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신의 소설 ‘이카루스의 강’

<18·욕망(慾望)의 강 그리고 겨울 무지개>-10

“김 기자님께서 절 찾아온 용건이 뭔가요?”

“사실 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용서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대관절 용서라니요? 김 기자님께서 제게 무슨 용서를 구한다는 겁니까!!”“아저씨 절 용서해주세요.”

김 기자는 다시 한 번 일어나 구십도로 정중히 인사를 했다.

“밑두끝두 없이 이러지 마세요. 혹시 절 아시나요?”

“네 아저씨! 저 가리봉 파란 대문집 김씨 아재, 큰 아들 석열입니다. 아저씨!”

“네가 김씨 아재 아들이라고?”춘삼은 갑자기 잊고 지낸 김씨 아재가 떠올랐다. 일본으로 돈 벌러 간다는 말만 남긴 채 지금껏 아재의 근황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네 아저씨! 사실 순영 이모가 죽기 전날 절 찾아 왔어요. 그리고 최치우의 모든 악행을 기록한 장부와 동영상 CD를 남기며 혹시 내게 불행이 닥치면 세상에 공개해 달라고 요구했어요. 설마 순영 이모가 불귀(不歸)의 객(客)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저씨에게 이모가 그렇게 되기 전, 이 사실을 알렸어야 했는데….”

석열의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래 자네는 잘못한 게 없어 이 사람아! 다 내 불찰이지. 잊어버리게나!”

춘삼은 석열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그를 위로했다. 석열은 마음을 추스르며 춘삼의 눈을 바라보다 순영 이모가 십여 년 전 한국에서 어쩔 수 없이 사라진 이유와 일본에서 살아온 행적을 소상히 이야기했다. 순영을 밑바닥 세상에서 구해 준 김씨 아재는 친동생처럼 그녀를 돌봤고 석열은 그녀를 이모라 부르며 친이모처럼 대했다고 했다. 석열은 그 이야길 마치고 가방을 열어 춘삼에게 서류 봉투를 건넸다.

“순영 이모가 돌아가시기 전날 아저씨에게 건네라면서 전해준 편지입니다. 그리고 CD는 방송에 최치우의 악행을 알리라고 준 건데…. 너무 잔인한 영상이 있어 죽은 이모를 두 번 죽이는 일이 될까 봐 방송엔 내보내지 못했습니다. 순영 이모가 얼마나 괴로웠을지 가히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어서요. 아저씨!”

방송 기자인 김석열이 돌아가고 한참을 망설이다 개인용 컴퓨터에 CD를 넣었다. 이윽고 동영상엔 지하 창고 같은 스산한 기운이 드는 방 내부엔 붉은 조명이 걸려 있었고 최치우가 채찍을 들고 전라(全裸)의 몸으로 돌아다녔고 벽엔 온갖 성기구가 걸려 있었으며 나신으로 형틀이 묶인 채 고통에 신음하는 순영의 일그러진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그 영상을 보는 순간, 얼마나 많은 나날을 고통의 굴레에 갇혀 살았을 순영을 떠올리자 춘삼은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만 같아 모니터 코드를 뽑고 CD를 꺼내 그 자리에서 박살내고 말았다. 그리고 광기 어린 눈으로 편지를 읽어나갔다.

(사랑하는 오빠! 이 편지가 오빠에게 전해질 땐 아마도 전 오빠를 다신 보지 못 할 거야! 오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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