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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신의 소설 ‘이카루스의 강’

<16·황금비>-5

한참을 한강만 바라보다 이윽고 춘삼은 희수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희수야. 네가 정문일 데리고 와! 날이 밝는 대로 일본에 다녀와! 난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희수는 정문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담배를 건넸다.

“춘삼아 그렇게 할게. 법구경(法句經)에 이런 말이 있더라. 하늘에서 황금비가 내린다 해도 인간의 욕망을 채울 순 없다는 말이 자꾸 생각난다. 우리 욕심일랑 저 강물에 던져버리자. 이제 우리 나이도 오십 줄에 접어들어 지천명(知天命)이잖아.”

희수의 이 말 한마디가 춘삼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하며 자신이 살아왔고, 아비 이정길이 남긴 영상 속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잔상들이 파노라마처럼 강물 위에 펼쳐지고 있었다.

“희수야 욕망이 뭘까? 인생이 너무 짧지 않니? 사랑하고 행복하기에도 너무 짧은 인생 아니니?”

“그래도 춘삼아 우린 생이 허락할 때까지는 의미 있게 살아가 보자!”춘삼은 이런 말을 하는 희수가 너무나도 부러워 보였다. 보이지 않아도 의미와 희망을 찾아가는 희수의 심성이 삶을 일깨워주는 인생의 스승과도 같은 강줄기처럼 위대하기까지 해 보였다. 문득 춘삼은 자신을 일깨워 준 또 다른 스승, 이준상의 해맑은 미소가 떠올랐다. 비록 최치우의 농간으로 정치적인 생명을 잃고 초야에 묻혀 은둔생활을 하지만 그의 얼굴엔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의 편에 서서 기득권(旣得權)을 내려놓은 채 그들을 대변하며 세상과 맞서 싸운 분이었다. 이준상, 개벽된 세상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 위대한 인물이 희수의 웃는 얼굴과 겹쳐 보였다.

“희수야 네가 일본 다녀오는 대로 이준상 선배와 함께 좋은 일 한번 해 보자.”

“그게 무슨 말이야? 춘삼아.”

“우선 다녀와! 차차 알려줄게.”

한강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춘삼과 희수의 마음을 정화라도 하듯 살랑거리다 마치 어깨에 놓은 세상의 짐들을 내려놓으라는 세심(洗心)처럼 불고 있었다. 곁을 지키고 있는 희수는 춘삼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그저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순영이 올림픽대로를 지나 최치우의 양평 별장 근처에 도착할 무렵, 한 발의 총성이 어둠을 타고 울려 퍼졌다. 순영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승용차를 멈추고 한참을 생각에 잠기다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별장 안으로 향했다.

양평 별장, 거실 문이 열리는 순간, 순영은 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독사의 사체(死體)가 거실 중앙 한가운데 상체가 벗겨진 상태로 놓여 있었다. 독사는 가부좌를 틀고 머리 숙인 자세로 목석처럼 앉아 있었다. 총상을 입은 이마엔 검붉은 핏물이 미간을 타고 흘러 상반신에 그려진 용 문신을 핏빛으로 적셨고 오른손엔 회칼이 칼자루와 손가락이 두둔하게 테이프로 묶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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