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교]정사(情死)

우연찮게 1930년 11월에 발간된 잡지‘별건곤’을 본 적 있다. ‘여류명사의 동성연애기’가 게재 된 이 잡지는 1930년대 여학생들 사이에서 동성연애는 이성애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적고 있다. 동성연애와 관련된 이야기도 금기시 되지 않았다. 소파 방정환이 발행한 ‘별건곤’에는 당시 중외일보 기자였던 황신덕을 비롯 춘원 이광수의 아내이자 산부인과 의사였던 허영숙, 기독교 여성운동가 이덕요 등 쟁쟁한 여류명사의 동성연애 경험담을 취재한 기획기사를 싣고있다.
잡지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1930년대 초 동성애로 인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1931년 4월 8일, 세련된 양장을 차려입은 신여성 두 명이 영등포역에서 하차했다. 두 손을 꼭 잡은 그들은 마치 소풍 나온 소녀들처럼 행복해 보였다. 오후 4시45분 인천발 서울행 428호 열차가 오류동역을 떠나 경부선 분기점에 이르렀을 때, 두 여인은 서로 껴안은 채 질주하는 열차를 향해 몸을 던졌다. 정사(情死)였다. 세브란스의전 교수 홍석후의 외동딸 홍옥희(21)와 비행사 심종익의 아내 김용주(19)가 그들이다. 홍옥희는 작곡가 홍난파의 조카딸이었고, 김용주는 부유한 서점 주인 김동진의 딸이자 동막(東幕=마포구 대흥동) 부호 심정택의 맏며느리였다. 두 여인은 남편과 애인으로부터 배신당한 상처를 서로 위로하다 연애로 발전한 것이다. 이런 명문가 여성의 동성애 정사는 엄청난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신여성들 사이에서 만연 된 동성연애는 요즘 우리가 생각하는 동성애와 차원이 다르다. 그 시절의 동성애는 상대에 대한 깊은 동정(同情)을 바탕으로 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광’1937년 3월호엔 신여성의 동성애 체험수기까지 수록돼 당시의 사회상을 말해주고 있다.
김선기 논설위원 kimsg@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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