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영화를 간직한 채 쓸쓸한 2월의 햇볕을 쬐이고 있는 광주시 서방시장.
굳게 샷터문이 내려진 상가를 돌아 2층 계단을 오르면 11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입간판이 보인다. ‘광주학당’.
절망과 고통, 어둠, 단절의 쓴맛을 본 문맹의 긴 터널을 벗어나게 해 준 희망의 등대가 서 있다.
10대 소녀에서 70대 할머니까지 수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해소 시켜준 야학이다.
남들이 정규 과정을 밟으며 교육의 혜택을 받을때 여러 이유로 도중하차한 이들이 자신의 꿈을 키우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옆동네에서는 빛나는 학사모를 쓰고 대학 졸업식이 한창 진행되는 26일 오전.
조락하는 오후의 햇빛을 받는 실외보다 실내가 더 추운 2평 남직한 교실에서는 10여명의 여성들을 향해 국어의 조사를 설명하는 여선생님의 강의가 한창중이다.
빼꼼히 교실 뒷문을 열어 수업공개를 허락한 중년 부인이 이 곳의 교장선생님 이정자씨(57)와 주부 영어교사 서 숙정씨(44).
친자매처럼 다정한 이씨와 서씨. 이씨는 학당설립자이며 손수 한문을 가르치고 서씨는 전직 영어교사인 전공을 살려 하루 2시간씩 기초영어를 가르치는 자원 봉사자다.

#스스로 당당하기위해 공부한다
학당내에서 1인 다역을 하고 있는 이씨가 학당 설립을 꿈꾼 것은 유년기부터다.
고향인 강진군 성전면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씨가 자신의 집 부엌에서 동네 여성을 모아 놓고 공부를 가르치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언젠가는 야학을 실천하기로 마음 먹었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보다는 이웃과 나누는 삶을 택하리라는 꿈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아들이 대학을 들어갈 무렵이다.
88년 아들과 같은 학번으로 국어국문학과생이 되면서 배움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꿈꾸는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기로 결심한다.
“배우지 못한 이들의 아픔을 아는 여성으로서 배우지 못했다는 이들의 아픔이 쉽게 보였습니다”
광주의 한 여고에서 버린 책 걸상과 주부 7명, 작은 교실 한칸으로 90년 10월 10일 개교를 한 작은 학교.
정규 교육과정은 아니지만 문을 열고 나서 종종걸음으로 강의를 시작한지 1년.
한글반 학생뿐만 아니라 중등 고등 과정이 생겨 학생수는 부쩍 늘었고 교실도 3칸으로 넓혀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 뒤 서방시장 상인 아이들을 위해 한문반. 청소년 공부방도 마련했다.
“한글을 깨우치기 위해 문턱이 닳을 정도로 여성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군대에 간 아들에게 편지를 쓰기위해, 관공서나 은행에서 직접 서류를 작성하기위해 등등 사연도 가지가지였죠.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에게 당당하고 떳떳하기위해 여성들이 무엇보다 열심이었습니다”
한글을 깨우치기 위해 광주학당에 들어온 이들중에는 초·중·고등의 과정을 마치고 검정고시를 통해 당당히 대학에 입학 한 이도 있다.

#자원봉사를 통해 배운다
“야학은 정거장입니다. 남학생들에게는 휴학이나 군대 가지전, 복학을 앞두고 거쳐갑니다. 물론 여학생들에게도 자신의 삶의 휴지기에 들러 봉사를 하기도 하고, 이내 힘을 얻고 나가기도 합니다”

다양한 자원봉사자들이 들러 간 광주학당은 11년이라는 세월속에 스쳐간 자원봉사자만도 줄잡아 400여명.
현재는 40여명의 대학생과 이씨와 서씨를 비롯한 3명의 주부 교사가 봉사를 한다.
자신의 전공에 맞게 수업을 준비하고 학당의 행사에 참여하는 영락없는 선생님인 서씨는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분들이 저에게 깍듯이 예를 표하면 부끄럽지만 학생들이 한 자 한 자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것을 볼때면 보람을 느낍니다”
자원봉사를 시작한지 5년째에 접어든다는 서씨는 “늦은 나이에 도전해 공부를 하는 이들에게는 공부가 단순한 공부가 아닙니다. 바로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갈 자신감입니다”고 말한다.

#단 1명의 문맹자를 위해서라도
“평생교육법의 시행으로 사회교육원, 학점은행제, 사이버대학 등등 얼마든지 못 배운 한을 풀 수 있는 21세기를 살지만 실은 아직도 자신의 이름 석 자도 적을 수 없는 여성들이 많죠”
대부분의 평생교육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들만이 누리는 특권으로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이들에게는 ‘먼나라의 이야기’이다.
“의무교육을 받았지만 아직 자신의 이름을 쓰지 못하는 이들의 답답함을 사회가 외면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우리 학당은 단1명의 문맹자를 위해서 언제까지라도 이 학당을 지킬 것입니다”
교육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문맹자들을 위해 언제까지라도 봉사를 계속할거라는 이씨와 서씨는 마지막으로 다름아닌 문맹자들에게 부탁을 한다.
“배우기를 꺼려하지 마세요. 처음이 어렵지 시작만 하면 금방 책도 읽고 편지도 쓸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세요”

며칠후면 입학식 소식으로 사회가 떠들썩 할 신학기.
실내가 실외보다 더 싸늘한 교실인 광주학당에서도 잊지 않은 꿈을 키우는 이들의 입학식도 조촐히 열릴것이다. /안정미 기자 takmi@kjtimes.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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