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민주화운동에 투신 노무현 전 대통령 마지막 비서실장과 친구로 안철수 원장과 단일화 마지막 과제 남아 있어
문 후보는 1953년 경남 거제에서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계란행상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가난을 숙명처럼 지고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부산 영도로 이사했지만 여전히 가난했다고 한다. 문 후보는 "사라호 태풍 때는 지붕이 날아가 뻥 뚫린 천장 아래에서 울어야 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생활고 때문에 이른 새벽 암표장사를 해보려고 어린 문재인을 데리고 부산역까지 갔던 어머니는 아들 앞에서 끝내 불법을 저지르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문 후보는 대학 재학 시절 내내 그는 시위 현장에서 빠지지 않는 학생으로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1975년 4월 경희대에서 벌어진 대규모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한 후 강제징집돼 특전사에서 군복무를 마친다.
사법연수원 차석졸업이라는 영광을 얻었지만 시위 전력 탓에 판사 임용의 꿈은 끝내 좌절된다. 그리고 곧바로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부산에서 개업한 노무현 변호사의 사무실이 첫 공식직장이었던 셈이다.
그는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부산에서 시국사건 특히 노동자 관련사건의 동반 변론에 자주 나서면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생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급을 종합해보면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에게 '영원한 비서실장'이라기보다 '영원한 친구'에 가깝다.
노 전 대통령이 변호사이던 시절부터 인연을 맺기 시작한 그는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그리고 마지막 비서실장으로서 노 전 대통령 곁을 떠나지 않았다.
올해 4·11 총선은 문 후보에게 금뱃지를 달아주었지만 지역주의의 벽이라는 큰 벽을 실감케 한 자리이기도 했다.
현 정부 하에서의 경제·문화·교육 정책 등이 무한경쟁사회 속에서 인간소외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진단한 그는 혁신과 통합으로 사람의 본래 가치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치않는 정치참여였지만 후퇴한 역사를 제 자리로 갖다놓기 위해 대권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겠다는 소명의식은 "현 정권의 시민정치에 대한 혐오와 부정, 무시"에서 비롯됐다며 보수정권이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한 진보정권 10년에 대한 복권을 희구했다.
문 후보는 "정치인 문재인은 정치인 노무현을 넘어서겠다"며 "그가 멈춘 그곳에서, 그가 가다만 그 길을 머뭇거리지 않고 주춤거리지 않고 갈 것"이라고 강조해 참여정부의 계승·발전을 자신의 지향점으로 제시했다.
문 후보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과의 야권단일화와 대선 본선이라는 두개의 큰 관문을 남겨두고 있다.
▲1953 경남 거제 ▲부산남항초 ▲경남중·고 ▲경희대 법대 학사 ▲1975년 학생운동으로 투옥, 서대문 구치소 수감 ▲육군 병장(특전사령부 제1공수 특전여단) 만기제대 ▲제22회 사법고시 합격 ▲민주사회를 위한 부산 경남 변호사 모임 대표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법무법인 부산 설립 ▲노무현 대통령후보 부산 선거대책본부장 ▲청와대 민정수석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청와대 비서실장 ▲고(故) 노무현 前대통령 국민장의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혁신과 통합 상임공동대표 ▲18대 국회의원/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