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N씨는 “봉급이 많이 깎이고 하마터면 일자리도 잃을 뻔 했지만, 이런 어려움이 오히려 가족에 대한 애정을 더 두텁게 했다”고 말한다. 얼마전부터 지갑 속에 가족사진을 넣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그는 “가족이라도 없다면 누가 곁에서 이 춥고 각박한 세상을 함께 헤쳐 나가 주겠느냐”고 반문한다.
이런 애틋한 ‘가족사랑’에 찬물을 끼얹게 되는 소리도 있다. 그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참담한 경제적 고통이, 이 ‘따뜻하고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비롯됐다는 진*의 목소리다.
‘역사의 종인과 최후의 인간’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몇해전 출간한 ‘트러스트(신뢰)’라는 책이 있다. 논지는 이렇다. “한 국가의 경쟁력은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신뢰는 경제적 가치를 갖는 ‘사회적 자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후뮤야마는 신뢰수준이 가장 낮은 국가로 한국을 지목했다. 그 근거는 한국같이 가족 중심적인 사회에선 가족 아닌 사람들과의 사회적 협동이 이뤄지기 어렵다는데 있다. 몇달전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한국 위기의 본질은 ‘가족 중심주의’에서 비롯된 ‘신뢰의 위기’ ‘협력의 위기’라고 진단한 바 있다.
두말할 것 없이 한국인에게 가족은 가장 중요한 공동체다. 아니, 가족은 지금 우리에게 남아있는 공동체의 전부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러나 이 ‘유일무이’의 공동체는 참된 사회규범을 가르치고 실천해 보이는 민주적 공동체가 아니다. 대신 배타적인 경쟁과 출세, 편의주의와 한탕주의를 내면화 시키는 곳일 경우가 많다. 서로에 대한 애정은 편협한 가족이기주의로 왜곡되기 일쑤다.
내 가족이라는 범위를 벗어나면 한국인에게 대자적(對自的)인 의미에서의 다른 가족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내 가족이 있듯이 남의 가족도 존재하고 있다는 의식도 없고, 내가족이 중요하듯 남의 가족도 중요하다는 의식도 없다. 기찬 사회의식이다. 그렇다보니 ‘만가(萬家)에 대한 만가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명절은 ‘설’과 ‘추석’이다. 이날은 도대체 무슨 날인가?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치도 정부도 기업도 학교도 교회도 몽땅 못 믿을 판에 의지할 건 가족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가족주의 강화의 날’은 아닐까? 우리는 다른 가족들과 함께 더 큰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고, 다시한번 그 존재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는 축일(祝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특히 그것은 사회적 결속을 필요로 하는 위기의 시대에는 더욱 불행한 일이다.
‘가족중심주의’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사회적 비용 개념을 뽑아낸 후큐야마의 경제적 관점을 진주단지처럼 받들 필요는 없다. 더구나 한국인에게 가족주의 세계관은 누가 “버리라”고 해서 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꼭 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부패와 부정, 부실을 ‘사회화’시키는 왜곡된 가족주의의 전통을, 더 크고 열린 공동체주의로 변화시킬 필요성은 여전히 남는다. ‘가족’이 아닌 ‘가족들’이 서로 힘을 모아 이 난국을 헤쳐 나간다면, 후큐야마의 말대로, 한국의 이번 위기는 ‘하늘로부터의 축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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