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신의 소설 ‘이카루스의 강’

<17·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그리고 죽음>-5

시간은 새벽 2시가 될 무렵, 코끼리 대폿집 안은 파장 분위기인지 손님은 없어 한산한 모습이었고 주방 앞 한쪽 귀퉁이에 직원으로 보이는 두 분과 야참을 먹고 있는 순임 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춘삼이 들어가려고 하자 순영은 그의 손을 잡으며 잠시 머물 것을 요구했다.

어느덧 머리카락은 반백으로 변해 육순을 넘긴 언니, 순임을 바라보는 순영의 눈엔 눈물이 고였다.

“순영아 네가 울고 있으면 언니가 어떻게 생각하겠니? 그러지 말고 들어가자.”

“오빠! 혹여 내가 오빠 곁에 없더라도 오빤 날 용서해 줄 거지?”

“그게 무슨 소리야? 그딴 소리 한번 더하면 가만 안 둘 거야! 알아?”

“그래두 사람 일이란 한 치 앞도 모르는 일이잖아.”

“난 네가 없는 세상은 이제 생각하기도 싫다. 그런 소린 정말 하지 마. 부탁이야!”

“알겠어요. 오빠.”

순영은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추스르며 코끼리 대폿집 문을 열자 순임 언니는 콩나물을 한 움큼 쥔 손을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행주로 손을 훔치더니 순식간 일어나 순영을 향해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아이쿠 이것아! 좀 자주 오지!”

그리고 곁에 있던 춘삼의 두 손을 움켜지며 반가웠는지

“춘삼이도 왔구나! 아니 이젠 박 사장으로 불러야지 암! 나이가 오십 줄에 들었는데 내가 함부로 대하면 안 되지.”

춘삼은 눈빛으로 간단한 눈인사를 건네며 늘 그랬듯 젊은 날 순영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가슴 속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잠시 소원했던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순영이 화장실로 향했다. 문득 꺼두었던 휴대전화를 켰을 때 최치우에게 수십 통의 전화와 문자가 와 있었다. 문자를 보는 순간 순영은 자신도 모르는 구토가 일상이 되었고 또 한 번 변기를 부여잡고 있었다.

그 시각 양평 최치우의 비밀 별장엔 오늘따라 유난히 장도의 칼끝이 푸른빛을 띠며 서슬 퍼런 일본도를 닦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최치우였다. 그는 오늘 뜻밖에 청와대 어른의 부름을 받고 오찬을 하는 동안 차기 총리직을 제의받은 상태였다. 회동이 끝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여당의 사무총장으로서 당무에 충실했으나 그의 마음은 일찌감치 이 기쁨을 악마담, 미찌코와 함께 하려는 생각뿐이었다. 치우는 저녁에 있을 공식 일정을 건강상의 이유라는 핑계를 대 보좌관을 통해 취소하고 업무가 끝나자 부리나케 양평 별장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치우는 시간을 두고 악마담, 미찌코에게 휴대전화를 벌써 수십 통이나 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의 휴대전화는 꺼진 채 연락이 닿지 않아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거실 전체에 울려 퍼지고 오늘 청와대서 있었던 일을 복기(復碁)하며,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후로 미찌코와 있을 밀월을 떠올리며 어떤 방법으로 그녀와 이 밤의 대미를 장식할까 하는 달콤한 상상의 나래에 잠겨있었다. 치우는 어른과 오찬 자리에서 당장 총리직을 수락하고 싶었으나 체면치레를 할 생각으로 어른께 며칠간 생각할 말미를 받아놓은 상태라 비교적 느긋한 마음으로 일본도를 쳐다보며 자신만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기회던가! 치우는 대망(大望)의 마지막 단추를 잘 채우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각 연락이 끊긴 미찌코 걱정에 근심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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