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는 리니지1 게임의 별지 목록 기재 아이템을 원고에게 복구하라"

지난 5월30일 서울중앙지법에 이런 요구를 담은 내용의 소장이 접수됐다. 원고는 김모(64·여)씨, 피고는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리니지'를 제작해 서비스하는 엔씨소프트였다.

김씨는 지난해 4월말 리니지1 게임을 시작했다. 7개월 만에 레벨을 '고수' 수준인 70까지 끌어올렸다. 게임회사와 법정다툼까지 벌이게 된 사건은 이때 발생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2일 오전 8시께 '진명황의 집행검' 아이템에 대한 '인챈트'를 실행했다. 인챈트는 아이템의 공격·방어 능력을 일시적으로 강화하는 기능이다. 그러나 실패할 경우 아이템이 소멸할 위험도 있다.

김씨는 최고 3천만원에 거래되는 이 아이템의 인챈트에 실패하고 말았다. 소송은 소멸한 '진명황의 집행검'을 복구해달라는 취지였다.

게임의 규칙상 엔씨소프트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어 보이지만 김씨는 민법 규정을 파고들었다. 민법에는 '법률행위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을 때는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김씨는 "고가의 아이템이 소멸될 위험을 무릅쓰고 인챈트를 실행할 이유가 없었다"며 저가의 아이템을 인챈트하려다가 '착오'로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결과는 패소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3부(김현미 부장판사)는 인챈트가 착오였다고 보기 어렵다며 엔씨소프트의 손을 들어줬다고 18일 밝혔다.

7장짜리 판결문에서는 게임 전문용어가 어려운 법률용어를 대신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아이템 소멸을 확인한 뒤에도 다시 '룸티스의 푸른 귀걸이' 아이템을 인챈트했고 실행 직전 '체력의 가더' 인챈트에 실패한 뒤 곧바로 무기 마법 주문서를 구매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여러 번의 인챈트를 했는데 특정한 실행만 착오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봉인 해제, 마법 주문서 구입 등의 단계를 거쳐야만 인챈트가 가능하다"며 엔씨소프트가 소멸의 위험을 알리지 않았다는 김씨의 항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착오일 경우 의사표시를 취소하지 못한다'는 민법의 단서조항도 제시했다. 착오라고 가정해도 3천만원짜리 아이템을 인챈트한 것은 김씨의 '중대한 과실'이어서 복구해줄 필요가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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