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그래! 아들아! 좀 쉬었다가 가서 글공부하면 되지!”어머니가 이백을 끌어안으며 말했다.“어! 어머니!……그래요! 흐흐흑!……”어머니 품에 안겨 이백이 흐느꼈다.“네 이놈! 백아! 이 무슨 일이냐?”그때 아버지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방문을 사납게 열어젖히고 나오며 성난 호랑이처럼 소리쳤다.“아! 아버지!…… 시 실은, 스, 스님께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어요!”이백이 놀란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고 가느다랗게 다듬거리며 말했다.“뭐라? 아무래도 네놈이 하라는 글공부는 하지 않고 말썽을 부린 게 아니냐?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이백은 궁금증이 밀려와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할머니! 무엇하시려고 그 쇠 공이를 그렇게 열심히 가시는 건가요?”할머니가 쇠 공이를 갈며 이백을 흘끔 쳐다보며 말했다.“아! 이거! 흐흠!…… 쇠바늘(金針) 만들려고 그러지!”그 말을 들은 이백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커다란 쇠 공이를 어떻게 갈아 가느다란 바늘을 만든단 말인가? 도무지 불가능(不可能)한 일을 하고 있다고 이백은 생각한 것이었다.“어느 세월(歲月)에 그 큰 쇠 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들어요! 아이구! 그만두어요!”이백이 한숨을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이백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으며 밭 자락을 지나 개울을 건너 그 오두막집을 향해가고 있었다. 타는 갈증(渴症)을 씻어내기 위하여 물을 얻어 마시기 위해서였던 것이었다.심산유곡(深山幽谷) 계곡청장(溪谷淸壯)이라! 큰 산 아래로 수천 갈래 계곡(溪谷)을 흘러나온 물이 산 아래로 한데 모여 천(川)을 이루어 가다가 마침내 강(江)을 만들고 멀리 장강(長江)이 되어 흘러가고 그 옆으로는 가없는 평야(平野)를 끝없이 만들어 놓았다. 그 들 사이사이마다 길이 트이고 그 길모퉁이마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이루고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네 이놈! 어서 그 참새를 놓아주고, 당장 이곳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거라!”스님이 버럭 화를 내며 뇌성벽력(雷聲霹靂)같이 사납게 소리쳤다.“예! 스님, 집으로 당장 돌아가라고요?”이백이 깜짝 놀란 눈빛으로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래! 이놈! 어서 그 참새를 놓아주고 집으로 돌아가거라!”스님이 다시 사납게 소리쳤다.“아! 정말이신가요?”이백이 말했다.“그래! 이놈아!”스님이 말했다.“우헤헤헤헤헤! 아이구! 감사합니다! 스님! 우헤헤헤헤헤!……아이구! 살아났네!”이백이 손에 붙잡고 있던 참새 다리를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번개처럼 날쌘 산토끼가 달아난 흔적(痕迹)을 찾아 쫓아갈 만큼의 주도면밀(周到綿密)한 관찰력(觀察力)과 집중력(集中力) 그리고 그 토끼굴을 발견해 파헤쳐 잡아 올 만큼의 능력을 지닌 것에 대하여서, 스님은 속으로 경탄(敬歎)하는 바이었으나 저렇게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고 마구잡이로 행동을 하니 도무지 가르칠 방도가 없는 것이었다. 가진 재주가 천만 섬이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그 재주를 닦고 익혀 쓸 마음이 없다만 그 재주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스님은 방바닥에 펴진 서책과 먹과 벼루를 물끄러미 바
“이놈! 거기 하룻밤 새워 뒹굴면서 너의 살생업(殺生業)을 잘 지켜보도록 하여라!”땅바닥에 뒹구는 이백을 바라보며 스님이 말했다.이백은 스님을 바라보지도 않고 그 말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크게 울음을 울며 나뒹굴었다. 스님은 울거나 말거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곧장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 옆에 서 있던 젊은 스님도 우는 이백을 그대로 두고는 갈 길을 가버렸다. 이제 울며 뒹구는 이백을 아무도 보는 이가 없었다.울던 이백은 잠시 후 아무도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울음을 뚝 그치더니 그 자리에서 벌떡 일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순간 스님은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생각한 것이었다. 모든 성인의 마음은 비로소 자신을 죽여 다른 생명을 살리는 인(仁)을 이루는 것이 아니었던가! 스님은 이백이 토끼를 잡아 온 것을 보고 찰나에 개각(開覺)한 것이었다. 그 일성(一聲)은 참으로 크고 우렁찼다.“스님! 안돼요! 토끼탕을 끓여 먹으면 얼마나 맛이 좋은지 모르시나요? 종일 이놈을 잡느라고 산을 타고 굴을 파느라 죽을 뻔을 했다고요!”이백이 토끼를 등 뒤로 감추며 소리쳤다.“이놈아! 너를 죽여 끓여 하룻저녁 식사 꺼리로 먹는다면 그래도 좋으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백아! 너의 손에 쥔 그 토끼를 바라보아라! 지금 그 모습이 어떠하냐?”스님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거친 숨결을 고르고 나서 조용히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이백이 손에 쥔 토끼를 바라보며 말했다.“스님! 이놈이 얼마나 빠른 줄 아세요? 처음 산에서 나를 보고 무서워서 번개처럼 뛰어가는 이놈을 보고 쫓아갔는데 도무지 어디로 갔는지 몰랐어요. 기어이 이놈을 붙잡겠다고 마음을 다져 먹고는 이놈이 갔던 길을 자세히 살피며 끝까지 쫓아갔지요. 그런데 산 고개를 두 개나 넘어가서 보니 산비탈에 토끼굴이 있었어요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허허! 이 녀석이 단 한 글자도 써보지 않고 내가 사라진 순간 밖으로 나가 버렸구나! 이런 고얀 놈!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스님은 혼잣말로 탄식을 하며 먼 산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다른 스님들에게로 가서 이백의 행방(行方)을 물어보았다.“스님! 어제 온 녀석을 보지 못하였나요?”스님의 말을 들은 서너 명의 스님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무지 이백의 행방을 모른다는 눈빛이었다.“아이구! 그 녀석 어젯밤에 스님 머리에 오줌을 갈겼다고 하더니 요강 사러 간 틈에 또 어디로 사라져 버렸나 보군요?”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스님은 얼른 머리맡에 있는 등잔불에 부싯돌을 당겨 불을 붙였다. 이백은 오줌을 다 싸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제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가서 다시 잠을 자는 것이었다. 잠을 자는 이백을 때릴 수도 없고 눅눅하게 젖은 베개며 이부자리에 누울 수도 없는 스님은 기가 막힌 듯 입을 떡 벌리고는 한동안 천정을 바라보고 있다가는 제 이부자리를 걷어 방문 밖으로 내놓고는 걸레를 빨아서 들고 와서는 방에 고여있는 이백의 오줌물을 깨끗이 닦아내는 것이었다. 방 청소가 말끔하게 끝나자 스님은 이백이 자는 곳과 멀리 떨어져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스님은 한동안 말없이 방 가운데 아무렇게나 쓰러져 자는 이백을 시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배우려는 의욕도 스스로 갖지 않은 데다가 함부로 말대꾸나 하는 벽창호 같은 어린아이를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답답해 왔기 때문이었다. 이백의 아버지는 친구랍시고 어찌해서든 이 어린 아들을 잘 가르쳐 보라고 신신당부(申申當付)하고 떠나갔지 않은가!스님은 내일 아침에는 어찌 잘 해보아야지 하고 이부자리를 펴고 곤하게 자는 이백을 그 위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스님은 방안을 정리하고 그 옆자리에 잠자리를 만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스님이 절 방에 들어가고 한참 후 이백이 밤을 가득 따가지고 와서 방문 앞에서 소리치는 것이었다.“스님! 밤을 많이 주워 왔어요! 어서 밤을 삶아 먹어요!”스님이 방문을 열고 나가니 이백이 저고리를 벗어 수북하게 따온 밤을 내보이는 것이었다.“아이구! 이 녀석아! 이리 많이 따왔단 말이냐? 가을에 주워서 겨울 동안 절에서 쓸 것을! 아이구야!”스님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이백이 저고리가 북북 찢어지도록 밤을 잔뜩 따왔던 것이었다.스님은 어쩔 수 없이 이백이 따온 밤을 가지고 절의 부엌으로 가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아! 아버님!……예! 잘 알겠습니다!”이백은 아버지 앞이라 도무지 거역하지 못하고 모기만 한 소리로 말했다. 거역했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질 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어머니의 따듯한 보살핌 아래서 동네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즐겁게 지내는 날이 이제 끝이라는 생각이 든 이백은 밥맛이 삼천리 밖으로 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방으로 들어온 이백은 본래 낙천적(樂天的)인 성격인 탓으로 금방 그것을 잊어버렸다. 아무렴! 어디를 가든 또 거기서 즐겁게 지내면 되는 것이라 생각을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다음 날 아침 일찍 이백의 아버지는 행장을 꾸리고 말을 타고 길을 나서는 것이었다. 백 리 밖 깊은 산중에서 어려서 입산수도(入山修道)하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백이 도무지 집안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훈장을 모시고 와서 글공부를 시켜도 도통 말을 듣지를 않으니 산중 절로 보내 글공부를 시켜야겠다고 이백의 아버지는 생각해 낸 것이었다.한나절을 말을 달려 깊은 산중의 절에 당도한 이백의 아버지는 절의 스님인 친구를 만났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따뜻한 차를 끓여 놓고 함께 앉은 두 사람은 본격적인 이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어린 시절 이백은 말썽만 일으키는 천하의 개구쟁이로 소문난 아이였다. 아버지가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아이들과 밤낮으로 어울려 들과 산으로 싸돌아다니며 온갖 궂은 행패를 부리는 것이었다. 봄이면 피어나는 남의 집 매화며 복숭아 꽃 가지를 꺾어버렸고 좀 자라서 열매가 맺으면 그것들을 따 먹다가 주인에게 붙들려 꾸지람을 들었고, 여름이면 산개울에서 가서 멱을 감다가 지치면 남의 집 밭에 익어가는 수박을 서리해 따 먹었고, 가을이면 산으로 쏘다니며 밤이며 온갖 산 열매들을 따 먹었다. 겨울이면 남의 집,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으음! 다 다름이 아니라……”조대감이 윤처사를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허허! 이 사람 참! 무얼 망설이시나?”윤처사가 다그쳤다.“사실은 늦게 낳은 우리 아들 옥동이 문제인데, 도무지 글공부에는 취미가 없는지 집중하지를 않고 종일토록 밖으로만 싸돌아다니며 노는 데만 열중이라네. 붙잡아 놓고 타이르고 때론 회초리로 때려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니 앞날이 너무 걱정이라네. 이렇게 나이는 먹어가고 아이가 철이 없으니 이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네!”조대감이 더는 숨기지 않고 말했다.“무얼 그런 것을 걱정하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허허! 그것조차도 거부해 버린 노자, 장자는 아예 세속을 등져 버리고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 이름도 흔적도 없이 살다가 가버린 것이로군! 오늘 친구 그대 덕분에 어리석은 내가 세상사를 관통하게 되었구려!”길게 한숨을 내쉬며 조대감이 말했다.어려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여 이 고을 저 고을 사또를 지내고 조정에서 남들이 우러러보는 고관(高官)을 지냈건만 남은 것은 허무함이었다. 높은 벼슬을 했다는 긍지(矜持)도 막상 지나고 보니 별 게 아니었다. 차라리 어지러운 세상사에 얽히지 않고 저 윤처사처럼 아침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이제야 알겠는가? 용과 봉의 차이가 반 치 반푼 차이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윤처사가 조대감을 바라보며 말했다.“뜻을 잃어버린 선비는 선비가 아니지 않는가!(忘志士 不士)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네!”조대감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용이 여의주를 잃어버리면 용이 아니듯이, 선비가 가슴에 품은 지고지순한 뜻을 잃어버리면 선비가 아니기 때문으로, 용이 여의주를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처럼, 선비는 가슴에 품은 뜻을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네! 그러기에 그 뜻을 손상하여 잃지 않으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한평생 공부를 해 온 그 지고지순(至高至純)한 뜻을 찰나에 잃는다! 그 말씀이신가?”조대감이 말했다.“백 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 득의개오(得意改悟) 하여 천신만고 끝에 얻은 여의주가 주둥이에서 찰나에 떨어져 나가 버린다 그 말일세! 위아래로 쾌락과 평안의 짜릿한 신경 줄이 연결되어 있어 단, 한순간도 그 순간을 어기지 않고 정상 작동하고 있기에, 절대로 그것을 잊어서는 아니 되는 것인데 찰나에 몰려드는 욕망과 쾌락에 젖어 그것을 깜박 잊어버려 모든 것을 놓쳐버린다 그 말일세! 그러기에 평생수행(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용이나 귀는 죽는대도 제가 살던 진흙 구렁 속이지만, 봉은 죽으면 저 높고 화려한 누각(樓閣) 끝에서 바로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해 진흙 구렁 속에 머리가 깊숙이 처박혀 머리가 깨져 울지도 못하고 죽는 것이라네! 그래서 그것을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까지 발버둥을 치는 것이라네! 그것이 봉의 운명이라네!”윤처사가 거침없이 말했다.“으음! 과연 그렇군!……권력(權力)의 말로(末路)가 참으로 비참(悲慘)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니던가!”조대감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