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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신의 소설 ‘이카루스의 강’

 

<18·욕망(慾望)의 강 그리고 겨울 무지개>-11<完>

정말 미안해! 이렇게 더럽혀진 마음과 몸으로 오빠를 위해 산다는 게 내겐 너무나 고통스러웠어. 오빠와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며 결혼해 알콩달콩 오빠 닮은 아이 낳아 기르는 게 소원이었는데….)

여러 장의 편지 내용엔 춘삼과의 젊은 날 함께한 추억과 일본에서의 치욕스런 기억, 그리고 최치우에 의해 파괴된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기록해 놓았다. 그리고 최치우가 행한 악행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고 정문을 일본에서 찾은 일과 수년에 걸쳐 혼자 복수를 준비한 일등, 차마 만나서 하지 못한 마음속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읽어 나갔다.

(오빠! 내 마음속엔 복수심이 가득 차 내 자신의 악마를 키우다 보니 내가 어느덧 악마로 변해 있음을 알았어. 이젠 이 욕망이란 악마를 잠재우러 떠납니다. 비록 두려움이 앞서지만, 오빠! 이승의 못다 한 인연일랑 다음 생에서 우리 꼭 만나! 그때까진 지난번 약속한 대업(大業)을 꼭 이뤄주길 바래. 마지막 부탁이야. 그리고 다신 우리 같은 슬픈 인연의 사슬이 되풀이 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 줘!

늘 오빠를 그리며 살아왔던 순영이가….)

편지를 다 읽고 춘삼은 소파에 앉아 머리 조아린 채 침묵의 외침으로 한참을 울부짖다 지친 몰골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겨울비가 춘삼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하듯 순영의 눈물 되어 내리고 있었다.

며칠 후 광화문 네거리엔 죽은 총리를 부관참시(剖棺斬屍)라도 하듯 수십만의 민중이 거리를 가득 메웠고, 비리와 뇌물로 얼룩진 고위 공직자의 처벌과 일제 강점기, 친일파의 잔재를 없애라는 외침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 시각 방송엔 대통령이 나와 진정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 그리고 역사 바로 세우기에 노력한다는 진정 어린 발표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산청에서 진주를 향해 흐르는 80여 리의 경호강엔 오늘따라 세찬 바람이 산 아래에서 하류를 향해 불고 있었다. 강기슭, 큰 바위엔 희수를 비롯해 낯익은 얼굴이 검은색 상복을 입고 줄지어 자신의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순영의 장례식이 있는 날이었다. 상주인 순임은 화장을 해놓은 순영의 분골함을 들고 맨 먼저 바위에 올라 경호강을 바라보며 분골을 뿌렸다.

“부디 내 동생 극락왕생을 빌어주세요. 부처님! 천지신명님!”

분골은 바람을 타고 경호강에 흩어지며 순임의 인사가 끝나자 지인들이 차례로 올라가 한마디씩 고인의 명복을 빌며 분골(粉骨)을 강가에 뿌려 나갔다.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으로 춘삼부부가 함께 바위에 올라 나머지 분골을 뿌렸고 반백의 초췌한 모습의 춘삼은 오열이 그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본 아내 현정이 진심을 담아 허공에 외쳤다.

“부디 순영씨! 이젠 이승의 끈일랑 다 놓고 좋은 곳에서 영면하세요!”

시간이 흐르자 경호강 강가엔 눈이 내리고 희수는 춘삼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춘삼과 함께 고뇌에 찬 이준상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덧 눈보라는 경호강을 삼킬듯한 기세로 휘날리다, 경호강을 바라보는 세 남자의 얼굴을 세차게 두드리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바람도 눈보라도 그치자 강가엔 하얀 햇살과 함께 겨울 무지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박상신의 소설 ‘이카루스의 강’ 을 사랑해주신 독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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