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교]장군의 연인

진실은 언젠간 세상에 드러나는 법이다. 이순신의 ‘난중일기(국보 제76호)’가 처음으로 완역돼 여자 문제 등 그간의 베일을 벗겨냈다. 난중일기는 부록인 서간첩과 임진장초(임금에게 올린 장계의 초안)를 포함해 9책으로 돼 있다. 전체 글자수가 13만여 자에 이른 데다 한문 초서체로 흘려 썼기 때문에 그동안 해독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실제 1795년 정조의 명으로 이를 정자(正字)화 한 ‘충무공 전서’도 해독의 어려움 때문에 60%가량이 누락됐다.
최근 초서 전문가 노승석씨(36)가 ‘난중일기’13만자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난중일기초’에 수록되지 않은 부분(8천500여 자)과 100여 곳(150여 자)의 오류를 발견했다.
대표적인 오류는 1598년 9월 20일자에 조선수군과 명나라 육군이 수륙협공을 펼치는 장면에서 유도(현재 여수시 송도)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이는 묘도(猫島·여수시 묘도동을 이루는 섬)의 오독이다. 또 무상(無上)이라는 직책은 갑판수를 뜻 하나, 물 긷는 군사(汲水軍)로 잘못 풀이 된 것. 더욱 재밌는 건 충무공의 연인 문제다. 난중일기 가운데 ‘여진입(女眞卄)’이란 귀절이 있다. 지금까지 이 단어는 ‘여진(女眞)이란 여종과 스무 차례(卄)의 잠자리를 가졌다’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여진입(女眞卄)’의 ‘스물 입(卄)’자는 ‘공(共)’자의 초서를 잘못 읽었던 게다. 또 충무공을 연모한 한양 기생의 이름이 ‘세산월(歲山月)’로 알려졌으나, 이 역시 ‘내(萊)’자를 오독한 것으로 ‘내산월(萊山月)’이 맞다고 한다. 선조 때 문신 이춘원(1571∼1634)이 내산월을 위해 남긴 시가 전해져 이를 뒷받침 한다. ‘사필귀정’이라고, 옳고 바른 것은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와 빛을 발하는 법이다.

김선기 논설위원 kimsg@namdonews.com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