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는 무릉(武陵), 우릉(羽陵 또는 芋陵), 우산(于山)으로 불렸던 섬이다.
이곳에 사람이 처음 들어간 것은 김해식 토기 시대 후기인 1세기쯤으로 추정된다. 울릉도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이 처음으로 발견되는 것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 옥저조에 나타나며 삼국사기에는 지증왕 13년(512) 하슬라(강릉) 주둔 사령관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후 400여 년 간 자취를 감추었던 울릉도에 대한 역사 기록은 고려 태조 13년(930) 백길(白吉), 토두(土豆)라는 울릉도 사람 둘이 공물을 가지고 왕을 찾아왔다는 기록으로 다시 등장한다.
그러나 덕종 원년(1032) 이후로는 기록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울릉도에 다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200년대 경으로 추측되지만 이때부터는 왜구의 침입이 잦아 섬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다.
고종 10년(1223)부터 조선 세종 원년(1419) 이종무가 대마도를 정벌할 때까지 196년 동안 왜구들은 무려 500여회나 울릉도를 침범해 왔기 때문에 섬은 정착민들이 살기에는 너무도 험난한 곳이었고 거의 무인지경이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자 일본인들은 제멋대로 섬에 들어와 나무를 베어 가고 고기를 잡아갔다. 그리고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이름까지 붙여 놓기도 했다. 동래 어부 안용복은 숙종 19년(1693)과 22년에 일본 막부로부터 독도는 조선 땅임을 확인받아 양국간에 공식 협약이 되게 했다. 이후 고종 19년(1882)에는 공도(空島) 정책을 버리고 개척령을 발표하여 울릉도의 역사를 이었다./김선기 기자 kimsg@kjtimes.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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