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버트 형제의 ‘국경 넘은 조선사랑’

일제에 맞서 조선을 지키려 애쓴 파란 눈 형제
형 호머 헐버트 조선 교육·문화·외교에 큰 공헌
동생 아처 헐버트도 미국에 조선을 알리며 헌신
어제 서울서 헐버트 박사 65주기 추모식 열려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와 아처 헐버트(Archer Butler Hulbert, 1873~1933)는 조선을 사랑했던 형제였다. 특히 호머 헐버트의 조선사랑은 남달랐다. 1886년 조선에 들어와 육영공원에서 외국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1891년 육영공원 규모가 축소되자 미국으로 돌아갔으나 1893년 미국 감리교회 선교사 자격으로 다시 조선에 들어와 선교사로 활동했다. 한국 이름은 활보(轄甫)이다.

호머 헐버트는 일본의 조선침략 야욕을 저지하기위해 혼신을 다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헐버트 박사는 고종의 밀서를 휴대하고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을 면담하려 했다. 비록 성사되지 않았지만 헐버트 박사는 미국 정계에 일본 군국주의의 위험성을 알리고 조선에 대한 야만적인 탄압행위들을 폭로했다. 1906년 고종에게 헤이그로 밀사 파견을 건의하고 자신은 한국 대표보다 먼저 헤이그에 도착해 조선의 입장을 널리 알렸다.

그는 헤이그 사건 이후 일제에 의해 조선에서 추방당한 후 평생을 조선을 위해 헌신했다. 1949년 국빈 초대를 받아 한국을 방문했으나 노환으로 일주일 만에 숨을 거뒀다. 그는 현재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정부는 헐버트 박사에게 1950년 3월 1일 외국인 최초로 건국공로훈장 태극장을 추서했다. 헐버트 박사는 생전에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소원한다”며 조선을 제2의 조국으로 여겼다.

그는 1905년 ‘한국사’(The History of Korea)를 발간하고 한국의 역사를 해외에 알렸다. 일제의 침략에 쓰러져 가던 조선을 어떻게든 일으켜 세우려 했던 호머 헐버트 박사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외국인으로 꼽히고 있다. 12일은 호머 헐버트 박사의 65주기 추모일이었다. 이날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 내 백주년선교기념관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은 일제에 맞서 조선을 지키려한 그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호머 헐버트박사의 동생 아처 헐버트는 형을 도와 1897년부터 1년 동안 독립신문 영문판 주필을 맡았다. 그는 조선의 문화와 역사에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정리해 미국 언론기관에 조선을 소개하는 많은 글들을 기고했다. 특히 명성황후 시해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입수해 이를 미국 언론기관에 제보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으로 귀국한 후 학자로 활동했다. 미국 서부개척사와 관련된 저서들이 많다 . 그는 교수로 재직 중에도 조선과 관련된 강의를 수시로 하는 등 형과 함께 뜨거운 조선 사랑을 실천했다.

/최혁 주필 kjhyuck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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