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한나라 현토성 차지 후 고이산에 새로 쌓아”
명승고적·인문경관·삼림휴양지 등 볼거리 풍성
10여개 고구려 성터· 누루하치 조상능묘 ‘영릉’
무순지역 불교유적 8각9층 전탑·관음각도 유명

심양 원예(園藝)엑스포 남문에서 심양~신빈(新賓) 간 국도를 따라 고만(高灣)지역을 지나 13㎞ 더 나아가면 수십m 높이의 가파르고 긴 산등성이가 왼편으로 기다란 병풍처럼 동서로 길게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산이 무순(撫順)시가지 북쪽 변두리에 위치한 고이산(高爾山)이다. 고구려의 신성(新城)이 바로 이 산 위에 있다.

‘삼국사기’에는 “고국원왕 5년(기원 335년) 정월에 나라의 북쪽에 신성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고고학자들은 서진(西晉) 초기, 즉 서기 266~276년 사이에 쌓기 시작한 이 신성은 고구려 봉상왕 2년(烽上王二年·기원 293년) 이전에 축성공사가 이미 완료된 것으로 보고 있다. ‘무순통사(撫順通史)’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성이라는 이름이 역사에 기재된 것은 기원 276년이고 고구려가 북국(北國)의 신성을 쌓은 시간은 기원 335년이다.” 학자들의 견해는 일치하지 않지만 고구려가 요동을 전부 차지하기 전에 옛 한(漢)나라와 위(魏)나라 현토군의 치소(治所)가 이사온 무순지역을 미리 차지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이 신성은 중국 진대(晉代) 이후 역사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고구려의 유명한 옛 성이다.

새로 쌓은 성곽을 의미하는 신성은 현토성에 상대해 지어진 명칭이다. 중국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원래 한반도 함흥(咸興)의 북청(北靑) 옛 성 옥저성(沃沮城)에 있던 현토성은 요동의 신빈(新賓)지역 이도하자(二道河子) 옛 성, 즉 옛 ‘고구려현’으로 옮겼다가 서쪽으로 고이산 남쪽 혼하(渾河) 남안(南岸), 즉 현재 무순시내 우의호텔(友誼賓館)과 노동공원(勞動公園) 자리로 이사왔다(후에 현토성은 또 한 번 서쪽으로 심양 동쪽 혼하 남쪽 기슭의 상백관둔<上佰官屯> 옛 성터로 이사함). 고구려가 이 현토성을 차지하고 그 맞은편, 즉 혼하 북쪽 고이산에다 성곽을 새로 쌓고 구성(舊城, 즉 현토성)이 있는 것을 감안해 이름을 신성이라고 지었다.

고구려시기 신성은 쇄양성(鎖陽城), 귀단성(貴端城)이라고도 불렀다.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에 신성은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의 치소로 되었고 이어서 이름을 신성주(新城州)라 고쳤다.

옛 신성 터에 자리잡은 고이산공원과 산성소재지 무순 고구려의 신성은 해발 80~232m인 고이산 위에 축조됐다. 만주어로 “온통 홰나무로 뒤덮인 산”이라는 뜻인 고이산(高爾山· ‘꼬얼싼’이라 발음)은 한문 고려산(高麗山)의 음을 딴 것 같다. 중국어로 고려산은 ‘꼬리싼’이라고 읽는다. 무순지역의 한족들은 태반이 산동에서 온 사람들이므로 혀가 꼬부라진 말을 잘 하는데 ‘꼬리싼’을 ‘꼬얼싼’으로 입에 담는다. 이리하여 고려산이 지금의 이름으로 변하지 않았는가 싶다.

고이산 위의 옛 신성 터엔 고이산공원이 들어앉았다. 부지가 240㏊인 고이산공원은 자연산림과 명승고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신성의 남벽 터였던 공원 남쪽 산등성이에는 명승고적과 인문경관이 집중되어 있고 북쪽 구역은 신성의 서성(主城의 서쪽부분)터와 외성터의 삼림휴양지다. 공원 남쪽 산등성이의 주요 볼거리는 9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요나라 시기의 8각9층 전탑(현지에서는 요탑이라 부른다)과 명나라 시기의 고찰 관음각이다.

요탑은 서기 1088년에 축조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웅장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무순지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이 탑은 높이가 14.1m이고, 지름이 6.8m인 8각9층 전탑이다. 탑신은 아래로부터 위에 이르기까지 밀집(密集)한 처마와 지붕받침이 비례에 맞게 층을 이루고, 그 층마다 돌로 기둥을 세웠으며, 여덟 개 대칭되는 둥근 호형(弧形)의 모퉁이를 이루었다. 균형이 잘 잡힌 이 탑신은 각 부위가 정교하고 조형도 아름답다. 탑신 밑층의 여덟 개 입면(立面)에는 4각형의 불단이 만들어져 있고, 불단마다 복판에 좌불을 하나씩 조각해 놓았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탑을 쌓을 때, 근처에 다른 탑 하나와 사찰을 함께 축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과 여러 차례의 전쟁을 거치면서 그 탑과 사찰은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다행히 남아있는 이 탑도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돼 무순시의 복구와 보수를 거쳐서야 지금의 모습을 지니게 됐다.

무순지역의 유명한 불교사찰인 관음각은 요탑 아래 가파른 산중턱에 있다. 명나라 때 지은 이 관음각은 상하원으로 나누는데 약 30m의 거리를 두고 동서로 위치해 있다. 관음각의 주체건물인 원통보전(圓通寶殿)은 상원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대전은 3칸으로 되어 있는데 중간 대청에는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져 있고 양측 두 칸에는 각각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대전 양측에는 각각 편전 3간이 있다. 그중 동쪽의 편전 가람전(伽藍殿)에는 관운장의 신상과 주창(周倉), 관평(關平)의 신상이 모셔져 있고, 서쪽의 편전 지장전(地藏殿)에는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편전 동쪽에는 벽돌로 벼랑에 붙여 쌓은 종루(鐘樓)가 있고, 그 옆의 벼랑에는 인공으로 쪼아낸 청허동(淸虛洞)이 있는데 그 안에 태상로군상이 봉안되어 있다. 분명히 불교와 도교가 합류된 도량이다.

관음각 하원이었던 원래의 건물은 무너져 내려 1983년에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고대건축 풍격의 쇄양루(鎖陽樓)를 지어놓았다. 2003년에는 쇄양루를 확장해 대웅보전으로 고치고 그 안에 석가모니부처와 약사, 미타 보살 및 18나한을 봉안했다. 동시에 대전 다락을 장경루(藏經樓)로 고쳐 불교경전과 역사, 철학 등 도서를 내장하고 있다. 요동지역의 중요한 불교사찰과 도교의 도량으로 이름난 관음각은 수많은 관광객과 신자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고이산 요탑 앞에 서서 남쪽으로 둘러보면 혼하를 끼고 있는 무순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무순은 요나라와 금나라 시기에는 귀덕주(貴德州)로 되었다가 그후 원·명·청 3개 왕조를 거치면서 요양행성(行省), 요동도사(都司)와 성경(盛京)에 예속됐다. 명태조가 요동도사에 속하는 이곳의 고이산 남쪽 근처에다 성을 쌓고 무순성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무순은 ‘무수변강(撫綏邊疆)’과 ‘순도이민(順導夷民)’ 두 구절의 첫 글자를 따서 붙인 것으로 그 뜻은 “변강을 무마하여 평안하게 하고, 이민족을 잘 인도하라”는 것이다. 한족의 타 민족에 대한 동화정책을 의미하는 이 지명은 명나라 통치계급이 바라고 있는 일을 반영한다. 하지만 역사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누루하치를 비롯한 여진족이 반기(反旗)를 들고 명나라와 싸우다가 후금정권을 세웠으며, 나아가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청나라를 세워 장장 268년간의 봉건통치를 했다. 그러므로 무순지역은 청나라의 발상지가 되었다.

1930년대 일제가 무순을 점령한 후 이곳에서 탄광을 대대적으로 개발하고 귀한 자원을 닥치는 대로 약탈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가 일제와 결탁, 위만주국(僞滿洲國)을 세웠던 죄로 인해 만주의 해방과 함께 포로가 되어 위만주국 관리들과 일본 관동군 장령들이 갇혀있는 ‘무순전범(戰犯)관리소’에 오랫동안 수감되었던 것이다.

1949년 이후 무순은 중앙직할시로 지정되었다가 1954년부터 지금까지 요녕성 관할시로 되었다. 풍부한 석탄자원으로 명성을 떨친 ‘석탄의 도시’ 무순은 중국 북방의 공업대도시로 거듭났다. 현재 이곳의 에너지공업과 석유화학공업도 유명하다. 산하에 4개 구와 3개 현, 2개의 경제개발구가 있는 무순시는 총 면적이 1만1천272㎢이며, 인구는 230여만명이다. 그중 만족, 조선족, 회족 등 33개 소수민족이 약 63만 명으로 총 인구의 27.5%를 차지하는데 조선족은 5만여명 된다.

무순은 고구려의 옛 성터, 청나라의 역사유적, 만족(여진족)의 풍토인정(風土人情)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신성을 제외하고도 또 목저성(오룡산성), 남섬성(득승보산성), 창암성(삼송산성), 다물성(흑구산성), 전수호산성, 책루구성(백기보산성), 양성(태자성산성), 영액문산성, 남산성산성, 마화사산성, 성자구산성 등 10여개 고구려 옛 성터가 있는가 하면 청나라 첫 도읍 헤투알라성(赫圖阿拉城)과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 누루하치 조상들의 능묘인 영릉(永陵)도 있다. 여기에 또 아시아에서 제일 크다는 이름난 서노천탄광(西露天煤鑛)과 사얼후(薩爾湖)풍경구, 원수림(元帥林), 후석(원숭이 같이 생긴 바위돌)삼림공원, 홍하(紅河)래프팅풍경구 등 7개 성급이나 국가급 삼림공원이 있다. 그중 해발고도가 요녕성에서 가장 높은 ‘요녕의 지붕’으로 불리는 강산(崗山)삼림공원과 무순, 심양 등 대도시에 식용수를 공급하는 대화방(大火房)저수지풍경구는 너무도 유명하다.
장광섭/중국문화전문기자
윤재윤/요녕조선문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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