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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신의 소설 ‘이카루스의 강’
<7·혁명속 인연>

얼핏 두어 달 전 일이 생각났다. 경찰청 공안국이라며 사무실에 찾아온 이가 있었다. 그 남자는 자신을 공안국장의 비서라 소개하며 국장님께서 사장님을 긴히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들고 왔다.

경찰청 공안국 국장이 바로 최길문이었다. 그는 이00 정권하에 반공 좌익분자를 색출에 앞장서 출세 가도를 달렸고 전쟁이 끝나자 00경찰서장으로 승진하고 그 이듬해 경찰청 대공 업무 수장으로 영전해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장0 정권하에서도 야당에 든든한 뒷배가 있어 살아남은 자였다.

정길은 6·25로 인해 헤어진 아내 윤희를 찾기 위해 전쟁이 끝난 후에도 길문을 찾아갔고 돌아오는 대답은 무사히 부산에 도착해 정길을 찾기 위해 길문의 만류에도 그녀가 뿌리치고 헤어졌다고 했다.
정길은 길문의 뻔한 거짓말을 알고도 한줄기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길문이 아내 윤희를 죽였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는 이00 정권하에도 시시때때로 부하들을 시켜 허가 낸 건달처럼 큰 돈을 요구했고 몇 번은 들어주다 일절 무시한 적이 있었다. 그게 화근이 되어 관내 건달들을 시켜 정길을 린치한 적이 있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팔이 부러지고 오른쪽 복부에 칼을 맞았으나 다행히 중요 부위를 비켜나가 삼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세무서를 통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연일 받게 해 막대한 회사의 손실을 끼쳤다. 그리고 그도 모자라 명동 금고를 책임지고 있는 윤 상무를 좌익 용공으로 몰아 구속해 정길을 압박한 적이 있었다.
정길은 그 일로 이00 정권의 권력 실세 중 한명을 찾아가 거액의 정치자금을 바치고 그도 모자라 거물 정치인의 딸과 결혼해 슬하에 해용이란 어린 딸까지 두게 되었다. 사랑 없는 정략결혼을 올리게 되었다.
그 일로 모든 게 해결되었고 구속된 윤 상무도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거물 정치인인 장인은 한때 총리 후보로도 물망이 올랐으나 막후에서 모든 것을 조율하는 킹메이커 역할을 하는 분이었다.
장인의 도움으로 수년에 걸쳐 길문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정길은 벗어날 수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길문의 경찰복까지 벗기는 멋진 승리를 맛보게 되었다.
그때도 길문이 찾아와 이런 말을 남겼다.
“이형! 권불십년이오. 기억하시오.”
“나 최길문 죽지 않아! ”
“윤희를 무사히 부산까지 바래다 살려준 난데 날 무시해?”

그날이 1958년 가을날이었다. 그날 이후 정길은 두세 명의 경호원 호위를 받으며 다녔다. 길문에게 해방도 잠시 그 이듬해 장인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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