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대순의 세상보기]히로시마 나가사키 60년

토머스 하디의 시 가운데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의 침몰을 다룬 ‘양자의 회동’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여기에서 양자는 호화선 타이타닉과 표류하는 빙산을 말한다. 신의 장난기가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과 빙산을 충돌시킬 계획을 꾸민다. 신의 장난을 알리 없는 아름다운 항해와 또 다른 자연의 아름다운 표류는 각자의 길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운명을 모르는 가운데 그 충돌의 순간은 시시각각 차질 없이 다가선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적인 순간 그 신이 ‘지금이다’ 하고 소리치자 그 세기적인 재앙은 발생한다.
나는 지금도 ‘닙본바래’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 일정때 일본 선생에게 배운 말인데 이 말은 ‘日本晴’이라 쓰고 ‘일본의 푸른 하늘’ 이란 뜻으로, 푸른 하늘은 일본의 소유라는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 1945년 8월 7일 아침 히로시마의 하늘은 ‘닙본바래’이었다. 그 ‘맨하탄계획’에 참가하여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비행사의 회고담에 의하면 그날의 하늘은 다시 없이 푸르렀다고 증언하였다. 더 이상한 것은 구름 때문에 제2차 목적지가 푸른 하늘의 나가사키로 변경되었다는 것도 인간 이상의 신의 장난 같은 의지를 느낀다. ‘닙본바래’가 오히려 재앙의 원인이 된 것이다.
엊그제 8월 1일자 타임지 커버스토리는 히로시마 원폭으로 온 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남은 한 노파의 사진을 싣고 있다. 노파의 손에는 버섯구름의 사진이 들려 있다. 이 노파 말고도 타임지는 원자폭탄 때문에 생긴 상처를 보이는 여섯사람의 사진과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날의 처참한 광경을 증언하고 자기가 살아남은 까닭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살아남은 것이 별로 고맙다는 말도 없다. 그 특집 다음 면은 그 폭격에 참가한 네사람의 미국인 비행사의 인터뷰를 싣고 있어 장난기를 느낀다.
히로시마 폭격기는 ‘Enola Gay’ 라는 이름이었다. 이것은 비행 기장 티베쓰의 어머니 이름에서 딴 것이다. 장난기가 미국인답다. 그러나 그 미국인다운 장난기로 명명된 비행기 기장 티베쓰의 결정에 따라 폭탄 투하의 장소가 변경되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것은 토마스 하디의 신을 연상 시킨다. 애초에 폭격 목적지는 ‘고구라(小倉)’이었는데 거기는 구름이 잔뜩 끼어 시계가 안 보였기 때문에 비행 기장의 선택에 따라 나가사키에 투하하였다고 탑승 비행사의 한 사람은 증언하였다. 그날 나가사키의 하늘은 ‘닙본바래’ 였던 것이다. 히로시마나 나가사키 그날의 ‘닙본바래’는 나로 하여금 토마스 하디의 신을 만나게 한다.
일본 방송 NHK가 최근 몇 달에 걸쳐 시리즈로 폐망 직전 일본의 실상을 상기시키는 특집을 방영하고 있다. 그 안에는 가미가제의 이야기도 있고 폭격 후의 도시의 실정도 상기시키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회상도 있다. 당시의 신문 기사를 제시하고 그 당시 거기 있었던 사람의 생생한 증언을 실감나게 구체적으로 증언하게 하고 그리고 당시의 작가 등의 일기를 소개함으로서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을 절실한 현실로 부각시키고 있다. 그들이 60년을 회상하면서 무엇을 일본인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는지 그 의도를 내가 잘 알 수는 없다.
미국 방송 CNN을 보면서 가끔 세계 일기 예보를 만나게 된다. 아시아 방면 예보를 하면서 CNN이 Tokyo를 빼는 일은 없다. 그러나 Seoul은 가끔 빠진다. Tokyo의 하늘은 대개 Seoul의 하늘과 날씨가 같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나는 Tokyo의 하늘을 Seoul의 하늘로 대치시키는 안이한 인식이 싫다. 미국이 일본을 내세우면서 한국을 그 안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상은 일본의 기상과 많이 다르다. 그것은 Seoul의 하늘이 Tokyo의 하늘과 다르다는 의미이고 8월을 맞으면서 우리의 60년이 일본의 60년과 다르다는 인식과 같다. 오늘 우리에게 아직도 일본과의 차별화는 강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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