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신의 단편소설 ‘4월의 상가(喪家)-10

“상국아 너무 상심 마! 네 잘못이 아니야!”

상국은 늦장가를 가기 전, 비명횡사한 처를 가족들이 반대한 이유는 재혼이란 이유도 있었으나 그보다는 처인 창숙이 전남편과 사이에 낳은 두 딸을 상국의 호적에 올린다는 조건이, 결혼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상국아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 힘내!!! 지금은 힘들거야, 하지만 잘 견뎌야 해!”

선엽은 이런 피상적인 얘기밖에 할 수 없었다. 얼마간 정적이 지나고 상국은 상주로서 자리로 돌아갔다. 선엽은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 상가 조문객이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엔 시골 친구들이 삼삼오오 술자리를 함께하며 앉아 있었다. 먼발치에서 선엽을 본 친구 영화가 그를 향해 소리 질렀다.

“선엽아 여기야 여기!”

선엽은 친구들과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서로 눈빛을 교환한 후 자리에 앉았다. 다들 중년의 오십을 넘긴 친구들이라 개중에는 반백으로 변해 나이가 지긋이 들어보이는 친구도 있었다. 친구 중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창석이 정감 어린 말투로 선엽에게 말을 건넸다.

“선엽아 정말 오랜만이구나. 그간 잘 지냈니?”

그는 얼핏 보아도 육십이 넘어 보이는 모습에 얼굴은 검버섯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고 주변머리가 없으나 어릴 적 부잡스러운 모습이 여전한 남아있는 친구였다. 그런 창석에게도 슬픈 사연은 있었다. 몇 년 전 군대에 간 아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창석 부부에게 돌아온 사건이 있었다. 힘들게 키운 아들이라 부부의 슬픔은 말할 수 없었다. 그때는 선엽이 회사 일로 외국 출장 중이라 조문을 하지 못했다. 그게 늘 가슴에 남았는지 그를 보면 마음 한구석엔 미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훗날 친구를 통해 들은 아들의 사고는 사실, 어느 부모라 해도 분통 터질 얘기였다. 아들이 상급병 구타로 인해 사망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창석과 제수씨가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냈을까하는 생각에 선엽은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창석의 착한 심성이 후일 아들을 죽인 상급병의 재판 과정 중 그를 용서했고 그로 인해 재판부에 상급병의 장래를 생각해 수차례 탄원서까지 제출해 가며 가해자인 상급병의 형량을 낮춘 것이었다. 감히 어느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사십구일재를 지낸 후, 그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과연 원수를 용서(容恕)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진대, 창석은 과감히 실천에 옮긴 친구였다. 왁자지껄한 상가(喪家) 내빈 실에는 친구들의 덕담으로 더욱 빛을 발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선엽의 어깨를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상주인 상국의 셋째 누나 미숙이었다. 선엽은 미숙을 마지막으로 본 게 벌써 이십 년도 넘었다. 하지만 미숙의 얼굴은 그때나 지금이나 선엽이 생각하는 기억 속 얼굴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아마도 미숙이 결혼하고 십여 년이 지나 그녀가 명절을 지내기 위해 친정에 들렀을 때 잠시 대면하고 그녀를 본지 이십여년이 지났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