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어와 풍년, 무병을 비나이다’

400여년 전통속에 상부상조 다져

바다에 던진 소머리가 멀리 흘러가야 풍어,
되돌아오면 다시 날을 받아 지내기도

설날이나 정월 대보름께면 바닷가 마을이나 섬에서 으레 열리는 풍어제.
용왕신을 위안하고 어민의 무사와 풍어를 비는 제의다.
농촌에서 풍농을 비는 것처럼 바닷가 사람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신앙이다. 바다는 자연이 가져오는 위험성이 많기 때문에 그 관심은 더욱 높다.
보성군 벌교읍 대포리에 전해오는 갯귀신제 역시 일종의 풍어제.
바닷가에서 치러지는 풍어제와 함께 뭍에서 당산제가 열려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당산나무 아래 당집에서 새벽에 ‘상당제(上堂祭)’를, 밤에는 갯가에 제청을 지어 갯귀신제인 ‘하당제(下堂祭)’를 차례로 지낸다.
마을의 안녕과 행운, 복을 기원하지만 마을축제의 성격도 강하다. 주민들은 이를 바탕으로 상부상조를 다져왔다.

올해는 지난 3일(음력 1월 11일) 열렸다. 갯귀신제를 지내는 날은 정해진 것은 아니다.
제주부부와 헌관, 축관 등 오직 4명만 마을 왼편 동쪽에 있는 당산나무(팽나무)와 당집을 찾아 상당제를 올린다.
당신은 당할머니, 당할아버지, 산신, 마을 유공자 등.
당에 올라가 쌀을 한웅큼씩 싸서 나무에 걸친후 초헌, 축, 종헌, 소지, 음복하고 나면 새벽 2시께.
상당제가 끝나고 아침이 되면 주민들은 큰당산·작은당산과 마을어귀들을 차례로 돌며 12당산굿을 친다.
이윽고 날이 저물어 갯귀신제(하당제)가 이어진다.
제관들만 지내는 상당제와는 달리 이 때는 주민들이 함께 참여한다.
주민들은 각 가정에서 마련한 젯상을 들고 당주집으로 간다.
이어 횃불을 앞세운 당주는 메밥과 진설할 소머리 등을 가지고 제청으로 향한다. 그 뒤를 주민들의 제상행렬과 농악패가 따른다.
제청에 이르러 ‘각항 재배 문안이요’ 라 고하며 진설한다.
이어 주민들은 화톳불을 피우며 굿물을 치며 논다.
대포리 갯귀신제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은 자정무렵, 제주와 주민들이 용왕신에 올리는 제례다.
가장 중요한 제물은 당시 귀하게 여겼던 소. 요즘은 소머리·꼬리·다리 등을 쓴다. 이는 소 한마리의 의미다.
굿과 제례를 마친 후 도대장(포수의 우두머리격)이 개펄 건너 바닷가로 나가 소머리 등 제물을 담은 어장치(짚으로 엮은 망태의 한가지)를 받쳐들고 용왕신께 기원한다.
‘풍어와 풍년, 무병을 비나이다. 빈대, 이, 벼룩과 모든 액운을 내보내 주소서.’
축을 고한 후 신을 달래듯 도대장은 어장치를 던질듯 말듯 반복하다 바다를 향해 멀리 내던진다.
소머리가 바닷물에 멀리 나가야 용왕신이 정성을 받아들여 마을에 우환이 없다고 믿는다.
만약 소머리가 흘러가지 않고 바닷물에 휩쓸려오면 흉어·흉농을 점쳤다. 때문에 다시 날을 받아 갯제를 올려야 한다. 헌식이 끝나면 제청을 불사르고 온 주민들은 농악장단에 맞춰 신명난 축제를 연출한다.
마을 주민인 김병택씨(60)는 “대포리 갯귀신제는 영험이 강해 400여년을 이어오고 있다”며 “6·25 전란에도 희생자가 없었고 큰 당산나무에서 떨어져도 탈이 없었다” 자랑한다.
이어 그는 “아들을 소원하면 아들을 낳고 풍파에도 배들이 무사했다”며 “배고사를 지낼때도 반드시 당할머니에게 고하고 제를 올린다”고 설명한다.
변화무쌍한 바다를 일구는 사람들은 결국 신(神)과 조상에 지성을 올리며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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