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도가 남긴 것, 남기고자 했던 것한 가지 기획보도로 4년을 뛰었다. 전남 22개 시·군지역, 광주 5개 구지역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10대 이상 세거했거나 특별한 문화유산을 보존한 가문을 취재했다. 광주·전남 종가가 거의 망라됐다. 어초은종가·학봉종가·창암종가·귀만와종가·미암종가·고사정종가·백운동종가·하서종가·청재종가·수은종가·금강종가·은봉종가·기봉종가·망암종가·석헌종가·연촌종가·제봉종가·신재종가·노사종가·해광종가·고봉종가 등 이미 알려진 종가도 있지만, 김우필종가·정효종종가·동외종가·최각종가 등 새로 발굴된 종가도 있었다.
전남 장성 삼서면 수양리에는 이 일대 농사에 큰 힘이 되는 저수지 ‘수양제’가 있다. 언제 어떤 인물들이 만들고 가꿨는지 수양제와 같은 수자원이 인근 4개군 경계를 넘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 있다. 이 마을에 터잡고 장성·영광·함평·광산까지 세거지를 넓히며 23세대 이상 전통을 가꿔 온 명문집안이 있다. 명궁 무예, 제갈량 지략을 갖춘 무인 선조들과, 장원 문장 학덕에 청백리 품성을 가진 명신 선조들을 비롯한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하며 천년 가문을 구현한 장성 상산김씨 영중추공파 종중/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 본다. ◇신라
황룡강 강변 백우산 기슭 광곡(너브실)마을에는 기대승(1527~1572, 호는 고봉)선생과 박상·박순·김장생·김집 등 조선의 대학자·명신을 기리는 월봉서원이 있다. ‘빙월당(광주광역시 기념물 제9호 )’과 ‘고봉문집목판(유형문화재 제19호)’이 보존된 유서 깊은 서원이다. 서원과 종택에 수백년 보존한 종가소장문적은 1994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됐다. 종가는 최근 그동안 보존했던 편지·경서·고문서 등 비지정자료 1천여점을 한국학호남진흥원에 기탁해 연구토록했다. 이처럼 종가는 보물창고다. 보배 가득한 창고를 개방한 광
지난 10월 18일 전남 담양 소쇄원(명승 제40호) 주차장에 도착한 ‘영종회’버스에서 20여명의 어르신이 내렸다. 양재혁 소쇄원 원장은 소리 높여 환영의 뜻을 전하고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로 반겨줬다. 연간 7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국가 명승 소쇄원에 원장이 직접 해설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영남 종가 종손들로 구성된 영종회의 광주전남 방문길 중 소쇄원 탐방을 따라가 봤다. 영호남 종가들 간 교류의 상황을 직접보고 양대 종가회가 무엇을 연대의 화두로 삼고 있는지 살펴본다.◇영남 종손들 따라 가보니‥소쇄원 방문양재혁
영산강이 굽이치는 죽산보를 마주보고 죽지마을과 신석리 배후에는 나주 8명당 중 하나인 연화도수형 명당이 있다. 함평이씨 이극명과 후손들의 묘역이 그곳이다. 1천년의 역사를 가진 전라도 토착성씨 함평이씨가 수많은 무관을 배출하고 명가를 유지하는데에는 친족간에 돈독하도록 마련한 선조 추모의 공간이 있었다고 한다. 이 가문 후손들은 최근 적지않은 재원을 투자해 200년 전의 건축 원형을 복원시켜 새로운 가문의 역사를 꿈꾸고 있다. 함평이씨 함평종중과 참판공파·자양공파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천년 역사의 함평이씨 함평이씨는
전남 해남 옥천 영신마을에는 옛 서대문형무소를 닮은 기념관이 있다. 3·1독립운동의 민족대표였던 지강 양한묵 선생의 생가 기념관이다. 그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민족대표 33인 중 유일한 전라도 사람이고 또 유일하게 옥중사망했기 때문에 이 마을에 그의 생가를 복원하고 그가 사망한 서대문형무소를 모사한 건물로 기념관을 지었다고 한다. 민족의 횃불로 옥중 산화한 양한묵 선생의 가문 해남 제주양씨 건계공종가를 찾아 절의와 개혁을 추구한 가문의 전통과 인물 행적을 살펴본다.◇기묘명현 계승해 나라지킨 인재양성제주양씨는 탐라를 세운 양을나를
광주 광산 장덕동에는 아파트 숲 사이로 유애서원이 있다. 이 서원 경장각에 거문고를 비롯한 유물들을 보존한 가문은 전의이씨 석탄공 종가와 종중이다. 전장에 나가면 견훤군, 몽고군에 대항해 승전한 무장 선조들의 기질이 발휘되고, 나랏일에 임하면 선비다운 절개로 서슴없는 직언 상소를 행하는 인물들이 즐비한 가문이다. 거문고를 남기며 ‘인의예지신’에 ‘락樂’을 더한 ‘인간의 도리 6행’을 제시한 의병장의 행적을 따라, 대대로 그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광주 광산의 전의이씨 석탄공 종가의 내력을 살펴본다.◇고려 개국공신 태사
[119] 항아리 유럽수출…천하제일 옹기장 가문전남 보성 미력면 보성강변 도개리에는 9대째 이나라 강토의 고품질 흙으로 최고의 옹기를 빚어내고 있는 가마터가 있다. 형제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낮은 곳에서 덕업을 쌓았던 대군의 후예답게 만백성의 생활필수품 옹기를 만들며 더 질 좋은 흙과 소나무 풍부한 명소를 찾아 영암, 강진, 장흥을 거쳐 보성 미력에 터잡은 옹기장인의 가마터다. 전통방식을 고집해 생산한 옹기가 400점씩 3회 연속 수출선적해 유럽의 프랑스로 수송됐다고 한다. 첨단과학을 넘어서는 기능과 격조높은 조형미를 갖춘 항아리를
[118] ‘충효도 못다하고 가는 길 서러워라’… 학자 의병장 후손 가문전남 보성 득량의 오봉산 자락에는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형국의 갈마음수명당에서 이름한 마천리(馬川里)가 있다. 전라좌의병군의 종사관으로 활약하다 전장에서 숨진 오봉 정사제 선생의 후손이 세거하는 마을이다. 마을에서 나고 자란 인물들을 굽어보며 4백30여년 마을을 지킨 학자수 회화나무는 샘터 옆에 기울어져 있는데, 150년된 느티나무가 학자수인냥 보호수로 존대받고 있다. 의병장 정사제 선생의 임절시에 담긴 절의정신과 나라지킨 혁혁한 전공은 외면하면서 전쟁터에서
[117]조선 청백리 명문가의 애환전남 장성군청 입구의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이라는 표지석 옆에는 글자를 새기지 않은 하얀 비석이 있다. 수많은 군민과 공직자가 드나드는 행정관청 앞에 묘비(모형)가 세워져 있다. 한편 장성경찰서는 민원실이 있는 건물을 ‘박수량관’이라 명명했다. 묘비와 건물명의 주인공인 박수량은 황룡면 아곡리에서 나서 황희·맹사성과 함께 조선 3대 청백리로 알려진 인물이다. 명종이 하사한 그의 묘비 ‘백비(白碑)’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청백한 공직자를 상징하고 있다. 5백여년 동안 백비를 지켜 온 박수량 후손 태양
전남 강진 작천면에는 군자서원이 있다. 현대에 이르러 추모, 강학, 교화 등 서원 고유의 기능을 활발히 담당하고 있는 서원이다. 매년 전국의 유림 인사를 초청해 강회·시회·상읍례 등 강학예절을 실시하며, 부설 호남선비문화원을 통해 어린 학생들과 주민들이 참여하는 음악회, 유교아카데미, 강연회, 서원스테이, 유물전시회 등을 개최하여 지역문화의 새로운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서원에서 추모하는 현인의 군자다운 삶의 행적때문에 군자리(君子里) 행의동(行義洞)이라는 지명이 탄생했다고 한다. 이러한 현인을 배출한 가문은 신라 왕족의 후예
궁중 진미 “어란”… 천년 맛의 명가전라남도 영암 월출산 서쪽에는 신라시대부터 명촌으로 알려진 구림촌이 있다. 신라 말 도선국사 설화가 전해져 마을 이름이 구림(鳩林)이다. 이 마을에서 유약 바른 도자기 가마터가 발굴됐고(영암 구림리 요지, 사적 제338호), 중국 당나라를 오가는 사신선과 상선이 발착했던 국제항포구 ‘상대포’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택리지에 따르면 서해와 남해가 맞닿는 상대포에서 중국 태주 정해현까지 일주일 걸렸다고 한다. 황토 민물인 영산강 육수와 풍부한 미네랄의 서남해 해수가 만나는 곳이기 때문에 해마다
공동체 상징 희경루 누정스토리 ‘재발견’영산강이 휘감아 도는 나주 회진의 영모정에는 ‘희경루방회도’(보물 제1879호, 사본)가 걸려 있다. 영모정을 지은 임복의 생전 모습이 방회도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주임씨 대종가(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33호)의 후손들은 영모정 뿐만아니라 무안 식영정(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37호), 관해정 등을 짓고 학덕과 인품으로 명사들과 교유하며 고장과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킬 거점으로 삼았다. 16~17세기 나주임씨(羅州林氏) 가문의 인물들이 누정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실천했던 내력을 살펴 본다.◇ 영
도학 실천해 향약으로 향촌 교화 앞장광주시민에게 사랑받는 광주 금당산의 황새봉 자락에는 음성박씨 가문이 보존하고 있는 벽진서원이 있다. 임진왜란에 의병도청을 세우고 광주 일대의 의병 군사와 병장기·군량들을 모아 고경명·김천일 의병군에 조달하는 공을 세웠던 회재 박광옥을 기리는 서원이다. 벽진서원은 충장공 김덕령을 추가 배향하면서 의열사로 사액받았다가 고종조에 철폐된 후 운리영당, 운리사로 복설했다가 광주 유림과 종중의 노력으로 추모와 교학의 공간으로 거듭났다. 회재유집목판(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 ) 등 선조가 남긴 문화유산과
대대로 절개·의리 본받은 청족(淸族)국토 서남쪽 끝단 전남 무안 해제 장동마을에는 사철 푸른 동백나무와 함께 380여년 마을에 세거한 가문이 있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의 치욕으로 백성을 노예로 끌려가게 만든 나라는 ‘백성에 대한 의(義)’를 저버렸으니 벼슬할 수 없다고 남쪽으로 내려와 은둔한 입향조가 종택 배후에 둘러 심은 나무가 동백이다. 종택의 병풍과도 같은 푸르게 반짝이는 5m 높이의 동백이 후손들에게 가문의 절의정신 계승을 독려하고 있는듯 하다. 진실과 겸손을 실천하며 절개와 의리를 숭상해 온 무안 기계유씨(杞溪兪氏) 충목공
무등산에 은거한 임란 전략가 가문호남의 명산 무등산 자락에는 충효와 애민의 정신으로 이름난 해광 송제민 의병장을 추모하는 운암서원이 있다. 숙종 때 사액돼 운암산 인근(동운동 황계마을)에 건립됐고 고종조에 훼철된 후 유허비만 남았던 것을 이곳에 옮겨 중건한 서원이다. 이 서원에서 해광 송제민 선생과 아들 화암 송타, 사위 석주 권필의 의로운 정신을 기리며 광주 남구 대촌의 대지마을에 세거해 온 홍주송씨 청심헌공파 해광문중/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 본다.◇왕가와 겹사돈 명문가홍주송씨는 고려 문하시중 송계를 시조로 모신다. 그는
솔 향기 피어나는 정자…뿌리 깊은 선비 가문전남 화순 이양의 지석강변에는 강정마을이 있다. 깎아지른 산세의 절경 사이를 도도히 흐르는 지석강변 암석 위에 소나무 향기를 머금은 5백년 정자가 유명해 마을 이름까지 강정이다. 이곳에 수많은 인물들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다는 결의를 ‘암석위의 소나무 정자’ 송석정에서 노래했다고 한다. 남쪽으로 기름진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이 전통 마을에서 5백년을 세거한 화순 제주양씨 학포공파 송석정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알아본다.◇탐라왕 양을나·유격장군 양보숭 후예제주양씨는 제주도에 탁라(탐라국)을
인의예지 미풍양속 시작한 향약 명문가광주 남구 대촌 칠석동에는 15세기 초 광주향약을 시작한 부용정이 있다. 중국 남전의 여씨향약과 주자의 백록동 학규를 바탕으로 칠석동에서 시작한 김문발의 부용정 향약이 필문 이선제의 광주향약으로 이어져 중종조에는 향약을 국가적으로 공식 추진하기에 이른다. 양과동정과 더불어 향약으로 유서 깊은 부용정은 광산김씨 가문의 보배다. 이 마을에서 600년 전 김문발이 터잡아 세거하며 선량한 풍속을 지켜 향촌의 공동체 결속을 다져온 광산김씨(光山金氏) 문정공파 녹사공후 감사공 종가와 종중을 찾아 가문의 내력
도의(道義)와 절개를 문장에 남긴 호남성리학 명문가전남 장성 북하면에는 울산김씨 집성촌 중평마을이 있다. 마을 앞 300년 된 느티나무가 그 무성한 잎처럼 번성한 김씨 가문의 역사를 지켜봤을 법 하다. 문불여장성이라는 장성의 별칭이 있기까지 수많은 인걸을 배출하며 가문의 학문 전통을 이어온 장성 울산김씨 문정공후 중평파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 본다. ◇신라 왕자 김덕지 시조울산김씨는 신라 56대 경순왕과 죽방부인 사이의 둘째 왕자인 학성부원군 김덕지를 시조로 모신다. 그가 학성(울산)을 식읍으로 받음으로써 울산을 본관으로 하
임란 보물 보존한 5형제 의병장 가문고분이 운집해 고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전남 나주 반남면에는 청송리가 있다. 마한문화를 비롯해 2천 년 문화유산을 품고 청룡처럼 굽어 흐르는 영산강과 너른 평야를 삶의 터전으로 향촌을 밝게 하는 선비 가문이 세거하고 있다. 의향의 주역으로 나주를 지켜온 나주 수성최씨 무숙공파 최현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김씨에서 최씨로, 관향은 수성수성최씨는 고려 수성백 최영규(시호는 문혜)를 시조로 모신다. 그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후손으로 원래 김씨였고 고려 현종의 외손자다. 그는 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