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신의 단편소설 ‘4월의 상가(喪家)-5

본사의 밀어내기식 판매방식에다, 팔다 못 판 상품의 반품문제, 소비자들의 불만사항,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본사의 대금 결제 방식에 대한 갑을관계의 불평등이었다. 순간 선엽의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오랜 영업부서 생활 속에 실적에 대한 공포감이었다. 한 달이 지나면 또 새로운 한 달이 다가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일상에 쫓기며 살았던 실적 위주의 삶이….

젊을 때는 좋은 적도 있었다. 스스로 회사의 중추적 역할을 차지한다는 자부심과 자신을 알아주는 상사의 칭찬 한마디에 더없이 고맙기도 했다. 실적을 달성할 때의 성취감과 그로 인해 두둑해진 월급봉투는 성취감에서 오는 영웅심에 빠져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었다. 하지만 십 수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는 매번 달성할 수 있는 실적보단 그 이상을 목표를 무리하게 부여했고 능력과 책임감이라는 갑옷을 입혀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그로 인해 월말이 되면 결과는 실적 미달성의 부메랑이 돼 선엽의 목을 조이기 다반사(茶飯事)였다. 예전엔 그래도 인정(人情)이란 동료애가 있어 조금은 위로가 됐는데 요즘은 도통, 능력과 경쟁이라는 허울 좋은 포장지로 덧칠돼 사막과도 같이 빠르게 변해 가는 디지털 세상에 묻혀 가는 것만 같았다. 요즘 들어 기업은 두 사람이 해야 할 업무를 한사람 몫으로 할당하고 그 한사람의 잉여 이익을 회사의 이익으로 둔갑시켜 몰라보게 냉철한 자본주의 극을 달리고 있었다.

결국, 회사의 이익이란 누구에게 돌아간다는 말인가! 참으로 이놈의 사회가 인간 중심이 아닌 자본의 시스템을 만든 소수 자본가의 농간(弄奸)에 놀아나고 있는 게 틀림없는 것 같았다. 붉은색 조명 아래 술판이 벌어지고 어느덧 수십의 소주병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의 외침 또한 종달새의 일방적인 지저귐처럼 서로의 처지를 푸념이라도 하듯 각자 구슬픈 이야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다 반대편에 자리한 김달중 사장이 취기가 올랐는지 내심 선엽에게 말을 건넸다.

“부장님은 자녀분이?”

“아 네. 저는 대학에 다니는 딸 아이 하납니다. 그러시는 김 사장님은 저보다 연배가 있어 뵈는데….”

김달중은 말을 선뜻 꺼내지 못하다가 갑자기 미간에 내 천자를 그리며 앞에 놓인 술잔을 단박에 들이켰다.

“부장님 한잔하세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괴로움이 묻어나는 표정을 지었다.

“큰놈이 작년에 교통사고로 불귀(不歸)의 객(客)이 됐습니다.”

한동안 그는 말을 잊지 못했다.

“큰놈만 생각하면 제가 너무 맘이 아픕니다. 학교 다니랴, 아르바이트에 취업 준비가 뭐라고…. 참 착한 아들이었지요. 못난 부모 만나서 뒷바라지도 제대로 못 해주고, 그게 가슴에….”

“뭐라 위로를 해야 할지 김 사장님.”

“다 지놈 복이겠지요. 그놈의 아르바이트가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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