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연합】대만 총통선거 대결전을 9시간 앞둔 17일오후 11시 타이베이 중산축구장.
마지막 유세장에 도착한 천수이볜(49) 후보는 연단에 오르기 전 휠체어에 탄 아내 우수전(47)을 찾아 어깨를 감싸안고 잠시 속삭였다.
야당 정치인 시절 아내가 정치 테러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된 뒤 “휠체어에 태우는 일만은 남에게 맡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는 그는 유세장에서 연단에 오르기 전에 먼저 아내를 찾아 말을 나누는 데 대해“바쁜 일정으로 수전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나로서는 최소한의 도리”로 설명한 바 있다.
그는 타이베이 시장 선거 당시 “이렇게 해서라도 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반려자가 돼 준 수전을 불구의 몸으로 만든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으면 좋겠다”는 심경을 내비친 적도 있다.
‘물(水) 수이볜’은 수전이 데이트 시절 천수이볜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수전은 요즘도 휠체어를 밀며 집을 나서는 수이볜에게 가끔씩 “처음 만났을 땐 백면서생처럼 무뚝뚝하고 지루해보여 ‘물’이라고 놀려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선이 분명하고 순수한 성격에 차츰 마음이 끌리게 됐습니다.” 타이난 마또우 출신으로 수이볜의 중학교 2년 후배인 수전은 쭝녠황이 지은 자신의 전기 ‘금지옥엽을 떠나서’에서 70년 가을국립 대만대 법학과에 다니던 수이볜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더듬었다.
이들의 러브 스토리에서 널리 회자되는 것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타이베이역 플랫폼에서 8시간을 가슴 졸이며 서성였던 수이볜의 우직함. 수전은 “아볜이 간 줄 알았는데 덜덜 떨며 기다리는 것을 보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수전은 유세장에서 이 얘기를 들려주곤 한다. 수이볜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플랫폼을 떠나지 않았듯 국민에 대한 플랫폼(공약)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75년 2월 타이베이에서 치른 결혼식은 1천대만달러(약 4만원)짜리 반지를 교환했으며 하객이 일곱 테이블밖에 안되는 쓸쓸함 그 자체였다. 식장에 나온 아버지(우쿤츠)의 얼굴은 딸 결혼식에 참석한 게 아니라 거의 문상객의 표정이었다.
수이볜은 지금도 수전이 가난한 집안에 시집와 고생하다가 중.하반신 마비라는 천형(天荊)까지 받게 된 것에 자책하고 있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한다.
쉬커이껑이 쓴 전기 ‘천수이볜’에 따르면 수전은 85년 남편의 타이난현장 선거 출마 당시 갑자기 나타난 삼륜차에 부딛혔다. 삼륜차는 수전을 쓰러뜨린뒤 후진, 바퀴로 깔아뭉갠 뒤 도망쳤다. 수전의 아버지가 “딸의 신상에 해로운 일이있을 것”이라는 협박 전화를 받은 뒤 며칠만의 일이었다.
목뼈가 30여개의 파편으로 으스러진 수전은 두 차례 대수술끝에 목숨은 건졌으나 땀을 흘리지 못해 신체의 온도조절 기능을 상실한 중증 장애인이 돼 버렸다. 그러나 선거 때마다 남편의 유세장을 찾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해 왔다.
연합뉴스와의 회견에 응한 17일 밤, 모두들 유세장 열기로 땀을 흘렸지만 우 여사는 손에 두꺼운 장갑을 낀 채 기자의 손을 잡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편이 건강한 모습으로 수 개월에 걸친 유세를 마무리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주룽지의 무력침공 경고로 오히려 천 후보가 유리해졌습니다. 뽑지 말라고 위협한다고 대만 유권자들이 곧이 듣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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