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들 중 "가장 비정한" 왕이란 딱지가 붙은 리처드 3세의 유골이 500년 만에 발견,확인했다.

과학자들은 레스터 시의 한 주차장 지하에서 500년 된 리차드 3세의 유골을 발견했다고 4일 공표했다.

지난해 9월 발굴될 당시부터 리처드 3세 것이라는 추측이 돌았던, 전쟁 중 입은 상처가 확연한 유해에 과학적 검사를 실시한 결과 왕의 유골이라는 것을 "이성적으로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신하게 됐다고 레스터 대학 학자들은 말했다. 리처드 3세는 1485년 보스워스 전투에서 전사했는데 유골을 찾지 못해 그간 미스터리로 남았다.

골 전문학자도 긍정했고 리처드 왕의 누나의 직계 후손인 런던의 한 가구제작자의 샘플과 유골의 미토콘드리아 DNA 계열이 일치했다고 한다.

리처드 3세는 '왕답게' 전투하다 죽은 마지막 영국 왕이지만, 무엇보다 죽은 지 80년 후에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희극 "리처드 3세"에서 천하에 가장 잔혹 무정한 왕으로 극화한 바람에 '비정한 꼽추 찬탈자 폭군'이란 레테르를 영원히 떼지 못했다. 왕좌에 오르기 위해 두 명의 조카 왕자를 런던 탑에 갇았다가 스스로 잔인하게 목졸라 죽였다는 것이다.

많은 사학자들은 이것은 공평하지 못한 잘못된 이야기로, 리처드 3세를 물리치고 플란타지네트 왕조 대신 영국 왕권을 쥔 튜더 왕조의 왜곡된 "선전"을 셰익스피어가 충실하게 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튜더 왕조는 리처드 3세를 죽인 헨리 튜더인 헨리 7세, 그리고 여러 왕비들 이야기로 흥미진진한 헨리 8세 및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속해 있다.

발굴된 유골은 셰익스피어가 그린 것처럼 흉측한 꼽추가 아니라 당시 동시대인들이 증언한 것처럼 척추 측만 증상을 보였다. 그리고 후두부에 칼침을 맞은 상처와 윗 척추에 금속 미늘이 든 화살촉이 발견되는 등 전쟁 증언과 일치되는 증거가 나왔다.

'리처드 3세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단체 등은 이번 유골 발견으로 튜더 왕조와 셰익스피어가 만든 리처드 3세의 나쁜 이미지가 사라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연극 리처드 3세
32세로 전사한 리처드 3세는 2년 반 동안 재위에 있었으며 역시 조카를 죽인 조선 세조보다 10여 년 늦게 죽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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