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곶자왈(녹색도시)을 꿈꾸며-유순남·남구의원

며칠 전 나는 백운고가가 헐리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이나 기뻤다.
3년에 걸쳐서 백운고가 철거를 위해 애썼던 지역 주민들과 부등켜 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로 기쁜 소식이었건만 오히려 힘이 빠지고 가슴이 저려오는 건 무엇 때문일까?
우리는 오로지 광주의 남쪽 관문인 백운광장을 교통광장이 아닌 문화광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일했건만 우리의 순수성을 왜곡해 때로는 음해하는 방해꾼들도 있었다. 이제 얼마 후면 백운광장 주변의 모습은 많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나는 대남로 변 기차 길 옆에 신접살림을 차리면서 25년 동안 백운광장 주변에서만 6차례 이사를 하면서 이곳에 살았다. ‘기차 길 옆에 살면 아이가 많다’는 우수개 소리도 있지만 그 무렵 나도 나주쪽으로 통근을 하는 부부 교사였던 우리 부부는 아침 일찍 대문을 나란히 나와 기차 길에서 헤어져 등을 돌려서 서로 반대방향의 직장을 향해서 출근했다. 기차 길 걷기를 좋아했던 우리 부부는 퇴근길에도 집 앞 기차 길에서 마주치면 손을 흔들며 웃던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내게 “만일 철로에서 기차와 마주치면 옆에 흐르는 물로 뛰어내려라, 그러면 큰 화는 면할 것이다”라고 당부했었다. 그 시절 백운광장은 광주시의 끝부분으로 철로 안쪽은 주택이 있었으나 철로 밖에는 주택보다는 논밭이 주로 많았다. 기차 길 바로 옆에는 냇물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또랑 보다는 큰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살던 시절보다 좀 더 오래전에는 그보다 더 큰물이 흘러서 그 물 위로 긴 다리가 있었는데 그 긴 다리는 우리 전라도 사투리로 진 다리로 불리었다. 특히 그 진다리 옆에 살면서 붓을 만드신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우리나라의 명품인 ‘진다리붓’을 만든 분이다.
백운광장이 헐리고 또 몇 년의 세월이 흐르면 우리는 그 때 또 “예전에 이곳엔 고가가 있었단다”라는 말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아쉬운 과거로의 여행이 아닌 ‘콘크리트의 고가가 도시 미관을 헤치고 사고위험이 높아서 흉물이었던 고가가 있었는데 헐렸다’는 홀가분한 과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고가가 헐린 백운광장을 아름다운 녹색공간, 문화공간으로 꾸며져서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광장이 되도록 모두 주인의식을 가지고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폐선부지 푸른 길공원과 조화를 이뤄 문화중심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면 우리 광주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이로써 전국적인 명소가 되어 타 자치단체에서 탐방을 올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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