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대순의 세상보기] 소와 입 맞춘 세살 적 기억

친구들을 만나면 의례히 듣는 이야기가 아무개는 암에 걸려 입원중이고 아무개는 항암 치료 중이고 아무개 자식은 이혼을 했다는 둥 화제가 밝지 않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니 서로 건강에 유의하자고 다짐한다. 돌아가면서 친구의 불행이 언젠가는 자기에게로 올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그동안 건강하더니 며칠 전부터 별 이유 없이 배가 아프고 변이 고르지 않아 동네 내과 병원에 갔더니 신경성이라고 말하였다. 말을 아끼는 나이지만 어찌 속상할 일이 없겠는가.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속상하거나 울적하거나 불안하거나 심란하거나 하는 일이 없지 않다.
며칠 병원의 처방대로 약도 먹고 술도 삼가고 커피 등 자극성 음식도 삼갔지만 배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큰 병원으로 가봐야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혹 병원에 가면 입원하게 될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당분간 등산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산속에서 터질지도 몰라 화장지를 넉넉하게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전날 밤에 비가 와서 산은 미끄러웠다. 우리 나이에 산에서 미끄러지면 큰일이다. 지난해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은 산에서 미끄러져 6개월 동안 다리에 기브스를 해야했다. 그러나 여름에도 아이젠을 지니고 다닌 사람이니 미끄러움에 나는 대비가 되어 있다.
무등산에서도 내내 배에 힘이 주어지지 않았다. 살살 아프고 뒷이 무겁고 아무데서나 앉으면 금방이라고 밀고 나올 것 같았다. 중머리재 감시대 고개까지 그럭저럭 올라 아이젠을 매려고 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가득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걸 매기도 그렇고 해서, 또 그만한 미끄러움이면 그동안 탈이 없었던 터라, 설마하고 약사암 쪽으로 가파른 길을 내려오다가 한 중간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없어도 미끄러지는 사람의 속성은 빨리 일어나려고 한다. 그리고 태연한 척 위장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동정을 받으면서 멋쩍은 생각에 더 도망치듯 빨리 내려오는데 몸에 이상한 징조가 감지되었다. 배 아픈 증세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충격을 받고 스스로 치료된 모양이다. 혼자 웃으면서 몇년 전 사리돈 광고를 회상했다. 원시 시대 머리가 아픈 사람이 생기면 도끼를 들고 위협하여 치료했지만 현대에는 사리돈 한 알이면 낫는다는 것이다. 그 광고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소와 입 맞췄던 어릴 적 기억을 한다. 그 때 아이들이 말라리아(하루걸이)에 걸리면 그 치료를 위하여 소와 입을 맞추게 했다. 놀라면 그 충격으로 하루걸이가 도망쳐 버렸다.
‘건강은 원시적 방법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이것은 나의 소신이다. 배 아프면 밥을 굶고 머리가 아프면 땀을 낸다. 미국도 무리인 처지에 81년 여름에 영국으로 건너가 3개월 동안 옥스퍼드 대학 하계 연수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도착하자마자 그날 밤부터 머리가 아팠다. 스트레스 때문이다. 객지에서 몸이 아프면 난감하다. 그때 나는 본능적으로 원시적 방법이 생각났다. 땀을 낸 것이다. 스스로 호흡을 멈추고 진이 나도록 버티는 일을 몇 번 반복하자 몸에 땀이 났다. 땀이 나면서 머리 아픈 증세가 가라앉았다.
신경성 복통이라는 동네 병원의 진단을 생각하면 까닭이 없지 않다. 그것은 나의 시집 때문이다. 나는 최근 ‘나는 디오니소스의 거시기 氣다’ 라는 시집을 낸 바 있다. 그러나 그 시집은 그 반응이 기대 같지 않았다. 우호적인 사람까지도 지금까지 답이 없다. 그들이 당황하거나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나는 그 시집에서 죽기 전에 한번은 정직하고 싶었다. 시는 위선적이다. 한번은 심층 깊이 갇혀있는 고백 같은 것, 그러니까 야성이랄까 생명력이랄까 광기 같은 것을 고백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고백은 극복해야 할 절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