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세상 구석구석 처방...건강 사회 만들어요
부제=농민들 쌈지돈 모아 90년 나주에 둥지
부제=농부증·하우스병 등 연구사업도 병행
부제=영산포 해남 화순 등지 잇따라 문열어
나주 영산포 버스터미널 옆에 자리잡은 ‘농민약국’.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여느 약국과는 다른 점이 몇가지 눈에띈다.
먼저 간판부터가 다른 약국과는 다르다. ‘건강한 사회, 건강한 약국’이라는 커다란 팻말이 먼저 시선을 붙들고 약국 안을 둘러보면 입구쪽에 ‘농민과 함께하는 공동체 약국’이라는 말이 눈길에 와 닿는다. 벽면에도 이 약국의 설립역사와 목적부터 시작해 각종 건강정보를 알리는 대자보 등이 빼곡이 붙어있다.
“아저씨는 약주 드시는 거 이제 삼가하셔야 겠네요”“아참, 아주머니 배앓이 하시는거 이제 좀 나아지셨죠 ”
‘농민약국’에 들른 주민들에게 친절히 인사를 건네는 여약사 4명.
이연임(34), 차미경(33), 김선영(32), 박은숙씨(27)는 영산포는 물론 인근 농민들이 늘 믿고 찾는 주치의다. 약국에 들르는 농민들은 물론 그 가족들의 건강상태까지 일일이 챙겨주는 이들은 약사인 동시에 자신들 스스로를 ‘농민운동’하는 사람들이라고 자신있게 얘기한다.
‘농민약국’이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지난 90년 4월. ‘농민의 건강권 확보’라는 슬로건으로 몇몇 뜻을 같이한 약학대학 선·후배 동료들이 나주 농민회와 손을 잡고 처음 영산포에 약국문을 열었다.
약국을 개업하는데 소요된 비용은 모두 나주지역 농민들이 천원, 2천원씩 한 푼 두 푼 쌈지돈을 털어 모은 성금으로 조달됐다. 다시말해 ‘농민약국’은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농민과 약사 모두의 소유다.
이곳 영산포에서 시작한 ‘농민약국’은 분열(?)해 지금은 모두 5군데에 이르고 있다. 약사도 15명이나 된다.
지난 93년 8월 나주 공산을 시작으로 1년뒤인 94년 4월에는 나주 동강에도 ‘농민약국’간판을 달았다. 또 95년 7월에는 영산포 농민약국 옆에 ‘농민치과’도 개원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다른 지역 농민회도 농민들을 위한 의료기관 설립에 적극 나섰다. 이렇게 해서 지난 95년 2월 해남에 농민약국이 문을 열었고 지난해 5월에는 화순에도 개업을 알렸다.
‘농민약국’은 농민들의 힘으로 세워진 의료시설답게 모든 이익금이 다시 농민들을 위해 쓰여진다. 약사들도 자신들의 노동의 대가를 월급으로 받는다.
‘농민약국’이 각 지역의 농민회와 함께 벌이고 있는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농부증’,‘하우스병’등 농민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직업병에 대한 연구·조사사업이다.
영산포 농민약국의 대표약사 이연임씨는 “농촌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치고 한 두가지 지병을 갖고있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힘든 농사일을 오래 하다보면 관절염이나 신경통같은 질환은 병 축에도 끼이지 못하죠”라고 말한다.
이들 약사들은 농민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질환들을 중심으로 발병원인과 효과적인 치료방법 등을 연구하는 동시에 ‘농촌 직업병’에 대한 여론을 확산시켜 농민들에 대한 정부나 자치단체 차원의 의료서비스 지원을 공론화할 계획이다.
10년동안 웬만한 농촌 병원이나 보건소 이상의 ‘건강 지킴이’역할을 하고 있는 농민약국은 매월 2회씩 인근 마을을 직접 찾아 무료 순회진료사업도 벌이고 있다.
무료순회진료는 혈압 및 당뇨측정, 체지방 검사 등 의료기기를 이용한 간단한 건강검진에서부터 뜸·부황치료 및 투약 등으로 이뤄진다. 특히‘주민건강교실’을 열어 농민들의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지난달 영산포 약국식구들은 나주 노안면 덕임마을로 순회진료를 다녀왔다.
관절염, 신경통으로 고생하는 농민들이 많아 체조요법을 가지고 건강교실을 열었다. 농약중독에 관한 교육도 실시했다. 만성 퇴행성 관절염 환자뿐만 아니라 출산후 몸조리를 제대로 못해 부인병이 생긴 아주머니들, 노인들이 비좁은 마을회관을 가득 채웠다.
해남에서는 ‘농민약국’약사들뿐만 아니라 ‘해남사랑청년회’소속 젊은 치과의사들과 함께 순회진료를 다니고 있다.
이밖에도 농민약국은 소식지 ‘건강한 농민’을 약사들이 직접 편집해 격월로 발행하고 있다. 계절별로 발병하는 각종 질환과 건강관리 요령, 요통을 줄이는 활법체조, 응급처치 요령, 치과정보 등 다양한 건강상식과 주민들의 소박한 이야기를 담은 소식지 2천500부를 농민들에게 돌리는 일도 이들의 몫이다.
이들이 만들어낸 자료집에는 농민약국의 설립취지를 이렇게 적고있다.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농민의 약국으로서 농민에게 필요한 보건·의료서비스를 농민이 주인이 되어 펼쳐나가는 농민건강센터”가 바로 농민약국 이라고.
현재 대다수가 미혼인 이들 여약사들은 영산포 시내에 아담한 2층 양옥집을 얻어 함께 공동생활을 하고있다. 전남대 약학과 85학번 큰언니부터 93학번 막내까지 함께 모여 사는 이곳에는 집안 곳곳에 농민에 대한 사랑이 짙게 배어있다.
막내 박은숙 약사는 “농민들은 그들이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의료서비스를 보상받을 자격이 있다”며 “농산물에 대한 충분한 가격보장 및 농기계 사고의 산재처리, 전문의료시설확충 등 농촌의료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가 앞으로도 많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있어 약국은 하나의 작은 ‘텃밭’이다. 아직은 소출이 많지 않지만 이곳에서 뿌리내린 하나의 씨앗은 세상 이곳 저곳을 살찌우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열매로 자랄 것이다. /김옥현 기자
▲사진-지난 90년 지역 농민들의 성금으로 문을 연 나주 ‘농민약국’은 농민이 주인으로서 농민들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건강센터’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김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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