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유형의 신데렐라가 탄생했다.

물론 재투성이 아가씨가 호박 마차를 타고 왕자님을 만나는, 역사가 구구한 기존의 신데렐라도 여전히 건재하다. 그러한 신데렐라 신드롬을 주제의식으로 구현하는 드라마는 안방극장에서 차고 넘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여성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에 변화가 생기면서 드라마 속 신데렐라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골드미스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여성들에게는 이제 웬만한 연상남보다는 파릇파릇하고 건강한 연하남이 더 각광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트렌드'를 타고 안방극장에는 과거 같으면 '풍기문란'이라고 지탄받았을 열살~스무살 어린 연하남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이제 한두살은 물론이고, 서너살 어려서도 '연하남' 대열에는 못 낄 판이다. 한동안 "누나"였던 드라마 속 연상녀는 이제 "선생님"이거나 "사장님"이거나 혹은 "어른 여자"라 불린다.

◇ 새로운 신데렐라 신드롬…"재벌보다 연하남"

기존의 신데렐라 신드롬은 가난한 여성과 부유한 남성의 만남을 통해 생성됐고 이는 지금도 여전히 안방극장에서 유효한 테마다.

한류드라마 열풍을 지핀 '꽃보다 남자'나 '상속자들'은 물론이고, 현재 방송되고 있는 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와 '왔다! 장보리', tvN '연애 말고 결혼' 등은 누가봐도 번듯한 조건의 남성이 자신보다 한참 스펙이 기우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기존의 '신데렐라 신드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늘도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스테디셀러의 한편에 새로운 트렌드가 끼어들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는 것과 비례해 여성의 결혼 적령기가 뒤로 밀리고 심지어 독신을 고집하는 여성들도 늘어나면서 이들이 원하는 남성상이 드라마에 적극 반영되기 시작한 것인데, 그게 바로 열살은 어린 연하남이다. 한마디로 이젠 30대 후반~40대가 된 골드미스가 사회적으로 성공하느라 잃어버렸던 자신의 20대 청춘을 '보상'해줄 연하남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회상이 어느 정도의 개연성도 확보하면서 드라마의 판타지와 결합해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는 사례들이 잇따르고 있다. 새로운 신데렐라의 탄생. 여성들이 생각하는 신데렐라의 개념에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현재 화제가 되고 있는 tvN '고교처세왕'에서는 18세 고등학교 2학년 이민석(서인석 분)이 신분을 속인 채 열살 연상의 28세 직장인 여성 정수영(이하나)과 사랑에 빠졌다. 이민석의 철부지 친구들은 정수영과 같은 큰누나뻘 여성을 "어른 여자"라고 부른다.

지난달 종영한 tvN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3에서는 영애(김현숙)에게 아홉살 연하의 꽃미남 직장동료 기웅(한기웅)이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이 그려졌다. 기웅은 "만나면 편하고 푸근하고 대화가 되는" 영애가 좋다고 고백을 했다.

그에 앞서 역시 지난달 종영한 tvN '마녀의 연애'는 시사전문 주간지 탐사보도팀장인 서른아홉살 골드미스 반지연(엄정화)과 스물다섯살 '알바의 달인' 윤동하(박서준)가 운명적인 사랑을 키워나가는 이야기를 그렸고, 지난 5월 막을 내린 JTBC '밀회'는 클래식 음악계를 배경으로 무려 스무살 차이가 나는 스승 혜원(김희애)과 제자 선재(유아인)의 사랑을 파격적으로 그렸다. 지난해 히트한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혜성(이보영)과 수하(이종석)도 아홉살 차이가 났다.

 


시청자들은 이렇듯 열살의 나이차가 나는 연상녀-연하남 조합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CJ E&M 홍보팀의 안미현 차장은 "실제로 현실에 30대 이상의 골드미스가 많고, 드라마의 타깃이 여성층이다보니 드라마 속 나이차가 많이 벌어지는 연상녀-연하남 조합에 대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안 차장은 "특히 극중 연하남이 무조건 어리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 여주인공과 상호 보완이 되는 캐릭터로 그려지기 때문에 현실성을 갖는다"면서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마음 한켠에 공허함이 있는 골드미스는 연하남을 통해 힐링을 하고, 아직 성숙하지 않은 연하남은 멋진 커리어우먼을 보면서 성장해가는 과정 속 두 사람의 사랑이 싹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연상女-연하男 결혼 역대 최다…"현실에 판타지 가미"

연상녀-연하남 커플의 증가는 통계로도 잡힌다.

지난 4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여자의 나이가 더 많은 '연상연하 커플'의 혼인 건수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초혼부부 중 여자가 연상이고 남자가 연하인 '연상연하 커플' 혼인 건수는 4만1천300건으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1년 이후 가장 많았다.

전체 혼인의 구성비로 보면 남자 연상 부부가 67.6%, 여자 연상 부부가 16.2%, 동갑내기 부부가 16.2%다. 여자 연상 부부가 동갑내기 부부 비율을 따라잡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드라마는 여기에 연상녀-연하남의 나이차를 더 벌려서 판타지를 가미하고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골드미스 손현정(39) 씨는 "요즘 드라마에서 나이차가 많이 나는 연상녀-연하남 커플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면서 "열살 어린 연하남이 판타지 같으면서도 어쩌면 현실에서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50년 전 신성일-엄앵란 부부가 탄생했을 때 엄앵란 씨가 불과 한살 연상임에도 연상녀-연하남 커플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면서 "그런데 지금은 현실에서 연상녀-연하남 부부가 정말 많다. 내 주변만도 여성이 8살, 11살 더 많은 부부가 있다. 그만큼 시대가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주 교수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그만큼 달라지고 전문직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의 욕구가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반영되는 것이라고 본다"면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돈많은 여성과 어린 제비의 관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과 그런 여성을 받아들이는 연하남의 심리가 자연스럽게 그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에 대한 인식 변화도 연상녀-연하남 커플의 탄생에 일조하고 있다.

주 교수는 "과거에는 여성이 무조건 수동적이어야한다고 했다면 요즘엔 그런 게 어디있냐. 대통령도 여성이 하는 시대 아니냐"면서 "성에 대한 고정관념도 깨지면서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자연스럽게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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