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신의 단편소설 ‘4월의 상가(喪家)-12

그래서 상국과 한배에서 태어난 미진은 선엽의 누나인 정숙과 상국은 선엽과 동기생이 됐다. 줄초상이 난 상국의 가족을 위로하고 밖으로 나와 담배를 물었다. 10남매 대가족인 상국의 가족은 요사이,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실감 나듯 가족의 불운이 연달아 일어나는 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란 사실을 선엽은 깨닫고 있었다. 순간 그의 머리는 망치로 맞은 듯 멍해지고 인생의 복잡한 실타래가 얽히고설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겨지는 것만 같았다.

인생을 살면서 일어나는 불행의 고통을 이겨내는 힘이란 결국, 부모란 한 가지에 자란 형제란 곁가지의 진심 어린 위로와 격려, 그리고 그 따스한 손길로 아픔의 상처가 아물어 가는 것 같았다. 기나긴 삶의 출발점에서 왜 인간은 같은 부모에서 낳고 자랐지만, 형제지간 살아온 삶이 다 다른 것인가! 인간은 누구나 동일한 출발 선상에 부모 곁을 떠나 각자의 인연을 만났다. 그리곤 그들만의 삶의 역사를 써내려가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으며 세월의 흐름과 순리에 적응해가며 그들의 의지만으로는 삶의 세파를 역행할 수 없는 평범한 진리 앞에 어느덧 한 가지에 태어난 그들의 삶도 늦가을로 치닫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선엽의 머리를 휘젓고 있었다. 무수한 생각이 담배 연기로 변해 가로등 불빛 등진 채 하늘로 오르고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의 이마엔 굵은 빗방울이 하나둘씩 내리고 있었다.

친구들이 삼삼오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선엽이 머무는 야외 흡연구역으로 모여들었다. 세월이 흘러 그들의 모습은 변했어도 어려서부터 같이 자라서인지 선엽은 그들이 낯설지 않았다. 각자 담배를 물고 뭐가 그리 신났는지 서로 응석이 묻어있는 농담과 개구쟁이 시절 그리웠던 추억을 얘기하다 잠시 이곳이 상가(喪家)라는 인식도 잊은 채 옛날로 돌아가고 있었다.

“갑식아 이자슥아! 니네 딸 시집간다며? 맞는가. 동상?”

“으메 이 싸가지 없는 놈 형님한데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얘기 해야제! 느쟈구 없는 놈 같으니라구!”

“아따 이 싸가지들 니들은 만나기만 만나믄 싸우제! 먼저 한 넘이 이 세상 떠나믄 서운 헐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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