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신의 단편소설 ‘4월의 상가(喪家)’-1

버스를 타고 선엽이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여느 4월의 봄날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선엽의 머리는 온통 친구, 상국에 대한 생각으로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어느덧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로 접어들었을 때 창밖으로 비친 풍경은 아랑곳없이 선엽은 넋 나간 사람처럼 바라보다 불현듯 잊고 지낸 옛 기억의 그림자를 버스 유리창 너머로 투영하고 있었다.

선엽은 섬진강이 남해와 만나는 00포구에서 태어났다. 강가 옆으론 지방도가 나 있고 그 안쪽에는 강을 따라 집들이 횡렬로 이어진 강기슭 마을이었다. 선엽과 상국은 같은 마을, 그것도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죽마고우(竹馬故友)로 자랐다. 어린 시절 두 집안은 오순도순 허물없이 지내며 서로 집안 내력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나 선엽과 상국은 두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유년시절을 함께 지냈다. 선엽이 상국의 소식을 접하게 된 건 두 달 전이었다. 그날따라 서울엔 봄을 재촉이라도 하듯 단비가 내리고 있었다. 평소 때와 같이 비 내리는 날이면 게으름인지, 아니면 오랜 습관 탓인지, 그는 사무실에다 우산을 두고 나오는 묘한 버릇이 생겼다. 다시 되돌아갈까 생각했지만,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주차장을 향해 뛰었다. 선엽이 주차장 한쪽에 세워 둔 자동차에 이르자 왼손에 든 가방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하려 머릴 감싸고, 다른 손으로 호주머니, 여기저기를 뒤지더니 열쇠를 꺼내 차 문을 열었다. 순간, 빗줄기를 뚫고 가방에 넣어둔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번잡한 마음에 그냥 지나칠까도 생각하다 몇 달 전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터라 저장해 두었던 번호가 모두 지워져 혹시나 영업상 중요한 거래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전화를 받았다.

“선엽아! 나야 상국이야….”

힘없이 기어가는 음성으로 봐서는 삶이 버거운 병자(病者)의 목소리였다.

“누구라고 상국이?….”

평소 내가 아는 상국은 늘 우렁찬 목소리에 자신감 넘치는 친구였다. 어느 날 잊고 지내던 그가 선엽에게 소식을 전했다. 고향을 떠나 서울이란 낯선 곳에서 둥지를 튼 지 어느덧 이십여년이 흘러 고향의 향수가 늘 그리운 선엽이었다. 워낙 장난기가 넘치고 엉뚱한 구석이 많은 친구이기에 선엽도 그런 친구를 위해 잔뜩 장난기를 실어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상국아! 살아 있구나. 이 녀석.”

상국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다 기진맥진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선엽아 나 지난달 뇌출혈로 쓰러져 지금 광주 00대학병원에 입원중이야.”

선엽은 친구 상국의 맥빠진 목소릴 듣고서야 농담이 아니라 이 모든 대화가 사실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선엽의 머리는 하얀 백지장처럼 멍해지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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