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정월은 일년중 가장 바쁜 시기였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풀어 활기를 되찾고 풍요의 상징인 여자·달·땅·바다를 달래 풍년을 소망하는 행사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여수시 소라면 사곡리 복촌마을.
바다를 끼고 있는 이 마을은 또한 그랬다.
정월 대보름과 칠월 칠석이면 주민들은 꼬박꼬박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올린다.

시작은 자손의 번창함을 기원하는 데서 비롯됐다.
60여년전 이른 봄 복촌마을.
이 마을에 살던 김대현·양수 어머니는 어느날 기이한 꿈을 꾸게 된다.
꿈 속에 당산할머니가 나타나 복주머니를 두개를 건넨 것. 하나는 쌍노리개, 또 하나는 성냥.
꿈은 태몽으로 두 형제를 잇따라 얻게 됐고 이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당산에서 당할머니에게 정성껏 제를 올렸다. 마을이 생긴 이후 당산제가 간간히 이어지긴 했으나 본격적으로 행해진 것은 이때부터다.
씨족성격이 강한 복촌마을에서 중요한 연중행사로 자리매김했다.
당제가 열리기 5일 전, 마을 사람중 흠이 없는 사람을 골라 제관을 정한다. 물론 부정한 것을 멀리하고 부부생활도 금한다.
당산나무 주변과 마을전체는 금줄을 치고 사립문 양쪽에는 황토흙을 세줌씩 깔아 부정을 막았다.
다른지역의 당산제가 대부분 인적이 끊긴 한밤중에 이뤄지는 것과는 달리 복촌 당산제는 대낮에 열린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시작은 오전 10시께.
당산나무에서 시작되는 제의식은 유교식이다. 초헌, 아헌, 종헌의 순서.
물론
‘오곡이 풍년들고, 자손이 번창하며~
마을이 태평하고 후환이 없도록~’ 축을 고한다.
이어 주민들은 마을 공동우물(지금은 메워져 공터로 변했다)에서 간단한 제와 헌식(獻食)을 한다.
찬물과 막걸리, 나물을 진설한 후 제주의 재배가 끝나면 메구(농악)가 이어진다.
이 때 헌식은 도끼로 땅을 파낸 후 창호지로 제물을 감싸 묻는다.
왜 삽이나 괭이가 아닌 ‘도끼’를 쓰는 것일까. 이는 짐승들의 접근을 막기 위함이다.
헌식이 끝나고 주민들은 상복마을에서 날당산(농악), 하복에서 들당산을 하며 선착장으로 향한다. 선착장에서는 일종의 용왕제를 올린다. 풍어와 갯마을 사람들에게 바다에서 무사안전을 빈다.
많은 당산제처럼 복촌 당산제도 풍년과 건강, 복을 기원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한 점이 있다.
당산제를 주관했던 정말언 할아버지(80)는 “당산제가 열리던 날이면 진세(眞歲·8세)나 성년(20세)에 달한 자녀가 있는 집안에서 술을 한동이씩 내놓는다.”고 귀띔한다.
요즘으로 치면 8세는 학교에 입학할 나이. 아이들은 1854년 주민들이 갹출해 지은 서당격인 복호제(福湖齊)에 들어가기 때문에 부모들의 감사 표시다.
뿐만 아니라 마을에 품앗이가 흔할때 20세에 이르러 소동에서 대동으로 가는데 이는 성년이 됐음을 알리며 술동이를 낸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젊은이들이 도회지로 떠나 성년식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을 주고 있다.
자식를 점지해준 데 대한 감사의 의미에서 비롯된 복촌 당산제.
오랜 세월 더불어 살아온 사람의 마음이 함께 만들어낸 마을의 상징으로 전해오고 있다.


<사진설명>
당산제를 마친 후 마을 공동우물에서 찬물과 막걸리, 나물을 진설한 후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주가 땅에 제물을 헌식하고 있다. 이 때 미물들의 접근을 막기위해 구덩이는 도끼로 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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