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을 바라보며] 주민투표의 힘

정부수립 이후 처음으로 주민투표를 통한 행정구조 개편결정이 내려졌다. 지난달 27일 제주도민들은 스스로의 손으로 도내 시군 자치단체를 없애는데 찬성표를 던졌다. 이로써 4개의 자치구역은 2개의 행정시로 감축될 예정이다.
이들 4군데의 민선시장 군수자리와 기초의회는 자연히 소멸되고 그 대신 도지사가 임명하는 시장이 행정시를 맡게 된다. 한 마디로 제주도는 단 하나의 광역자치단체로 개편되는 것이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도 차원의 각종 개발사업은 이제 훨씬 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번에 제주도민들이 보여준 주민투표의 힘은 그 자체만으로 신선한 충격이다. 달리 보면 그들은 자신들이 몸담고 사는 최저 단위의 지역 수장과 골목 대표들의 선출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나선 게 된다. 다른 지역에선 모두 선거를 통해 여전히 시장이나 군수를 뽑거나 동네의 대변자로 기초의원들을 내보내고 있는데 바로 그 재미(?)를 단념한 셈이다.
어느 모로 보면 지방자치의 기본권을 반납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제주도민들은 혁신안을 선택했다. 지금 이대로의 지방자치를 더 이상 두고볼 수는 없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일부 기초단체장들이 표를 의식해 지역의 큰 그림을 좇지 못하는 행태들이 못마땅하지 않았다면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일부 기초의원들이 지자체에 빌붙어 자신들의 잇속이나 챙기고 자질부족이나 드러내는 현상들을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고도 보여진다. 그래서 그들의 선택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표결결과는 지방자치법 개정이나 별도의 특별법 제정 등 정부의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실제 효과가 날 일이다.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느 누구도 제주사람들의 공식화된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게 돼있다. 제주도는 현행 법체계안에서 주민투표가 사실상의 기속력을 갖췄다는 점을 이 기회에 각인시킨 셈이다. 다행히 정부도 이를 적극 뒷받침할 방침이라고 한다. 더욱이 정치권에선 이번 투표결과를 계기로 그동안 하는둥 마는둥 했던 전국 지방행정체계개편을 다시 논의할 태세다. 제주도민들이 이처럼 역사적 결정을 내렸는데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반성도 나왔다고 한다. 후폭풍이 만만찮은 것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제주사람들이 보여준 ‘주민투표의 힘’은 향후 우리 지방자치의 또 다른 동력원이 될 게 틀림없다.
그렇다고 보면 타산지석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제주도민들이 보여준 주민투표의 힘은 이제 남해안을 건너 북상해야 한다. 운명적일지는 몰라도 제주發 자치혁명이 가장 먼저 닿을 수밖에 없는 곳은 전남이다. 제주도민들은 제주특별자치도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스스로 일부 선거권을 포기했다. 제주보다 권역이 넓다는 이유만으로 전남특별자치도의 구상을 지레 단념한다면 너무 소극적이지 않을까. 전남에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추진해야할 과제들이 산적해있다. 당장 기업도시에 혁신도시 그리고 J 프로젝트까지 처리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다. 이들에게 행정슬림화가 요구되고 있다는 사실은 물어보나 마나다. 그렇다면 도내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 보다는 우선 신도시 생성지역부터 전남도 직할체제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지 검토해볼 일이다. 아울러 무안반도나 광양만권의 통합도 같은 궤도에서 다시 한번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쨌든 이제 최종 선택권은 주민에게 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현실로 입증시켜준 사람들이 제주도민들이다. 주민들이 다시 스스로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역 정치권과 자치단체들은 멍석을 깔아줘야만 한다. 그리고 거기에 어떤 사심이 깃들어서는 안된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야심이 끼어든다면 이 또한 주민투표의 힘에 의해 축출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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