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조대감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윤처사가 말을 이었다.“그런데도 절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부자일 때나 가난할 때나, 출세할 때나 몰락할 때나, 어떤 때든, 절대로 상황을 가리지 않고 변함없이 항상 곁에 있는 공기와 같이 서로 간에 필요로 하면 말을 하지 않고 눈빛만 보아도 항상 폐부 깊숙한 곳까지 동등신속(同等迅速)한 상호소통(相互疏通)이 가능한, 언제라도 대의(大義)를 위해 생사(生死)까지도 함께 할 저 수양대군 때 사육신(死六臣) 같은
조대감은 이왕지사(已往之事) 말을 꺼낸 것 더는 숨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아들 옥동에게는, 아들 이백에게 스님이 있는 절로 이백의 아버지가 글공부하러 보냈듯이 어서 저 윤처사를 잘 설득하여 이 집으로 글공부를 하러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싶었다. 조대감은 작정(作定)하고 길게 한숨을 내 쉬고는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허흠! 윤처사! 내 생각을 해보니 이백에게는 그 쇠 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들던 할머니라도 있었는데, 지금 내 아들 옥동에게는 아무도 없지 않은가? 그러하니 훌륭한 훈장이라고 일대에 소문이 자자한 윤처사 자네
평생 대륙천하(大陸天下)를 방랑하며 가는 곳마다 유장한 문장으로 시를 남겼던 이백, 전혀 가정을 돌보지 않은 까닭으로 가난에 시달려야 했던 가족, 한 번도 속세적(俗世的)으로 크게 출세하여 보지 못하고 남의 집 사랑방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불운한 일생, 그러니 이백의 뛰어난 시를 얻게 된 것을 생각할 때 그의 불행은 인류사(人類史)에는 행운이었을까?윤처사가 말한 절차탁마(切磋琢磨) 대기만성(大器晩成)에서 시작한 조대감의 이백에 관한 생각은 이렇게 전 일생을 상기(想起)해 보게 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조대감은 문득 이백의 시 우인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그것을 유독 눈여겨 지켜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환관 고력사였다.전에 이백이 술에 취해 황실의 막강한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환관 고력사에게 자신의 신발을 벗기게 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을 고깝게 여긴 고력사는 가슴에 깊이 담아두고는 언젠가 크게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하고는 틈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으음! 저 이백 놈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붓 한 자루 들고 함부로 날뛰다니! 고얀놈! 어디 두고 보라지!’그런데 이렇게 좋은 절호의 기회가 이렇게 쉽게 오다니! 고력사는 속으로 탄성(歎聲)을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이백의 말에 따라 사람들이 가지고 온 진기한 술과 푸짐한 음식을 할머니 앞에 차려놓고 풍악을 울렸다.“스승님! 오늘은 맘껏 드시고 즐겁게 지내십시오!”이백이 할머니에게 술잔을 채워주면서 말했다. 할머니는 마지못해 술잔을 받는 것이었다.그날 이백은 먼 옛날 쇠 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들어 보이며 자신에게 커다란 가르침을 주었던 할머니에게 사제(師弟)로서의 예를 다했던 것이었다. 이백은 어린 시절의 소중한 깨달음을 준 할머니를 마음속으로 한시도 잊지 않고 있었고, 드디어 때가 되어 찾아가 스승으로 대접했던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스승님! 저를 모르시겠습니까?”사내가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뉘뉘, 뉘 뉘시오?……보시다시피 평생 흙이나 파먹고 살아온 까막눈이라……”할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어려서 저 산사(山寺)에서 글공부하라고 아버지가 보냈는데, 날마다 못된 짓만 일삼다가 스님에게 쫓겨나서 집에 가다가 갈증이 나서 여기서 물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지요.”사내가 먼 과거를 회상(回想)하며 말했다.“아! 그때 그…… 아이구! 나리! 그때는 이 늙은이가 망령(妄靈)이 나서 헛소리를 했소이다! 아! 아이구! 나리! 용서해
할머니는 어안이 벙벙하여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 행차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니었다. 맨 앞에서 말을 탄 관리가 정말로 할머니가 사는 오두막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 관리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그만 오금이 저려서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보아하니 저런 진기한 풍악을 울리며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오는 것이 분명 자기를 붙잡으러 오는 것이라 생각을 한 것이었다.‘오매!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나 나도 모르겠네! 분명 나를 잡으러 오는 것이야!’할머니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비틀비틀 서둘러 얼른 방 안으로
이백의 글공부에 대한 동력은 바로 개인적 지위와 권력, 그리고 부를 획득한 안락과 출세 욕구가 아니라 할머니의 손주에 대한 순수한 사랑처럼, 순수한 인간애(人間愛)에 기초한 진리탐구(眞理探求)였던 것이었다. 그러기에 이백은 훗날 과거에 급제하여 권력과 부를 한 손에 거머쥔 고위급관리가 된 것이 아니라, 특유한 자기만의 개성 있는 은유와 과장법으로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시(詩)를 써냈던 것이었다. 물론 부당한 권력과 부를 가차 없이 비판풍자(批判諷刺)하여 뭇 사람들에게 시선(詩仙)이라 일컬어질 만큼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삶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한동안 가쁜 숨을 진정하며 걷던 이백은 그 할머니가 커다란 쇠 공이를 갈아 가느다란 쇠바늘을 만든 것에 대한 경이(驚異)로운 충격(衝擊)에 깊이 휩싸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백이 생애 최초로 느끼는 놀람과 경탄(驚歎)을 동시에 수반(隨伴)한 것이었다.도무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겼던 것을 실현하여 보일 때, 그것이 눈앞의 사실로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야 마는 것이었다. 이백이 그 할머니를 찾아갔을 때는 그 불가능을 두 눈으로 확인(確認)하여 증명(證明)하러 간 것이었는데, 아
“할머니! 계신가요?”이백이 다시 힘껏 소리쳤다.“으응! 밖에 누구 왔어?”방안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나더니 순간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열린 문으로 방안을 들여다보니 할머니가 조그마한 쇠바늘에 밤색 게 실을 끼워 게 웃을 기워 절고 있다가 발로 문을 밀어 연 것이었다.“아! 하! 할머니!……”이백이 고개를 수그려 절을 하며 말했다.“응! 너, 지난가을에 여기 물 얻어 마시러 온 녀석이로구나!”할머니가 이백을 한눈에 알아보고 말했다.“그, 그래요. 할머니! 그런데?……”이백이 할머니 손에 쥐어진 쇠바늘을 바라보며 말을 더듬거렸다.“아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지난번 집에 갈 때 타는 갈증이 밀려와 저 오두막집에 들러 물을 얻어 마실 때, 커다란 쇠 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들어 손주들에게 털게 옷을 만들어 입히겠다고 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번쩍 떠오른 것이었다. 그때 이백은 커다란 충격에 빠졌었다. 호박같이 큰 쇠를 언제 갈아 바늘을 만든단 말인가? 터무니없는 짓을 할머니가 한다고 여겼던 것이었다. 이백은 그때 불가능(不可能)을 본 것이었다.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절대로 이룰 수 없는 불가능을 본 것이었다.그런 불가능에 도전하는 할머니를 보고 손주 사랑에만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그러나 길 끝 어디에도 어머니는 없었다. 눈 내린 길에 햇빛이 눈 부시게 쏟아져 부서졌지만, 바람끝은 창끝처럼 매서웠다. 이미 멀리 걸어온 길이었기에 찬 바람 어지럽게 부는 길만 놓여 있었다. 이백은 다시 앞을 향해 길을 걸어갔다. 찬바람 ‘쌩쌩’ 불어오는 들판과 산언저리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따라가며 시려오는 손과 발의 고통(苦痛)을 인내(忍耐)하며 이백은 제 길을 가야만 했던 것이었다.지난번 가을이 시작될 무렵 집에 가라는 스님의 말을 듣고 집에 갈 때는 뛸 듯이 기뻤건만, 다시 절로 돌아가는 길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하라는 글공부는 전혀 하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들로 산으로 이웃 마을로 싸돌아다니며 온갖 행패(行悖)나 부리고 다니는 아들을 보고는 글공부는 글공부라 하겠지만, 우선 이 집에서 단절(斷切)시켜 친구들과 어울려 못된 짓을 일삼는 것을 막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절에 가면 적어도 매일 어울려 다니던 그 친구들과 단절되어 못된 짓을 일삼는 것만은 근절(根絶)될 것이었다. 그리고 하라는 글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스님들의 경건한 생활을 몸소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인 데다가 부모 곁을 떠나 살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그것을 손에 받아들고 집을 나서는 이백은 그만 ‘흐흐흑!’ 하고 울음을 터트려 버리고 말았다. 낙천적인 성격의 이백이었지만, 이별(離別)에 대한 감성적(感性的)인 반응(反應) 또한, 매우 민감(敏感)했던 것이었다. 훗날 권력(勸力)과 부귀(富貴)를 초개(草芥)처럼 여기고 이백 고유의 대범하고도 웅장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자기만의 특출(特出)한 천재적인 비유(比喩)의 필치(筆致)로 수많은 시를 쓴 까닭으로, 시선(詩仙)이라 일컬어졌던 그 소질(素質)과 개성(個性)을 일찍이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
“못된 짓을 하면 안 돼! 아무리 내 아들이래도 그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어! 아버지 말씀 잘 따르도록 해라!”그 말을 들은 이백(李白)은 어머니 품에 안겨 그만 ‘어엉! 어어엉!’ 크게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었다. 타고나기가 본시 낙천적(樂天的)인 성격(性格)의 이백이었지만 이 순간만은 울지 않고는 도무지 견뎌낼 수 없었던 것이었다.평소 아버지는 이백이 잘못하면 회초리를 때려 벌을 주었다. 그때마다 이백은 울기는커녕 눈에 쌍심지를 그리고 코를 씩씩 불며 반성(反省)하는 기색도 전혀 없이 크게 반항(反抗)을 했던 것이었다. 설혹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아! 아버지? 그,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이백이 흠칫 놀라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조그맣게 말했다.“백아! 오늘 먹은 너의 닭값은 이 아비가 두 배로 치렀다. 거기다가 자식을 잘못 기른 탓으로 닭 주인에게 창피를 톡톡히 당하면서 말이다.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바로 들 수가 없었다. 맛있게 잘 먹었느냐?”아버지가 이백을 바라보며 조용히 다그치며 말했다.“아! 아버지!……자자……잘못했습니다”다그치는 아버지 앞에서 이백은 꼼짝없이 잘못을 시인(是認)할 밖에 없었다.“그래! 잘했다. 어쩔 수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날이 성큼 추워져 북풍이 씽씽 불고 첫눈이 내리는 날 석양 무렵 두툼한 옷을 걸친 중년의 농부 둘이 이백의 집에 들이닥쳤다. 한 사내는 키가 큰 데다가 수염이 덥수룩이 자랐고, 또 한 사내는 키가 작았는데 몸집이 뚱뚱했다.“이 집이 이백이라는 아이의 집인가요?”“아! 그런데 무슨 일인가요?”저녁밥을 지으려고 부엌에 있던 어머니가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어흠! 다름이 아니라 오늘 낮에 이 마을에 사는 이백이라는 아이가 우리 마을에 대여섯 명의 아이들과 몰려와서 집 밖 밭에서 놀고 있던 우리 닭을 다섯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이백은 밖으로 뛰쳐나가 함께 지내던 선배 친구 후배들과 뜨겁게 재회(再會)를 하였다. 산으로 들로 또 이웃 마을로 돌아다니며 온갖 장난질을 치며 즐거운 나날들을 보냈다.이백의 아버지는 이백이 주야장천 뛰어놀기만 하는 꼴을 보면서도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다. 속으로는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집에 돌아와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도록 부러 놓아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백의 아버지는 분명 이백이 절에 가서 온갖 행패를 부리고 스님이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그래! 아들아! 좀 쉬었다가 가서 글공부하면 되지!”어머니가 이백을 끌어안으며 말했다.“어! 어머니!……그래요! 흐흐흑!……”어머니 품에 안겨 이백이 흐느꼈다.“네 이놈! 백아! 이 무슨 일이냐?”그때 아버지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방문을 사납게 열어젖히고 나오며 성난 호랑이처럼 소리쳤다.“아! 아버지!…… 시 실은, 스, 스님께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어요!”이백이 놀란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고 가느다랗게 다듬거리며 말했다.“뭐라? 아무래도 네놈이 하라는 글공부는 하지 않고 말썽을 부린 게 아니냐?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이백은 궁금증이 밀려와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할머니! 무엇하시려고 그 쇠 공이를 그렇게 열심히 가시는 건가요?”할머니가 쇠 공이를 갈며 이백을 흘끔 쳐다보며 말했다.“아! 이거! 흐흠!…… 쇠바늘(金針) 만들려고 그러지!”그 말을 들은 이백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커다란 쇠 공이를 어떻게 갈아 가느다란 바늘을 만든단 말인가? 도무지 불가능(不可能)한 일을 하고 있다고 이백은 생각한 것이었다.“어느 세월(歲月)에 그 큰 쇠 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들어요! 아이구! 그만두어요!”이백이 한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