한 것은 비단 그 아름다운 건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9세기 필사본 복음서인 ‘The Book of Kells’ 가 여기 소장되어 있다. 16세기 말 종교적 목적으로 설립된 대학이니 그 설립 목적이 유럽의 다른 유구한 대학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대학이 다른 것은 이 대학이 영국 식민지에 소재한 대학이었다는 사실이다. 영국과 영국인의 동물적 속성을 스위프트의 ‘갈리버 여행기’는 주제로 한 것이다. 오늘 중동 등에서 볼 수 있듯 세계적 상황은 스위프트가 살던 시대의 영국과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 야후라는 동물적 인간을 상징하는 포털 사이트가 말하듯 인간의 동물적 속성은 양상을 달리 할 뿐 그 본성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달 대학의 경쟁력을 다룬 한 신문의 시리즈 가운데 최종적 선택이 아일랜드의 트리니티대학이었다. 신문은 그 대학의 산학적 경쟁력을 강조하였지만 그러나 그 대학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르다. 나는 나를 감동시킨 그 대학이 스위프트처럼 영구히 인간을 지키는 보루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칼럼
남도일보
2006.07.2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