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신의 소설 ‘이카루스의 강’

<16·황금비>-7

운전대를 잡은 순영의 양손은 경기(驚氣)를 일으키며 도저히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다급한 마음에 차를 양수리로 돌려 아침에 가지고 나온 초소형 카메라속 메모리 칩을 확인하며 핸드백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새벽녘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강가를 응시하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 운전석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니 김 차장님 아니세요?”

“네 어르신께서 걱정되셨는지 절 보고 사모님 집 앞까지 잘 모시라고 하명하셔서…. 놀라시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사모님.”

“아니에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하지만 어르신의 명령이라 사모님 죄송합니다.”

“그럼 제가 따라갈테니 먼저 가세요.”“네 그럼 에스코트 하겠습니다.”순영은 긴 한숨을 쉬었다. 하마터면 메모리 칩에 대한 일이 발각될 수 있었던 터라 무표정으로 일관, 김수창의 호송을 받으며 무사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해 5월 대지는 온통 푸름을 간직한 채 젊음을 뽐내지만 00공항으로 향하는 춘삼의 마음속엔 한겨울 속 살을 에는 칼바람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년을 잊고 지내다 죽은 줄 알았던 정문이 만신창이의 몸으로 귀국하는 날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입국장 한편에 정문을 기다리는 춘삼은 초조한 빛으로 입국장 출입구를 바라보고 있을 때 희수가 시야에 들어왔고 그가 끄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60대 노인의 형상을 지닌 남자가 보였다. 정문의 모습은 있으나 사지(四肢)가 잘려나간 앉은뱅이 불구의 모습으로 얼굴은 수년을 굶었는지 피골이 상접한 몰골 그 자체였다. 한쪽 눈엔 안대를 해 온전한 곳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윽고 춘삼과 정문이 맞닥뜨리는 순간, 정문의 온전한 한쪽 눈에는 눈물이 흘렀고 정문은 고개를 떨구며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춘삼은 마음을 진정시킨 채 정문 앞에 무릎을 꿇으며

“정문아. 잘 왔다. 이젠 괜찮아. 그래 이젠 모든 게 좋아질 거야.”

“우우”

정문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신음 같은 흐느낌 소리만 내며 춘삼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것을 지켜보던 희수가 정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춘삼을 바라보다 “그놈들이 정문이의 혓바닥도 잘라 이젠 말을 할 수 없어! 죽일 놈들….”춘삼은 더 이상 정문을 자극할 수 없었다. 그를 진정시키고 당분간 안정을 위해 해용이 기거하는 성북동 집으로 정문의 거처를 정해 지극한 간호를 받게 했다.

그해 여름, 몇 달 전 대통령 탄핵이란 초유의 일이 지나고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한 많은 세상, 이정길 회장을 주군으로 모셨던 정필 아저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JR그룹이 운영하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고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가을이 올 무렵 성북동 집에 기거한 정문의 상태는 몰라보게 좋아져 예전 기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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