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갈라진다.
세마치 장단에 맞춰 끊어질 듯 이어지는 진도 아리랑. 그 사이로 뽕할머니의 슬픈 전설을 간직한 바다가 속살을 내비친다.
진도 회동마을(고군면)과 모도마을(의신면) 사이에 드러난 2.8㎞의 바닷길.
흔히 ‘신비의 바닷길’, 혹은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영등(靈登)살’은 매년 음력 3월초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 폭 40∼60m의 바닷길이 열리는 현상이다.
열린 바닷길과 함께 전해오는 전설과 갖가지 향토 무속, 민속문화가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이 바닷길에 얽힌 얘기는 수백년에 걸쳐 전해오는 ‘뽕할머니’에 대한 전설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초기 제주도 유배길에 올랐던 손동지라는 사람이 풍랑으로 진도 호동(회동)마을에 표류, 마을을 이루고 살던중 호환을 피해 마을 앞 모도란 섬으로 피신을 하게 됐다.
이때 미처 피하지 못하고 마을에 홀로 남게 된 뽕할머니는 가족을 만나게 해달라며 용왕께 매일 제를 올렸다.
그 해 3월초 용왕이 나타나 “내일 무지개를 바다위에 내릴 것이니 강을 건너라”는 꿈과 함께 바닷길이 열렸고, 모도에 있던 마을 주민들은 징과 꽹가리를 치며 호동에 도착했다.
“기도로 길이 열려 너희들을 만나니 여한이 없노라”며 기진한 뽕할머니는 그만 숨을 거뒀다 한다.
주민들은 할머니의 소망으로 다시 돌아왔다 해서 호동을 ‘회동’으로 바꿔 부르게 됐다고 한다. 해마다 이를 기리기 위해 3월초 주민들은 풍어와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영등제를 지내왔고 회동~모도 사람들은 바닷길에서 서로 만나 바지락, 낙지 등을 잡으며 하루를 지내게 됐다고 전한다.
영등제는 바로 이 전설을 바탕으로 진도의 다양한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진 종합 문화·예술축제로 승화돼 오늘날 남도의 대표적인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영등살놀이는 호환에 시달린 회동주민들이 모도로 피신하는 장면을 재현한 ‘뗏목놀이’부터 시작된다.
이어 풍어와 국태민안 등을 기원하는 용왕제가 끝날 무렵 모도와 회동의 바닷길이 열린다. 이 때 뽕할머니가 가족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장면에 이어 바닷길에서의 상봉, 뽕할머니가 숨을 거둔후 씻김굿·만가(상여) 행렬이 이어진다. 영등살놀이는 뽕할머니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나면 비로소 막을 내리게 된다.
세월의 더께와 함께 이제는 바닷길의 신비만으로 영등제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진도문화원 박문규(67) 원장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일궈온 진도사람들에게는 바다를 주제로 한 갖가지 무속이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 ‘영등살 놀이’에 등장하는 박대래(무형문화재72호)씨의 씻김굿, 상주를 위문하는 것으로 희극적 요소가 강한 다시래기(무형문화재81호), 상여소리(진도만가·19호) 등은 어느 지역에서도 맛볼 수 없는 진도사람들의 독특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가히 ‘가장 토속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 할 만하다.
올해는 5월 23일부터 사흘간 바닷길이 열린다. 길이 활짝 열리는 시간은 약 1시간. 23일 오후 5시30분, 24일 오후 6시10분, 25일 오후 6시40분에 자연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맞춰 진도군에서는 다양한 부대행사와 함께 제24회 영등축제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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