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벨기에산 돼지고기가 말썽이다. 친구들의 모임에서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러나 어떤 친구 하나가 우리같은 촌 사람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고 말한다. 벨기에산 돼지고기는 서울 최고급 호텔 주방을 출입하는 귀빈이지 우리같은 사람이 먹는 음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벨기에 브뤼쉘을 회상했다. 독일에서 영국 여행을 생각한 사람은 브뤼쉘로 간다. 거기서 영국 도바를 가는 훼리를 타야 하는 것이다. 여행객의 대부분은 아름다운 브뤼쉘을 건너 뛴다. 그러나 그 가운데 브뤼쉘을 눈여겨 보는 사람도 있다. 맛이 일품인 돼지고기 요리를 즐기려고 들리는 사람도 있지만 그보다도 거기는 미술관을 빼놓을 수가 없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수학한 사람은 전공과목으로 현대 영시를 수강하면서 T.S 에리어트 다음 세대로 1930년대 영시를 읽어야 한다. 1930년대의 영시는 젊은 진보 성향의 시인들이 지배하였었다. 그 가운데 W.H 오든이 들어 있다. 그 오든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미술관에서’라는 작품을 그는 이 브뤼쉘 미술관 부르겔의 그림에서 착상한 것이다.
브뤼쉘 미술관에 있는 ‘이카루스가 추락하는 풍경’이라는 제목의 그림은 가로 112, 세로 73㎝의 밝은 빛이 강한 유화이다. 시골 항구인데 주변의 밭에서 농부가 쟁기질을 하고 있고 푸른 바다엔 방금 출항한 큰 범선이 가고 있다. 멀리 수평선에 예쁜 돛배도 있다. 잘 보면 화폭 오른쪽에 하늘로 향한 사람의 발이 물속에 빠지는 순간이 조그만하게 그려져 있다. 하늘에서 추락하여 익사하는 이카루스의 현장인 것이다. 특별한 연고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 추락하는 발에 주목한 사람은 없다.
지난번 전남대학 논술고사 문과계열의 문제는 ‘이카루스 신화의 현대적 의미에 대해서 써라’는 것이었다. 이문열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작품이 한참 읽히고 있었을 때다. 이카루스는 그리스 전설에 나오는 장인 디다루스의 아들로 부자가 같이 인공적인 날개로 아티까 섬을 탈출하던 중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에 너무 접근했다가 접착제인 초가 녹아 바다에 추락, 익사한 소년이었다. 젊은이의 꿈과 요즘 자주 말하는 모험 즉 벤춰, 그리고 인류의 진보와 그 희생을 상징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고귀한 희생을 이 화가 부르겔은 왜 화폭의 한 구석에 작게 눈에 띄지않게 그려 놓았을까. 시인 오든은 그 점을 주목한 듯하다. 위대한 희생일수록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순간에 희생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생각하면 희생과 영웅의 역사는 너무 소리가 크고 너무 지배적이다. 이 시를 쓸 무렵 오든은 젊은 시인이였다. 어떤 희생이나 영웅보다도 무명한 희생이 더 위대하다는 순수한 이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시기의 시인 스티븐 스펜더의 대표작 ‘나는 언제나 진실로 위대하였던 사람들을 생각한다’도 또한 같이 이름없는 희생의 고귀한 것을 노래한 작품이다. 나는 이 시인들을 좋아하며 그들의 시를 전공한 것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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