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임직원과 우크라이나 전쟁난민이 함께하는 남도문화체험이 성황리에 마무리됐다.남도일보와 (재)노사발전재단은 ‘우크라이나 전쟁난민과 동행하는 남도문화체험’을 6일까지 최근 3차에 걸쳐 걸쳐 보성군 회천면 녹차밭 일원에서 개최했다.남도문화체험에는 박준일 사장을 비롯한 남도일보 임직원 40여명과 우크라이나 전쟁이후 광주에 도착, 광산구 월곡동에 둥지를 튼 고려인이 함께했다. 고려인은 1회차에 40명씩 총 120여명이 참가했다.남도일보 임직원과 우크라 난민들은 대한다원과 율포해변, ‘꿈꾸는 숲 선유원’ 등을 함께 둘러보며 잠시나마 지
문 나탈리아(42)씨는 오늘도 오전 8시에 집을 나선다. 한 달여 전 취업한 광주의 한 병원에 출근한다. 그가 일하는 병원은 러시아어를 쓰는 고려인 환자가 많이 찾는다. 문 씨는 이곳에서 통역 일을 하고 있다.우크라이나 니콜라에브에서 한국 관련 회사에서 통역 업무를 한 게 도움이 됐다. 광주서도 같은 일을 하게 된 것이다.◇전쟁으로 고향 떠나 ‘우울증’문씨의 삶은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남편, 어머니와 함께 살던 문씨는 전쟁이 나자 눈 앞이 캄캄해졌다. 러시아-
[광주고려인마을 우크라이나 난민보고서](14)고려인 광주정착을 위한 지역사회 역할과 과제 토론회“이중언어교육으로 ‘글로벌 인재양성’ 필요하다”고려인 비롯 다문화교육 개선 방안 집중 토론의료 사각지대 해소 위해 지역사회 협업 강조한국 태생·장기 거주자 영주권 발급 주장도지역·아시아성 동시 갖춘 문화자산화 제시 남도일보와 광주광역시의회가 주최하고 전남대학교 광주국제개발협력센터가 주관한 ‘고려인 동포 광주 정착을 위한 지역사회 역할과 과제’ 주제로 27일 오후 광주광역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 회의실에서 열렸다.토론회에선 김재기 전남대 정치
고려인의 정체성을 살펴보는 데 있어서 한국어 능력은 중요한 요소다. 남도일보에서 2022년 9월부터 한 달 이상에 걸쳐 시행한 고려인가족 대표 7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수집자료를 활용해 고려인의 한국어 능력과 정체성을 살펴봤다.고려인은 나이가 많고 학력이 높을수록 한국어 능력도 높았다. 한국에서의 거주연수가 많고 혼인자, 그리고 재외동포 비자(F-4)로 입국한 경우 한국어 능력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 사용언어로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 한국어 능력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정체성은 나이가 많을수록, 구소련과 우크라이
■주제발표-고려인 정착현황과 제안김재기(전남대정치외교학과 교수·광주국제개발협력센터장)세계로 흩어졌던 한인 디아스포라의 후손들이 한국으로 귀환(return diaspora)하고 있다. 길게는 150년전에 한반도를 떠났던 1세대들은 머나먼 이국땅에 묻히고 그들의 후손들이 돌아오고 있다. 귀환하고 있는 가장 많은 규모가 중국 조선족 동포들로서 80만명 이상이 한국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주로 서울 가리봉동과 대림동 일대에 타운을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다.다음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던 고려인 동포들이다. 경기도 안산 땟골, 인천 연수
90년 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세계 최초의 우리말 전문연극극장이 세워진다. 이 극장은 창단 이래 민족문화의 횃불을 높이 들고 줄기차게 고려인 공동체에 축제 한마당을 펼치며 기쁨과 활력을 선사해왔다. 지금도 카자흐스탄에서 왕성하게 활동중이다. ‘고려극장’이다.고려극장은 고려인 문화예술의 상징이다. 다른 고려인 강제이주라는 가혹한 역사적 시련기에도 억척스럽게 살아남아 소련 전역에 흩어진 고려인 마을들을 찾아다니며 걸출한 입담과 흥겨운 가무로 절망에 빠진 동포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줌으로써 어려운 시기에 심리치료사의 역할까지 감당했
“내가 아직은 고려인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카자흐스탄(카자흐) 알마티시고려인민족중앙 김 데니스 부회장이 ‘나는 고려인이다’ 뮤지컬을 관람한 뒤 밝힌 소감이다. 김 부회장은 지난 2일 카자흐 알마티 한국교육원 대강당에서 열린 광주고려인마을과 호남대가 공동 창·제작한 ‘나는 고려인이다’ 공연이 끝난 뒤 무대에 올라 이렇게 밝혔다.‘나는 고려인이다’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후원으로 광주 고려인마을극단 ‘1937’과 호남대학교가 공동 창·제작한 뮤지컬이다. 고려인의 시련 극복의 역사를 스토리텔링화해 음악과 무용, 노래로 표현
광주고려인마을과 호남대학교는 올해 한국-중앙아시아 수교 30주년을 맞아 국제문화교류단을 구성해 지난달 30일부터 9박 10일 일정으로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을 방문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고려인이 중앙아시아에 첫 발을 내딘 지역이다. 방문기간 문화교류단은 자체 창제작한 뮤지컬 ‘나는 고려인이다’를 무대에 올려 호평 받았다. 또 디아스포라 한민족 공동체 방향성 모색을 위한 국제심포지엄를 개최해 주목받았다. 광주 광산구 우호교류단도 ‘고려인’을 매개로 경제·문화 교류를 추진했다.남도일보는 우크라이나 전쟁난민이 대거 안착한 고려인마을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만 7개월이 지났다. 전쟁이 발발하자 우크라이나 거주 고려인들은 전쟁 포화를 피해 ‘할아버지의 땅’ 대한민국으로 향하고 있다. 고려인단체와 광주출입국고려인사무소 등에 따르면 전쟁 이후 국내에 입국했거나 입국 예정인 우크라이나 전쟁난민은 1천600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704명(9월 28일 기준)이 광주고려인마을과 광주시민 등이 십시일반 성금으로 마련한 항공료를 지원받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입국자 중 광주에 둥지를 튼 고려인은 500명에 이른다.이에 남도일보는 전남대 광주국제개발협력센터(센터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은 광주 월곡동 고려인마을, 경기도 안산 땟골마을과 함께 국내 3대 고려인집거지로 꼽힌다. 함박마을에 고려인이 둥지를 틀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 본격화됐다. 2010년 초부터 고려인이 자리를 잡은 월곡동, 땟골마을보다는 뒤늦게 형성됐다.현재 함박마을이 소재한 연수1동에서 파악한 고려인은 7천명 가량으로 단일지역내에서는 광주고려인마을과 땟골마을을 웃돈다. 문학산 줄기 중턱에 자리한 함박마을은 행정구역으로는 연수구 연수동에 속한다. 과거 함씨와 박씨가 많이 모여살았던 함박촌이라는 옛 지명을 반영한 마을 이름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침공으로 전쟁에 휩싸인 지 만 7개월째다.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한민족 동포 고려인들은 앞다퉈 조상의 땅으로 찾아오고 있다. 광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따르면 전쟁이후 국내에 입국한 고려인은 1천500여명이다. 광주에서 전개중인 항공권 지원 모금 운동으로 대한민국 땅을 밟은 고려인은 670여명. 이 가운데 광주에 둥지를 튼 고려인 450명 가량이다. 나머지는 경기도 안산시, 인천 연수구, 경북 경주시, 경남 김해시, 충북 청주시 등에서 전국 각지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 있다. 이에 남도일보 취재팀은 광주
우크라이나 전쟁 포화를 탈출한 고려인들은 광주에 도착하면 먼저‘고려인 쉼터’로 향한다. 쉼터는 (사)고려인마을이 광주 광산구 삼도동의 한 농촌마을에 마련한 숙박시설이다. 고려인 난민이 입국 후 체류비자와 외국인 등록증 발급을 준비하고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2∼3주간 머무는 임시 거처다.쉼터에 머물면서 고려인들은 한국생활 적응 과정을 하나 둘씩 밟아간다. 성인들의 경우 대개가 가장 먼저 법무부 광주출입국·외국인 사무소에서 실시하는 ‘조기 적응 교육’을 받는다. 한국 생활에 필요한 기본정보와 쓰레기 분리수거 방법 등 기초생활정보, 동포들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2동 고려인 특화거리는 외관부터 이채롭다. 4차선 도로인 목련로를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산정공원로 양쪽 상가 간판에는 Я, Б, Л, Ж 등 생소한 키릴글자 간판들을 단 음식점과 마트, 카페, 식료품점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거리와 식당, 마트 등에선 러시아어를 하는 고려인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고려인과 외모가 확연히 구분되는 사람들도 보인다. 안내판이 없어도 이곳이 고려인이 많이 모여사는 곳임을 쉽게 짐작케 한다.◇이주민과 선주민 공존간판에 러시아어와 한글이 함께 쓰여있는 것처럼 월곡2
합창단·오케스트라 등 문화예술 다양전쟁이후 귀환 고려인 어린이도 합류민간차원 활동 국가간 우호협력 가교도“다양성 시대 공존·공생 선도적 사례”광복절 제77주년 기념일인 지난 15일 오후 5시 광주 광산구 월곡동 다모아어린이공원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항일독립운동가인 홍범도 장군 흉상 제막식이다. 홍 장군 유해 봉환 1주년을 맞아 진행된 제막식에는 강기정 광주시장과 이용빈·민형배 국회의원, 박병규 광산구청장, 신조야 (사)고려인마을 대표를 비롯해 시민과 고려인 후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홍 장군 흉상이 국내(실외)에 세워진
광주에 온 우크라이나 고려인 전쟁난민은 어른들만 해당되지 않는다. 부모들이 한국에 올때 데리고 온 자녀들도 상당수다. 국내외 고려인사회에 알려진 ‘광주에 가면 먹고 살 수 있고, 아이들 학교도 보낼 수 있다’는 소문에 자녀를 동반한 부모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광주가 고려인을 비롯한 다문화 자녀들을 위한 교육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고려인마을로 불리는 광산구 월곡동에는 어린이집 역할을 하는 돌봄센터, 아동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인근 초등학교는 고려인을 비롯한 다문화 학생을 위한 한국어 교실을 별도 운영하는 등
고려인 집거지인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1·2동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후 광주는 물론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지역이다. 고려인마을 주민과 월곡동 주민들, 광주시민들의 십시일반 모금으로 마련한 항공료 지원을 받아 매일같이 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3일 현재 전쟁이후 광주에 온 고려인 난민은 500여명이다. 3월 최마르크군 입국 이후 4개월 여동안 매월 100명 가량 도착했다.여성과 노인, 어린 자녀들이 대다수다.광주에 온 고려인 난민들은 대부분 광산구 월곡 1·2동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있다. 월곡1·2동
“고마움을 전할 사람은 내가 아닙니다. 광주시민들입니다. 시민들이 관심과 성원이 있었기에 광주에 올 수 있었습니다.”사단법인 광주고려인마을(고려인마을) 신조야 대표가 우크라이나 전쟁난민이 돼 광주에 도착한 고려인들에게 늘 하는 말이다. 신 대표는 전쟁난민으로 전락한 현지 고려인들을 위해 항공료 지원 모금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시민과 광주거주 고려인들, 전국의 후원자들이 보내준 성금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현지 고려인들에게 항공권을 전달하고 있다.◇모금운동 1천200명 참여27일 현재 고려인마을에서 마련해준 항공권으로 광주에 온 우크라
중앙아시아에서 살던 고려인들이 광주에 처음 온 건 2000년 초로 추정된다. 광주고려인마을 연혁에 2000년 1월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해 일하던 우즈백출신 고려인 시나탈리야 씨의 1년치 체불임금 해결이 기록돼 있다.고려인들의 광주 거주는 2007년 중국과 독립국가연합(CIS) 재외동포 대상으로 ‘방문취업제도’가 시행되고, 2010년을 경과하면서 본격화 된다. 광산구 자료에 의하면 광주로 이주한 고려인의 수는 2010년 413명, 2014년 1천134명, 2018년 4천659명, 2021년 7천여명(추정)이다. 이 가운데 5~6천명 가
우크라이나가 5개월 넘도록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가족과 이웃을 잃은 강렬한 슬픔과 분노가 소용돌이친다. 도시는 불타고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면서 피난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유엔의 최근 보고서는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난민이 66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모두 어디로 흩어 졌을까. 주로 폴란드나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서쪽의 이웃 국가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동포들도 ‘조상의 땅’인 대한민국을 찾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후 한국에 입국한 우크라이나인은 1천600여 명에 이른다. 이들 중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