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새해만 되면 올해의 포부와 계획, 목표에 대한 의지를 밝히는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인용한 신년사가 넘쳐난다. 덕담과 신년사의 핵심을 한자 네자로 요약하고, 듣는 이가 그 뜻을 해석하면서 가슴에 새기기에 제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도 높으신 분들의 신년사에는 온갖 종류의 그럴듯한 사자성어가 등장한다.올해 기관·단체장들이 신년사에서 채택한 사자성어에는 어느 해보다도 강한 비장함이 감돈다. 돌이켜보면 ‘위기’가 아닌 해가 없었고 이를 극복하려는 ‘혁신’을 주문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그러나 새해 벽두 들려오는 사자성어들을 음미해
2023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내 생애에 이런 즐거운 해가 있었던가!” 할 정도로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배려와 사랑이 넘치고 넘쳐 다시는 민망한 언어들을 쏟아내는 일이 없는 한해였으면 좋겠다.너무나 많은 슬픔과 아픔이 있었기에 올해는 평온(平穩)했으면 좋겠고 달라진 것이 많다고 상처는 아물었다고 위선으로 분장한 눈물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그것들이 태평성대(太平聖代)로 나타나는 새로운 시작이었으면 좋겠다.기만(欺瞞)이 진실(眞實)속에 숨어 있다가 마침내 그 실체를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그 진실의 기만을 위해
올해 마지막 ‘우다방 편지’ 쓰기가 두렵고 착잡하다. 한 해를 되돌아보면 자랑스런 일보다 부끄럽고 미안한 일이 더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다.물론 한국에너지공대 개교(3월 2일), 한국형 우주발사체인 누리호 발사 성공(6월 21일), 57년 만에 무등산 정상 내년 9월 상시 개방 합의 등 역사에 남을 쾌거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사상 최악의 사태와 악재가 터져 2022년은 역사에 ‘불행한 해’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전국 대학교수들이 선택한 올해의 사자성어 ‘과이불개(過而不改)’가 방증해 주고 있
[남도일보 김우관의 세상만사]‘고향사랑기부제’ 를 아시나요김우관(남도일보 중·서부취재본부장)“뒷동산 아지랑이 할미꽃 피면/ 꽃 댕기 메고 놀던 옛 친구 생각난다/ 그 시절 그리워 동산에 올라보면/ 놀던바위 외롭고 흰 구름만 흘러간다/ 모두 다 어디갔나 모두 다 어디갔나/ 나 혼자 여기서서 지난 날을 그리네”가수 조영남이 부른 대중가요 ‘옛 생각’의 1절 가사다. 50줄이 넘은 중·장년층이라면 한번쯤은 자신이 크고, 자란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읊조렸을 노랫구절이다. 어렸을적 그렇게나 높아보이던 골목길 담장은 어느순간 낮아 보이고, 동네
준영이 형! 세월이 약이라고 했지? 살다 보면 망각하기도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했잖아.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의 비통함이 시간이 갈수록 얕아지는 것 같아서 형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해. 그런데 말이야. 잊을 수가 없어. 세월이 가면 해결된다는 말, 그 말은 가족의 죽음 앞에서는 거짓말이 분명해. 나에겐 잔인한 12월, 이때가 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아픈 가슴을 달래야 하거든.이태원 희생자 가족도 마찬가지라고 봐. 왜 죽어야 했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어버린 황망한 사건이잖아. 그들의 가족은 사고 당시에 머물
오늘은 근대 빈자(貧者)의 은행인 전당포(典當鋪)를 통해 팍팍한 민중의 삶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전당포란 토지와 가옥, 재물, 채권 등을 담보로 돈을 꿔주거나 꿔 쓰는 ‘전당(典當)’에 가게를 뜻하는 ‘포(鋪)’자를 덧붙인 명칭이다.중국 사서인 ‘삼국지(三國志)’ 후한서에 전하는 전당 기록이나 ‘고려사(高麗史)’ 공민왕편에 인질에 관한 내용이 있는 것을 보면 그 기원이 짧지 않음을 입증시켜 준다.근대적 전당포는 1876년 개항과 함께 일본의 상업자본이 들어오면서 전당포 또는 ‘전당국’이라는 간판을 걸고 시작했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어게인(Again) 2002. 희망고문일까. 카타르 거센 모래 바람을 뚫고 20년전 한국의 ‘월드컵 4강 신화’를 다시 한번….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축구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거스 히딩크의 “우리는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란 명언을 또 다시 실감하길 온 국민은 바라고 있다.지구촌 축제인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이 막을 올렸다. 지난 20일 오후 11시40분(이하 한국 시간) 카타르 알코르의 알바이트 스타디움에서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의 개막 공연과 함께 개막식이 열려 전 세계의 이목을 받았다.파울루
지난달 28일, 목포 공생원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한국 고아의 어머니’로 칭송되는 윤학자 여사 탄생 110주년 기념식이 진행된 것이다. 당초 이 자리에는 김건희 여사가 참석할 것이라는 말이 무성했으나 김 여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강승규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만 참석했다.행사장을 찾았던 김영록 전남지사와 강 수석은 자연스럽게 회동을 가졌다. 정부와 대화 채널이 필요했던 김 지사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정무적으로 풀어야 할 전남 현안을 건의했다. 도민 절대 다수가 풀어야 할 현안으로 손꼽은 국립의과대 신설 문제와 전라
참으로 부끄럽다. 잊을만하면 합동분향소가 설치되는 나라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부끄럽고, 이 땅의 아버지로 산다는 것이 부끄럽고 죄스럽다.젊은이들의 목숨을 너무도 황망하게 앗아가는 나라, 국민의 안전보다 이전투구에 시간을 허비한 꾼들을 저지하지 못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땅의 어른으로서 핼러윈 참사 희생자분들께 머리 숙여 속죄의 마음으로 깊은 애도를 표한다.기자로 살면서 수많은 사건을 접했다. 그런데 코앞에서 이게 뭔가! 무슨 이런 끔찍한 일이 또 일어났단 말인가! 밀려드는 인파 속에서 “이러다 죽겠다”라는 두려움, 죄어오는
단풍철이다. 주말과 주중을 가릴 것 없이 오색으로 물든 산과 들에는 어디를 가든지 인파로 북적인다. 코로나19로 3년여 간 진행되던 비대면 방역정책이 유연해지면서 국내 여행이 자유로워진 결과다.오늘은 누구나 한, 두 가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음직한 수학여행의 기억들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소풍과 수학여행은 교실을 떠나 자연과 교감하거나 다양한 문화·산업시설을 견학하는 과외 활동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일제강점기이후 ‘원족(遠足)’이라 부르던 소풍이 매년 봄과 가을에 근거리를 하루 정도를 다녀오는 것이라면 수학여행은 학교 급별로 한 번
불통 정치, 고통 경제, 먹통 사회에 분통 국민. 요즘 우리나라 실정을 대변해 주는 표현들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6개월·민선 8기 출항 4개월을 맞았으나 불확실성을 넘어 불신의 연속이다. 미래를 알 수 없는 민초(民草·백성을 질긴 생명력을 가진 잡초에 비유한 말)들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보기 싫어 아예 TV 뉴스 채널을 돌린다. 신문도 그냥 접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취임식 취임사에서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국제사회에서
“매력을 가졌다면 죄가 될까?” 죄가 된다. 중세유럽에서는 그랬다.빅토르 위고가 쓴 ‘노트르담의 꼽추’에 나오는 에스메랄다처럼 15세기를 전후해 유럽에서는 권력자의 질투를 유발하는 매력을 가졌다면 ‘마녀’(魔女)라는 이름을 붙여 죽여 버렸다. 요염(妖艶)하면 죽음이었다. 결이 다르긴 하지만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한 잔 다르크도 마녀로 몰려 세상을 떠나야 했다. 한때 유럽에서는 군중에 의해 만들어진 이단자를 마녀로 판결해 불에 태워 죽인 야만의 역사가 있었다. 이른바 마녀사냥(witch-hunt)이다.마녀사냥은 자신과 뜻이 다르거나
남도는 지금 황금 들녘으로 물들어 있다. 태풍이 2개 정도 휩쓸고 갔지만 다행히도 남도 들판에는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대풍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올해도 풍년농사는 어느정도 예견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확한 생산량은 통계청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지난해보다 재배면적이 소폭 줄었음에도 생산량은 거의 대동소이하다는 전망이 현재로서는 우세하다.그런데도 풍년농사에 덩실덩실 춤을 춰야 할 농민들의 마음은 기쁨보다는 되레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쌀값이 지난 1977년 본격적인 통계 조사가 실시된 이래 45년만에 최대 폭으로 떨어
일제강점기인 1896년 5월 5일 인천에 곡물거래소라는 것이 문을 열었다. ‘기미(期米)시장’, ‘미두장(米豆場)’이라 불리던 미두취인소(米豆取引所)다. 주거래 품목은 쌀이었다. 취인소는 곧이어 쌀 이출항인 부산과 목포, 군산 등에도 들어섰다.소비에 상시적 특성을 갖고 있는 곡물은 생산 시기가 한정되고 자연재해나 전쟁 등 예측할 수 없는 요인으로 생산량에 영향을 받아 가격변동이 심한 편이다. 이때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거래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가 취인소다.하지만 취인소 등장의 진짜 배경은 따로 있었다. 쌀은 조선에서 경쟁력이
구순(九旬·90세) 촌로(村老)는 오늘도 지팡이를 짚고 태풍 ‘힌남노’로 반쯤 쓰러진 벼논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제대로 가을걷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자식들의 말을 듣지 않은 걸 후회한다. 해마다 더 이상 벼농사를 짓지 말라는 간곡한 부탁도 소용없었다. 농업직불금과 농민수당이라도 조금 받아볼 요량으로 집 앞 다랑이논에 볍씨를 뿌렸다. 자식들 걱정할까 봐 농사짓는데 전혀 힘이 들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냥 볍씨만 뿌려 놓고 내버려 두면 저절로 수확할 수 있단다. 당신이 개발한 쉬운 농사법이란다. 못자리나 모내기를 하지 않고
광주·전남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이 둥지를 튼지 8년의 시간이 흘렀다. 자족도시 인구 5만명을 목표로 출범한 빛가람혁신도시는 어느덧 3만9천여 명이 살고 있어 외형적인 틀은 어느 정도 갖춘 모습이다. 하지만 출범 초기 제기됐던 정주여건이나 텅빈상가 활성화 대책, 이주민들 눈높이에 맞는 교육시설, 만들어놓고도 가동조차 못하는 나주 SRF열병합발전소, 이전공공기관과의 지역 상생 문제 등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여전히 답보상태다.10개 혁신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두 개의 광역자치단체가 공동으로 조성했다는 점에서 출발부터 전국적인
이 시대 40~50대에게 묻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추석 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참, 졸업한 자녀 취직은요?요즘 태풍까지 겹쳐 하루하루 버티기가 버겁고 아이들 기르고 가르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안녕하시냐?”고 묻기가 망설여진다. 정년이 낼 모레인데 자식들 취직 걱정하고 있으니 안부 묻기가 미안할 정도로 불안한 삶을 버티고 있는 분들이 이 시대 40~50대가 아닌가 싶다.열심히 살았다. 암에 걸린 몸으로 40대 두 딸을 끝까지 돌보다 죽음을 선택한 수원의 한 어머니처럼, 부화한 새끼들의 먹잇감으로 자기 몸까지 내주는 어
고무신이 처음 이 땅에 상륙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 후반이다. 죽을 때까지 짚신이나 비단신, 가죽신, 나막신 밖에 모르던 민중에게 고무신은 이색적이고 다소 진귀한 물건이었다.고무신을 가장 먼저 신어 본 사람은 일제에 의해 창덕궁에 유폐돼 있던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이자 조선의 제27대 왕인 순종(純宗)이었다. 그가 어떤 경로로 고무신을 구입해 그것도 흰 고무신을 즐겨 신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기대와 달리 고무신은 애초 구두 형태여서 서민들에게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를 개발한 일본에서조차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다
50대 주부에게 광주에서 승용차로 2시간 걸리는 코스트코 대전점에 왜 쇼핑을 가냐고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상품 종류가 많고 가격이 싸기 때문이란다. 대량으로 생활필수품을 구입하면 기름값과 통행료를 빼고도 남는 장사라고 했다. 대전 인근 가게 주인들은 이곳에서 물건을 떼다가 판다고 곁들였다. 만약 광주나 인근에 코스트코 같은 창고형 대형 할인점이 있으면 왜 대전까지 가겠느냐고 되물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가성비 갑을 찾아 쇼핑하는 추세다. 여기에다 광주·전남 최초의 대형 복합쇼핑몰이 광주에 들어서길 원하는 시민들도 60%를 넘
충격은 기억에서 참 오래간다. 어떤 것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며, 또 잊어버리면 사람이 아니라고들 말한다. 반면에 어떤 일은 빨리 잊어버리라고 한다.그래도 우리는 기억에서 지우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일제 침략의 역사가 그렇고, 안타까운 죽음 같은 일들은 틀면 나오는 텔레비전 영상처럼 뇌의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작은 충격이라도 받으면 곧잘 나타나고 한다.그런데 잊어서는 안 될 일을 잠시 망각하기도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닌가 싶다.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점차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은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