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7~13세의 연령기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바른 행동을 세워나가는 중요한 시기다. 그러나 맑고 티없이 자라야할 어린이들의 책가방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어린이들이 늘 부담을 느끼는 것은 바로 선생님들이 내주는 숙제다.
예나 지금이나 숙제 분량을 줄여달라는 어린이들의 공통된 바람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요즘 초등생들의 숙제를 보면 어린이들이 해결하기엔 너무나 어렵고 벅찬 것들이 많아 결국엔 학부모들의 숙제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편집자 주>
요즘 초등생들의 숙제는 도무지 현실성이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학부모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물론 과거처럼 교과서에 나오는 단편적인 지식을 반복 학습토록 하는 구태의연한 숙제유형은 많이 개선된 게 사실이다. 반면 숙제의 질이 상대적으로 향상되면서 초등학생들의 숙제가 한마디로 아이들 숙제가 아닌 ‘어른숙제’로 변한 것은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가급적 아이들 스스로 숙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학부모들도 있지만, 다른 아이들이 해온 숙제보다 조잡해 선생님의 눈총을 받거나 교실 뒤편 게시판에 과제물을 전시할 때 누락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결국 자녀의 여린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해 학부모가 직접 나설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광주시 서구 치평동 운천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중인 자녀를 둔 학부모 채모씨(35·여)는 최근 무등산 자락에 있는 고찰과 인근 유적지에 대해 조사해 오라는 아이의 숙제해결에 진땀을 흘려야했다. 백과사전이나 인터넷 자료 없이는 어른들조차 대강 적어갈만한 내용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
하는 수 없이 남편이 하루 휴가를 내어 무등산 인근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밤늦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를 찾고 나서야 걱정스레 앉아있던 아이를 재울 수 있었다.
이같은 사정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흔히 겪는 일이다.
딸이 초등학교 3학년인 김모씨(37·서구 화정동)는 한달에 한번꼴로 아이가 가져오는 ‘가족신문 만들기’숙제 때문에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물론 부모가 아이들에 대해 좀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가족의 공동 관심사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는 시간이라도 가져보라는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실제로 숙제를 하는 과정을 보면 아이들 교육에 얼마나 효과적인가 의문이 간다고 말한다.
특히 김씨는 자연과학 숙제인 ‘개구리 알수집’이나 ‘올챙이 잡아오기’등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심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도회지에서 자란 아이들이 곤충이나 식물채집을 혼자서 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부모가 나설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숙제가 많아지자 이를 돈벌이로 이용하려는 사람들까지 자연스럽게 생겨나 요즘 아이들은 올챙이를 학교앞 문방구에서 쉽게 구한다.
이러다보니 노골적인 생태계 파괴가 이뤄지고 있으며, 교육적 효과도 전무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아이들에게 자원재활용 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숙제도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오히려 역기능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학부모 이모씨(36·남구 봉선동)는 얼마전 퇴근 후 귀가했다가 딸이 엄마와 함께 학교에 제출할 준비물을 챙기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재활용품을 이용한 교실환경미화에 쓸 것이라며 멀쩡한 새 정구공을 가위로 오려내고 있었던 것.
가정에서 사용하지 않는 헌 정구공을 모아오라는 교사의 지시에 문방구에서 새 공을 구입해 헌 공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에대해 학부모들은 초등학생들의 숙제가 혼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의 현실적인 수준에 그쳐야 한다고 말한다.
즉, ▲설거지나 방청소를 하고 느낀점을 적어보기 ▲특이한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실, 유적지 등을 관찰하거나 경험한 뒤 감상문쓰기 등 교육적이면서도 바른 심성발달에 도움이 되는 숙제를 부과해야 한다는 게 학부모들의 바람이다.
또한 학부모들은 엄마가 대신 만들어 준 작품을 아무런 생각없이 그대로 전시하거나 인정하는 교사들의 형식적이고 획일적인 교육관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는다.
광주시교육청 초등교육과 박종국 장학사는 “부모들의 지나친 교육열로 책가방이 무겁기만한 아이들이 숙제 때문에 짓눌려 있다는 것은 우리의 교육문화를 대변하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라며 “어린이들이 숙제를 하는 과정이나 결과에 대한 고려를 전혀 하지않는 교사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