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형상빌려 안녕·풍요 기원

높다란 장대 끝에 새가 앉아 있다.
해마다 장대에 날아와 앉은 새는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마을을 지켜준다. 그리고 해가 바뀌면 새로 세워진다. 묵은 장대는 스러지고 또다른 짐대(솟대)가 마을을 지킨다. 새는 제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수백년을 주민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솟대의 역사는 삼한시대의 기록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당시 신성시했던 ‘소도’가 바로 그것.
천신제사를 담당하는 천군이 있고, 별읍이 있어 소도라 불렀는데 장대를 세우고 북과 방울을 달았다. 도망쳐 온 죄인이라도 그 안으로 들면 더 이상 쫓지 않았던 성역이다.
이때 소도는 솟대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한다.

화순군 동복면 가수리 2구 상가마을(가무래) 어귀 장대 위에 올라앉은 나무새, 솟대.
주민들은 ‘짐대’라 부른다.
짐대 오릿대 액맥이대라는 이름도 대개 솟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해마다 음력 2월 초하루 가무래 주민들은 어김없이 새로운 솟대를 세우고 제를 지낸다.
6m정도 높이의 나무에 오리가 대나무 가지를 물고 남쪽을 향하고 있다. 화재막이 솟대라고 하여 불끄는 방어막 구실을 한다.
이는 마을이 지닌 풍수(風水)때문. 즉, 가무래는 형국이 ‘화국(火局)’으로 마을에 크고작은 화재가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한때는 온 마을이 불바다를 이룬 적도 있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화재를 막기 위해 물의 상징인 오리를 얹어 짐대를 세우고, 해마다 ‘짐대제’를 올려 기(氣)를 다스려 왔다. 주민들은 주로 물에서 노는 오리가 농사에 필요한 물을 주기도 하고 화마로부터 마을을 지켜준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마을 이장인 김창수씨 는 “6·25전란으로 당산나무와 짐대가 소실된 후 마을에 화재가 잦았고, 70년대 들어 미신이라 여겨 아예 짐대를 없앴더니 화재가 잇따라 80년대 초부터 다시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거짓말처럼 마을에는 화재가 없었다고 한다.
음력 2월 초하루.
풍물패를 앞세운 가무래 주민들은 뒷굴(마을뒷산)에서 가장 곧게 자란 육송을 골라 짐대로 쓴다.
짐대에 오리를 얹고 대나무를 가늘게 갈라 입에 물린다. 오리수염이다. 방향은 남쪽을 향하는데 이는 마을에서 화기(火氣)를 멀리 물고 날아가란 의미다.
짐대제를 위한 경비는 주민들이 갹출한다. 짐대제를 마치면 주민들은 농악패와 어우러져 흥겨운 축제를 벌인다.
짐대는 바로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가무래의 신앙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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