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신의 소설 ‘이카루스의 강’

<18·욕망(慾望)의 강 그리고 겨울 무지개>-7

몇 년 전 회사가 수주한 고속도로 기공식 날 불참에 대한 기억도 생각이 났다. 필시 순영의 죽음에 춘삼은 알 수 없는 진실이 있다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춘삼의 마음을 헤집으며 시간의 흐름도 잊고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김 비서가 놀란 토끼 눈을 하며 먼발치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춘삼이 있는 곳으로 다급하게 달려왔다.

“사장님 전화입니다. 받아 보시죠.”

“누군가? 김 비서.”

“JR 대학병원 병원장입니다.”

“박춘삼입니다. 원장님.”

“저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말씀하세요. 원장님.”

“고정필 전무님께서 방금 운명하셨습니다. 사장님!”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춘삼은 암흑천지에 혼자 서있는 외로운 소나무처럼 휴대전화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춘삼의 평생 후견인으로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어른께서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하고 멍한 마음으로 그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그저 흘러가는 한강만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순영도 차디찬 주검으로 이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 같은 정필 아저씨도 곁을 떠나 이젠 다시 볼 수 없기에 한강을 바라보며 울분을 토해 낼 수밖에 없었다. 땅거미가 진 양수리엔 어느덧 겨울을 알리는 첫눈이 대지를 적시듯 눈물 되어 내리고 있었다.

연일 방송에선 총리인 최치우의 죽음에 관한 여러 가지 소문과 추측이 난무했지만 총리인 최치우의 표면적인 치적을 찬양하며 그의 아비 최길문이 독립유공자로 둔갑, 두 부자에 대한 치적과 생의 흔적을 포장해 국영 방송을 통해 방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국립묘지에 안장된 최치우의 장례식엔 각계각층의 저명인사와 시민의 애도 물결이 장사진을 이룰 때 용인의 한 야산에선 희수의 아버지, 고정필의 조용한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평소 고정필의 유언에 따라 춘삼의 아비 이 회장이 묻혀있는 묘소 옆에 안장했다. 저승에서도 아비 이정길의 말동무가 되어주겠다는 고인의 유지를 반영해서였다.

춘삼이 자란 서릿재엔 함박눈이 내렸다. 아무도 없었다. 먹구름이 대명천지를 뒤덮으며 서릿재 중턱에 홀로 서 있는 춘삼을 감싸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춘삼은 혼신을 다해 이 상황을 벗어나려 필사의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육신은 경직되고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었다. 혼신을 다해 그 상황을 벗어나려 하는 순간, 먹구름 가득한 하늘은 이내 사라지고 맑게 변한 서릿재 정상엔 생부인 이정길과 어미인 윤희, 그리고 양옆엔 고정필과 순영이 소복차림으로 춘삼을 부르고 있었다. 춘삼이 겁에 질린 비명과 함께 손을 내밀었을 때 그를 깨우며 손을 잡아주는 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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