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코로나19에 잡혀 한 달 가까이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는데, 닷새 동안 독방에 갇혀 꼼짝 할 수 없었다. 아무 말 못하고 병원에서 주는 밥과 주는 약을 먹으며 종일 누웠다가 앉았다가를 반복하며 시계만 바라보았다. 열이 오르고 찢어지게 목이 아프니 휴대전화로 주변과 말을 주고받을 수도 없었다. 완전히 혼자 보내야만 했던 시간, 닷 새의 기다림이 한 오년의 세월인 듯 외롭고 두려웠다.그 사이 휴대폰으로 위로 문자를 보내주었던 지인, 문고리에 음식을 걸어두고 갔던 도반, 택배로 보내주었
우리나라 음대 입시는 이론보다 실기에 집중되어 있기에 필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피아노 연습에 할애했다. 혹독하고도 힘들었던 입시를 무사히 치르고 마침내 음대생이 되었다. 대학교는 고등학교와 달리 피아노 전공이라도 폭넓은 음악공부를 요했다. 그래서 필자는 체계적으로 음악이론과 서양음악사를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피아노 작곡가만 알던 필자에게 오페라와 앙상블에 뛰어난 작곡가들이 있음을 알았고 리하르트 바그너 역시 그 중 한사람 이었다. 성격은 좀 다르지만 프란츠 리스트가 ‘피아노계의 아이돌’이라면 바그너는 ‘오페라계의 아이돌’이었다.심지
우리나라 총인구가 2021년부터 처음으로 감소하기 시작하였지만, 이보다는 지방소멸위험이 실제 생활에서는 두려움이 더 크게 다가온다. 올해 초 소멸위험지수(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 0.5 이하인 소멸위험지역은 전국에서 118개 기초지자체인데, 광주·전남은 광주, 목포, 순천, 광양, 무안 등을 제외한 나머지 시·군이 해당된다. 이 중 11개 군은 소멸위험지수가 0.2 이하, 즉 노인인구가 40% 이상인 소멸고위험지역으로 마을공동체가 이미 소멸하고 있다는 의미이다.2000년대 초부터 실시하던 출산·육아 지
새로운 학기가 시작됐다. 필자에겐 새해만큼이나 의미가 있는 때이다. 올해의 후반전이 이렇게 시작되는 것을 보니 올 한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때 이른 투정 같지만 새로운 다짐으로 시작하는 시기에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에 눈을 뜨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다. 오늘을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마무리하느냐도 중요하다. 소위, ‘유종의 미’라는 말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유종의 미’는 다양한 맥락에서 주목받는 개념이다.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결과나 성과에 대한 평가에서 사용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지구 표면의 70%를 덮고 생물권의 95%를 형성하는 바다는 지구상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소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바다의 가치와 무한한 잠재력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이는 오랜 역사적 관성(조선시대의 초장기적 空島와 海禁정책)으로 인해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육지중심적인 삶과 사고방식이 자리 잡게 되었으며, 아직도 해양에 대한 소극적 공간인식의 형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들어오면서, 해양 자원과 영토를 둘러싼 갈등이 늘어나면서 바다의 가치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요즘
올해 7월의 전 지구 평균 기온은 관측 사상 가장 높았다. 지구의 상태는 이제 온난화를 넘어 “끓어오르고 있다”라고 표현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발생하는 열을 흡수한 바다의 온도 또한 올해 4월 이후 기록을 갱신하면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특히 적도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유례없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슈퍼엘니뇨의 발생 역시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비정상적이었던 것들이 정상이 되는 것을 뉴노멀이라 한다. 전 지구 기온이 상승하고 바다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폭우와 폭염, 태풍 등 자연 현상의 강도가 커지고 전에 경험하지
오래 전 일이었다. 내가 맡은 1학년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앙앙 울어대며 교실로 뛰어 들어왔다. 허리에 메고 있던 책보자기가 풀려 책들이 화장실에 쏟아져버렸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달려가 봤지만 재래식 화장실이라서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교사용 책을 꺼내 보자기에 싸주었지만 자기 것이 아니라며 절대 받지 않았다.다시 긴 막대기를 들고 화장실로 가서 빙빙 돌리며 꺼내는 시늉을 했으나 책들은 더 깊게 가라앉고 말았다. 지독스런 냄새 때문에 코를 막고 우두커니 서 있는데, 아이는 “선생님, 내 책 꼭
오랜 여행을 끝내고 돌아올 때 멀리 무등산이 보이기 시작하면 대부분 “집에 다 왔구나. 이제 편안히 쉴 수 있구나” 하는 포근한 느낌을 갖는다. 또 일상에서 슬프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동네 높은 곳에 올라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내려다 보면서 울적한 마음을 달래곤 한다. 바로 그러한 곳이 그 도시의 상징인 랜드마크이다.요즘 아파트 분양광고에 “○○의 新랜드마크”, “랜드마크의 시작” 등 랜드마크라는 단어가 생뚱맞게 자주 등장한다. 아마도 분양하는 아파트가 그 지역에서 최고층이면서 대표적인 최고 명품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 같다.국
몇 해 전, 군대 이야기를 바탕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한 드라마를 뒤늦게 시청하게 되었다. 군필자들이 무용담처럼 펼쳐놓는 이야기를 귀동냥 삼아 들었던 게 전부인 소위 ‘군대 이야기’의 이면을 화면으로 직접 마주하고 보니 장면들이 지날 때마다 ‘실제 가능한 이야기’인지 되묻게 되는 상황이 적지 않았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사정과 입장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그들의 ‘범법행위’가 이해만으로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작은 관심과 바윗돌 사이에서 샘솟는 물방울 크기 만한 용기가 그들의 행동을 잠재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
우리 국민은 오랜 세월 동안 바다와 함께 생활해 왔으며, 바다는 우리 삶에서 중요한 일부로서 자리하고 있다. 국내 연안은 경제성장정책과 맞물려 항만 및 물류시설, 산업단지, 수산업 활동공간으로 폭넓게 활용되어 왔다. 최근에는 여가시간의 확대에 따라 해양을 관광 및 휴식활동의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웰니스 시장이 성장하면서 휴식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생활 및 소비 트렌드의 부상과 더불어 국민 휴양기회 제공 및 복지서비스와 연계하려는 해양정책들이 마련되고 있다.최근에는 해양환경 보전과 지속가능한
다시 인천국제공항이 붐비기 시작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는 사람들의 손과 발을 묶어 두었다. 그래서인지 코로나가 우리 곁을 떠나자 자유로운 몸이 된 그들은 다시금 공항으로 모여들었다.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자 휴양지로 떠나는 사람도 있고, 과거의 유산을 감상하기 위해 유럽으로 발길을 옮기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방학을 이용해 아이들의 영어 공부와 더불어 다양한 문화와 환경을 경험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필자에게 있어 해외 여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유럽이다. 아무래도 대학교 때 첫 해
올해가 이상하다. 지난 3년 동안 전 지구적으로 많은 피해를 가져왔던 ‘트리플 딥 라니냐’가 끝나고 4월부터 열대 태평양 엘니뇨 감시구역에서의 해수면 온도가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페루 앞바다에서는 수온이 평년보다 2.5도 이상 높게 관측되고 있다.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에 열대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2도 이상 치솟았던 해는 슈퍼 엘니뇨가 있었던 1982·83년, 1997·98년과 2015·16년이 유일하다.‘슈퍼 엘니뇨’란 열대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1.5도 이상 높은 기간이 3개월 이상 계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슈퍼
이성자(동화작가)6월의 그날, 귀순 씨는 딸을 등에 업고 부랴부랴 방공호로 숨어들었다. 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겨우 비집고 들어갔는데, 등에 업힌 딸이 답답한지 칭얼대기 시작했다. 주변의 눈총이 따가웠지만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아이가 등에 얼굴을 비벼대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리 다 죽겠어요.” 누군가의 간절한 말에 귀순 씨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방공호를 나와 피난 가는 사람들 맨 뒤에 따라 붙어서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눈앞에 개울이 보였다. 열아홉 시집올 때 친정어머니가 만들어준 무명버선이 물에
최근 한 조사결과를 보면, 전세사기의 54%는 전세 계약과 매매 계약을 함께 진행하는 이른바 ‘동시 진행’으로 나타났다. 신축빌라 전세 계약 후 임대인이 바뀌면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25%로 그 뒤를 이었고, 임대인이 재산을 숨기고 개인회생이나 파산신청을 진행한 경우가 10%였다. ‘동시 진행’과 전세 계약 후 임대인 변경은 전세사기에 가담한 사람들의 구성을 볼 때 대체로 유사한 사기수법이다.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동산 갭투자는 세입자의 전세금과 집값 시세의 차액만큼 본인이 투자해서 일정기간 지난 후 집값이 상승하
한 학생이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연구실을 찾았다. 미리 약속 시간을 잡으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상담을 요청한다는 만남의 목적을 알려줬었던지라 나름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 매년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는 학생들을 숱하게 만나온 필자로서는 이들의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지만 필자를 찾는 학생들 각자는 나름의 고민이 가장 크고 깊을 것이다. 그래도 자기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가히 높게 칭할만하다. ‘그냥 시간 흐르는대로’, ‘그저 주변에서 시키는대로’하면 살아지겠지 라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의외로 많
12년 전, 2011년 3월 11일 오후 평범한 하루였다. 대학 도서관에서 과제를 하고 있던 중 갑작스럽게 거세게 흔들림과 함께 핸드폰에서 지진 발생 대피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일본 학생들은 반사적으로 도서관을 뛰쳐나갔고, 필자도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여 대피했다.그 날, 일본 동부 연안과 70㎞ 거리에 있는 태평양 해저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 거대한 쓰나미는 높이 14m를 초과하며 일본 본토의 북동부지역을 강타했다. 이는 한 달 동안에만 여러 차례의 여진이 동시에 몰아쳤던 동일본대지진이었다. 이러한 재앙은 해안 마을들을 직접적
지구의 인구는 얼마나 빠르게 증가하고 있을까? 1804년 지구의 인구수는 10억 명이었고, 20억 명으로 늘어나는 데는 120년이 걸렸다. 그러나 세계의 인구증가 추세는 점점 빨라져 1987년에 50억 명을 돌파했으며, 2011년에는 70억이었던 지구의 인구수가 2022년 11월에는 80억 명을 초과하였다. 10억 명의 인구가 증가하는데 단지 11년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머잖아 지구의 인구는 100억 명을 넘을 것이다.지구 상태의 심각성은 보통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여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산업혁명은 전통적인 농업과
5월 6일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달라스에서 총기 난사사건이 발생했다. 총기관련사고가 종종 일어나는 미국이라 불편한 마음은 항상 있지만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서 그리 놀라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이번 사건은 가족 전체가 희생양이자 나와 같은 한국인 가족이었기에 충격의 강도가 상당했다. 무차별한 총기 난사에 막내아들을 제외한 일가족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유일한 생존자인 6살 아이를 위해 사람들은 펀딩을 시작했고 조금이나마 힘든 세상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사람들은 십시일반 힘을 모아주었
몇 달 전 일이었다. 늦은 시각에 택시를 탔는데 앞좌석에 어린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아이는 내가 의자에 앉자마자 “안녕하세요?”라며 귀엽게 인사했다. 사연을 묻고 싶어 고개를 드는데, 룸미러 아래 대롱대롱 아이와 아빠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있었다. 자세히 보니 분명 기사님과 앞좌석의 아이였다. “죄송합니다. 아이를 집에 혼자 놔둘 수가 없어서….” 내가 묻기도 전에 기사님이 먼저 미안한 얼굴로 양해를 구했다. 혹시 아이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걸까? 아니면? 별별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문득 어릴 적 내 아버지의 모습이 떠
2020년부터 코로나로 온 국민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고 특히나 소상인들은 장사가 안 돼 임대료 체납이 쌓이고 폐업이 속출하였다. 정부는 고통을 분담하자는 취지에서 공공기관이 소유하는 임대시설에 대해 임대료 감면해주는 ‘착한 임대인운동’을 전개하며 적극적인 동참을 독려했다. 그러면서 행정안전부는 매년 실시하는 공기업 경영평가항목에서 부채비율의 비중는 축소하고 사회적 가치를 확대하겠다는 방안도 제시하였다.지방공공기관은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얻는 것이 사회적 신뢰도, 성과급 등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ESG(환경·사회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