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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나의 걸리버 여행기 인터넷의 포털 사이트 야후(Yahoo)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말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조나선 스위프트의 풍자 소설 걸리버 여행기(1726)였다. 걸리버의 파란 만장한 여행기의 마지막 여행지는 피눔이라는 나라인데 이 나라는 사람의 나라가 아니라 말의 나라였다. 말이 만물의 영장인 말의 나라에서는 사람은 야후라 하여 하등 동물이었다. 걸리버는 그 나라에서 이상적 삶을 발견하고 비로소 정착을 생각한다. 그러나 하등동물 야후의 하나인 걸리버는 만물의 영장인 말 속에서 살수 없었다. 하는 수 없어 바다로 나가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포르투갈의 배에 구출되어 그는 영국으로 돌아온다. 여행을 하다 보면 큰 나라에 가보기도 하고 작은 나라에 가보기도 한다. 혹은 잘사는 나라 혹은 가난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스위프트의 여행기가 생각나는 것은 당연하다. 토머스 하디의 소설 ‘테스’의 배경인 영국 고인돌의 명소 솔스벨리를 여행하면서 나는 우연히 피그미 족으로 짐작되는 아프리카 소인의 여인들과 일행이었다. 키에 비하여 가슴이 유달리 크다는 인상을 받았다. 호기심으로 몇 마디 그들에게 말을 부쳐보았지만 그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나의 호기심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세상의 진실은 크고 작은데 있는 것이 아님을 새삼스럽게 느낀 적이 있다. 스위프트가 갈리버 여행기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인간은 진실은 크고 작은 데 있지 않고 인간다운 인간에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나의 여행 가운데 아일랜드가 있다. 1981년 8월 그때만 하드래도 아일랜드는 한국과 국교가 없었다. 런던 아일랜드 대사관에 며칠을 다니면서 어렵게 비자를 받았지만 정작 여행에서는 별로 조사가 없었다. 아일랜드 여행 가운데 인상 깊은 곳 하나가 트리니티 대학이었다. 대학에 들어서자 멘 먼저 보이는 것이 조나선 스위프트의 동상이다. 그는 이 대학 출신이다. 스위프트 말고도 이 대학 출신에 ‘살로메’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있고 수필가 올리버 골드스미스, 그리고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뮤엘 베케트 등이 있다. 영국 도서관법에 영국 내에서 출판된 책은 반드시 지정된 도서관에 의무적으로 기증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대영도서관, 옥스퍼드대학 도서관, 캠브릿지대학 도서관, 스코틀랜드 에딘바라대학 도서관, 그리고 아일랜드의 트리니티대학 도서관 등이다. 그 규정은 아일랜드 독립 이후에도 계속된다고 들었다. 꼭 그런 이유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 도서관에 들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서면서 그 고딕 건축의 장엄함에 너무나도 압도당한 적이 있다. 높고 검은 서고 천장은 마치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면서 거대한 공룡이나 고래의 늑골 같은 수도 없는 목재가 아취 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 대학 도서관이 유명한 것은 비단 그 아름다운 건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9세기 필사본 복음서인 ‘The Book of Kells’ 가 여기 소장되어 있다. 16세기 말 종교적 목적으로 설립된 대학이니 그 설립 목적이 유럽의 다른 유구한 대학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대학이 다른 것은 이 대학이 영국 식민지에 소재한 대학이었다는 사실이다. 영국과 영국인의 동물적 속성을 스위프트의 ‘갈리버 여행기’는 주제로 한 것이다. 오늘 중동 등에서 볼 수 있듯 세계적 상황은 스위프트가 살던 시대의 영국과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 야후라는 동물적 인간을 상징하는 포털 사이트가 말하듯 인간의 동물적 속성은 양상을 달리 할 뿐 그 본성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달 대학의 경쟁력을 다룬 한 신문의 시리즈 가운데 최종적 선택이 아일랜드의 트리니티대학이었다. 신문은 그 대학의 산학적 경쟁력을 강조하였지만 그러나 그 대학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르다. 나는 나를 감동시킨 그 대학이 스위프트처럼 영구히 인간을 지키는 보루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칼럼
남도일보
2006.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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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7월14일 금요일에 귀향했습니다. 급한 일을 보고 어머니댁에 갔습니다.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국회의원보다 더 바쁘신가 봅니다. 집에 계시지 않는 때가, 계시는 때보다 훨씬 많습니다. 한국 나이로 여든하나(81)이신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마을에서 뭔가 도와주어야 할 만한 일이 있는 집, 이웃 마을에서 식당을 하는 친정 동생 집, 면 소재지에 있는 교회, 그 교회의 구역방문지 정도입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어디에 계시는지 알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휴대전화를 사드렸지만, 어머니는 전화요금이 무서워 휴대전화를 늘 꺼놓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머니를 뵙지 못하고 다른 일정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인 7월 15일 저녁에 다시 어머니댁에 갔습니다. 어머니는 역시 계시지 않았습니다. 또 헛걸음을 하고 영광 읍내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어머니를 끝내 뵙지 못하는가 보다…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날인 7월 16일 아침. 저는 입원중인 지인을 문병하기 위해 영광 읍내의 한 병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병원 관계자는 제 어머니께서 응급실에 와 계신다고 전해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응급실에서 링거 주사를 맞고 계셨습니다. “어머니, 웬일이세요?”하고 제가 여쭙자 어머니는 “느그들 지천헐팅게(너희들이 야단칠테니까) 말 안 헐란다(말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제가 거듭 여쭈니까 어머니는 “동생한테는 말허지 마라(말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자초지종을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마을의 먼 친척 집에서 담뱃잎 엮는 일을 도와주시다가 어지러워서 병원에 오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어지러워 면소재지 병원에 갔었는데 잘 낫지 않아 읍내병원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면소재지 병원의 링거보다 읍내 병원의 링거가 더 좋다고도 하셨습니다. 담당의사는 어머니께서 니코틴 중독상태여서 링거에 해독제를 넣었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고향에 있는 제 동생이 속 상할까 봐 동생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동생은 어머니께 심한 일은 하지 마시라고 늘 말씀드립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됐으니 동생이 ‘지천’할 것이라고 어머니는 판단하신 듯 합니다. 다행히 어머니는 심각한 상태는 아니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또 그런 일을 하실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으로는 그런 일은 하지 마세요”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안 했어야(그동안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명철이네가 안 딱허냐(딱하지 않느냐)? 놀먼 멋 헌디야(놀면 뭐 하겠느냐)?”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말릴 수가 없습니다.
칼럼
남도일보
2006.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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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혁신은 멈추지 않는다-오행원 사장 최근 우리사회의 변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키워드중의 하나가 ‘혁신’ 이다. 10여 년 전 대기업에서부터 시작된 혁신활동이 이제는 공공 부문을 넘어 국민의 가슴속까지 깊숙이 파고드는 혁신의 담론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혁신도시, 혁신기업, 혁신학교, 혁신박람회, 혁신문화 등 자고나면 새로 생겨나는 혁신 관련 용어 등이 좋은 사례다. 그동안 혁신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던 지방공기업도 지난해 봄부터 불기 시작한 ‘혁신의 바람’이 이제는 거대한 태풍으로 변해 한 마디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실질적인 기업형 팀제 도입을 비롯해 BSC, 6시그마 준비 등 혁신기반을 구축하고 고객과 성과를 지향점으로 성과창출과 혁신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쉼없이 달려왔다. 며칠 전에는 지방공기업 사장의 경영능력을 평가하는 ‘사장 경영성과 계약제’가 도입된다는 발표도 있었다. 임기제의 단점을 보완하고 경영성과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로 평가결과가 보수와 연계되는 것은 물론 우수한 성과를 낸 사장은 연임을 보장하고 성과가 저조한 경우에는 임기 중이라도 해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동안 공기업 사장은 성과가 뛰어난 기업일 경우 경영성과에 무임 승차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기업에 임명되면 부당하게 저평가를 받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성과 계약제는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기관의 성과와 개인의 성과를 엄격히 분리하겠다는 계획인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매년 실시하고 있는 공기업에 대한 경영·혁신실적평가도 공공성과 투명성을 더 확보하기 위해 경영평가위원 풀(Pool)제까지 도입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제도 도입을 통한 경영평가의 확대는 지방공기업의 부담으로도 작용하겠지만 경영개선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며, 경쟁을 통한 성과향상과 공공성의 제고라는 측면에서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큰 테두리에서 보면 공기업의 본래 설립목적인 공익부문이 점차 축소되고 수익과 비용에서의 효율성만 추구하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없지 않다. 따라서 그들이 창출한 공익을 높게 측정해 평가해주는 시스템의 보완과 시행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공공 부문의 혁신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며 전 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공통된 현상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즉, 영국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길게는 20여 년 전부터 공공부문 개혁을 추진해 오고 있다. 우리도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형태는 다르지만 공공 부문의 개혁이나 혁신을 주창하고 추진해왔다. 그 과정에서 성과를 창출하기도 했지만 지속적이지 못하고 중도에 멈추다 보니, 혁신 얘기가 나오면 식상해 하는 등 냉소와 불신만 불러일으키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글로벌화로 인한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 때문에 혁신은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된다. 다시 말해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 능동적으로 혁신활동을 추진하지 않으면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낸 태풍에 밀려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속적으로 고객만족과 성과를 창출해내는 혁신활동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현장중심의 조직, 고객중심의 업무수행, 역량중심의 인사, 실적 중심의 평가가 조직전반에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혁신시스템으로 구축될 때 리더와 구성원이 바뀌어도 혁신동력은 멈춰지지 않을 것이다. 혁신은 빠르게 변화하는 경쟁 환경에서 중단될 수 없는 것이며 내일을 준비하는 우리들의 변함없는 최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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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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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포스코, 고민중인 광양제철 건설노조원들의 불법 점거 농성으로 포항의 포스코가 큰 시련을 겪었다. 이런 저런 생산차질도 차질이지만 급변하는 철강업계에 야심차게 내밀었던 신기술 공장건설이 중단되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오고 있다. 유럽·일본도 하지 못하는 첨단 파이넥스 공법을 채택해 2공장을 짓고 있는데 여기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세계 철강 역사를 새로 쓸 수 있는’ 기회가 타이밍을 놓칠 지도 모른다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한숨짓기는 이 지역 대표기업 광양제철소도 마찬가지다. 최근 광양시는 ‘페로니켈’ 생산공장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니켈 광석 원산지인 뉴칼레도니아의 SMSP사가 51%의 지분을 갖고 포스코가 나머지 49%의 지분을 갖는 합작회사다. 이른바 SNNC사의 출범인데 연산 3만톤의 페로니켈을 생산하게 된다. 페로니켈은 녹이 슬지 않고 가공성이 좋아 주로 스텐레스의 원료로 쓰인다. 포스코는 세계 2위의 스텐레스 생산처다. 광양 공장이 설립되면 니켈부문에서 세계시장을 아우를 판이다. 고용효과도 300명에 달하고 연간 매출액도 3천억원으로 추산된다. 파급효과는 더 할 것이다. 포스코 본사가 있는 포항시는 (이 공장을) 왜 광양에 빼앗겼느냐며 시민과 언론으로부터 엄청나게 질타를 당했다. 그런데 정작 광양 현지에선 비록 일부지만 반대 움직임이 일었다. 페로니켈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공해물질을 사전에 완벽하게 제출하라는 요구가 환경단체 일각에서 제기됐다. 광양제철소측은 이에 시간을 달라는 입장이다. 아직 조사나 투자비율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완벽한 공해분석 자료가 나올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일부에서 캐나다나 중국 러시아산 니켈 광석인 황화광과는 달리 적도 부근인 뉴칼레도니아산 니켈 광석 산화광은 공해물질이 훨씬 적다고도 설명한다. 다시 말해 과거의 캐다나측 자료만으로 페로니켈 생산공정을 재단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호소중이다. 물론 일부의 반대가 내년 5월 착공, 2008년도 12월 준공의 로드맵을 크게 저해하지는 않을 것으로 제철소측은 기대한다. 많은 광양 시민이 페로니켈 생산공장의 유치를 적극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철소나 포스코는 마음이 바쁘다. 세계 1위의 철강사 미탈스틸이 2위의 아르셀로를 인수 합병하기로 결정해 또 다시 국제 철강시장이 급변화의 물살을 타고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올 상반기중 제조업 분야에서 줄어든 일자리가 7만5천여개로 조사됐다고 한다. 외환위기 직후에 10만4천여명의 취업자가 길거리로 내몰린 이후 최대치다. 그런데도 대기업들은 외국으로만 나간다. 하기사 15년간 법인세를 면제해준다느니 수천만달러의 보조금을 준다느니 파격적인 조건을 외국 정부가 제시해오는 판이니 솔깃하지 않을 수없다. 더욱이 노사분규도 없고 환경단체라든지 시민단체의 반대도 없다. 어떤 기업이 이를 마다하겠는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해외로 나가려는 국내 기업을 붙잡거나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면 된다. 그러나 알면서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렵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가지 딜레마 가운데 하나다. 우리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그 딜레마의 와중에 광양제철소도 놓여있는 것이다. 기술적인 노력만으로는 세계의 초대형 철강사들을 상대로 싸워 세계 시장의 최강자가 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는 게 회사측의 고민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사업이 추진될 때마다 부딪히는 지역민, 혹은 NGO 단체들과의 갈등이 그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힘이 빠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회사측도 환경을 지키는 일이 매우 중요한 과제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분법적인 잣대로 기업의 활동에 족쇄를 채우는 우를 범하지는 말자고 호소중이다. 이제야말로 상생의 길 위에서 의견을 개진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지혜로움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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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
2006.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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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 그 해 여름, 이탈리아를 추억하며-한강희 교수 그 해 여름, 이탈리아는 치기를 막 걷어낸 맨 얼굴의 중년 여인 품세로 내게 다가왔다. 이탈리아는 전역이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문화재 덩어리’로 꿈틀대는 거대한 박물관이었다. 학창시절 미술사에서나 들었던 레오나르드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조각·회화·건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기원전 70년에 축조한 석조도로와 석조건물이 그때 그곳에 여전히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때 만든 길을 세계의 관광객들이 지금도 사용하고 있으니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길은 여전히 로마로 통하는’ 셈이었다. 이탈리아는 어느 곳이든 인종시장을 방불케 할 만큼 관광객으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풍요로운 유산은 관광수입으로 이어져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국민소득 2만5천 달러를 상회하고 있단다. 한 해 관광수입이 30조원에 이르니, 관광수입으로 국가가 운영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그들은 개발보다 보존이 어렵다고 엄살을 부린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의 50% 가량을 소유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7개에 불과한 우리 현실로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이탈리아 관광의 핵심은 도시 전체가 유적지나 다름없는 로마, 4km 내에 1백20 개의 섬과 4백 개의 다리로 구성된 물위의 도시 베네치아, 15세기 메디치가에 의해 발흥된 르네상스의 본거지 피렌체, 가톨릭의 본산인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레저관광 명소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나폼소’(나폴리, 폼페이, 소렌토로), 디카프리오·찰스 황태자·아우구스투스 황제·오나시스의 휴양지로 알려진 천혜의 섬 카프리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남성 정장의 대명사로 알려진 밀라노와 피사의 사탑도 볼거리다. 한편으로 이탈리아는 스파게티와 피자와 파스타의 본고장이며, 마피아와 집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문화사적 위업을 관광상품으로 내놓고 있지만, 이를 오늘의 패러다임에 걸맞은 관광콘텐츠로 만들어내는 지혜도 출중했다. 로마의 휴일, 벤허, 쿠오바디스, 클레오파트라, 글래디에이터 등은 여전히 불후의 명화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고, 그 촬영지인 콜로세움, 개선문, 진실의 입,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등에 갖가지 에피소드를 입혀 철저히 상품화하고 있었다. 이를 테면, ‘트레비 분수’는 분수대에 동전을 한 개 던지면 로마로 되돌아오게 되고, 두 개를 던지면 사랑(소원)을 이루게 되고, 세 개를 던지면 새로운 연인을 만나 이곳에 머무르게 된다는 식이다.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팩이 오드리 햅번을 미행하다 공교로운 만남으로 가장하는 ‘스페인 광장’, 역시 오드리를 경악케 했던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익살스런 포즈를 취하기 위해 관광객의 대열이 끊이지 않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정열적이고 급한 성격 때문에 한국인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2002 서울 월드컵 때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긴 탓에 이곳 동포들이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긍정적으로 풀이하자면 정열의 화신이라고나 할까. 이들 민족의 특징은 아모레(사랑), 빠를라레(말), 깐따레(노래), 도르미레(잠), 만자레(먹기) 등으로 요약된다. 늦은 밤인데도 거리 곳곳에서 왁자한 톤으로 맥주를 즐기는 모습을 목도할 수 있다. 강한 액센트와 빠른 톤이 인상적인 칸초네 역시 일품이다. 먹는 것과 잠을 즐기며 장수국으로 꼽힌다. 그해 여름, 유럽에 찾아온 40년만의 더위에 편승해 이탈리아의 햇빛은 유난히 강렬하고 따가웠다. 이탈리아가 이번 월드컵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단언컨대 열정은 ‘사랑의 최대치’임에 틀림없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 같이 않으리라”는 아포리즘이 월드컵에서도 빛을 발한 결과다.
칼럼
남도일보
2006.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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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불행한 나의 인도문화에 대한 의심 1948년 11월 2차 세계대전 일본 전범을 재판한 도쿄재판의 판결이 있었다. 이 판결에서 도죠 히데키 등 7인의 A급 전범에 대한 교수형을 포함 피고인 25인 전원에 대한 유죄판결이 있었다. 그러나 그 판결에 11명의 재판관 전원이 합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 가운데 다섯 사람의 이견이 있었는데 특히 그 이견 가운데 인도를 대표하여 참석한 재판관 R. B. 파루는 도죠를 포함한 전원이 무죄라는 주장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이 의견서는 재판에서 낭독되지는 않았지만 기록으로 남아 있다. 파루의 의견은 전범의 ‘개인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 ‘침략의 정의는 어렵다‘ ’침략의 행위가 공동 모의라는 것을 입증하기 어렵다‘ 는 것이었다. 파루의 의견을 달리 말하자면 재판이 승자의 법 논리에 입각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의 진의는 전쟁을 종합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의 주장 안에는 평화 파괴와 전쟁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책임이 들어 있다. 일본의 전쟁 의도가 과거 100년 동안의 백인의 아시아 침략에 대한 대응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파루는 1886년 영국에 의한 인도 지배의 절정기에 인도 벤갈 지방(지금의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났다. 그가 21살 되던 해 1905년 영국은 벤갈을 인도와 분리시켰다. 지배를 용이하게 하려는 식민 정책의 일환이었다. 벤갈 분리에 대한 저항운동은 전 인도에 걸쳐 열화가 같았다. 그 저항 운동을 자극한 사건 중의 하나가 같은 해 1905년에 있었던 러일 전쟁에 대한 일본의 승리였던 모양이다. 백인에 한을 가지고 산 인도인에게 백인에 대한 아시아인의 승리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1952년 일본이 주권을 회복하자 파루는 일본의 영웅이 된다. 52년 53년 해를 이어 초청되어 도쿄대학 교토대학 등 일본 각지에서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중심으로 강연하였고, 68년에는 전후 수상 기시 노부스케 등의 초청으로 다시 방문하여 일본 ‘훈 일등 서보 훈장’을 받았고 75년에는 하코네에 그를 기리는 서창비가 섰고 뒤에 같은 자리에 기념관이, 97년에는 교토 영산 호국신사에 그의 현창비가, 지난 해 2005년에는 야스쿠니 신사에 그의 현창비가 다시 세워졌다. 그러나 그는 표면상으로 일본 군국주의를 미화한 것은 아니다. 겉으로 그가 주장한 것은 전쟁에서 감행한 승자의 범죄를 불문에 붙인 것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었던 것이다. 그는 강연에서 끊임없이 객관적이고 인도적임을 강조하면서 자기가 결코 일본의 동정자도 아니고 반대자도 아님을 강조하였다. 그에게는 일본도 미국도 전쟁에 있어서 죄인이기는 마찬가지란 것이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그의 논리는 위험 선을 넘었다. 일본군의 남경 학살 책임자에 대한 무죄를 주장한 것이다. 그 야만적 행위를 법적 논리로 비호하면서 그 책임이 개인에 있는 것이 아니며 국가에 있고 국가가 패전했으니 그 대가는 치른 것으로 해석하였다. 일본의 한 법학자는 파루의 의견서를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그의 전공인 고대 힌두법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대 힌두법에서 법(다루마)은 정치(구샤도리아)의 간섭을 배제하였다. 도쿄재판은 법이 정치에 의하여 지배된 잘못된 것으로 파루는 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관념의 유희인가. 그 관념의 유희가 일본의 천인공노할 범죄행위를 비호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파루는 ‘적의 적은 우리 편이다’ 라는 평면적 사고로 일본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침락자 영국인과 백인만을 증오했을 뿐 또 다른 침략자 일본인이 중국과 한국 등에서 감행한 야만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 이 더운 날에 일본을 여행하면서 우연히 파루에 대한 아사이신문 특집기사를 읽으면서 위대한 간디나 타골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나는 인도문화에 대한 의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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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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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파일] 이젠 K-리그 활성화에 나설 때다-기경범 70억 인류의 지구촌 축제인 2006 독일월드컵이 지난 10일 막을 내렸다. 한달여 동안 전 세계 축구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월드컵은 이탈리아가 통산 4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아쉬움 속에 다음 남아공대회를 기약했다. 떠들썩했던 잔치는 끝났고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수많은 스타들이 아쉽게 작별을 고하는가하면 새로운 스타들이 저마다의 존재를 알리며 이들의 빈자리를 채웠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벗는 선수는 한국의 최진철을 비롯, 프랑스의 지단, 이탈리아의 토티, 포르투갈의 피구, 독일의 수문장 올리버 칸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들은 적게는 1회 많게는 3회 가량 월드컵 무대를 밟은 이들이다. 하지만 이번 독일월드컵도 전통적 축구강국인 유럽과 남미국가들의 집안잔치로 끝났다. 4강 진출국의 면면을 보더라도 프랑스와 포르투갈, 이탈리아와 독일이 1장씩의 티켓을 나눠가졌고 남미 축구의 양대산맥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8강 대열에 합류하며 체면치레를 했을 뿐이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의 영광 재현을 외치며 선전했으나 최종 예선 전적 1승1무1패에 그치며 아쉽게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태극전사 모두가 막판까지 투혼을 발휘하며 토고를 상대로 월드컵 원정사상 처음으로 원정 1승을 일궈냈고 후회 없는 일전을 펼쳤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국 축구는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 수비 불안, 한박자 느린 공수전환 등 다시 한 번 세계 축구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 랭킹이 무려 27계단이나 떨어진 56위로 추락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축구의 현실을 냉철히 따져보자. 리그가 한창인 K-리그 경기에는 축구장마다 서포터스와 열혈팬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팬들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서 썰렁한 동네축구처럼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고 있을 뿐이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 밖에 없다’는 외신들의 비아냥처럼 월드컵 때를 제외하고는 살아나지 않는 축구 열기는 한국 축구의 현주소이자 축구 중흥을 위해 우리에게 놓인 과제와 현안들을 대변하고 있다. 최근 아드보카트 감독의 뒤를 이어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핌 베어백 감독은 한국 축구에 밝고 선수들의 특성에 익숙하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베어백 감독의 말처럼 어쩌면 지금 한국 축구 발전과 중흥에 필요한 것은 우수 선수발굴과 리그 활성화 등 축구환경의 개선과 손질도 중요하지만 선수들과 코치진, 축구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자신감 회복인지도 모른다. 월드컵을 개최한 독일은 16강 진출도 어렵다는 축구 전문가와 독일 국민들의 비판과 냉소 속에서도 클린스만 감독의 지도력 속에 4강 진출과 3위 입상의 금자탑을 세우며 홈팬들을 기쁘게 했다. 그만큼 팬들의 열정과 관심이 오늘날 독일을 축구강국으로 만든 원동력이라는 얘기와도 맥이 닿는다. 이제 우리도 지난 2002년 4강 신화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2006 독일월드컵에서의 좌절과 실패를 거울 삼아 새로운 주춧돌을 놓아야 한다. 이와 관련 K-리그 각구단은 지난 15일 독일월드컵 이후 전국 7개 경기장에서 일제히 벌어진 경기에서 눈물겨운 ‘축구팬 모시기’에 총력전을 펼쳤다. 전남드래곤즈 38명의 선수는 서포터즈카드 우수회원과 올시즌 홈구장을 찾은 팬 1천여명에게 편지를 보내며 K-리그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등 전 구단의 ‘관중몰이 투혼’이 눈물겨울 정도였다. 집안 살림이 든든하지 않고서는 나라 살림이 부유해질 수 없는 법, 무엇보다 축구에 대한 가장 큰 투자와 지원은 국민들의 축구에 대한 작고 사소한 관심과 열정, 사랑의 실천이다. 축구 발전과 중흥은 작은 실천에서 비롯됨을 잊지 말자. k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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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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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여성은 사회의 희망이다-박혜자 국장 지난주는 여성주간이었다. 전국에서 그리고 각 자치단체별로 풍성하고 다양한 여성주간 행사를 가졌다. 전남도는 ‘여성에게 도약을, 가족에게 희망을’이라는 슬로건으로 광양에서 각계의 여성대표와 여성단체 회원들이 모여 양성평등사회 구현을 다짐하였다. 여성의 도약을 슬로건으로 내건 것은 이제 여성의 사회참여가 질적으로 한 단계 올라서야 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여성의 도약이 가족에게 갈등이 아닌 희망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작년에는 목포개항 107년 만에 전남도청의 이전이라는 대역사가 있었고 그간에 전남여성들도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굳이 숫자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여성의 교육수준 향상과 공직진출, 사회활동 등 각 분야에서 얼마나 성장을 했는지는 우리 스스로가 체감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금녀의 벽이 깨어지고 대학졸업식에서 대통령상을 받는 여학생대표나 각종 고시 합격자 명단에서 여성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올해 전라남도 공무원 채용시험에서는 463명의 합격자 중 여성이 268명으로 남성합격자 수를 압도하였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농촌에서도 여성의 역할은 대단하다. 고령화되어가는 농촌의 노동력 부족을 메워가는 것도 여성이고 자원봉사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도 여성이다. 전남도의 경우 여성이장은 482명으로 이들 여성이장들이 솔선수범하여 마을 숙원사업을 이끌어가고 있다. 공동으로 빈 땅에 고추밭을 일구어 여기서 얻은 수익금으로 경로당을 지원하고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배달을 하기도 한다. 젊은이들이 떠나간 농촌을 강한 공동체의식으로 이웃의 어르신들을 보살피고 돌보며 그나마 인정이 살아있는 곳으로 버티게 하는 힘은 바로 농촌의 여성들이다. 그러나 유독 여성의 진입이 어려운 분야가 바로 정치분야이다. 지난 5·31선거에서 당선된 여성도의원 4명은 모두 비례대표이다. 시·군의회에서도 여성의원 22명이 당선되었지만 선거에 의해 선출된 지역구의원은 단 2명에 불과하다. 선거에 의한 여성의 정치진출이 어려운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아직도 여성과 정치를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문화 때문이다. 가부장제적인 문화의 유습이 여성을 리더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드는 것 같다. 연고의식이 강한 농촌에서 선거를 치르자면 무엇보다 가족들의 이해와 지원이 절실하다. 농촌뿐 아니라 많은 여성정치인들이 정치진입을 앞두고 가족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동안 여성은 가사와 육아를 전담해 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성문화는 남성문화 보다 가정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여성의 사회진출, 특히 여성의 정치진출은 가정의 가치와 충돌하거나 가정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 때문에 여성정치인은 가족관계를 소재로 한 각종의 근거없는 소문에 시달려야 했고 유능한 여성의 정치진입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이 시점에서 가정을 이루는 가족이란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족은 단순한 혈연관계가 아니라 구성원간의 사랑과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한 생활공동체이다. 각 구성원의 발전과 도약이 가족에 누가 되어서도 안 되지만 가족이 구성원의 발전을 가로막아서도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의 도약이 가족의 진정한 희망으로 여겨지는 문화가 형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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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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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 ‘바람이 분다, 시 한 수 읽어봐야겠다’-한강희 교수 “밤하늘의 별빛이 밤길을 훤히 밝혀 지도를 대신하여 갈 수 있고 가야만 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헝가리 출신 비평가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에 나온 첫 구절이 시사하는 바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돌아가고픈 시원(始原)을 향해, 혹은 모순으로 가득 찬 인간 삶의 비의(秘義)를 찾아 밤길을 훤히 밝혀주는 ‘별빛 지도’를 마음 한 켠에 선망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는 아스라한 추억의 시절이 되었지만, 그 시대는 분명 모든 것이 새로우면서도 친숙했으며, 지극히 모험적이었지만 풋풋한 낭만이 묻어났으며, 상상력 또한 풍요로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예의 남도 시문학의 혼맥을 모색·발굴하고자 ‘별빛 지도‘를 자임하고 나선 시 전문 계간지 ‘시와 사람’이 발행 10주년을 맞이했다. 남도의 풍요로운 문화적 감수성과 역사적 상상력의 복원을 표방한 ‘시와 사람’이 물신지상주의, 디지털-사이버 문명 환경, 로컬리즘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하늘 아래 가장 순결하고 고귀한 영혼의 형식’을 올곧게 천착해온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기념식이 있던 지난 달 30일, 광주·전남의 문인들이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오래간만에 밤을 밝혔다. 한국문인협회, 민족문학작가회의, 군소 문예지의 편집동인, 유명 시인, 지역 원로 문인, 평론가, 문학 관련 교수와 학생들이 하나가 돼 ’지역 문학과 시의 앞날‘을 위해 난상토론하는 각별한 모임이 됐다. 그간 지역 문인들 사이에 간간이 터져 나온 불협의 앙금이 사그라드는 화기애애한 자리가 되기도 했다. ‘시와 사람’이 최근 텍스트보다는 문화가치론에 편승해 문학공원, 문학지도, 문학기행, 시인학교, 창작교실, 문화콘텐츠 등 외연적 흐름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 장르 본연의 역할에 진력한 점이나 중앙 문단 위주의 열악한 잡지 출판 현실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지역 동질성을 묵묵히 지켜낸 점은 의미심장하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텍스트는 그 자체로 컨텍스트(context)를 지향하며, 작가와 작품은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화두를 내던지며 시대를 관통하고 의미와 맥락을 생산한다는 문학의 제일의(第一義)를 충실히 지켜내고 있다는 점도 대견스럽다. 사실 전라도 문학, 좀 더 구체적으로 남도의 시 텍스트는 양적 확산이나 질적 순도 면에서 공히 오늘의 한국 문학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도가 부대조건으로 안고 있는 명산대천(山河)의 설화가 오롯 숨쉬고 있고, 가슴 아픈 유배의 사연들이 알곡의 중세문학사를 만들어냈으며, 이 전통은 고스란히 근현대로 이어지며 당대(當代)문학의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그 수는 헤아리기 곤란할 정도다. 시단·작단·평단을 망라하여 내로라하는 신진과 중견, 중진과 원로가 포진하여 이 땅의 문학사를 일궈가고 있지 않은가. 서정의 혼과 서사의 정신이 살아 번뜩이고 있는 이 지역은 ‘경기(京畿)’가 아닌 오·벽지라는 영락(零落)이 되레 문학사의 천혜지대를 경작했던 셈이다. 한국문학이 풍요로운 이유는 이들 전라도, 그것도 곡절과 신산이 아로 새겨진 남도에서 한유자락(閒遊自樂)한 문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는 난해한 추상의 언어가 아니다. 전공자들끼리 향유하는 전유물도 아니다. 시 읽기는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있는 그대로 즐기면 되는 영혼을 넉넉히 살찌우는 가장 효율적인 문화행위다. 시를 가까이 하면 ‘생각하는 데 사악함이 없기(思無邪)’때문에 마음을 정화(淨化)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시 한 수를 통하여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은 고매한 일에 속한다. 이런 의미에서 발레리가 읊조린 “아,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는 이렇게 수정돼도 좋을 듯싶다. “아, 바람이 분다. 시 한 수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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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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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지금 젊은 사람들은 수틀이나 사진틀이라는 말을 알 수 있는지 모르겠다. 틀은 단순하고 간편한 액자를 말한 것으로 옛날 사진틀은 흑백사진 시대의 단순한 액자이고 수틀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 그러니까 옛날 안방 부녀자들의 자수 도구였고 지금 할머니 세대들이 여학교 다닐 때 자수를 놓는 시간인 수예시간의 필수품이었다. 그 오랜 틀 속에 있으면서 오늘 나와 생활을 같이하고 있는 겉모습은 해묵고 소박하지만 나로서는 소중한 틀 하나가 있다. 그 틀 안에 ‘靑 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이란 박목월의 육필이 들어 있다. 1972년 가을 한국시인협회 광주세미나 때 고마웠던지 목월이 보내 온 선물이다. 68년 지훈이 작고하자 지훈의 뒤를 이어 장만영이 2년 그리고 박목윌이 회장이 되면서 시협 행사가 지방을 찾게 되었다. 제2회 세미나가 동학사에서 있었는데 그때 행사에 참가하면서 그만한 일이면 광주에서 내가 한번 해 보겠다고 자청한 것이 2박3일의 광주 세미나가 되었다. 시인의 모임이 하나 뿐인 시대라 그때만 해도 시인은 안으로 자부심이 강했고 밖으로 대접받는 시대였다. 그 때 광주는 특히 시인들이 글 쓰는 중심에 있었다. 최근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3인 시집 ‘청록집’ 출간이 화제가 되고 있다. 나는 오랜만에 서가에서 내가 보관해온 오래된 구본을 꺼내 들었다. 얼마나 오래 되었나 하여 판권지를 보니 단기 4282(1949)년 출간의 재판 시집이다. 오랜만에 단기 기록을 보니 해방 후 좌우간에 있었던 연호 싸움이 생각났다. 진보진영에서는 서기를 민족진영에서는 단기를 쓰던 시대였다. 청록 시인들은 민족진영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해방 후 20대였던 그들은 당시 문단의 대세였던 문학가 동명에 가입하지 않았다. 1939~40 두 해에 걸쳐 ‘문장’에서 지용의 추천으로 같이 시단에 든 세 사람이 스승 지용이 선택한 길과 다른 길을 간 것이다. ‘청록집’은 을유문화사에서 낸 것으로 종서 시대의 도서이다. 표지 디자인만 보면 앞뒤가 없다. 종서의 책 관례로 앞부분에 목차가 있는 데 목차를 뒤로 미룬 것이 특이하다. 거기 젊은 패기가 보인다. ‘청록집’이란 제호는 목월의 청노루에 근거한 것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일반적인 인식은 같은 무렵 지용의 시집 ‘백록담’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의당 지용의 서문이 보여야한데 지용의 서문도 자신들의 머리 말도 없고 후기도 없다. 후학이 가외라 했던가. 스승 지용과 다른 길을 가면서 세 사람이 행동을 같이한 결연한 자세가 엿보이다. 목월 지훈 두진의 수록 순서도 흥미롭다. 목월을 앞 세웠고 가운데 지훈이 그리고 뒤에 두진이 섰다. 당시 목월 두진의 나이가 서른 살 지훈의 나이가 스물여섯이었다. 작품은 목월의 시가 15편 지훈과 두진의 시가 각각 12편 도합 39편의 시가 수록 되어 있다. 목월의 시가 많은 것은 목월의 시가 짧기 때문일 것이다. 시 39편이 역사적 사건이 된 것이다. 그 작품들은 지금 이미 고전이 되어있다. 그 시들을 다시 읽어도 숙연해질 만큼 맑고 밝은 주옥들이다. 며칠 전 김지하가 시의 수와 길이를 환경오염이라고 말한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의 명제 ‘하나의 토씨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거는 사람들’도 상기하였다. 지용은 목월을 추천하면서 ‘북에는 소월이 남에는 목월이 있다’ 하였고 지훈을 추천하면서 ‘민족적 정서, 전통에의 향수, 불교적 선미를 표현하는데 너무 완벽함이 걱정‘이라 하였고 두진의 ‘새로운 자연의 발견에서 어떤 법열 같은 느낌을 받는 경지’라고 말하였다. ‘청록집’은 지용의 추천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오늘 다시 생각하면 ‘청록집’ 출간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예술적으로 그들은 ‘청록집’ 이상으로 더 나가지 못한 것이다. 뒤에 세 사람은 각각 다른 길에서 계급장을 단 시인이었다. 지훈은 의로움에, 목월은 세상일로, 두진은 믿음으로 각각 제 길을 가다 사라졌다. 생각하면 나는 다만 그들의 ‘청록집’만을 믿고 시를 스승으로 따라야 했다. 나는 그들의 시보다도 계급장을 스승으로 믿고 따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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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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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파일] 광주에도 떴다방이 떴다고요-김용석 경제부장 1970~80년대 땅값 파동의 주역은 ‘복부인’이었다. 이들은 개발 지역의 땅을 닥치는대로 사들여 단기에 되파는 미등기 전매수법으로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 투기세력의 대명사이던 복부인은 이제 국어사전에도 올라 일반명사가 됐다. 2000년 이후엔 오지의 땅을 싸게 사들인 뒤 쪼개 팔아 이득을 챙기는 ‘기획부동산’이 땅투기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한때 이들은 서울 강남 테헤란로 주변에 업체당 200여명의 직원을 고용하며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이들 역시 최근 검찰과 경찰이 일제 단속에 나서면서 구속된 경우도 있고 대부분 ‘잠수를 탄’ 상태라고 한다. 요즘은 ‘떴다방’ 장세라는 것이다. 전남의 J프로젝트 대상지역이나 혁신도시 지역에 외지의 떴다방들이 몰려와 시골 지주들과 ‘땅 작업’을 한 뒤 수도권의 전주(錢主)들을 연결시켜 한 몫 챙겼다. 수도권을 휩쓴 떴다방들이 상대적으로 땅값이 덜 오른 무안 등 개발 호재가 있는 전남지역으로 파고 들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개발호재가 없는 광주에 뜬금없이 떴다방이 떴다고 한다. 떴다방 역시 이미 일반명사화 됐으며 주로 아파트 등을 분양하는 곳에 임시로 자리를 잡고 영업하는 이동식 부동산 중개업소를 뜻한다. 이들은 광주 서구 마륵동에 아파트를 짓고 있는 국내 대형 건설사의 모델하우스앞에서 불법전매를 조장하는 호객행위를 벌였다가 물의를 빚었다. 최근 광주 서구 화정동에 위치한 G건설사 모델하우스를 찾은 방문객들은 자칫 낭패를 당할 뻔했다. 모델하우스 현관입구에 2~3명의 부동산중개업자들이 책상을 갖다놓고 방문객을 상대로 명함을 나눠주며 분양권 매매를 종용했다고 한다. 이들은 특히 분양시점에는 1천만원, 1년후 전매가능 시점에는 3천만~4천만원, 그리고 입주시에는 최고 8천만원의 시세차익이 붙게될 것이라는 근거없는 ‘프리미엄 예상표’까지 제시하며 소비자들을 현혹했다. 이 아파트는 광주지역 최초로 평당 분양가가 750만원을 넘어 ‘배짱분양’을 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높은 곳이다. 이들은 아파트를 보기 위해 모델하우스를 찾은 방문객들에게 “이미 기준층은 거의 분양되고 없으며 3층이하 저층만 남았다. 우리들이 기준층 위주로 여러개의 분양권을 가지고 있으니 200만원의 프리미엄을 주면 지금 당장 원하는 동호수의 계약서를 만들어주겠다”고 장담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전매에 따른 양도세부과에 대해서도 ‘다운계약서’를 작성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소비자들을 꼬드겼다. 이 아파트는 평당 750만원대의 높은 분양가에도 불구 청약률이 평균 3.2 대 1이었으며 지난 7일까지 지정계약을 마감한 결과 70%가량이 계약을 마쳤다고 자랑삼아 발표했다. 떴다방들의 이런 영업방식에 비춰 상당수의 기준층이 업자들의 손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해도 별 무리는 아닐 성 싶다. 이게 사실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정작 실수요자들은 떴다방들이 요구하는 추가 비용을 물고 구입해야하는 등 피해마저 우려된 탓이다. 덧붙여 ‘떴다방’의 불법전매 호객행위에 대한 회사측의 대응도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된다. 모델하우스 입구에서 이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미묘한 관계때문에 막기는 어렵다고 실토했다 하잖은가. 사실상 ‘공생관계’를 인정한 셈이다. 인기리에 분양중이라는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기획 분양에 나섰다면 이는 중대한 범죄 행위다. 국세청도 다운계약서 운운하며 불법전매를 조장 할 경우 조사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최고 품질이어서 최고 분양가를 받는다는 회사측의 홍보전략을 나무랄 수 없다. 허나 정상적인 방법으로 물건을 팔아야 할게 아니던가. y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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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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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살고 싶은, 그리고 잘 사는 광주-남헌일 원장 아직도 머리와 가슴은 청년기 같은데 어느덧 내 나이 60이 되었다. 60년의 세월중 2000년부터 5년간 서울에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한 객지 생활한 것을 제외하고는 내 인생은 온통 어머니 품속 같은 이 곳 광주에 기대어 왔다. 언제나 정의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던 예전 모습을 떠올리면서 금남로와 충장로를 가 보았다. 어디로 갔을까? 맛깔나는 음식과 정겨운 얼굴로 가득하던 식당 간판엔 먼지가 쌓이고, 밤늦도록 거리를 메우던 우리 아들 딸들은 보이지 않는다. 내 고향 광주의 정신과 혼을 키워내던 그곳이 침체돼 가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 하지 않았던가. 다행히도 광주시에서는 문화적 리모델링을 통해 금남로와 충장로 일대를 광주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거리로 조성하겠다하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건립되는 만큼 몇 년 후에는 예전보다도 훨씬 더 활기찬 금남로와 충장로의 달라진 모습을 기대해 본다. 어떻게하면 잘 사는 광주를 만들어 우리 아들 딸들이 광주를 떠나지 않고 더불어 같이 살 수 있는지 항상 고민해 본다. 잘 사는 문제는 결국 문화적 욕구와 경제적 욕구를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자동차산업은 광주 경제의 25%를 책임지고 있는 대표산업으로서 자동차산업 없는 광주경제는 상상할 수 없다. IMF이전 6만대에도 미치지 못했던 생산량이 현대자동차 인수 이후 2004년 19만대, 2005년 29만대에 이어 금년에는 36만대 이상을 계획하고 있어 자동차산업은 광주경제를 실질적으로 견인하고 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 보면 마냥 기대에 취해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기아자동차의 지역내 부품조달비율이 20%가 안되고, 대부분의 핵심부품은 외지로부터 조달하고 있다. 따라서 기아자동차의 생산량 확대와 더불어 지역내 부품조달비율을 높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며, 이를 지원하는 것은 광주시민으로서 도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광주시에서 강력한 지원의지를 표명하였고 이에 광주테크노파크에서는 기업·대학·연구소와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자동차부품산업육성 프로젝트를 기획·추진하는 한편, 중앙정부에 부품업체 지원을 위한 예산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지난 세월 민주화 과정에서 분출된 광주시민의 힘은 실로 위대한 것이었다. 우리의 당면 목표가 차세대 먹거리 창출을 통해 1등 광주를 일궈내고 이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데 있을진대 시민·지자체·지역국회의원·시민단체·노조·언론 등 모든 구성원들이 역량을 모은다면 또한 불가능한 것이 있겠는가? 필자는 지난 5월초 국제회의 참석차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오스틴이란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오스틴은 인구 145만으로 광주시와 비슷하며, 가구당 평균 소득은 미국 평균(4만6천불)을 훨씬 상회하는 5만5천불에 달하는 교육과 산업도시이다. 필자가 감명깊었던 것은 델컴퓨터·삼성오스틴반도체 공장 등 지역기업에 대한 시민들의 대단한 자부심과 애정, 그리고 전폭적인 지원이었다. 지역기업에 대한 시민들의 자부심과 애정, 그리고 전폭적인 지원이야말로 지역산업발전의 밑거름이자 지역이 풍요로워지는 요건이란 걸 깨달았다. 우리 광주의 모든 구성원들도 기아자동차를 비롯한 지역기업에게 무한한 자부심과 애정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시민·사회단체·언론 모두 ‘나부터 기아자동차를 타고, 나아가 내가 아는 가까운 친인척·출향인사 등에게 기아자동차 구매를 권유’하는 것으로부터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과 연구소는 부품업체의 기술혁신·경영혁신을 지원하고, 지자체·정치권·지원기관이 중앙정부 예산확보와 기업유치에 힘쓴다면 부품업체 경쟁력 제고와 더불어 기아자동차 스스로 광주에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이고, 이는 곧 더 많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이다. ‘살고 싶은 광주, 그리고 잘 사는 광주’는 모든 광주 구성원들의 책무이자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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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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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 과연 누가 쪽박을 깼나 이제는 보기 드문 광경이지만 불과 몇 십 년 전 만 해도 동냥아치들이 바가지를 들고 동냥 다니는 모습이 흔했다. 그때 그들이 “밥 한 술 줍쇼, 예!”하면서 내민 동냥바가지가 바로 ‘쪽바가지’ 즉 ‘쪽박’이었다. 일진 사나운 날엔 마음씨 고약한 사람을 만나 바가지부터 박살나는 등 봉변을 당하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동냥은 안 주어도 쪽박은 깨지마라’는 말이 나왔을까. 그 후 세월이 좋아지면서 동냥아치와 쪽박은 추억속으로 사라졌지만 이 말만은 속담처럼 남았다. 남에게 가슴 아픈 일은 하지 말라거나 남의 가슴에 못박지 말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최근 불거진 노벨평화상 수상자 광주정상회의의 국비지원 예산삭감 논란을 지켜보노라니 저절로 이 말이 생각난다. 정황이나 사안의 성격이 영낙없이 동냥도 못주면서 쪽박을 깨버린 형국이다. 이미 진실게임으로까지 번진 이 문제는 박광태 광주시장의 취임 기자회견에서 공식 거론됐다. 박 시장이 이 자리에서 광주출신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의 예산을 깎는 ‘헌정사에도 없는 일’을 자행했다며 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이에 국회의원들은 “시의 국비지원 요청 시점이 너무 늦어 예산에 반영할 수 없었는데 오히려 (시장이)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먼저 광주시 측이 밝히고 있는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시는 정부 마저도 성사여부를 의심했던 노벨상 광주정상회의를 지방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면서 지난해 9억원의 국비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강봉균 당시 국회 예결위원장은 여기에 긍정적인 답변을 해왔다. 그런데 광주 국회의원들이(총궐기를 하다시피) 이를 주지 못하게 반대했다는 것이다. 이에 강 위원장이 난색을 표하며 시에 설득작업을 요청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이 행사를 해봐야 박 시장 생색만 난다며 거푸 반대의사를 나타냈다는 것. 설득하러 다닌 시 관계자가 이런 사실을 지역민들이 알면 어쩔려고 그러느냐며 통사정을 해댔으나 모 의원은 “(지역민이) 다 알라고 해”라며 아예 무지르고 나섰다고 한다.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겼다. 뒤늦게 이 행사에 대통령의 참석이 결정되면서 청와대가 기획예산처에 정부 예산이 얼마나 지원됐는지를 문의한 것이다. 한 푼도 지원이 되지 않았다는 답변에 체면이 안서게 된 청와대는 부랴부랴 통일부 예산을 끌여당겼다고 한다. 같은 국제회의인 부산 APEC에는 정부가 3백억원 이상을 쏟아놓고 정작 광주엔 한 푼도 내놓지 않은 채 덜렁 대통령만 내려가게 생겼으니 다급해진 것이다. 그러나 통일부라고 돈을 쌓아놓고 있지는 않았다. 이리 저리 변통해 겨우 2억5천만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자 광주시는 자존심이 상했다. 원래 신청한 9억원을 주든지 아니면 최소한 4억원이라도 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청와대가)2억5천만원이라도 가져가 달라고 통사정을 하는 바람에 결국 어쩔 수없이 이를 받은 것으로 이 기나긴 스토리는 막을 내린다. 그런데 정작 광주 국회의원들은 이 2억5천만원이 자신들이 편성해준 예비비라며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당시 예결위원이었던 양형일 의원이 강 위원장에게 강력히 요청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알라고 해라’라는 막말도 대응할 가치없는 상식 이하의 소리로 일축하고 있다. 정확하게 사실관계가 맞서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진실규명을 위한 시의회 차원의 조사를 벌이거나 시민단체가 양자 대질을 추진해야만 할 상황이다. 광주를 세계에 알린 중차대한 국제행사를 앞두고 분명 누군가 쪽박을 깬 사실이 그냥 넘어가선 안될 일이다. 또한 시민을 우습게 본 발언의 진위도 묵과할 수 없다. 과연 쪽박을 깬 적이 있는지 또 누가 그랬는지 정말 의문스럽다. 그러나 그 보다 알고 보면 그저 너나 할 것없이 불쌍한 처지에 이런 일로 시비를 가려야하는 우리네 신세도 정말 가련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칼럼
최혁
2006.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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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 지리산이 국립공원 1호로 거듭나려면-한강희 교수 오랜만에 지난 달 초 국립공원 1호 지리산을 종주했다. 성삼재에서 시작하여 노고단, 임걸령, 벽소령, 세석평전, 장터목, 천왕봉, 중산리에 이르는 1박 2일의 빠듯한 여정은 고단하면서도 짜릿했다. 세속에 찌든 몸엣것들을 비지땀으로 비워내자 산의 풋풋한 기운이 가슴속에 저며 들었다. 산은 돌길로 이어지는 거대한 바위덩어리로 다가오다가, 어느 순간 부드러운 마사토로 발바닥을 간지럽혔다. 산은 지친 육신에 숲그늘을 만들어 삽상한 청량감을 안겨주었다. 손채양을 하고 발치 아래로 속세간을 관망하노라니 영락없는 신선의 영역이었다. 유월의 산이 몸피에 품은 야생의 향취는 풀벌레와 조수 울음소리에 섞여 국립공원에 걸맞은 여름을 연출하고 있었다. 지리산은 20곳의 국립공원 중 1967년 12월 1호로 지정된 곳이다. 북유럽의 산림지대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천연의 관광자원이 지천에 널려 있는 러시아와 중국, 미국과 캐나다에 견줄 만한 국내 유일의 곳이다. 국내 최대 면적의 육상공원(14억 5천 6백만평)으로서 산악의 대표성, 상징성, 역사성을 고루 갖춰 흔히 ‘민족의 영산’으로 불리고 있다. 최고봉인 경남의 천왕봉(1,915m)을 비롯하여 전북의 반야봉(1,751m), 전남의 노고단(1,507m)이 있는데 정상에 오르면 남원, 진주, 곡성, 구례, 함양이 한 눈에 들어온다. 국민의 자연공원인 국립공원은 1872년 세계 최초로 미국이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만든 데서 기원한다. 국립공원의 지정은 자연을 원형에 가깝게 잘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주고, 학술적 연구를 통해 삶의 질에 기여하며, 생태계의 균형 유지에 도움을 주기 위하는 데 목적이 있다. 미국 몬타나 주에 위치한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정책과 행정, 관리와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벤치마킹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필자도 몇 해 전 미국 서부 로키산맥 인근을 관광하면서 이곳을 경유한 적이 있었다. 이 공원은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혜롭게 관리, 운용하는 것은 물론 선진 관광 의식의 편린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곳이었다. 해발 2천~3천m에 위치한 이 국립공원에는 사계절이 교차하고 있었고, 말사슴과 은여우가 인도로 다가오는 등 사람과 동물이 교호하는 지대였다. 전라남북도 정도의 면적임에도 거주 민가가 없고, 온천수가 콸콸 쏟아지는(올드 패이스풀은 간헐천으로 1시간 간격으로 40~50m 높이로 물기둥이 솟구친다)데도 상혼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관리가 잘 되고 있었다. 북미에서 가장 많은 포유류를 내장한 이 천연과 야생의 공원을 경험하고서야 세상에 유토피아니, 파라다이스니 하는 말을 어림짐작 할 수 있었다. 특히 북문 아치에 세워진 “인류의 즐거움과 이익을 위하여”라는 단순명료한 캐치프레이즈는 국립공원의 참 뜻을 잘 알려주었다. 국립공원 1호 지리산이 옐로스톤 국립공원 운영에서 시급히 배워야 할 부분이 있다. 우선 등산객 취침 위주의 대피소도 필요하지만 내방객에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투어리즘 센터로서의 성격도 갖추어야 한다. 생태공원으로서 생태환경적 가치, 응급 구조 요령, 등산 로드맵도 구비해 놓아야 한다. 당연히 환경오염 방제 설비, 시민의식 함양도 관건이다. 많은 곳에 펜션목 사다리 등이 설치돼 안전을 도모하고 있지만 주봉 천왕봉 인근은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산을 즐길 만한 안내 표지판도 미흡하다. 아울러 지리산과 관련한 문화와 역사, 생태계 학습에 필요한 교육공간도 요청된다. 도-시-군의 경계구역이기에 자칫 행정 사각지대로 남을 우려를 광역행정을 통해 불식해야 한다. 지역자치단체장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국세, 지방세를 투여하는 대승적 지혜도 아쉽다. 국립공원 1호 지리산이 한국을 대표하는 천혜의 자연관광상품으로 환골탈태하기를 기대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6.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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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멤피스의 고이즈미 쇼 지난 7월 3일자 금주 타임지의 커버스토리가 일본 수상 고이즈미에 대한 것이었다. 누군가에 대하여 정중하게 절을 하고 있는 그의 전신사진과 같이 고이즈미 이후라는 제목과 뒤이어 ‘그는 일본 정치에 새로운 개혁을 이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는 과연 그가 이룩한 개혁을 계승할 수 있을까’라는 문장으로 그의 업적을 평가하고 있다. 그 다음 날인 7월 4일이 미국 독립 220주년 기념일임을 감안할 때 고이즈미의 큰 절이 아무래도 미국을 향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고이즈미는 다음 9월에 그의 5년 동안의 수상직에서 물러난다. 그는 전후 60년 동안 5년을 버틴 단 세 사람의 수상 가운데 하나였다. 타임지가 말하듯 그는 당당하고 카리스마를 가진 기회의 사나이였고 일본의 대중적 희망을 성공적으로 반영한 사람이었다. 도요타의 오꾸다 회장이 말하듯 그는 10 년 동안 늪에 빠진 일본 경제를 회복시킨 사람이었고 우정 민영화 등 과감한 개혁을 통하여 일본정치에 새바람을 불어넣었고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 일본 국민의 일반적 우경화 바람에 앞장서서 그들의 남다른 지지를 획득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고이즈미 정치의 특징은 친미 정책이었다. 일본 우익의 대표적인 정치가인 도쿄 도지사 이시하라가 ‘이제는 우리도 NO라고 말해야 한다’는 말로 미국에 대하여 독자적인 발언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비하면 고이즈미는 타임지의 커버스토리가 상징하듯 철저하게 미국에 저자세를 보였다.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 일본의 반응을 보면 일본정부와 일본 국민은 미국 정부나 국민 못지않게 신속하고 충직하게 반영하였고 이라크 전쟁에 있어서 일본 정부의 지지는 미국의 기대 이상의 것이었고 미국의 대 대만 정책과 대 중국 정책에 보조를 같이 함으로써 미국으로 하여금 일본을 유럽에 있어서 영국처럼 신뢰하게 만들고 있다.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간 외교적 마찰을 빚고 있음은 물론 따지고 보면 지난 2차 세계대전 동안의 그 역사적인 측면에서 분명히 반미적 의식의 반영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방관하고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고이즈미의 친미 정책의 성공적 성과로 해석된다. 고이즈미의 친미 정책으로 일본이 미국에 충직하고 우호적이라는 자세를 확인시키고 있고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고이즈미의 신사 참배가 중국을 자극하고 대립 각을 세움으로서 미국이 간접적인 이득을 얻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문제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은 미국의 영향권에서 해결되는 문제로 보고 있는 듯하다. 고이즈미가 지난 6월말 미국을 방문한 것은 타임지가 지적하듯 미국에 이임 인사 방문의 성격을 지닌다. 부시 대통령은 그에게 파격적인 예우를 갖추었다. 바로 전 중국 후진타오의 방미 대우하고는 너무나도 차별된 예우였다. 그 대접 가운데 하나가 고이즈미와 부시의 동반 멤피스 방문이었다. 멤피스는 테네시주의 서쪽에 위치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향이다. 그의 초기 히트송 가운데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가 있다. 미국에 대한 고이즈미와 일본의 구애를 상징하고 있다. 고이즈미는 월드컵 기간에도 그의 노래 연습에 열중했다고 하니 아마 그 것은 방미 계획의 일환이었다고 해석된다. 외신 등이 보도한 고이즈미의 노는 모습은 목불견(目不見) 이다. 그러나 고이즈미의 국익을 위한 실용적 친미 쇼는 오늘 세계의 현실 정치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 멤피스는 킹 목사가 피격 사망한 곳이고 거기 그의 기념관이 있다. 그들이 인권의 상징인 거길 방문했다는 보도는 없다. 남의 나라 인권을 그렇게 시비하는 그들이 아닌가. 3년 전 나는 그 멤피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 고이즈미가 어디서 춤을 췄는지 눈에 보인다.
칼럼
남도일보
2006.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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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파일] 월드컵이라도 봐라-오치남 사회부장 여전히 ‘지구촌의 축제’ 월드컵보다 못한 우리의 정치 현실. 2006독일월드컵과 민선4기 출범이 겹치면서 오버랩되는 대목이다.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월드컵. 조별리그와 8강, 4강전을 치르면서 각국 선수들은 승리를 향해 뛰고 또 뛰었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자마자 상대 선수를 붙잡고 걷어차기도 한다. 결정적인 실점위기 상황에서는 거친 태클로 상대를 넘어뜨린다. 때론 엘로카드를 받거나 아예 퇴장을 당하기도 한다. 오로지 이기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면 모두가 하나다. 이긴 팀도, 진 팀 선수도 서로 부둥켜 안고 격려해 준다. 그러나 우리지역 정치 현실은 정반대다. 3일 일제히 치러진 민선4기 단체장 취임식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광주·전남지역 일선 단체장과 국회의원들이 5·31 지방선거 과정에서 깊어진 감정의 골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날 열린 민선 4기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 취임식에 지역 국회의원들이 대거 불참한 것이다. 지역구 활동 및 국회 일정 등이 우선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 모양새는 좋지 않았다. 특히 박 시장 취임식에는 초청받은 광주지역 의원 7명 전원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 여당 소속이다. 민주당 소속 시장 취임식에 들러리를 서 줄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해 동구출신 양형일 의원은 “지역민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동구청장 취임식에는 참석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소속 박준영 지사 취임식 참석자 역시 전남지역 출신 열린우리당 소속은 여수출신 김성곤 의원 단 한명뿐이었다. 전남지역 기초단체도 사정은 비슷했다. 무소속 신정훈 시장이 취임한 나주시는 지역구인 민주당 최인기 의원에게 초청장을 보냈지만 최 의원은 박 지사 취임식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전남도당 위원장이란 이유에서였다. 열린우리당 소속 이영호 의원도 같은 지역구인 강진과 완도군 가운데 같은 당 소속 단체장 취임식에만 참석했다.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영광과 함평군수 취임식장에는 민주당 소속 이낙연 의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박 지사는 자신의 취임식을 마친 뒤 이날 민주당 정종득 목포시장과 열린우리당 서삼석 무안군수 취임식장을 찾아 대조를 보였다. 정당 소속 여부를 떠나 전남도청소재지권 기초단체와 화합 차원에서였다. 이 지역 광역 및 기초단체장 취임식에 국회의원 등 정치권의 참석여부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간의 갈등이 지역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미 광주지역 국회의원들이 선거 TV토론회 R&D특구 발언과 관련, 박 시장을 고소한 상태다. 박 시장측도 최근 열린우리당 시장 후보였던 조영택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지 않았느냐는 지적이다. 이에앞서 지역 의원들이 노벨평화상 수상자 광주정상회의 개최에 필요한 국비 지원을 막았다는 소문도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전남 일부 기초단체의 경우 단체장과 지역구 의원이 당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국고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단체장과 지역구 의원간의 갈등이 민선 4기에도 계속되면 지역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광주 문화중심도시와 전남 F-1 특별법을 비롯해 공동혁신도시 건설, 광양항 개발, 여수엑스포 유치 등 굵직굵직한 현안사업 추진에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월드컵 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유니폼까지 바꿔 입으면서 진한 ‘동업자 정신’을 보여준다. 관중들과 지구촌 사람들은 이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적(敵)을 동지로 만드는 것이 정치’라는 어느 원로 정치인의 말대로 당리당략을 떠나 지역발전에 힘을 모으는 자치단체와 정치권으로 거듭나길 모두가 바라고 있다./ocn@
칼럼
남도일보
2006.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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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환경 친화적인 삶에 관하여 -김영관 교수 청계천 복원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도심을 관통하는 강 하나 복원시킨 정도의 의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국민소득이 지금보다 훨씬 못했던 시절, 자연 보존 보다는 개발이 우선이었다. 그렇지만 바다를 막고, 산을 뚫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우리는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무분별하게 바다를 막아 어획량이 감소되고 철되면 찾아오던 수많은 철새가 발을 끊는가 하면,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산 허리를 마구 동강 내 수백년 된 자연림이 사라져 간다. 장마철이면 민둥산에서 쏟아져 내리는 산사태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예전엔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이라 하지 않았던가? 지하수를 파면 어디에서나 맑은 물이 콸콸 쏟아져 생수로 마실 수가 있었다. 계곡엔 1급수에서만 볼 수 있는 가제, 새우가 살곤 했다 그런데 지금 개천은 파랗다 못해 까맣게 썩어 가고 있다. 산과 들 그 어디에도 우리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 놀기에 적합한 공간이 없다. 필자가 몇 년 전 교환 교수로 뉴질랜드에 1년간 체류한 적이 있었다. 뉴질랜드 수도인 웰링턴 앞 바다에서는 썰물때면 미역을 손으로 건져 올려 생으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청정 해역이다. 호주로 90% 이상을 수출하는 치약 공장 굴뚝에서 내뿜는 연기는 무공해 증기이다. 자연 보호를 위해 애써 풍력 발전소를 건립, 가동하는 등 이들은 후손들에게 살기 적합한 환경 보존에 심혈을 기우리고 있다.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1년 내내 세차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거의 모든 공간들이 녹지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 기성세대들은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살기 적합한 환경의 나라를 물려주어야 한다. 학교에서도 자연보호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고 방학이면 닭과 토끼, 소 그리고 상치, 배추, 쑥갓을 비롯한 온갖 동식물들이 어떻게 사육, 재배 되는지를 체험기간을 두어서라도 배워 알게 해야 한다.그리고 강과 바다, 하천 살리기가 얼마나 중요하고, 우리 산과 들에 존재하는 나무와 꽃, 풀이 어떻게 분포되어 존재하고 있는지도 알게 해야 한다. 전남 도청이 떠난 후 광주 도심이 텅텅 비어 있다. 그야말로 동공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텅빈 도심을 어떻게 복원시킬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와 맞물려 광주천도 살려야 한다는 주장 또한 만만치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청계천처럼 광주천 살리는 일도 천 하나 살리는 정도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도심에 강이 흐르는 곳에 사는 시민들이 그렇지 못한 도시민보다도 훨씬 더 감성이 풍부하다는 말이 있다, 돌려 말하면 변변한 강 하나 없는 광주 시민들은 정서적으로 메말라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전남도청이 떠나 동공 상태인 광주 시내를, 몇 백년이 지난 후에도 자연 친화적인 광주가 되게 하여 우리 후손들이 자긍심을 갖고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옛 전남도청에서부터 금남로 일원에 더 많은 녹색공간과 휴식공간이 만들어지고, 광주천에 사철 푸른 물이 흐르게 해야 한다. 이번 광주 개발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형적인 단점인 ‘빨리빨리식 개발’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몇 백년 뒤에도 우리 후손들이 살기에 적합한 광주를 만드는데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칼럼
남도일보
2006.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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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 한나라당, 常數인가 變數인가 대선(大選) 장정(長征)에 나선 한나라당 예비 주자(走者)들의 호남행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방선거 이전은 차치하고라도 광역단체장 신분에서 홀가분해진 지금 그들의 발길은 이 지역이 기억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가장 분주해진 듯싶다. 서울시장에서 퇴임한 이명박 前시장은 국내 첫 일정으로 다음달 중순 호남이나 충청도 지역 농촌체험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는 예전부터 입버릇처럼 ‘호남표는 다른 곳보다 (가치가) 10배 이상’이라고 되뇌이는 중이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지난 1일 ‘국민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 국가의 과제와 비전을 찾겠다’며 ‘민심대장정’ 첫 코스로 장성군 남면 학사농장을 찾았다. 박근혜 전대표의 행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호남에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제 아무리 복잡하고 현학적으로 설명해도 결국엔 표심을 얻기 위해서다. 수십년간 각종 선거에서 호남 민심의 주변만 얼쩡거렸던 수세적 태도를 벗어보겠다는 생각이다. 이 지역에서도 정치적 변수(變數)가 아닌 상수(常數)가 돼보겠다는 그들의 야심(?)이 얼마나 충족될 수 있을지 관전하는 쪽에선 흥미롭기 그지없다. 재미있는 현상은 그 뿐만이 아니다. 정작 이 지역의 정치적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민주당측에선 한나라당을 정계개편의 변수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다. 3선 관록에 민주당 부대표를 맡고 있는 박광태 광주시장의 분석은 이렇다. 그는 원래 지난 지방선거 이후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이 모두 분열될 것으로 내다봤다고 한다. 국정 실패에 공동책임을 지고 있는 여당이나 거대 야당 모두가 심판을 받아 양당에서 극우와 극좌가 각각 분리돼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압승하는 바람에 한나라당은 당내외 상황이 더더욱 고착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젠 선거에서 참패한 열린우리당이 변화해줘야 하는데 이것도 쉽지가 않아 보인다. 당 지도부도 그리 마음을 비우는 것같지가 않고 노무현 대통령도 ‘당을 붙들고 가자’는 입장이다. 이래서야 민주당이 원하는 대로 정계개편 바람이 불기는 힘들다. 그러자 박 시장은 광주·전남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만이라도 먼저 정신을 차리고 당을 뛰쳐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직도 탄핵 싹쓸이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방선거 패배가 후보들의 잘못인 줄만 아는 둔감하게 앉아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계개편은 더더욱 힘들어지고 그러다보면 한나라당 좋은 일만 해준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박 시장은 다음 정권에 반드시 호남이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탄생에 어찌됐든 호남이 주도적 역할을 해왔는데 이번 역시 그냥 손놓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역 발전이나 국가발전을 위해서도 호남이 중심에 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의 발로다. 그래서 나온 게 ‘연정론(聯政論)’이다. 정히 열린우리당이 움직이지 않으면 한나라당과 연립정부를 세우는 한이 있더라도 호남이 정권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논리다. 더 이상 정권으로부터 소외를 받고 살아서는 호남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정통 민주개혁 세력을 자임하는 민주당이 민정당을 뿌리로 둔 한나라당과 연합하기에는 적잖은 부담이 뒤따른다. 결국 이 연정론에는 열린우리당내 개편론자들을 분발시키자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그러고 보면 민주당측에선 한나라당에 정계개편의 변수 역할을 기대하는 셈이다. 호남에서 정치적 상수가 되고자 하는 한나라당이 이러한 변수 역할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일단 교두보를 마련해야 하는 그들로서는 이 복잡한 호남표 방정식 안에 들어와야할 처지다. 어쨌든 호남 민심을 두고 앞으로 전개될 각 정치집단의 함수관계가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칼럼
최혁
2006.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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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 ‘붉은응원’ 있는 한 꿈은 이루어진다-한강희 교수 스위스 전이 열리던 날 새벽, 도심의 거리는 한산했다. 여명이 채 움트기 전임에도 와이드비전이 설치된 극장, 대학 강당, 호프집은 온통 붉은 물결로 넘실거렸다. 이 시간 줄잡아 국내에서 1백68만 명의 응원객이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친 것으로 추산됐다. 해외 각국의 동포와 독일 현지까지를 포함하면 그 숫자는 비약적이라 할 만하다. 스위스와의 일전은 심판의 모호한 판정 등으로 16강에 오르지 못한 채 아쉽게 막을 내렸지만 이번 경기역시 2002년 못지않게 우리 민족의 저력과 끈기를 만천하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생각한다. 한일 월드컵이 코리아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데 성공했다면 이번은 월드컵 사에 한 획을 긋는 자리가 되었다. 나는 우리 축구가 한민족의 열정과 투혼을 세계 중심에 깊이 각인했다는 점에서 이미 꿈은 이루어졌고, 신화는 재현된 셈이라 주장하고 싶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잠시 축구를 한 경험이 있지만, 축구 전문가는 아니다. 더욱이 한국 축구를 평할 수준의 주견과 식견을 갖고 있지도 못하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순전히 우리 축구에 대한 애정에서 기인한 사견임을 밝힌다. 월드컵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과 향후 비전을 위한 제언 정도라 생각하면 좋겠다. 우선 태극전사가 보여준 투혼에 관한 것이다. 축구는 강한 체력과 고도의 기술수준, 팀의 조직력이 승패를 좌우한다. 이번 월드컵은 이변과 기적보다는 객관적 전력이 우위에 있는 팀들이 승리를 거두고 있다. 이런 점에 비춰 본선 토너먼트에서 보여준 태극전사들의 기량은 유럽과 남미에 비해 약간 뒤쳐진 게 사실이다. A매치를 그다지 많이 소화하지 못한 편이어서 조직력을 정비하는 데도 시간적으로 충분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우리 축구가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근거는 열정과 투혼, 경기의 흐름을 주의 깊게 읽는 전략뿐이었다. 우리 팀은 토고와의 스코어가 2대 1인 후반 20분부터 상황 종료에 주력하다보니 공격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실점 위기가 몇 차례 있었다. 시간끌기는 관중들로부터 야유를 받기도 했다. 스포츠에서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은 딱 이 상황에 맞는 말이었다. 토고는 레드카드를 받아 10명으로 싸우고 있었다. 프랑스와 스위스의 객관적 전력이 파악된 이상 우리는 ‘경우의 수’를 생각하더라도 3대 1이상의 스코어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경기가 끝난 후 사실 나는 어떤 불길한 조짐을 읽었다. 예상대로 그 덫에 걸려 16강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단언컨대 특유의 투혼으로 토고와의 스코어를 3대 1로 벌렸다면 이후 게임에 훨씬 부담이 덜어져 순조로운 항해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스위스와의 경기에서도 우리는 좋은 교훈을 얻었다. 오프사이드가, 핸들링이 분명한 오심이었지만 최종 판정이 나기까지는 혼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태도가 아쉬웠다. 심판과 부심의 판정에 연연하지 않고 골을 지켜냈더라면 후반 상승 분위기에 힘입어 한 골을 얻을 수 있었고, 스위스가 당황해 인저리 타임 때까지 추가골을 터뜨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태극전사가 기록한 많은 골들이 후반 막바지에 나오지 않았던가. 열정과 투혼은 규율이라는 범위 내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 ‘역사는 가정이 없다’는 말이 적용된다면, 위 얘기는 한 관전자의 푸념에 불과하다. 여하튼 23명의 태극전사들은 자랑스러울 정도로 혼신을 다해 싸웠다. 마지막으로 제언 한 가지. 열정과 투혼의 붉은 열기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기제가 되었다. ‘붉은 악마’로 대변되는 ‘거리 응원’ 문화를 어떠한 형태로든 축제 한마당으로 승화시켰으면 한다. 세계가 한국 축구 못지않게 ‘붉은 투혼’에 환호하고 있는 만큼 개최지 여부와 관계없이 명품브랜드로 구체화 해보자.
칼럼
남도일보
2006.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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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무등산에 큰 비 큰 바람 불던 날 요즘 나는 마음속에 두꺼비가 따라다닌다. 비가 내리면 산에서 자주 만나기 때문이다. 두꺼비도 큰 비나 큰 바람을 좋아한 것인지 큰 비가 내리고 큰 바람이 부는 날이면 두꺼비는 발에 밟히게 산길을 가로막는다. 발에 밟혀도 산에서 나는 두꺼비가 밉지않다. 그렇다고 친구도 아니고 그저 잘 만난 관계인 것이다. 그러나 산에서 내가 사람보다 두꺼비를 더 좋아한 것은 사실이다. 두꺼비가 어디를 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묵묵하게 다만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좋고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그들의 침묵이다. 두꺼비에 대한 나의 의식은 반드시 내가 큰 비가 내리거나 큰 바람이 불어야 무등산이 오르기 좋다는 허세나 건방이나 오만이나 기벽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산에서 내가 큰 비나 큰 바람이 좋은 것은 내가 혼자임을 더할 나위 없이 실감케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산에서 혼자인 것이 좋다. 사람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이보다 더한 기회는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어떤 몰두, 가령 월드컵이나 대화나 만남이나 독서 아니면 글 쓰는 어떤 일보다 산이 좋다. 그것은 나의 생활이나 기질 이상의 것이다. 나는 산에서 잘 바람을 만나고 비를 만난다. 그래서 바람이나 비 가운데 어떤 쪽이 더 좋은가 묻는다면 그 대답은 비나 바람 앞에 크다는 형용사를 붙여서 큰 비나 큰 바람 가운데 어떤 편이 더 좋은가 물어야 대답하기가 편하다. 대답이 더 확실해 지기 때문이다. 산은 비만 내려도 좋고 바람만 불어도 좋은 데 큰 비나 큰 바람을 만나는 것은 드물고 귀한 행운에 속한다. 그러나 굳이 말해야 한다면 큰 비가 나에게는 더 좋다. 그것은 큰 바람보다는 큰 비가 쾌감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그 쾌감은 땀과 관계가 깊다. 땀에 대하여 나는 도덕적 생각을 하지않는다. 생리적이고 본능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다. 무슨 병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렸을 적에 땀을 흘리고 살아난 생각이 지금도 나를 지키고 있다. 지난 일요일 무등산에 큰 비가 내리고 큰 바람이 불었다. 토요일이 산에 가는 정한 날이었기 때문에 이미 그 안 날에 다녀온 터, 그러나 그 큰 비 큰 바람에 일어나는 끼를 집에서 인내할 수가 없었다. 버스가 운림동에 이르자 버스 안에는 기사와 나만 남았다. 기사가 무엇인가 물었다. 아마 이 비 이 바람에 산에 가겠다고 나선 노인이 다소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기사도 나도 말이 겉돌았다. 그리고 웃었다. 질문도 대답도 실없는 것이었다. 산에서 사람들은 벌레나 짐승 못지않게 예민하다. 예보에 비가 내린다하면 알게 사람 수는 적다. 거기에 큰 비 큰 바람이 분다하니 그날 무등산은 인적이 없었다. 산에서 만나는 큰 비나 큰 바람은 생각키 보다 훨씬 온순하다. 도시의 거리나 들 복판에서 만나는 그들보다 신뢰해도 무방하다. 그들은 등산을 방해할 만큼 악랄하지 않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그만한 것은 다 안다. 그러나 그날 무등산에 사람들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만한 비 그만한 바람이면 드물게 만나는 사람 간에 인사를 나눌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만한 사람도 없었다. 토끼등 약수터에는 나처럼 실수처럼 온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산이 재미있지 않겠는가. 도적이 도적을 만나거나 미친놈이 미친놈을 만나면 할 말이 없이 서로 웃기만 하듯 그런 사람이라도 거긴 있어야 한다. 산에서 그것도 큰 비와 바람 속에 철저하게 혼자이구나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하나와 하나 아님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가 더 위대한가 아니면 열이 더 위대한가. 19세기는 일당백이 특징인 시대였다. 그것을 그들은 영웅시대라고 불렀다. 20세기에 사람의 머리 수가 영웅보다 소중한 시대였다. 그것을 사람들은 민주주의 시대라고 불렀다. 오늘은 하나가 열이면서 다시 하나인 시대이다. 그래서 수는 이미 실체가 아니게 되어버린다. 큰 비 큰 바람 속에 무등산에서 만나는 복의 상징인 두꺼비는 아마 그렇게 살 것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06.2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