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민주화운동에 투신 노무현 전 대통령 마지막 비서실장과 친구로 안철수 원장과 단일화 마지막 과제 남아 있어

16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고양체육관에서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자 선출된 문재인 후보가 수락연설을 마치고 민주당 당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16일 경기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후보는 타 후보들을 압도적인 표차로 물리치고 18대 대선 본선에 나서게 됐다.

문 후보는 1953년 경남 거제에서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계란행상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가난을 숙명처럼 지고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부산 영도로 이사했지만 여전히 가난했다고 한다. 문 후보는 "사라호 태풍 때는 지붕이 날아가 뻥 뚫린 천장 아래에서 울어야 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생활고 때문에 이른 새벽 암표장사를 해보려고 어린 문재인을 데리고 부산역까지 갔던 어머니는 아들 앞에서 끝내 불법을 저지르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문 후보는 대학 재학 시절 내내 그는 시위 현장에서 빠지지 않는 학생으로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1975년 4월 경희대에서 벌어진 대규모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한 후 강제징집돼 특전사에서 군복무를 마친다.

사법연수원 차석졸업이라는 영광을 얻었지만 시위 전력 탓에 판사 임용의 꿈은 끝내 좌절된다. 그리고 곧바로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부산에서 개업한 노무현 변호사의 사무실이 첫 공식직장이었던 셈이다.

그는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부산에서 시국사건 특히 노동자 관련사건의 동반 변론에 자주 나서면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생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급을 종합해보면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에게 '영원한 비서실장'이라기보다 '영원한 친구'에 가깝다.

노 전 대통령이 변호사이던 시절부터 인연을 맺기 시작한 그는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그리고 마지막 비서실장으로서 노 전 대통령 곁을 떠나지 않았다.

올해 4·11 총선은 문 후보에게 금뱃지를 달아주었지만 지역주의의 벽이라는 큰 벽을 실감케 한 자리이기도 했다.

현 정부 하에서의 경제·문화·교육 정책 등이 무한경쟁사회 속에서 인간소외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진단한 그는 혁신과 통합으로 사람의 본래 가치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치않는 정치참여였지만 후퇴한 역사를 제 자리로 갖다놓기 위해 대권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겠다는 소명의식은 "현 정권의 시민정치에 대한 혐오와 부정, 무시"에서 비롯됐다며 보수정권이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한 진보정권 10년에 대한 복권을 희구했다.

문 후보는 "정치인 문재인은 정치인 노무현을 넘어서겠다"며 "그가 멈춘 그곳에서, 그가 가다만 그 길을 머뭇거리지 않고 주춤거리지 않고 갈 것"이라고 강조해 참여정부의 계승·발전을 자신의 지향점으로 제시했다.

문 후보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과의 야권단일화와 대선 본선이라는 두개의 큰 관문을 남겨두고 있다.

▲1953 경남 거제 ▲부산남항초 ▲경남중·고 ▲경희대 법대 학사 ▲1975년 학생운동으로 투옥, 서대문 구치소 수감 ▲육군 병장(특전사령부 제1공수 특전여단) 만기제대 ▲제22회 사법고시 합격 ▲민주사회를 위한 부산 경남 변호사 모임 대표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법무법인 부산 설립 ▲노무현 대통령후보 부산 선거대책본부장 ▲청와대 민정수석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청와대 비서실장 ▲고(故) 노무현 前대통령 국민장의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혁신과 통합 상임공동대표 ▲18대 국회의원/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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